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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 새로쓰는 가족이야기 ㅣ 또하나의 문화 17
또하나의문화 편집부 엮음 / 또하나의문화 / 2003년 11월
평점 :
소리 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처럼 나도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다. 20대 후반이 되자 주위 사람들은 나의 결혼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여기 저기서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한 번 만나 보기를 권한다.
결혼할 생각은 있으나 결혼하지 않은 20대 후반 여성에게 앞으로 겪어야 할 발달 과업인 결혼. 독신주의자도 연애지상주의자도 아닌 나에게 결혼은 지금 당면한 가장 큰 과제다.
이미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는 또래 친구들은 머지않아 상견례 날을 잡을 것이고, 이미 상견례를 통해 결혼 날짜를 잡은 친구도 있다. 결혼이라는 말이 달나라 일처럼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쨌거나 분명 달라진 현실 앞에 와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나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런 나의 고민과 맞닿아 한 권의 책이 내 시야를 사로잡았다. 결혼이라는 것이 내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이며, 그 후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막연하게 생각할 때는 이미 지났으므로 좀더 구체적인 밑그림이 필요했다.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는 20대와 50대 여성이 주축이 되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20대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 '누구와 살까?'라는 화두로, 50대는 육아를 끝내고 또 다른 삶의 단계를 구상하는 것을 화두로 하고 있다. 내가 20대인지라 가까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쏠렸다.
언제가 되었든 함께 살 누군가를 찾게 된다면 절대 원칙 중 하나는 '경험자 우대' 정책이다. 함께 살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든지, 혼자 사는 동안 삶을 풍요롭게 잘 꾸린 이력이 있다든지 … 하물며 연애라도 많이 해서 인간사에 대해 한 깨달음 했다든지 하는 식으로 스스로 훈련한 경험자를 우대해야 한다.
관계에 대해 순진무구한 것은 절대 자랑이 아니다. 여러 관계를 경험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한 사람, 자신의 생활 스타일이 어떤지, 함께 사는 파트너는 어떤 사람일 때 성공 확률이 높은지, 어떤 상황은 절대 못 참는지 잘 알고 있는 상대여야 함께 살기가 즐거운 작업이 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처음 이 글을 보았을 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간 나는 화려한 경력의 사람보다는 순진무구한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글은 나에게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 준 셈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저자는 그렇게 피력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하나뿐인 가장 중요한 내 인생을 같이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당연한 요구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따라오는 여러 가지 기회비용이 클 것 같아서 웬만하면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도 있다. 괜히 첫눈에 빠져 사랑하는 감정에 취했다가 나중에 '웬수'가 되느니보다 몇 개의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있으면 그 불행한 사태를 그나마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리비도와 헷갈리는 로맨스 지상주의는 엄마 같은 어리석은 사람만이 하는 거다. - 본문 중에서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글에 공감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작업에 참여한 저자는 좋은 남자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소개한다.
1. 정치적 지향점이 똑같아야 한다. 2. 나를 미치게 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취향의 지향점이 같거나 서로의 취향을 좋아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4. 엄마를 치워 버릴 수 있는 위엄을 지닌 '다아시'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밖에도 … 유머러스해야 하고,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어야 하고, 너무 사랑에 연연해서도 안되고, … 다정다감하고도 남성적인 매력도 있어야 한다 등 중요한 조건들이 수도 없다. -본문 중에서
저자도 동의하듯이 물론 그런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도 마찬가지. 그러나 우리가 함께 살기를 계획할 때 최소한 자기가 양보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는 인지하고 있어야 불협화음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상대의 단점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지 정도는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여러 사람의 공동 작업인 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50대, 20대, 10대들의 좌담도 실려있고, 시와 콩트, 서평과 영화평도 함께 있는 종합선물세트다. 결혼과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이 책은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도,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픈 이들에게도 좋은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