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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약국 -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학자의 51가지 처방전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8월
평점 :
사랑과 연애에 대한 지침서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가끔 그 옛날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이런 책들을 읽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장담은 못하겠지만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너무 어린 관계로 책에 적힌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책의 내용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성공적인 연애를 할 수 있었을 지도, 혹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라도 주체적인 사랑을 할 수는 있었을 것 같다. 인생에는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일이 있게 마련이다.
언어학자 박현주의 <로맨스 약국>은 연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동통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전들을 모아놓았다. 사랑은 침묵 속에서도 할 수 있으되 연애는 언어 없이 실현되지 않고, 언어를 통해서만 관찰된다는 저자는 진부하게 반복되는 말들 속에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본질이 숨어 있고 그것을 알게 되면 극복도 쉬워진다고 조언했다.
#1. 선언하자... "우리 사귈까"
도대체 사람들은 언제부터 사귀는 것일까? 그걸 꼭 말로 해야 알 수 있는 거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선언이 없는 관계'는 언제든 쉽게 그만두어도 어떤 쪽도 관계 파기의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는 말을 저자는 들려준다.
정말 그런가? 맞다. 말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실려 있다.
감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로써 스스로를 재단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감정들을 말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지의 것이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시작 단계에서는 말을 하는 게 의의가 있다. 말은 그만큼 여파가 오래가고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책임을 지기위해서도 일부러 말을 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소비를 막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잠재적으로 초라해질 가능성을 두려워해서인지는 몰라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적어도 말을 덜 하는 정도만큼은 무책임한 사람이다(22쪽).
시작이 모호하면 끝도 모호해질 가능성이 높다. 선언이 없었다면 '내가 언제 사귀자고 한 적 있어?' 또는 '우리가 언제 시작이나 했어?'하고 발뺌하기 쉽다. 우리가 덜 상처받기 위해서는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해둘 필요가 있다.
#2. 옛사랑의 연락에 헷갈리지 말라
느닷없이 옛사랑에게서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옛사랑에 대한 감정 정리가 끝난 상태고 현재 다른 사랑을 하고 있는 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가끔 떠올리는 사람에게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 마음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게 된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 것인지 단편 소설 분량의 오만가지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될 것이다.
다시 연락을 해온 사람은 자신의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옛사랑과 이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어떤 이유로 갑자기 외로운 상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우발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을 빌미로 갑자기 옛사랑이 생각났다거나 현재의 연인과 다투었다거나 하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옛사랑에게 연락을 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런 감정적인 행동은 오해를 사기 쉽고, 그 오해에는 누군가가 항상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3. '여기' 있는 나는, '거기' 있는 네가 될 수 없다
공간이 멀어지면 시차가 발생하는 법. 따라서 공간과 시간은 연결되어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그리고 누구나 알다시피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멀어진 시간은 환원될 수 없다(177쪽).
정말 그럴까? 저자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가 많은 연인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은 만지거나 볼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있는 '여기'는 그가 있는 '여기'가 될 수 없고, 나의 '지금'은 너의 '지금'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하기를 원한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같은 꿈을 꾸기를 원한다. 그런 이유로 물리적으로 시공간이 가로놓여 있다면 그만큼 서로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저자는 한국적 정서에 맞게끔 다양한 처방전을 들려준다. 드라마나 영화의 예를 들어 공감하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면, 시종 유쾌한 필체로 독자들을 이끌며 사랑을 '백신도 없는 감염율 100퍼센트의 질병'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감염율 100%, 사랑의 질병에 바치는 구급약
사랑이라는 달콤한 이름 아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간은 성숙한다. 세월을 두고 사랑의 상처는 자연 치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 낭비를 덜 하기 위해서 조언자의 의견을 참고하면 좋겠다.
이 책에서 우리는 효과 높은 구급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연고 역할은 물론, 결단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든든한 조언자의 역할도 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