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또 하나의 용기를 얻습니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오늘, 또 하나의 용기를 얻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는 사랑의 따뜻함을 그려놓은 것도 많지만 힘을 주고, 많은 일을 극복해나갈 힘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곳을 접하고 슬럼프가 왔을 때 <절벽에 대한 몇가지 충고>라는 시를 만났었는데 그 짧은 시 안에서 문장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오랫동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오늘 만나게 된 그의 글은 그가 받은 격려와 의지의 말들을 다시 독자들에게 나눠주는 듯한 한 산문집입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 매체에서.. 그리고 그밖에 여러 곳에서 그가 얻은 소중한 교훈들이 시인의 따뜻한 말들을 더해서 우리에게 건너옵니다. 구구절절 어렵게만 느껴지는 말들이 아니라 그저 한번 눈으로 스치고 지나가도 마음에 남는 그런 쉬운 문장으로 우리들 마음에 단비가 내려진 느낌입니다.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이야기, 눈높이를 맞추어 풍족해질 수 있는 이야기, 가끔은 보고 지나칠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교훈들과 함께 정호승 시인이 끄적였던 시들이 딸려옵니다. 대체로 에피소드에 마지막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저는 그 시들이 참 좋습니다. 감사한 위로에 선물하나 떡하니 더 받은 느낌인 것 같아서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꼭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말들'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독자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정호승시인의 말투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에 차를 타고 가면서 듣는, 마음이 충만해지는 따뜻한 글들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이렇듯 매일매일 한개씩 읽으면 참 좋을 텐데, 저는 아쉽게도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밀린 책이 많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혹시나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매일 한 에피소드씩 시간이 날 때 짬짬이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 바람,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가 정말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서 매일 하나씩 들을 수 있다면 하루하루 참 행복한 아침이 될 것 같아요.

 

 

  

  손은 인생의 온갖 무늬를 만듭니다. 기쁨과 슬픔의 무늬가 고스란히 손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손은 그 사람의 인생입니다. 손은 그 사람의 삶을 대변합니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의 역경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손 또한 갖가지 모양과 표정을 지닌 얼굴입니다. 평생 농사를 지은 농부의 손은 고단하고 거친 얼굴을 지니지만, 아기의 볼을 쓰다듬으며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의 손은 곱고 부드러운 얼굴을 지닙니다. (115p)

 

  인생은 형식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사는 게 곧 인생의 형식입니다. 그 생각 속에 실수와 후회가 있고 고통과 상처가 있어도 그렇게 이루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에는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생 자체의 힘에 움직여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133p)

 

  인간은 목적을 달성한 이에게 관심을 갖지만, 신은 열심히 노력하는 이의 과정을 소중히 여깁니다. 목적은 결과일 뿐, 목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이 중요할수록 과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목적에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목적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그 목적에 다다르게 됩니다. (171p)

 

  저는 몽골에서 처음 말을 탈 때 천천히 달리던 말이 느닷없이 퍽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자칫 땅바닥에 나뒹굴 뻔했습니다. 다시 말을 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말을 끌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에 올라탔습니다. 그러자 말이 더 이상 저를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실패는 넘어지는 그 자체가 아니라, 넘어진 상태로 머무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4p)

 

  혼자 있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이라면, 홀로 있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다는 것이 외로움과 관계가 있다면 홀로 있다는 것은 고독과 관계가 있습니다. 외로움이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것이라면 고독은 절대적이고 존재적인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외롭지만 홀로 있을 때는 외롭지 않습니다. 혼자 있다는 것이 이기적이라면 홀로 있다는 것은 이타적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함께 있을 수 없지만, 홀로 있으면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274p)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이다. 행복과 불행도 순간이고, 선한 생각과 악한 생각도 순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순간순간 자신답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정호승 시인도 공감했다는 법정스님의 말. 순간에 충실하자, 순간에 실망하지 말자, 순간을 사랑하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갈림길 - 윌리엄 폴 영>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저 멀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여러개의 길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을 선택해야 옳은지 갈팡질팡하다. 내가 이 선택을 함으로써 벌어지는 모든 주위의 변화와 결과가 걱정되어, 그냥 무작정 걸어보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앤서니 스펜서는 오로지 물질과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의문의 사고로 이상한 세계에 빠져드는 인물이다. 육체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채로. 그는 (그의 영혼) 생각치 못했던 세계에서 성스러운 존재들을 만나게되고, 자신 안에 깊이 잠들고 있던 갈망과 사랑, 희망, 신앙과 같은, 생전에 바라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형태로 그 전에 살고 있던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야기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선택의 순간을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되는 그의 두번째 이야기. 그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이전의 삶을 되돌려 놓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그들과 대화를 하고 도움을 받게 된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신성하게 읽게 된 <갈림길>. 세계사 서포터즈를 통해 원고를 한번 읽고, 완전히 책 모양을 갖추게된 이것을 두번째 읽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의존하는 믿음의 대상인 신앙, 그 기독교적인 의문점들을 이 책에서는 환상적으로 영상화된 텍스트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야기의 요소 자체가 신비로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신비로운 것 투성이인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일궈내야할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윌리엄 폴 영은 진지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관계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는 아마도 '모든 인간이 하나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과의 입맞춤을 통해 미끄러져내려가는 주인공의 영혼을 봐도 그렇기도 하고. 그 보이지 않는 끈 사이에 수많은 선택의 길이 있고 또 그 길에 갈림길이 이어져 있는 듯 하다. 그 엄청난 갈림길에서의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골라내야할지, 또한 어떤 마음으로 잡아야할지를 이 책은 생각하게 해준다.

 

  그 셀 수 없는 선택들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그 길의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끝에서 황량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를 믿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 그것이 답인 것 같다. 

 

 

 

희망사항이야말로 그의 적이었다. 만약에, 이렇게 될 수도 있었는데, 저렇게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같은 생각들은 그의 에너지를 갉아먹었고 성공과 자기만족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고, 망상이었으며, 죽음을 앞두고 믿고 싶은 자기 위안일 뿐이었다. 일단 죽고나면 남는 것은 지나온 삶의 환상뿐이리라.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스쳐가는 허망한 추억들을 간직한 삶의 환상, 삶이 소중한 것이라는 신기루의 작은 단편들뿐이리라. 그 모든 것이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면 희망사항이 그의 적이라는 사실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리라. 희망은 하나의 미신일 뿐 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38p)

 

지금 그는 세 가지 선택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혀 알지 못했다. 놀랍게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는 어떤 길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자유가 그를 흥분시켰고 또 두렵게도 했다. 마치 불과 얼음 사이의 줄타기처럼. (46p)

 

기쁨과 즐거움을 꼭 팔아야만 가치가 있을까? 댐을 만들어 강물을 가두면 늪이 되는 법이지. (116p)

 

지금 당신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당신의 기억이 조합할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당신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거죠. 지금 당신은 뿌리를 바라보고 있는 뿌리예요. (227p)

 

중간지대와 이후의 삶은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한 것들로 지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저절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에요. 그중 많은 부분이 어디서든 볼 수 있도록 주위에 널려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짓는 겁니다. (233p)

 

믿음에는 모험이 따르죠. 관계에도 항상 위험이 따르고요. 하지만 결론이 뭔지 아세요? 관계가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어떤 관계는 다른 관계보다 좀 더 엉망이고, 어떤 관계는 오래가지 않고 또 어떤 관계는 힘들어요. 반면 어떤 관계는 수월하기도 하죠.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관계가 다 소중해요. (367p)

 

 

 

 

"마지막 대화가 곧 그 사람은 아니다. 그 사람과 평생 맺어온 관계 전체가 곧 그 사람이다."

 

책 속에서 찾은 말.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짧지만 강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그가 아닌 모든 사람의 편이었다 <생의 이면 - 이승우> 

 

 

 

 

 

  이승우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1년전 북콘서트에서, 그때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었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두터운 매니아층을 실감했었다. 그 만남을 위해서 그의 가장 최근 책이었던 <지상의 노래>를 읽었었는데, 장황한 이야기에 그 독특한 문체가 너무 놀라웠던 나는 2시간 거리의 홍대 소극장까지 혼자 발걸음을 옮겼었다. (물론 기사를 써야하는 의무도 있었지만...) 그때의 놀라움을 안고 읽은 <생의 이면>은 놀라움을 넘어서 거의 쇼크였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높지않은 나에게도 이 소설은 탄탄하고 깊이있게 느껴졌다.

 

  소설의 첫 부분은 '작가탐구'의 필자가 작가 박부길을 관찰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박부길이라는 인물은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존재, 그리고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끈을 잡을 수 없었던 인물인데, 그는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만나게된 신앙과 글과 단 하나의 여자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느낀다. <생의 이면>의 독특한 점은 박부길의 삶을 그가 직접 쓴 허구의 구절로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 박부길의 문학은 그의 삶으로 온통 지배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박부길'이라는 사람의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감춰진 죄의식과 욕망을 책의 초반 화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소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것을 통해 일반적으로 보이는 박부길의 인생의 한 쪽 면만이 아니라 '생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가는 '모든 소설은 허구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이다.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 그러나 모든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글쓴이의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우리는 '가짜의 인물을 통해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작가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설 속 박부길의 모습 중 몇몇의 요소와 작가와 닮아있다고 여긴것도 나의 독자로서의 야릇한 엿봄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부길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모습에 허구의 삶이 여러번 입혀진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작가 자신의 혼이 온통 담겨있다는 이 책은 세계문학에 버금가는 우리고유의 고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또한 믿고 있다.

 

   


  사람들은 삥 둘러서서 그가 행동하기만을 주시하고 있었다.그 야릇한 눈길들 속에서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적어도 그 순간, 거기 모인 사람들에 의해서, 매우 특별한 존재로 구별되고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달랐다. 그들은 그와 달랐다. 적어도 그들의 표정은 그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그가 종종 경험하곤 했던, 세계로부터 이탈되어 나가는듯한 걷잡을 길 없는 소외감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74p)

 

사람은 현실에 대해 절망하면 신화에 기대고 싶어한다. 신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의 부드러운 왜곡이다. 반영이라면 왜곡의 반영이다. 개별적인 무의식의 꿈을 공식화함으로써 현실을 넘어가려는 욕망, 그것이 신화를 탄생시키고, 신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84p)

 

모든 예감에 비극의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숙명의 울림 때문이다. 예감은 열람이 금지된 숙명의 세계를 부지불식간에 엿보고만 자의 머리 위에 그 부정에 대한 징벌로 떨어지는 벼락, 그 벼락 같은 천재지변의 떨림이다. 그래서 숙명은 예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모든 숙명은 비극의 광배(光背)를 두르고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비극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11p)

 

왜곡된 진실이라 하더라도 진실일 수 있을까? 물속에 비친 찌그러진 달, 색안경을 쓰고 보는 푸른 달, 그리고 암스트롱이 찍어 보낸 필름 속의 달, 그것들을 달이 아니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것들은 달이 아니지만 달이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이 아니지만 진실인 것, 우리의 검열받은 기억 속의 과거가 그러하다. 그것들은 한낱 인상에 불과하지만, 그 인상을 조작된 것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자, 그러면 어떤 길이 있는가. 나는 망설이고 있다. 길을 못 찾아서? 그건 아니다. 나는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서로 대립하는 층들의 싸움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115p)

 

나는 기억한다. 세상은 나를 힘들어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그런 것처럼. 그것은 내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 들어와야한다고 세상은 내게 말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은 자기 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나는 사전에 이해를 확보하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119p)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거나 또는 그대가 주위와 흡사하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란 없다.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 앙드레 지드

 

또 하나의 탐독대상이 늘어났다.... ㄷㄷㄷㄷ 이승우 작가의 전집 다 읽고 싶어짐 ㅠㅠㅠ

이동진 님은 전집 거의 다있던데 역시 멋짐 bbb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자가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가슴에 남은 말, 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 - 시게마츠 기요시>

 

 

 

 

 

  학교를 배경으로 왕따문제를 그려낸 책들은 참 많다. 마치 사회의 골치아픈 문제들이 점점 부풀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흔히들 왕따에 대해서 생각할 때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가해자는 왜 왕따라는 문제를 만들어냈으며 피해자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대충 이런 식으로 이야기 되곤 하는 게 보통 일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는 거기서 지나칠 수 있는 방관자에게 더욱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꺼낸다. 방관자, 아무 짓도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숨어버릴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더욱더 찝찝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그들.

 

  책의 초반은 '후지슌'이라는 아이의 자살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유서에 적힌 네 명은 가해자 둘과 '유', '후지슌'이 사랑했던 소녀 '사유'이다. '후지슌'과 같은 반이었지만 다른 동급생들 처럼 왕따에 관여하지 않고 무시하며 생활해왔던 주인공 '유'는 왜 자신의 이름이 그곳에 쓰였는지 답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십자가를 지게 된다.

 

  잊혀지지 않는 기억을 품은 채 20년을 지나보내고 딱 그때와 같은 나이의 아들을 갖게 된 주인공이 절친의 의미와 부모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그토록 잊으려고 애썼지만 잊지못한 그 십자가가 단지 고통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그가 십자가를 메고 온 것일까, 십자가에 그가 지탱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중간에 완전히 내려놓으려 애썼다면 그 십자가의 무게는 더욱더 무거워졌을 지도 모른다. 그가 길을 걸어 언덕을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함께하고 있는 십자가의 모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유'가 바라본 십자가를 지고 올라선 언덕, 그리고 후지슌이 꿈꾸던 여행의 종착점인 '숲의 묘지'. 아마도 그들은 그곳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응어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독자들, 혹시나 같은 경험을 보고·듣고·행한 독자들 또한 아픈 기억을 삼키고 자신이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실제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때? 너도 알고 있지?"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학급 회의나 도덕 시간에 일방적으로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지?"라고 물었다면 우리는 모두 "예,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으리라. 그 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신호등의 색깔은 파랑이 전진이고 빨강이 멈춤이다. 모두 알고 있는데도 신호를 무시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30p)

 

  - "나이프의 말에서 가장 아플 때는 찔린 순간이야." 그러나 십자가의 말은 다르다고 했다. "십자가의 말은 평생 등에 져야 하는 말이지. 그 말을 등에 진 채 계속 걸어가야 해. 아무리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고 발길을 멈출 수도 없어. 걷고 있는 한, 즉 살아 있는 한 계속 그 말을 등에 지고 있어야 하는 거야." 어느 쪽이 더 낫냐고 묻지는 않았다. 물었다고 해도 대답할 수 없었으리라.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 대신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어느 쪽이야? 넌 나이프로 찔렸어? 아니면 십자가를 등에 졌어?" (75p)

 

 - 그 애의 죽음도, 우리가 그 애에게 한 일도 마음의 한쪽 구석에는 계속 남아 있었다. 다만 그곳에 뚜껑이 생겼다. 처음에는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억지로 닫았지만, 어느새 뚜껑이 딱 맞아서 그냥 내버려두어도 열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정말로 열리지 않는지 살며시 뚜껑을 들어올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138p)

 

  - 어느 날, TV에서 범죄 드라마를 보고 깨달았다. 그 드라마에 우리를 닮은 2인조가 나온 것이다. 공범자. 그렇다, 우리는 공범자였는지도 모른다. 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2인조처럼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쫓아오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150p)

 

  - 책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도쿄에 와서 또 새로운 페이지를 펼친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몇 페이지를 읽는 사이에 가끔 주인공을 잃어버렸다. 앞으로 넘길 페이지에 주인공이 제대로 나올지 불안해지기도 했다. 애당초 우리가 보고 있던 책은 정말로 같은 책이었을까? (283p)

 

  - 사람의 기억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한 사람에 얽힌 추억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조금씩 멀어지고 잊힌다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겼던 추억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오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이 파도에 씻기듯 한꺼번에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바다는 잔잔할 때도 있고 거칠어질 때도 있다. 밀물일 때도 있고 썰물일 때도 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추억은 조금씩 바다로 떠내려가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그 때 우리는 겨우 하나의 추억을 잊어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284p)

 

    잊혀지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

  자신도 모르게 십자가를 지게 되었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힐링의 책, 굳굳굳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수생각을 추억하다 <참 서툰 사람들 - 박광수>

 

 

 

 

 

 

  어렸을 때 읽었던 광수생각 시리즈를 기억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을 정도로 열풍이었던 시리즈, 그리고 너무나 개성있었던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글씨체가 매력있었던 만화 광수생각. 사랑에 대한, 살아가며 소소한 것들에 대해 광수 캐릭터의 모습으로 들려주던 광수생각은 정확하진 않지만 희미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참 서툰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중고 서점에서 만났다. 어린 아이가 쓱쓱 끄적이고 그린 것 같은 표지 때문에 내 손에 잡히게 되었던 이 책. 처음엔 광수생각 처럼 만화로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만화보다는 그림, 포토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그 이유가 책 속 어딘가 빼꼼하게 언급되어있는데, 박광수 작가가 이젠 그림보다 글이 더 좋단다. 그래서 그런지 시, 에세이, 포토 에세이 등 이 책에는 많은 글이 담겨져 있다. 그런데 사실 그 글 중에선 좋은 글도 있지만 가끔은 보기 민망했던 글도 있다. 하긴, 그래서 서툴다는 표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왠지 계속해서 넘기고 있었던 건, 옛날 광수생각 시리즈의 추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조금씩 지워져가는 듯 해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던 이 책. 좋아하는 광수체도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너무 많이 쓰여서일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참 예쁜 책이긴 했지만 광수생각의 추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겐 왠지 쬐끔.. 아쉬울 것이다. 이 아쉬운 책이 작가의 새로운 도전과 함께 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긴 하지만..

  

 

 

   -  어떤 경기나 승부에서 이기려면 능숙함이 필요한 법인데, 내게는 그런 능숙함이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만일 오늘이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르게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내게 오늘이라는 하루는 늘 생경한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제의 나도 서툴렀고, 어제의 나도 서툴렀고, 불행히도 오늘의 나도 서툴다. (프롤로그)

 

  -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힘들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만 나는 그 생각에,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 (친구이거나 타인이거나)이 울 때 같이 울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누군가를 걱정해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진짜 힘든 일은, 진짜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친구가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는 일이다. (51p)

 

  - 우정이라는 그릇, 사랑이라는 그릇, 믿음이라는 그릇, 신의라는 그릇. 그 그릇들은 언제나 소중히 다루고, 잘 닦아야 하며 깨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각각의 그릇들은 품 안에 있을 때는 모두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지만, 행여 잘못 다뤄 깨지기라도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깨지기 전의 그릇은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깨진 그릇은 여지없이 칼날이 되어 내게 향하기 마련이다. 뒤늦게 후회하며 깨진 그릇을 어떻게든 붙여 보려고 애쓰다 손을 베이면 그제야 비로소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품 안에 있을 때 소중히 여길 것. 깨진 그릇에 손을 베이고 나서야 배운다. (서툰 이야기 5)

 

  - 당신과 헤어진 날 마치 군대에서 나눠 준 건빵 두 봉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었다. 목이 메어 어느샌가 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드니 밤하늘에 내가 그동안 흘린 눈물만큼이나 많은 별이 총총히 박혀 있다. 당신과 헤어진 날, 건빵 두 봉지를 먹은 것처럼 목이 메어 온 날, 밤하늘에 걸려 있는 별사탕을 세 개 따 먹는다. 아무도 모르게. (201p 별사탕)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체념을 배우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인생에서 쓸쓸히 지워 나가며 스스로에게 체념을 가르치는 일이다. 해를 거듭하며 나이를 먹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기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지극히 간소한 삶의 정답. 생의 끝까지 가지고 가면 결국 제 스스로 힘들고야마는 지극히 간소한 삶의 정답. (207p 너의 결혼식장에서) 

 

 

 

아마도 이런 모습을, 광수생각 독자들은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런 독자들을 위해 2012년에 광수생각 시리즈가 또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가가 하고 싶은 '글'과 독자가 바라는 '만화'가 함께한

광수생각 : 오늘, 나에게 감사해. 이 책은 조금 더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