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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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들어진 문장들이 부르는 <칼의 노래 - 김훈>

 

 

 

 

 

내 책장 옆 언니의 책장 속에서 계속 눈에 아른아른 했던 <칼의 노래>의 모습. 그리고 이번에 통영 여행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거북선 모형의 사진을 보고, 정보 검색 중에 만나게 되었던 '통제영'이라는 단어. 이 책은 이렇게 눈에 익다가 미루면서 우연히 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법한 한국 작가들 중에서 내가 아직 한 작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분들이 많다. 김훈 작가는 그 중 하나였다. 옴니버스 에세이에서 조그만 토막글을 읽어본 것 이외에는 작품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김훈의 문장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야 약간은 느껴본 것 같다.

 

<칼의 노래>는 비장함 그 자체일 것만 같았다.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구절은 뭐 지금이야 패러디로 많이들 이용되지만 비장함의 대명사로 남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칼의 노래>는 이 비장함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내비치고 있다. 이 감정들을, <칼의 노래>는 전쟁상황에서 영웅의 행위로써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입을 빌린 그의 목소리로 보여주면서 줄기차게 가슴을 때린다. 그것도 엄청난 힘으로. 책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보다는 일정하게 바람타고 흔들리는 불꽃같다. 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먼 옛날의 그 사람이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시종일관 그가 외치는 자연적인 죽음, 그리고 그가 어깨에 짊어진 백성과 조선과 왕의 무게가 나에게도 너무나 크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히 폭발하는 그의 내면의 고민과 생각들이 내 속에도 깊이 남았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과 더불어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책 속의 하나하나의 문장들이다. 조용한듯, 휘몰아치는 듯, 내리치는 듯한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빠른 속도로 읽곤 하는 내가 책 넘김을 멈출 정도로 매료되었다. 끝부분, 그의 눈으로 보이는 고요한 싸움 뒤에서의 관음포의 노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문학의 희귀한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리는 김훈 작가. 사실 스타일리스트라는 단어는 왠지 좀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바꾸어 말하고 싶다. '멋'이라는 말로.

그의 펜 끝에서 제대로 멋들어지는 단어들, 그의 솜씨가 무척이나 멋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멋'을 창조한 김훈의 다음 글이 벌써부터 보고 싶다.

 

 

 

 

 

 

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나는 등판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캄캄한 바다는 인광으로 뒤채었다. - 26p

 

울어지지 않는 울음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불덩어리가 내 몸 깊은 곳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방책, 아아 방책. 그때 나는 차라리 의금부 형틀에서 죽었기를 바랐다. 방책 없는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남아 또다시 방책을 찾는다. - 39p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 117p

 

죽음은 저마다의 죽음처럼 보였다. 적어도, 널빤지에 매달려서 덤벼들다가 내 부하들의 창검과 화살을 받는 순간부터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들의 살아 있는 몸의 고통과 무서움은 각자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몪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 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 135p

 

칼로 적을 겨눌 때, 칼은 칼날을 비켜선 모든 공간을 동시에 겨눈다. 칼은 겨누지 않는 곳을 겨누고, 겨누는 곳을 겨누지 않는다. 칼로 찰나를 겨눌 때 칼은 칼날에 닿지 않은, 닥쳐올 모든 찰나들을 겨눈다. 적 또한 그러하다. 공세 안에 수세가 살아 있지 않으면 죽는다. 그 반대도 또한 죽는다. 수와 공은 찰나마다 명멸한다. 적의 한 점을 겨누고 달려드는 공세는 허를 드러내서 적의 공세를 부른다. 가르며 나아가는 공세가 보이지 않는 수세의 무지개를 동시에 거느리지 못하면 공세는 곧 죽음이다. 적과 함께 춤추며 흐르되 흘러들어감이 없고, 흐르되 흐름의 밖에서 흐름의 안쪽을 찔러 마침내 거꾸로 흐르는 것이 칼이다. 칼은 죽음을 내어주면서 죽음을 받아낸다. 생사의 쓰레기는 땅 위로 널리고, 칼에는 존망의 찌꺼기가 묻지 않는다. - 202p

 


읽고 싶었던 김훈 작가의 세설이 절판되었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제목. 얼마전까지만 해도 팔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잘못봤나...)

이제는 회원중고에 거의 두배 가까이 가격으로 팔린다는. 그래도 갖고싶다.... ㅠㅠㅠㅠㅠㅠㅠ 살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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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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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 레몽 장> 시간이 지나간다. 이야기가, 단어들이 지나간다

 

 

 

이 책을 처음 만날 때부터 왠지 읽었던 책인양 제목이 낯익다고 느껴졌다. 좋아했었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가 생각이 났다. 혹시 비슷한 이야기일까, 리메이크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책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사실 잘 짜여진 이야기 형태로 비교하자면 <더 리더>가 낫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는 보다 '책'과 그 텍스트에 집중하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이끌게 된다. 자신의 내밀한 공간인 '소리 잘 나는 방'에서 혼자만의 책 낭송을 하던 주인공 마리 꽁스땅스. 어느날 단순한 '책 읽는 여자'였던 그녀가 '책 읽어주는 여자'로 급변하게 되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된다. 그녀가 독자로서 접하는 텍스트가 그녀의 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단어가 말해지고 이야기가 입을 통해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책 '듣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더욱 더 많아지면서 그녀가 순수하게 지향했던 책 읽기가 직업이 되고 그들의 책 읽기에 무언가 불쾌한 것들도 같이 관여하기 시작한다.

 

책 읽기에서 책 읽어주기로의 변화는 이렇게 말의 어미를 바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먼저 독자 (여기선 청취자와 다름없지만)에게 알맞은 책을 골라야할 것이고, 독자가 원하는 책이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책 읽기의 행위를 넘어 무언가 다른 것이 요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동화 구연동화 말고는 책 읽어주기를 한번도 도전해보지 못한, 내가 상상한 그 행위의 여러가지가 이 책에 들어있었다. 사실 중간까지는 직접 발췌된 텍스트들과 더불어 독서의 황홀함을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나또한 느낄 수 있었다. 결말 부분에 가서는 뭔가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되어서 불편함을 느꼈다. 마지막에 등장한 책 <소돔과 120일>. 유해물 판정을 받을 정도로 정서에 안좋은... 굉장히 불쾌하고 위험한 책이라고 들었었는데 이 책이 여기서 등장할 줄이야! 아마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책 읽어주는 여자>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결말이 책 읽는 행위처럼 그렇게 끝까지 은은하게 마무리했으면 좋았을걸. 너무 극단적인 상황이었지만 어쩌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도. 책 읽기를 소재로 한 소설이니만큼 사건이 아닌, 책으로 결말맺길 바란건 나만의 바람이었을까.

 

어쨌든 '책 읽어주기'는 이 책을 읽고서 왠지 궁금하고 하고 싶은 것이 되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다시 듣고, 듣는 사람의 느낌을 다시 읽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감만족의 독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우리는 시를 끝까지 읽어나간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까닭은, 비록 나 혼자서 읽기는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 뭔가를 강하게 함께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것이 여간 흐뭇하지 않다. 드디어 우리는 텍스트를 끝까지 다 읽었다. - 103p

 

당신은 그렇지만 '책 읽어주는 여자'만은 아니지 않아요? ......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아니, 왜 아녜요. 난 '책 읽어주는 여자'예요. 그는 팔을 축 늘어뜨린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좋아요. 그러면 읽으세요. 그는 다시 자기의 안락의자로 가 앉는다. 나는 <사물들의 교훈>을 다시 읽는다. - 150p

 

다시 한번 더 글쓰기의 함정이 설치된다. 다시 한번 더 나는 숨바꼭질하는 아이, 자기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거나 가장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 같아진다. 숨어있을 것인가 발각될 것인가. - 178p

 

나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다. 내 직업적인 명예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다. 응낙을 하면 나는 그의 덫에 걸려드는 셈이다. 거절을 하면 나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아니게 된다. 책 읽어주는 여자는 '읽어야 한다. 남이 요구하는 것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그 요구가 지나친 것만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는 책을 그냥 아무데나 펼친 것 같다. 그러나 그 책이 사드의 것이고 보면! - 242p

 

 

책의 뒷편에는 번역자가 진행한 작가 '레몽 장'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문학을 전공한 교수이자 작가인 레몽 장이 프랑스 문학의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라서 그런지 눈이 어질어질했다. 프랑스 문학의 '누보 로망'(새로운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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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월, 눈에 띄는 신간 에세이 [by. 리니Rinny]

 

 

 

  새로운 년도의 첫 달은 정신없이 지나온 것 같다. 신간평가단으로서 처음 받아본 책들을 읽고 리뷰를 써보고, 개인적으로 쓰는 서평과는 달리 왠지 낯설은 설레임과 긴장감도 느껴보았다. 이제 신간 목록을 보면서 주목 신간을 작성하는 건 어느정도 익숙해진 듯 하다. 2월, 그리고 지금. 새해를 맞이하는 본격적인 행사인 '설'을 앞두고 자꾸만 눈에 보이는 이번 달의 신간을 살펴보았다. 전달과 다르게 익숙한 작가의 이름들이 많다. 익숙해서, 그만큼 반갑고도 기분 좋은 책들이다.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실천문학사 | 2013년 1월

  - 25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시집

 힘없는 그리고 가난한 젊음, 그들에게 보내는 신경림 시인의 따스한 노래. 원래는 88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이다. 25년동안 꾸준히 사랑받아 온 한국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신경림 시인의 핵심 시집. 외롭고 힘든 우리 민중들에게 필요한 위안의 글을 담고 있지 않을까. 목차부터 민중시인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권오룡 (옮긴이) | 민음사 | 2013-01-25

   - 밀란 쿤데라의 모든 것 

 밀란 쿤데라의 에세이, 대담, 연설문들을 엮은 쿤데라 전집. 사실, '소설의 기술'이란 제목에 무척 끌린다. 이 작가의 '소설쓰기'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책, 너무나 매력적이다. 작가의 소설을 이미 통달한 사람에게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도 많은 관심을 주는 책일 것 같다. 쿤데라의 소설처럼 묵직하고 집중을 요하는 이번 에세이, 이쯤이면 에세이는 가볍다고 치부할 수 없겠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01-16

  -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집

 예전에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 행복한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정말로 용기를 잃었을 때, 그의 시를 접했었는데 이번엔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를 주제로 에세이가 나왔다.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라는 1부의 주제부터 마음을 울린다. 희망을 말하는 인생의 멘토, 정호승 시인의 토닥토닥.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보고 싶다.

 

 

 

 

 

 

 

  <엄마와 딸 - 신달자> 민음사 | 2013-01-02

  - 엄마로 45년, 딸의 이름으로 70년

 엄마와 딸의 인생을 모두 겪어본 작가가 말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엄마'라는 이름은 왠지 모르게 언제나 아련하다. '딸'의 이름은 아직 갖지 못해 알지 못하는 내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게 한다. 딸이 엄마의 이름을 또하나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 딸이라는 존재. 깊게 생각해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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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 나를 움직인 한마디 세 번째 이야기
곽경택.김용택.성석제 외 지음 / 샘터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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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힘을 준 한 마디는?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내 인생 한 마디'를 담았다고 해서, 과연 나에게 어떤 말이 기억에 남고 도움을 주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책에서 읽었던 부분, 누군가 해주었던 이야기, 내 스스로 되뇌고 다녔던 '어디선가 들었던 말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중에서 하나를 꼽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찾지 못한채로 이 책을 읽었다. 동경하는 작가의 삶을 걷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수나 배우들, 기업의 대표, 평론가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한 마디와 에피소드를 재밌게 읽으면서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내가 책으로 읽는 그들의 에피소드 중 일부는 그럭저럭 혹은 뻔하게 내게 다가올지라도 그들 자신들에게는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말일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야 알았다. 내가 내 마음에 힘을 준 한 마디를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감동적인 일들을 실행하지 못했고 그것을 넘어 그 말들에 대한 믿음과 끈질김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한마디와 인생과의 연결끈이 질겨지도록 계속해서 생각하며 그렇게 만들어나갔을 거라고.

 

 

 

공감을 준 그들 인생의 한 마디.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접할 수 있는 이 책.

칼럼니스트 김태훈의 <조금 비겁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오늘 한 얘기를 내일 바꾸지 않기 위해선 지금 조금 비겁해도 괜찮아."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이해인 수녀님.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 말을 수녀님의 책 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새롭게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새싹이 피어나는듯 희망이 넘쳐흐르는 말에서 수녀님의 온화한 미소가 떠오른다 :)

 

 

 

 

 

 

 

 

이창동 감독님은 "이 생활의 고통이 너의 자산"이라는 김원도 시인의 말이 생각이 난다고 한다.

현실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껴안고 달려나가야 한다는 이야기. 그 고통에 부딪힐 때 우리는 용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한 사람이 한 가지를 이루면 세상의 모든 말이 다 내 말이 되어 다가옵니다. 자신의 말이 기쁜 노래가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의 말들을 내 말로 삼아 삶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며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오랜 세월 견디고 기다리고 마침내 이겨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요. 그럴 때만 한 마디의 말이 나를 바꾸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섬진강 김용택 시인은 '사람 사는 일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김용택 시인은 한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말해주는 듯 하다. 세상에서 겪은 것들 매 순간이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그 인생의 한마디의 힘을 믿고 그것으로 부터 동력을 채취하는 것. 그 한마디로 인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유일한 믿음이다. 이 책은 왠지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듣는 라디오 사연처럼, 매일 한 편씩 그렇게 읽어나가보라. 혹시나 많은 두려움에 잔뜩 겁먹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 곁을 살아가고 있는 (물론 가까이하기 힘든 유명인이긴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인생의 한 마디를 필요로 하고,

어느 순간 만나거나 찾게 되기를, 그것을 통해 삶을 바꿀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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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보트 - 살아남은 자들의 광기 어린 생존 게임
샬럿 로건 지음, 홍현숙 옮김 / 세계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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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가 <라이프보트 - 샬럿 로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놓기 위해 널빤지를 잡고 있던 사람이 널빤지를 뺏으려 하는 자를 밀어낸다면, 그건 살인인가 아닌가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다.

그런 널빤지에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이 먼저 와 있던 사람을 밀어냈다면 그 사람은 살인자인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살려고 몸부림칠 테고 널빤지는 한 사람만 지탱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획일적으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하는가? 생존한 사람의 그런 행동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생존자는 불행하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가? - 263p

 

 정의란 무엇인가? 바다 한 가운데서 약한 소년을 죽이고 다수의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실제 이 사건은 더들리 - 스티븐스 재판이라고 불리는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책에서 논란의 여지가 되었던 실제 사건이다.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을 죽였다는 결과적 측면에서 정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원인적 측면에서는 정의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인육을 제공한 소년의 동의가 없는 채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아니면 그 소년이 나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혹시나 인육을 먹는 것을 보기만 한 방관자가 있었다면? <라이프보트>의 작가 샬롯 로건은 위의 이 사건을 토대로 상상력을 키워나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 어느날 큰 여객선이 침몰하게 되고 승객들이 라이프 보트에 나눠탄 상황. 그 중 한 보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많은 라이프보트가 떠다니고 있는지, 그 속에 나의 가족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로지 '신과 같은' 상급 선원 존 하디의 명령 아래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흔들리는 라이프보트에서 항해하고 있다. 언제 살아날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바다 한 가운데서 '거대한 파도가 내던지는 작은 땅콩껍질에 불과한' 라이프보트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갈까. 그 변화는 생각보다 잔혹하다.  

 

 

 

 

 

 

"앞으로는 얘기를 할 때 '배'라는 단어를 '세상'으로 바꿔봅시다. 만약 이 세상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 수 없다면 어떨까요? 그뿐 아니라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면요. 그게 문제가 될까요?"- 112p

그날 밤 나는 옳은 일과 그른 일 또는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람들이 몹시 암울한 선택권 앞에 놓였을 때도 더 나은 길을 알려주는 분명한 이정표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격했다. - 185p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다. 작가는 주인공 그레이스의 입을 빌려 철학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라이프보트가 하나의 세상이 되버린 상황에서 그 세상 속에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세상일과 닮아간다. 신 같은 존재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들, 그러나 슬슬 일어나는 의심의 불씨와 살인,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군림과 다수를 위한 희생. 모든 문제의 결과는 책의 마지막 부분인 법정 장면에서 보여진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거짓말인지도 모른채 그 문제들은 혼돈 속에 남게 된다.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라이프 보트에서 일어난, 우리의 세상 속 문제들과 닮은 이 논쟁거리들에 대해 다시 우리에게 생각해볼 기회만 제공해줄 뿐이다. 옳은 일과 그릇된 일, 그 경계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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