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SE (dts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송해성 감독, 이나영 외 출연 / 에이치비엔터테인먼트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원작 소설을 1년 전쯤 읽은 탓일까. 기억들이 희미했지만 영화를 보니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고 곧 영화에 몰입했다. 어디선가 낯익은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순간 바다보다 깊은 평화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흐를 수 있을까. 곧 다가올 비극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도 흘러나왔다. 두 곡의 잇단 연주는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이 함께하는 세상을 잘 조명해주는 것 같았다.

유정(이나영분)은 조깅을 하고나서 갑자기 차에 두었던 약을 통째 삼킴으로써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다. 입원한 딸을 방문한 어머니는 딸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매번 깨어날 것이면서 자꾸만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유정은 열다섯 이후로 자살 기도를 세 번이나 감행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유정은 어머니를 미워했다. 어머니를 그토록 미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거다. 유정은 열다섯의 나이에 사촌 오빠에게 유린당했다. 어머니는 유정을 위로하기보다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그 일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게 했다. 오히려 행실을 문제 삼으며 딸을 비난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경황이 없었겠지만 어머니의 잘못된 행동으로 유정은 상처를 그대로 끌어안은 채 하나의 상처를 덧입어야 했다. 이때부터 유정은 어머니를 사촌오빠라는 작자보다 더 미워하기 시작했다.

부유한 집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유정이지만 언제나 자살 충동은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아침이면 더 괴로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망찬 아침일지 몰라도 유정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아침은 부담스러운 것이었고 자신이 향유할 수 없는 그 무엇일 뿐이었다.

윤수(강동원분)는 어떤 인물일까. 젊은 나이에 사형수가 되기까지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었던 걸까. 어린 동생을 데리고 고아원을 나온 윤수는 어머니를 찾아간다. 입가에 피멍이 든 어머니는 추운 겨울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고아원에 돌아가 있으면 만나러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창문을 닫아버렸다. 창문 닫는 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들렸을까. 어머니에게서조차 받을 수 없던 사랑은 언제나 윤수를 목마르게 했다.

정에 굶주린 윤수는 동생과 앵벌이에 나서다 매를 맞기도 했고, 추운 겨울 달랑 신문만 덮고 길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윤수는 혹독한 세상에 버려진 것이다. 병든 동생은 세상을 떠났고 윤수는 어른이 되었다. 사랑하는 여자도 만났고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는데 자궁외임신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그들에게는 수술비가 없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던 윤수는 돈을 갚으라고 친구를 종용했지만, 그 친구라는 사람은 윤수에게 마지막으로 한 건만 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돈을 갚을 능력은 없고, 대신 일을 소개해줄 뿐이라며. 어차피 수술을 시켜야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이다.

수술비를 위해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상황이다. 윤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죄의 경중을 따지면 사형은 윤수의 몫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윤수는 한 사람을 살인했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죄를 혼자서 다 뒤집어쓴다. 지금에라도 바로잡으면 안 되는 걸까. 한 번 작성된 조서는 다시 작성될 수 없는 걸까. 사는 게 힘들기만 했던 윤수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거짓 진술을 했던 것이다.

유정의 고모인 모니카 수녀를 통해 윤수와 유정은 매주 목요일 만나게 되었다. 세상을 곱게 바라볼 수 없는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지만 이내 둘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은 닫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상처를 수면 위로 꺼내어 대화를 통해 치유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진정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는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불쌍한 고아의 성장과정이나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결국 꽃보다 젊은 나이에 사형수가 되고 마는 것, 남 보기에 모자랄 것 없이 보이는 사람에게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 등.

원작보다 나은 영화를 찾기란 힘이 든다는 데, 나는 소설을 보고는 울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는 눈물이 났다. 그것은 몰입에서 오는 차이인지도 모른다. 성숙해진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힘이었고,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열정을 찾아볼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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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나영, 강동원의 공통점?
눈이 겁나 크다. 울면 눈물이 그득.. 하하


연잎차 2006-11-2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죠. 얼굴도 작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