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1disc) - 디지팩
제프 버터워스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10년이나 은행에서 성실하게 일해 온 존은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그의 삶이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 사랑하는 아내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러시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했는데,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여인과의 동거가 가능할까. 주인공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결국 그녀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이미 작정하고 들어온 나디아가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다. 미인은 자신의 외모로 상대를 휘두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법, 존은 나디아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고 사랑으로 언어의 장벽 따위는 눈감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평화로운 그들의 삶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디아의 생일에 난데없이 그녀의 사촌오빠라는 인물과 일행이 찾아왔고 점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촌오빠와 일행은 사기꾼이었다.

결혼을 빙자하여 남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아주 졸렬한 사기꾼, 사촌오빠라 불렸던 남자는 주인공에게 그동안 나디아가 몇 차례 사기 친 남자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여주며 그를 우롱한다. 존은 일생에 다시없을 모멸감을 한순간에 경험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부정되었을 때 다른 어떤 일보다도 상처가 크게 마련일 것이다. 

그의 성실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보아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끔찍한 상황의 주인공이 왜 자신이어야만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존을 꽁꽁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한 후, 그들은 어찌된 일인지 나디아와 함께 떠나지 않고 존과 함께 나디아를 버려두고 떠난다. 가까스로 줄에서 몸을 풀고 존은 수돗물로 허기를 잠시 달래고는 나디아를 경찰에 넘기려 했지만 나디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는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던 중 사기꾼들이 마음을 바꾸어 한번 더 나디아를 이용하려고 나디아를 찾아왔으나 결국 존과 나디아는 사기꾼들을 따돌리고 출국에 성공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 뿐

나디아에게 미처 전해주지 못한 짧은 메모를 발견한 후로 나디아는 존을 신뢰하게 되었다. 러시아어로 자신의 마음을 함축해 놓은 것을 보고 나디아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어쩌면 나디아도 그간의 생활이 지긋지긋 했을테고, 다만 수렁에서 헤어날 방법을 알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간 나디아의 남편이 될 뻔한 인물들도 그만그만한 멍청이에 불과했을 뿐, 나디아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설파하지 못했고 억울하게 피해자라는 오명만 쓰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존의 인간적인 매력은 나디아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나디아 쪽에서 보자면 처음엔 사기였지만 사랑으로 바뀐 셈이고, 존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줄곧 사랑을 지켜낸 셈이 된다.

결국 사랑은 한 사람을 수렁에서 건져내었고, 평온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탈출할 수 없었던 무료하기 짝이 없던 사람을 구해주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에 다소 진부한 내용이지만 니콜 키드먼과 벤 채플린이라는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빈한한 시나리오가 빛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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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품절


톨스토이가 옳았다. 도덕이란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인간이 받아들이는 무거움이다. 진지함이고 열정이다. 세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느냐 마느냐는 식의 무지하게 단순한 차원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훈련되는 것이고 의지를 필요로 한다. 숭고함을 향해 나가는 의지 그 자체인 것이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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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구판절판


옥상은 세상 구석구석 숨어 있는 비밀을 내게 누설했다. 요즘 나는, 내가 이 옥상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큰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비밀을 많이 간직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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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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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연애에 빠져서 설탕물 속을 헤매는 파리가 되기 싫다는 것이었다. 육십 살이 되어도 정글 속의 고릴라와 키스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진정 그렇게 말할 자신이 있는지 지금도 확신할 수는 없다. 말해 놓은 다음에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다른 언어는 없다. 나는 교진이 양심의 가책 없이 나를 떠날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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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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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와 실습을 빼먹고 하루종일 가을을 느끼고 돌아온 내가 그 가을의 흔적이 아직 몸에 남아 있을 때, 방에 들어가 먼저 집어드는 음반은 브람스였다. 그중에서도 가을의 흔적을 계속 느끼고 싶을 때 어김없이 선택하는 것이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곡이었다.

내 방은 북향이었다. 낮에도 어두운 것이 좋았지만, 사실 저녁에는 좀 쓸쓸했다. 그래도 그 적적함이 좋았다. 그리고 어두운 방의 친구는 늘 브람스였다. 북유럽의 해가 부족한 곳에서 씌어진 음악... 그것들은 늘 가을이었고 늘 북향이었다. 플레이어 위로 돌아가는 레코드에서 브람스는 가을을 노래했다. 클라리넷으로.-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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