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삶을 만나다
강신주 지음 / 이학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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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두 번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두 번째는 의미를 되새기는 기분으로 읽었다. 처음 보았을 때 놓친 것이 두 번째 읽을 때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좋은 책은 그렇게 여러 번 읽을수록 내 것이 되는가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는 좋은 책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 읽은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책 몇 권 꼽아보라면 그 안에 너끈하게 넣을 수 있는 책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시대를 살면서 전공자가 아니면 딱히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분야가 철학이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세상에 좋은 책은 도처에 널려있지만, 사람들이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따라 그 책은 진가를 발휘하기도 하고 묻히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알음알음으로 좋은 책은 꾸준히 오래도록 사랑받는다.

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에서는 사유를 발생시키는 조건과 인문학적 경험들, 철학의 두 가지 흐름에 대해, 2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기'에서는 사랑과 가족이데올로기,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3부 '삶을 위한 철학적 성찰'에서는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며 즐거운 주체로 살아가며 타자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대한 것들이 깃들어 있다. 차례를 보며 읽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참 어려운 일일 텐데, 이 책은 다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에서 때론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근할 때 문을 잠그고 걸어 나가 신호등을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에 대해 우리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어쩌다 아무리 기다려도 신호등이 바뀌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가? 고장이 난 건가.'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 상황과 조우하게 될 때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즉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며 '낯섦과 불편함을 친숙함과 편안함으로 바꾸려는 자기 배려'가 인간의 생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 음미되지 않은 삶은 맹목적인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철학은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13~14쪽

"우리의 삶 자체는 항상 낯설어지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그 불가피한 사태가 도래하기 전에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는 미리 삶에 낯설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굳이 일어날 지 안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미리 생각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조금 소모된다면 나중에 실제로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적 사유란 '다시 반복되지 않을 소중한 삶을 후회 없이 살겠다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이 되는 셈이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저자는 철학이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기까지 무수히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남다르다. 그 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을 만나는 일은 힘겹지만 일단 진리에 이르는 순간의 기쁨은 무엇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많은 철학자들을 다 만날 필요는 없다. 많은 철학자들 가운데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만을 따르면 되니까. 나에게는 와 닿지도 않는 사상을 굳이 따라가느라 힘들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사랑을 하며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데 그에 얽힌 오해와 진실, 스톡홀름 증후군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국가라는 존재,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책은 여과 없이 조망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품으로 그리고 화폐를 신으로 만드는 체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서 고단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 올지 모를 먼 훗날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이제 세계화라는 거역하지 못할 현실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 더 힘든 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행복은 우리로부터 더 멀어지겠지요. 그러나 사실 자본주의 속에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애초에 없었습니다.

단지 소비의 행복, 소비의 자유만이 존재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못합니다. 오직 잘 팔리는 상품으로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학원에 나가지만, 역사 강의를 듣는다거나 혹은 판소리를 익히기 위해서 편안하고 여유 있게 학원에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역사, 문학, 철학, 판소리 등을 배워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구매할 산업자본에게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97쪽


행복한 주체가 되어 집착 없이 살아가기

'집착은 우리의 삶을 유아론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우리는 고통에 빠져들고 인생이 시들어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통에 빠진 우울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것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즐거운 주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집착에서 헤어나야만 한다. 소중한 행복은 떠나버린 사랑이나 돈, 자신의 업적이나 성적, 한때 젊고 아름다운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책 한 권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면 그 책은 이미 제 몫을 다한 게 아닐까. 삶을 낯설게 바라보기가 바로 철학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과 더 가까워지려면 이처럼 쉽게 쓰인 철학 서적이 많이 출간되어야 할 것 같다. 인간 없는 철학은 무용지물이고 철학 없는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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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2006-12-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알기 쉽게 풀이한 책 강추한다.

비로그인 2006-12-11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책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나의 삶을 새롭게하는 책들, 고맙지요.


연잎차 2006-12-11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님 저도 강추합니다.
한사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답니다^^
 
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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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색>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은 저자는 이 책에서 크게 사랑, 욕망, 청춘, 진실 4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제마다 연관된 소주제를 두었는데 인용이 참 많다. 저자의 방대한 스크랩 규모를 생각하니 절로 탄성이 날 지경이다.

책을 읽고나면, 좀더 건설적인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해질까. 내지는 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 더 나은 인간형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책장을 펼쳐들었다.

사랑도 일종의 정치경제학?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진 사람을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상당 부분 정치경제학이다. 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사랑에서 정치와 경제의 몫을 인정하는 자세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그걸 당당하게 인정한 때도 있었고, 가급적 그걸 감추려는 때도 있었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애와 결혼을 당당히 분리해 말하는 최근 세태는 사랑의 정치경제학이 오늘날 가장 솔직한 인간관계론으로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30쪽)


‘전율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뜨겁고 격렬한 사랑은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라는 저자는 의학자의 분석부터 심리학자가 본 사랑에 이르기까지 학문적으로 사랑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불륜 드라마와 불륜 폭로 범죄는 불륜 공화국의 한 단면을 드러내 주는 것이며 인터넷이 불륜을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순결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광수의 자전 소설과 쇼펜하우어의 말이 참 가관이었는데, 나혜석과 같은 선구적 인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이광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욕망은 인간 세계의 엔진’

욕망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무엇인가 원하는 게 있어야 노력도 할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이 남에게 해가 되고, 자신에게도 독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구’ ‘욕망’ ‘욕심’에 따라 세상을 본다. 심리학에선 이를 지각적 강조라고 한다. 예컨대, 가난한 아이는 동전을 크게 보고 부자 아이는 동전을 작게 본다.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더 잘생기고 더 똑똑하게 보는 경향도 있다.'(86쪽)

저자는 과잉 욕망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잉인지 아닌지 그걸 판결하는 게 쉽지 않더라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통사람들의 욕망은 ’평등주의‘라고 꾸짖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은 무한대를 추구하는 엘리트들의 이중잣대’를 경계해야 하며, 이미 우리는 욕망의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불러오는 싸움과 논쟁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청춘, 계급갈등의 비무장지대인가?

‘청춘 예찬’은 거대한 음모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저자는 김훈처럼 청춘에 대해 의연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고 보니 한 해 한 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를 어쩌면 좋은가.

빨리 올해가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19세 소녀와 올해는 좀 천천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29세 여성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과 청춘에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바로 그 차이가 아닐까.

그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체득한 사회적 현상에 가장 큰 원인이 두고 있을 것이다. ‘동안 열풍’이나 ‘새것을 광신하는 풍조’가 바로 청춘 예찬의 반증이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겠다. 나이보다 더 젊어지고 싶은 마음, 가진 것을 아끼는 마음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청춘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는 기업의 상품 판매 전략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만하다. 책에 인용된 여성학자 정희진의 이야기에도 나이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전해졌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차이는 언제나 특정한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정치적 해석이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려면, 나이가 아무런 의미를 발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시기마다 모든 시간의 가치는 균질해야 한다. 나이에 따라 인간의 권리가 다르지 않다면, 노후라는 말부터 없어져야 한다. 노전 생활이 따로 없듯이 노후 생활도 없는 것이다.’ (155쪽)

또한 정희진은 ‘사십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식의 언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도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바, 자기 성찰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설파했다.

그러고 보니 가는 세월이 그리 아까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시간의 가치는 균질해야 한다’는 말이 귓전을 맴돈다. 청춘의 시간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장 ‘진실’에서는 기억과 신념, 의리와 배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상처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고집과 도덕적 우월성이 합쳐지면 독선이 된다는 이야기와 성찰 없는 신념은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저자 특유의 입담으로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책의 장점이다. 자칫 지루하고 딱딱하기 쉬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책은 흔하지 않을 법하다. 책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저만치 물러나 바라보며 사색하는 귀한 시간을 독자들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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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1
제라르 모르디야 지음, 정혜용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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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소설이다. 1권이 다 끝나갈 까지만 해도 평범한 부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폭우 속에서 회사를 구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회사에 그렇게 충성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본능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해고라는 현실이 그들 앞에 닥쳐왔고 온몸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그들이 회사를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개혁이라는 말은 고용주와 우리에게 동일한 의미를 띠는 말이 아닙니다. 경영인들, 자유주의자들, 어용 노조들에게 개혁이라는 말은 단 한 가지, 그들의 은행구좌의 돈을 불리겠다는 의미를 띨 뿐입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쫓겨나고, 용도폐기 처분의 대상이 되고, 사용 불능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권 289쪽)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나라처럼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심화되고 있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복지가 잘된 나라가 갈수록 부럽다. 혼자서만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게 인간 사회 아니던가.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는 것은 헛된 꿈인가.


그렇게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은 언제나 유효하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세상, 한 사람의 수입이 다른 사람의 삼백 배가 되지 않는 세상을 소망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는 위협받지 않는 세상 말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는 싸워 얻을 세상 말고는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절규는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설령 우리가 짓밟힌다 하더라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이끌게 될 투쟁을 기억할 것이고, 그건 가능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럼 그때는 성공하게 될 겁니다!’라고 외치는 노동자의 함성은 그래서 의미있다 하겠다.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앞당겨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방대한 분량 만큼 소설은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갈수록 의미를 더해가는 소설이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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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연애편지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서간집 시리즈
김다은 엮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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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연애 경력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말이 아닌 글로 써서 보내는 일, 그것은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말하는 순간 허공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버리지 않는 한 언제고 꺼내 볼 수 있는 편지, 그래서 말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띄우지 못했으나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 그때만큼은 누구라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

김다은이 엮은 <작가들의 연애편지>는 편지를 쓴 이의 진심이 켜켜이 녹아있기에 독자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떤 소설보다도 아름답고, 어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그들의 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훌쩍 시간이 흘러버린 후에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건 삶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 책에는 배우자에게 띄우는 연서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가슴 속을 더 파고든다. 한때는 불꽃이었으나 이제는 재만 남았더라도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추억 한 자락은 딱 단편 소설감이었다.

연애편지이다 보니 주된 정서는 사랑이다.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의 힘이 우세하다. 내용에 흠뻑 취해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책은 독자를 흡인한다. 가슴이 뭉클했다. 서문에는 ‘이럴 땐, 이런 편지’를 읽어보라고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지만 그냥 담담하게 처음부터 읽었다. ‘지금 연애편지를 쓰느라고 끙끙대는 사람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고 엮은이는 말했는데 그만큼 행복한 사람은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인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문인들의 편지가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바깥 날씨를 조소하기라도 하듯 따뜻하게 다가온다. 책장을 덮은 후에서도 이문재 시인과 최문자 시인의 편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사랑은 속도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봅니다. 걸으면서 작은 꽃잎의 입술에, 목백일홍 가지에 입 맞출 때 당신을 떠올리는 것이 차를 타고 빨리 가서 당신을 열 번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만일 산을 올랐더라면 산을 걷는 일을 몰랐더라면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었을까요? … 산을 걸으면서 꽤 많은 시를 써냈습니다. 그 시 속에 당신도 있습니다. (147~148쪽)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보다 홀로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 훨씬 좋다는 말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더 행복한 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면 답은 나오는 것 같다. 곁에 있어도 곁에 없어도 마냥 좋은 것이 사랑이겠거니.

‘기억의 편집이 추억이다’

기억과 추억을 구별하듯이, 나는 연애와 사랑의 경계를 알고 있다. 연애는 정신병적 징후이다. 몸 없는 마음의 질주가 연애다. 몸 없는 마음은 몸이 없어서 오직 상대방의 몸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마음 없는 몸이다. 몸 없는 마음과 마음 없는 몸은 결코 만날 수 없다. K, 젊은 날의 내가 그러했다.

연애는 사랑의 영토에서 변방이다. 변방이 아니라면 아주 특수한 지역이다. 연애와 사랑을 혼동하는 것은 백 미터 달리기와 마라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폭이 넓어질수록 유속이 느려지는 섬진강 하류에서 나는 그대에게 뒤늦은 사랑을 말하려 한다. 사랑은 온전한 몸과 마음이 또 다른 온전한 몸과 마음을 만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온전하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헌신이거나 희생일 터이다.(158~159쪽)

스물네 살 시절, 땅을 밟지 않고 늘 지상에서 삼십 센티미터쯤 떠 있었다는 이문재 시인은 연애와 사랑의 정의를 그렇게 내리고 있었다. ‘기억은 날 것이고, 추억은 발효된 것이며, 기억의 편집이 추억이므로 추억은 정확하지 않다’던 시인은 지리산 자락을 돌며 헤드 랜턴의 불빛에 의지해 편지를 쓴다.

이제는 스물네 살이라는 나이가 시인에게 너무 아득해져 버렸지만 그때의 추억은 생생하기만 하다. 앞으로 세월이 그때의 나이 만큼 흘러버릴 지라도 추억은 유행가처럼 퇴색하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줄 것이라 믿는다.

중학생 시절 선생님을 짝사랑했던 소설가 박상우의 편지와 재수생 시절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홍섭 시인의 편지도 너무나 눈부셨다. 수록된 편지마다 생각해볼 거리를 한 보따리씩 건네 받은 느낌이랄까. 잔잔한 피아노 음악처럼 시나브로 몰려와서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만들어 주었다.

시간의 속도를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벌써 사랑을 한번쯤은 해본 사람들일 것이다.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성숙하게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순간 고독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필연이다. 문인들의 편지를 읽으며 생각했다.

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사랑하고 있을 때이며 그 때의 설레임, 떨림, 고독, 외로움 그 모든 것은 사랑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빛과 그늘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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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편지를 보내고 답신을 기다리던 시절,
답장을 받으면 열어보기 전에 가슴이 두근두근 했지요.


연잎차 2006-12-05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본 일이겠지요^^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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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책을 읽을까. 그리고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걸까. 우리는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때는 그 말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생님이 말씀하시니 관념으로만 그렇다고 여길 뿐,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위한 책읽기가 즐거울 리 있겠는가. 방학이면 꼭 책을 몇 권 읽고 독후감 숙제를 해야 했고, 일기도 꼬박꼬박 빠뜨리지 않고 써야 해서 일기 쓰기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매일이 아니라 며칠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몰아서 일기를 쓰며 몸과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을 놀이가 아닌 숙제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목적이 있는 책읽기는 잘 되지 않는다. 목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책을 읽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없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책이라고 해서 내게도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그런 책을 두고 독후감을 쓰라면 당연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단지 줄거리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면 백이면 백 그런 책을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는 힘들 것이다. 독후감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쓸 때, 바로 진정한 독후감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책 속에서 책과 함께 놀기

저자는 바로 그런 점에 착안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놀이로 책을 접하게 하는 것, 처음에는 책을 읽지 않고 여기저기서 장난만 치더라도 언젠가 다가와 책을 읽어달라고 조그만 입을 오물거릴 수 있게 만드는 힘, 바로 그것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흔히 조용히 앉아서 책 읽는 모습을 상상하기 쉬울 텐데,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다르다. 아이들의 도서관이니만큼 책을 읽다가도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오밀조밀 모여 여러 가지 놀이도 한다. 매주 수요일이면 ‘이야기극장’을 열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했다.

"아이들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잘 안다. 어떻게 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도, 그러니까 어른들이 무섭게 혼을 내고 심지어 매를 드는 건 그다지 쓸모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 아이들인데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이를 혼내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릴 때마다 지금 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면 꼭 그리 효과가 있을 성싶지 않다.

혹시 그렇게 해서 예의 바른 아이가 된다고 해도 나 같으면 오히려 그걸 참기 힘들 것 같다. 그건 아이들에게 힘으로 누군가를 억누르고 거기에 맥없이 따라가는 관계를 가르치는 셈 아닌가. 차라리 제 감정을 못 이겨 화풀이를 한 거라고 털어놓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셈이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진짜 용기다." (122~123쪽)


아이를 기르다 보면 화낼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려고 해도 힘든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곱씹어 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저자에게도 힘든 일이 많아보였다. 이혼이나 빈곤의 이유로 방치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장애를 가진 아이, 사랑을 받지 못해 엇나가는 아이들을 거두며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단다.

‘목숨을 지니고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 권리를 누릴 환경을 만드는 게 바로 어른들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저자는 기실 천사가 아닌가 싶었다. 제 아이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운 마당에 동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며 책과 친구가 되도록 힘쓴다는 게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타고난 호기심에 굳은살이 박이기 전에 배우는 즐거움을 알게 할 수는 없을까.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전에 어울리는 기쁨을 누리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고민이 오늘의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었다.

지나고 보면 누군가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물음을 가끔 할 때가 있다. 최소한 나쁜 사람으로는 기억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자는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을 만나서 기분이 좋다. 새싹 같은 아이들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하도록 어른들이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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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4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서점에 놀러다니곤 했지요.
지금도 방학때 집에 오면 서점에 가자 하면 되게 좋아한답니다.
서점이 일종의 놀이터였답니다.


연잎차 2006-12-0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는 일은 참 흐뭇한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