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대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고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성숙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거의 모두 쉬운 길을 택한다. 그러나 삶은 누구에게나 단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 그 소중한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아니면 물신의 품에 안주할 것인가 그것은 강조하건대 일상적으로 그대를 유혹하는 물신에 맞설 수 있는 가치관을 형성하는가와 자기성숙을 위해 긴장하는가에 달려있다. -279쪽
내가 라다크에서 관찰한 악순환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아마도 개인의 불안정이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이로 인해 또 개인의 자존심이 더욱 흔들린다는 것이다. 소비주의가 이 모든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불안정 때문에 물질적인 신분상징에 대한 갈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153쪽
"삶이란 대단히 좋은 건 아니다 지독하고 잔혹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인생을 버릴 만큼 지독한 건 아니다" 고리키의 이 말이 설득력이 있는 건 그의 인생 역정이 누구보다 험난했으며 그 자신이야말로 지독한 인생의 잔혹함을 거뜬히 극복해 온 삶의 증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외당한 사람들, 노동자의 처절한 삶과 밑바닥 인생의 고통과 좌절을 생생하게 묘사해 감동을 주었던 막심 고리키. 비록 혁명의 시대를 지나오며 누구보다 암울한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그의 작품과 그 속에 숨쉬는 정신만은 우리 곁에 살아남아 빛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시베리아 횡단철도 속 어느 한 역의 이름으로 남아서 아직도 지나는 이들에게 진한 여운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63쪽
사랑했던 기억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뇌세포에 맺혔던 주름이 펴지면 잊지 않으려 해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고통스런 시간을 연장하느냐는 내 마음의 집착이 얼마나 완강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사람은 떠나도 소중한 만남의 기억과 사랑의 열정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 더욱 성숙하고 새로운 내 모습을 만들어 가는 에너지와 자원이 된다. 다만 헤어짐의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사실을 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상처가 남는 것이 두려워 아예 사랑조차 시작하지 않는다면 결국 남는 것은 무의미하게 흘러간 세월일 터이다.-71쪽
본디 나는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종류의 인간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건 내가 경험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뭔가에 빠진다면 그건 내 안에 들어온 그 뭔가에 빠져든다는 뜻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소통의 인간이 될 수 없었다. 전적으로 내 경험의 공간 안에서 모든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도, 증오도, 행복도, 슬픔도, 모두 내 세계 안쪽 창에 맺히는 물방울 같은 것이었다.-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