제목에 벌써 성폭행, 사법 시스템 이런 말이 써있기 때문에 마음의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성폭행이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보다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머리속에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뭔가 변태스럽고 남들과 다른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아 성폭행의 많은 모습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에 충격받았고, 학교에 있는 딸들 생각에 걱정도 되었다. 특히 큰 아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받는 여성의 인권 뭐 이런 것에 관심이 많고 둘째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었으니 이런 것에 대해 꼭 알고 있어야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간 날 때 꼭 읽어보라고 톡을 보냈다. 계속 읽다 보니 이건 여학생들만 읽을 것이 아니라 남학생들도 꼭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녀석이 대학가기 전에 꼭 읽어보라고 해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런데 책을 점점 읽어가면서는 충격을 넘어서서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이게 정말 2010-2012년에 일어난 일들이란 말인가? 워낙 범죄드라마를 많이 보는데다가 로 앤 오더: SVU 의 애청자이기 때문에 성폭행 사건의 경우 기소되기도 힘들고, 설사 범정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상대편 변호사가 어떻게 피해자를 갈갈이 찢어버리는 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런 드라마를 볼 때는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지만 드라마니까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나보다. 책에서 경찰, 검사의 모습과 나중에 법정에서의 모습을 보니 너무 화가 났다. 그러다 급기야는 검사였다가 사임하고 가해자의 변호를 해서 무죄를 받게 했던 Kristen Pabst 가 검사장 선거에 나오고 상당한 표차이로 승리했다는 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책을 던지면서 욕이 나왔다. 아 정말 XXXX 이러니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거지 에잇!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그녀는 임기가 끝나는 올해 선거에 다시 나온다고 한다. 세상에. 검사,판사를 투표로 뽑는 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2014년 오바마 정부가 제시했던 가이드라인에 반대하는 목소리 부분을 읽을 때는 더 이상 분노도 일지 않고 슬펐다. 아직도 이렇구나. 갈 길이 정말 멀구나. 이제 트럼프 정부가 되었으니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다시 끌어내리겠지.
그래도 이런 책이 나와줘서 고맙다. 2015년에 나온 이 책에서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라고 그 대가가 혹독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많은 피해자들이 드러내고 말하므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답하듯 작년부터 미투운동이 불어오고 있다. 그 목소리들이 모두 정의를 이루지 못하지만 어젠가 힘을 이루는 때가 오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