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기머리 명품 샴푸 500g+145g+145g (파우치10매 랜덤증정)
두리화장품
평점 :
단종


동생이 어디서 댕기머리 샴푸의 명성을 듣고와서는 다짜고짜 주문하라고 난리법석이다. 명색이 언니로서 샴푸 하나 사주지 못하랴 동생에게  책선물도 잔뜩 받은 터라 두말않고 주문해서 나도 살짝 쓰고 있는데, 역시 명품이었다.

 

설명서대로 조금 먼저 샴푸하고 나서 두번째 샴푸를 하라고 하니 샴푸가 너무 많이 드는 건 아닌가 했는데, 처음엔 소량으로 하고 두번째는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양으로 샴푸하니 거품도 잘 나고 좋았다. 일반 샴푸 쓰는 거에 비해 작은 양을 쓰니 그리 낭비가 심한 것 같지도 않다.

 

머릿결이 가는 사람은 올이 굵어지고, 머리가 다소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사람도 이걸 쓰면 현저히 그런 느낌도 줄어든다는 소문에 구입했는데 정말 그럴까?

 

사용한 지 2주가 지났는데 확실히 건조감으로 인한 가려움증은 덜해진 것 같다. 머릿결도 훨씬 부드럽고 윤이 나는 듯해서 만족이다.

다른 제품과는 사용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것으로 샴푸만 하면 비누로 머리를 감은 듯해서, 끝에만 살짝 린스나 트리트먼트를 해주니 훨씬 좋다.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혼자서 쓴다면 꽤 오래 쓸 수 있다. 두피나 모발의 건강을 위해서 투자할 만한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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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청소년 현대 문학선 18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가을도 깊은 시월이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남은 2006년을 흘려보낼 기세다. 해가 짧아진 지는 오래지만 아직까지 길가에 떨어진 낙엽은 볼 수 없었는데, 어젯밤에는 바람이 몹시 불었던 탓인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어지럽게 굴러다니는 낙엽들을 보고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들었다.

더 이상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책읽기에는 그만인 계절인지라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돌아서면 휘발되어 버리는 것들이 다수였다. 그러던 차에 이승우의 <생의 이면>과 조우하게 되었고, 일순간 무미건조한 일상은 책 한 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저자를 어디에서 만났을까.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당신은 이미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의 저자가 아닌가. 저자의 이름을 이제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생의 이면>은 작가 박부길의 생애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박부길의 유년 시절은 물론 평범하지 않았다. '현실이 행복한 사람은 한 줄의 글을 쓰고 싶은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는데 그 말은 주인공의 삶에 비추어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환경이 만들어준 그늘이 부적처럼 따라다녔던 유년기

부길의 아버지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절로 떠났다. 허나 갑작스레 나타난 정신이상 증세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기구한 운명의 어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남편과 함께 살아야 했지만, 그는 곧 자살하고 만다. 그것도 아들이 건네준 손톱깎기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큰집에서는 어머니에게 개가할 것을 권유했고 이로부터 부길은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다.

큰아버지 집에서 지내면 되었지만, 아무래도 찬밥은 찬밥이다. 구박하지 않아도 그 집은 이미 부길의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무작정 큰아버지 집을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자취생활,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막막할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한 달에 한 번 어머니가 찾아온다. 경찰공무원과 결혼한 어머니는 그 사이 1남 1녀를 두었다. 어머니가 올 때마다 상위에는 설탕을 넣은 돼지고기 볶음이 프라이팬째 차려져 있었고, 상다리 밑에는 몇 장의 지폐가 눌려져 있곤 했다.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모자란 돈이지만 하는 수 없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보러 오지만 아들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왕복 4시간의 거리이므로 남편이 귀가하기 전에 도착하려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부길은 돼지고기 볶음과 몇 장의 지폐로 어머니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설득했으니 함께 가서 살자고 하지만, 아들은 그럴 수 없다. 그곳은 어머니의 보금자리는 될 수 있어도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나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미 새로운 두 남매의 어머니이고, 한없이 엄한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에게 나는 너무 오랫동안 짐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그 집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어머니의 남편이 허락했다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조차 막을까. 그래서 1년이 다 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하게 했을까.

… 아, 그녀가 건네주는 그 돈봉투는 또 어떤 멸시와 구박의 틈 사이로 숨겨 내온 것일까. 나는 안다. 어머니의 한숨을 안다. 그녀는 안타까움 때문에, 그리고 습관처럼 붙어 버린 죄책감 때문에 아들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들어가려고 한다. (147쪽)


이루지 못한 첫사랑, 소설로 태어나다

어느 날 빗속을 헤매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이끌려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간 부길은 처음으로 낯선 평화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첫사랑 종단과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종단은 교회에서 생활하는 연상의 여인으로 부길에게는 교회선생님이었다.

이후 부길은 종단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대신 신학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사랑이 싹터가고 있던 어느 날, 부길은 종단을 오해하여 종단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안겨주었고 이로써 종단은 이별을 선언했다.

어둠에서 빛의 세계로 그를 이끌어준 종단의 부재는 부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길이 아무리 애원해도 종단은 단호했다. 다시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던 자취방으로 기어들어간 부길은 두문불출에다 거의 먹지도 않고 소설을 쓴다. 그리하여 완성된 그의 소설들은 그에게는 스님의 사리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훗날, 2006년 가을을 회상하면 <생의 이면>이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성장소설을 본 적이 없다. 문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생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한 폭의 소설에 담을 수 있다니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기실 고통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는 걸까.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는 묵묵히 감내해야하는 건가.

언제 왔다 가버렸나 싶게 짧은 가을을 기억하고 싶다면 가슴에 남을 책 한 권과 만나는 일도 괜찮을 성싶다. 책을 권할 때마다 얼마간 나와 다르게 느껴서 실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곤 했는데, <생의 이면>은 그런 염려를 전혀 하지 않게 만든다.

<생의 이면>은 불어와 영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좋은 책은 그렇게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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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차 2006-11-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에 썼던 글입니다.

kleinsusun 2006-11-20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소설이었어요.^^

비로그인 2006-11-21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지 않지만,
첫사랑과의 맺어짐은 어느 정도 운명인가 합니다.


연잎차 2006-11-2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leinsusun님, 동감입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소설이었어요. 저자의 다른 소설들도 몇 권 읽었는데, 저에게는 생의 이면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연잎차 2006-11-2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그럴까요? 사랑, 그건 언제 들어도 어렵기만 한 화두 같습니다!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겨레신문>에서 가끔 정희진의 칼럼을 만날 수 있다. 그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어떤 깨우침을 독자에게 선물하기 때문에 스크랩을 해두고 있는 터라, 여성학 강사인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최근 2년 동안 <당대비평> <인물과 사상> <한겨레> <인권> <황해문화> <여/성이론> <이프(IF)>등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묶은 것이라고 하는데, 책장을 덮는 순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몰려와 잠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

...누가 나더러 여성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라는 말을 소개한다. "착한 여자만이 천당 갈 수 있다"가 기존 남성 중심적인 생각이라면, 여성주의는 "나쁜 여자가 천당 간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와 거리가 멀다. 여성주의는 남성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든 증오든 이제까지 남성에게 쏟았던 기운을 여성 자신에게 돌릴 것을 제안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나라 부모나 교사들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대부분 부모들은 자기 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천당에 가기 위해 남자들에게 순종하며 '착한 여자'로 살기보다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 있는 '나쁜 여자'로 살면서 어디든 가길 바란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듯,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와 오해는 간단명료하게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여성과 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은 많지만, 독자들을 흡인하는 능력에 있어서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책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내게는 많은 생각을 심어주었다.

말에 담긴 성차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비판 의식 없이 사용해 온 말에 성차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 이야기해 주기 전에 깨닫기란 참 힘든 일인가 보다. 누구에게나 가치중립적인 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옳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언어를 찾기는 힘들다. 저자는 폐경보다는 완경이라는 말을, 미혼이라는 말보다 비혼이라는 말이 듣기에도 좋고 상호적이지 않은가 하고 독자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제주도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해는 틀린 말이다. 그들에게는 북해다. 왜 박완서는 '제3세계' 문학이고, 괴테는 '세계' 문학인가? '유색 인종'은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우월주의의 표현이다. … 한국어나 영어에서 만남은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또 봐요."), 이는 시각 장애인을 배제한 말이다. 남성에게 성교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 - 본문 중에서

모든 법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처럼,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찾지 못한 권리가 있다. 사회가 그 사실을 엄연히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 사람에게 부여된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행복에 이를 수 있도록 공동체는 소통과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성판매 여성, 성적 소수자,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두가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성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지만,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끊임없이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페미니즘의 도전>은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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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정말 위한다면 칭찬을 아껴라
이토 스스무 지음, 황소연 옮김 / 책씨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일이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수업을 하셨던 할머니 선생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까닭은 모르겠지만, 칭찬이라는 키워드는 그 선생님을 생각나게 만든다.

 

칭찬에 인색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그 선생님은 언제나 부정적이셨다. 그러나  솔직하게 학생들 앞에서 사과(?)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칭찬을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뭐든 넘치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살았다 자문해 보니 꽤 많다.

친구에게나 동생, 혹은 타인에게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얼마나 했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진다.

 

칭찬을 하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난 칭찬이면 괜찮을 것이다. 공수표 남발하듯 칭찬을 남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어떤 행동에 대해 과대해석하여 칭찬하는 것도 금물이라고 저자는 덧붙인다. 사실 그런 경우는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칭찬에 너무 인색해서도 안될 것 같고, 너무 많은 칭찬도 아이에게는 해가 될 것 같다. 뭐든 적당한 게 좋지 않을까.

기대한 만큼은 아니지만, 칭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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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합니다.
100번쯤 칭찬, 1번쯤 따끔한 꾸중..
아이들이 잘 자랍니다.
큰 딸은 의대를 졸업하고 목동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과정중입니다.
둘째, 셋째는 대학 다니고 있고요.
아이들은 부모의 칭찬을 먹고 자라나 봅니다.


연잎차 2006-11-2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멋진 아버지시군요.. ㅎㅎ
 
Denis Matsuev - 스트라빈스키 : 페트루슈카 & 차이코프스키 : 사계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Denis Mats / 소니뮤직(SonyMusic)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가을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곡이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다.

 

찌는 듯한 더위가 물러가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선선한 바람에 마음 한구석이 휑뎅그렁한 것은 나만이 가지는 정서는 아닐 것 같다.

 

가을의 노래를 듣고있노라면, 마음이 바닷속 심연보다 더 깊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든다.

좋은 곡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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