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트빌라 사람들 창비세계문학 29
고트프리트 켈러 지음, 권선형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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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의 스위스를 배경으로 한 노벨레-중편소설 4편. 10편으로 된 원작이 다 번역되었다면 진면목이 드러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렸는데 우스꽝스러운 한편 당시의 관심과 풍속을 사실적인 측면에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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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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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면 그때그때 사서 읽으면서 전작을 모은 시리즈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처음이다. 메그레 경감 시리즈도 나올 때마다 읽고 모았으나 전작이 번역된 것은 아니고 일부만 번역된 것으로 안다.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두 작가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김명남 역자의 번역으로 2017년에 시작되어 며칠 전 열 번째인 [테러리스트]가 나오면서 7년만에 완간이 되었다.

우선은 번역자에게 감사하고 싶다. 오랜 시간 걸쳐 한 시리즈를 완간 해 준 것 자체가 감사하다. 호칭과 경어 등에서 차별적이지 않은 세심한 단어의 선택이나 인물들의 특성을 살리는 말투와 전체적인 소설의 차분한 분위기 등은 번역자의 이바지가 컸다고 생각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제일 큰 이유는 인물들의 개성이었다. 

주인공 베크는 말수가 적고 유머감각도 부족한 지루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성격적 결함으로 또는 승진에 있어 약점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베크는 여가에 활발한 사교활동 대신 모형 배를 조립하거나 항구를 산책한다. 그러는 간간이 풀리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를 곰곰 되새김질한다. 그리고 베크는 자신을 싫어하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이를 포함하여 주변의 누구에게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공격성이 안 느껴지는 사람, 믿음이 가는 사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경찰임에도 말이다. 사건을 맡으면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되새김질하며 부산함 없이 분투하여 일을 완결시킨다.

   

우리는 마르틴 베크처럼 본인은 우울하고 타인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성격이 현대 사회에서 결점으로 취급된다는 것과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인물의 면면이 험담거리로 취급되는 것을 보아왔다. 긍정적 마인드와 활력을 지닌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작든 크든 압박이 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소설의 중심 인물들이 갖는 인격의 울퉁불퉁함과 우울에서부터 다혈질에 이르기까지 성격의 다채로움은 문학작품이 주는 위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특히 작품의 내용이 그것을 예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지점은 인상적으로 사랑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 문장에서 중심 인물'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시리즈의 마지막 소설인 이번 작품 [테러리스트]에서 맹활약을 보인 군발드 라르손만 조금 더 소개하자면, 거구에 걸맞는 완력의 소유자이며 분량이 늘어나면서 들여다볼수록 두뇌 회전도 빠른 경찰이다. 듣기 좋은 소리로 걸러서 표현하는 일이 없고 호오가 분명하고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 적도 많다. 맞춤 양복과 수제 구두, 실크 잠옷을 좋아하며, 퇴근하면 자신이 경찰임을 잊어버리며, 파시스트를 싫어하는 경찰이다. 경찰 조직내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인적 관심을 나누는 이가 없다. 경찰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경찰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점잖은 마르틴 베크조차도 군발드 라르손을 마음 속으로 좋게 평가하게 되고 의논 상대로 여기기까지엔 시리즈의 여러 권이 지나야 했다. 앞 권 [경찰살해자]에서 퇴직해버린 베크의 측근 동료이자 친구인 콜베리의 자리를 군발드 라르손이 대신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시리즈는 영영 막을 내렸다.


이야기의 규모와 내용이 알찼다는 점도 좋았다. 너무 큰 이야기나 너무 강한 능력의 소유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60,70년대의 스웨덴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인 작가들이 느낀 그 시대의 문제들. 자본이 잠식하여 발생하는 사회문제, 관료체제의 문제들을 위에 소개한 나름의 결점들과 작은 능력을 지닌 경찰들이 해결할 만한 규모의 크기로 짜서 전개시켰다는 점이다. 사건 외형이 비대하다거나 장식적으로 무게를 잡는 느낌이 없다. 발생한 사건과 해결의 과정은 폼잡는 설정 없이 다만 끈기와 발품의 성실성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 전개의 과정에 촘촘하게 사회 비판의 시선을 심어놓았다. 

덧붙이자면 마지막 소설인 [테러리스트]는 예외적으로 규모가 큰 이야기였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는 면도 있었지만(대표적으로 50줄 경찰간부 세 명이 테러리스트 은신처를 습격한다는 것) 애초 계획했던 시리즈 마지막 소설이기도 했고 작가 발뢰의 심각한 병세가 작가들로 하여금 시도하고 싶었던 일과 발언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담아보고자 했음을 이해하고 싶다.


작가들이 소설을 쓸 당시엔 지금보다 세계가 다이나믹했고 일말의 전망도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실제로 굴러가는 현실은 비관적이었으므로 이런 작품이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리즈를 돌아보니 작가들의 진보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고전 영화에서 받는 느낌과 비슷한 감상이 든다. 시리즈 마지막 소설 이후 5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므로 그간 있었던 역사적 변화로 인해 생긴 60,70년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이런 감상을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소설 자체의 분위기가 그렇다. 아마도 춥고 진눈깨비 날리는 나라의 우울하고 성실한 주인공이 비염으로 재채기를 하면서 캐비넷에 팔을 올리고 기대서서 동료들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는 장면이 뇌리에 박혔나 보다.


믿을 수 있는 노선의 주제. 호감가는 중심 인물들. 억지스러운 심각함과 거창함이 없으면서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 게다가 무뚝뚝한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은근 유머러스하기까지.

읽는 동안의 행복감을 담보해 준 고맙고 보기드문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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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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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마주친 책이었으나 그동안 어쩐지 손이 안 가서 지나쳤는데 앞서 읽은 서머싯 몸 책에 아쉬움을 느껴 한번 더 만나보려고 대표작이라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인 화자가 계획한 것은 아니나 어쩌다 자꾸 얽히게 된다는 식의 전개로 예술가의 삶을 추적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 일반인들의 머리 속에 인습 파괴적이고 행,불행을 아득히 초월한 예술가 상을 입력시키는데 일조한 소설 중 하나. 

리뷰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이입하기 어려웠던 부분들만 조금 써 본다.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했다는데 대강 여기저기서 읽어 알고 있는 고갱의 실제 행적 중의 현실적인 면모(그림 투자가로 돈을 벌기도 했고 당시 화가들과 어울리며 습작 시절을 보내기도 한)와 지저분함(타히티에서의 어린 여자들)을 쳐내고 동선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인물의 전설적인 면을 더욱 뚜렷하게 살렸다. 고갱이라는 인간이 아니고 예술가 고갱의 특정 부분을 강조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내용 전개상 무리로 느껴졌던 것은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하루 아침에 가정과 직장, 나라를 떠나 파리로 가서 거의 빈털터리로 화가로서의 새인생을 산다는 앞 부분이었다. 서머싯 몸이 주인공 화가를 영국인으로 설정하고 고갱의 삶을 이어받게 하는 연결 지점에 무리수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점을 서머싯 몸도 알고 있었다. 소설의 삼분의 이 정도 지점에서 화자이자 기록자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원인을 모르니 모호하게 쓸 수밖에 없다면서, 가장이자 증권 중개인으로 살 때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하고 있다. 어떻게 화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이란 소설처럼 그럴듯한 이유로 짜맞춰지지 않는다는 말까지 한다. 그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어떤 기인 한 사람에 대해 아는 사실을 그대로 적는 게 아니고,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다면 그와 같은 심경 변화가 일어난 이유를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꾸며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까지 하면서 이 구멍에 대한 알리바이를 써놓았다. 


그런가요... 저는 화가가 되겠다는 결단이야 속사정이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고(남 모르는 어릴 적부터의 꿈이라서...그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기타등등) 보고 굳이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렇게 인습을 벗어난 야수같이 되는 것도 하루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일까 싶다. 파리에서의 스트릭랜드는 조금치의 허례허식적, 허영적, 가식적 내용의 대화도 묵살하는 사람이며 인간적인 애착 같은 것을 경멸하는 사람으로서, 고흐가 귀를 자르게 했던 무신경한 고갱이 되어 있었다. 아니 실제의 고갱은 가족과의 단절이 이 소설과 같은 식이지 않았고 밀고 당기고 인연이 끊어지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 것으로 안다. 이 소설에서는 17년간 가정을 이루고 증권맨 생활을 했던 영국에서의 지인들은 모두 짐작을 못하던 인격이 영불해협을 건너자마자 드러난다. 이 점은 이상하였다.

위에서 내가 쓴 표현이긴 하지만 인간이 아닌 예술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 구분의 선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비본질적인 인습과의 적당한 타협을 역겨워하고 그 결과로 겪는 고난 위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닌다는 점은 예술가에게 갖는 소중한 존경심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오는지? 그 이동의 과정이 지금의 나는 궁금하다. 신의 계시처럼 자고 나서 변화했다는 것은 궁금할 수 없는 손쉬운 설정이다. 증권 중개업자가 예술가 중의 예술가가 되는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가 내가 읽고 싶은 글인 모양이다. 


누가 보더라도 고갱의 삶이 바탕임이 확실한 소설인데 타히티에서 말년을 다룬 후반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도 솔직히 난감했다. 소설은 타히티에선 일부일처의 삶을 살다 마감한 것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널리 알려진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모델이 엄연히 존재하니 글을 쓰는 작가에게 부담이 매우 큰 작업이다. 또 독자로서는 감상에 있어 흔쾌하지 않은 점이 생기기 쉽고. 여러 가지 방해나 복잡한 심사가 따라 오게 되니. 

20년대 소설이며 야생의 생활을 편하게 여긴 인물이 주인공이라 해도 '여자들이란-' 소리가 심하게 그 입에 자주 올려진다. 실제로 고갱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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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찾은 혀 - 어느 청춘의 이야기 대산세계문학총서 180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김진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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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카네티의 16세까지(1905-1921) 시간을 다룬다. 

후기 글의 상찬을 믿고 시작했는데 [군중과 권력]도 안 읽었고 카네티에 대해 특별한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지 의심이 있었다. 거기다 자서전이라는 갈래에 대한 불안도 있었고. 하지만 대다수 좋은 책의 길을 따라 이 책도 뒤로 가면서 점점 기세를 얻고 흥이 더해지며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자전적 소설과는 달라서 구조적, 의미적으로 이야기의 완결성은 기대할 수 없지만 실재의 시공 속에서 한 인간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보는 다이나믹함이 있다. 그리고 어떤 대목들은 실제이니만큼 비판이 가능한 여지를 준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 책의 내용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부모와의 밀착된 관계였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는 카네티가 책과 맺는 관계로 이어진다. 카네티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후엔 어머니와 매우 친밀하게 지내는데 모든 내적, 외적 사건들을 다 공유하며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양, 카네티 본인의 경우는 진심 서로의 인정만이 전부라는 애착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아버지가 한 권씩 가져다 준 책은 독서 후 그 내용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며 카네티 최초의 세계를 형성하고, 어머니가 가져다 주거나 좋아한 책은 어머니와 함께 독서하고 대화하면서 같이 만든 세계로서 카네티에게 말 그대로 흡수된다. 

십 대 초반까지 부모의 영향은 누구에게나 강력하지만 이 가족의 경우, 이 모자의 경우는 프로이드의 사례 중에서도 두드러진 예가 될 법하다.

카네티는 아버지 죽음 후 모자 사이에 무언가의 침입(어머니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으로 틈이 보인다 싶으면 끈질긴 집착과 집요함으로 불순물을 제거하고 투쟁하여 원상복구시킨다. 또한 어머니는 절대적, 독재자적 영향력을 카네티에게 행사하면서 정신적인 고문에 가까운 언사를 예사로 하며 지배한다. 그 고문은 주로 책과 지식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데 쓰이고 공명심을 주입시키는데 쓰이긴 하지만 서로에 대한 극심한 기대와 압박이 이 책 이후의 시기에 다가올 이상 기운을 예감하게 만든다. 남동생이 둘 있는데 이들에 대한 이야기 분량이 거의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동생들과 놀며 있었던 일, 아버지 사후 생길법한 동생들에 대한 감정, 두 동생 각각의 특징이나 주고받은 영향이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마치 자신과 아버지, 자신과 어머니만이 가족인 것 같이 내용을 채워놓고 있었다. 


카네티는 이 책 분량 반을 차지하는 취리히에서의 생활을 아주 만족스럽게 회고한다. 특히 어머니의 요양으로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후반부 이 년의 시간 동안을. 교사들과 급우들을 관찰하고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과 그들에 대한 존경을 고백하며, 읽는 책과 더불어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인하여 자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성장의 기쁨을 느꼈다는 서술이 몇 번 나온다. 이 부분들은 저자의 즐거웠던 기운이 글에서도 묻어나 특히 재미나게 읽었다. 예전에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의 성장 소설들을 읽을 때의 느낌도 나고. 

또한 이 부분은 카네티가 처음으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카네티는 지식욕과 더불어 과시욕이 있어 모든 수업 시간에 언제나 손을 너무 자주, 너무 빨리 드는 학생이고 학급에 있던 또 한 명 유대인 학생은 학습이 아주 쳐지는 애였는데 둘 다 급우들에게 미움을 사고 둘을 묶는 공통점으로 욕설 쪽지(--꺼져라, 우리는 네놈들이 필요없다)를 받고 따돌림을 당한다. 카네티는 학교 전체 유대인 학생들과 모여 탄원서를 써서 제출하고 학교는 요란스러움 없이 실질적으로 접근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카네티는 시간이 흐른 후 학교 측의 조치를 알게 되고 원래 가졌던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을 더하게 된다.


시기가 시기라 눈에 들어온 것도 있겠지만 책 속에서 어머니의 태도를 통해 유대인들의 이중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그냥 '유대인'이라서가 아니다. '세파라드 유대인'임을 강조하는데 15세기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일반 유럽계 유대인, 독일계 유대인을 차별하여 그들과는 결혼도 해선 안 된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세파라드 유대인 중에서도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가 엄청나며 그 자부심의 근거는 카네티의 말에 의하면 오로지 부유함에 있다는 것이다. 가문 내에서 친척들이 유산 문제로 마지막 한 푼까지 파산시키려고 소송을 거듭하는 추함을 보면서도 가문에 대한 자랑과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어머니는 아무 모순을 못 느끼더라고 카네티는 적고 있었다. 같은 유대인끼리도 구분하여 차별하며 부를 이룬 소수 유대인 가문만의 결집을 통해 자부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오래 차별 받은 세월 속에서 아무런 배움이 없었던 것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세파라드 유대인도 스페인에서 쫓겨나서 동유럽으로 옮긴 상태이면서 말이다. 자기 객관화가 이렇게나 어려운 모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군중과 권력]이 가깝게 느껴지는 효과가 생겨 일단 보관함에 넣었다. 

참, '내 삶의 이야기 속에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라고 책 뒷면에 적혀 있었으나 완전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 있었다. 왜 이런 언급을 했는지는 자서전 나머지가 번역돼 나와야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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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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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머싯 몸의 소설을 [면도날]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다. [면도날]도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 느낌을 갖는다. 내가 기대하는 성격의 소설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한 방향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었고 작가의 유명세를 생각할 때 기대한 만큼의 재미는 아니었다. 

몸은 활동 당시에 대중적인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지 않을까. 깊이를 천착하는 작가는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중심인물 세 명 중에 내면의 생각과 그 변화를 따라가 보게 하는 인물은 키티 한 사람이다. 남편 월터의 성격이나 인간됨은 키티의 눈에 비친 모습이나 키티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불륜 상대인 찰스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 내면이랄 것이 없다. 따라서 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으로써 인물이 성장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형식적으로 이야기는 외부의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사실상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키티, 그녀,라고 지칭되어 있으나 이야기는 키티만을 따라가고 외부 세계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전달된다. 사실상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표면적으로 3인칭 시점으로 전개한 것은 키티의 성격적 가벼움과 천박함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키티의 가족 비롯 주변 인물과 갖는 관계의 부실함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그릴 필요없이,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유용성도. 이런 의도를 생각해 보았으나 한편으로는 표면적으로 3인칭이나 실질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월터라는 인물을 깊이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쉽다. 생각해 보면 3인칭이면서 실질 1인칭으로 전개하였다는 것은 작가가 인물들의 내면을 '조금만' 다루겠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된 것 같다. 


키티가 변화하고 성숙하게 되는 장치들도 무척 도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키티는 월터에게 불륜을 들키고 찰스의 본색을 확인한다. 이후에 냉혹하고 자기파괴적인 월터의 결정으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농촌 지역에 끌려가듯이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생을 헌신하는 프랑스 수녀들을 만나게 되고, 그곳의 자연에 감화받는다. 이국에 이국을 더하며 생경함에 생경함을 더하는 극단적인 외적 조건들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단 두세 달 지속되는데 키티는 무척 변화하는 것 같이 보인다. 사람이 그렇게 금방 변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홍콩에 돌아온 키티를 통해 작가가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도 불평을 조금 하자면 인간의 나약함을 이렇게 보여 준다면 앞서 농촌에서의 장면들에 신뢰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굴곡을 거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단련되어 간다, 라는 면도 있겠으나 그래봤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라는 김빠지는 장면이라는 느낌도 있었다. 


1920년대 영국인이었다면 이 책이 많이 흥미로웠을까. [면도날]에 이어 다시 서머싯 몸 책을 시도한 것은 조지 오웰의 언급 때문이었는데...아쉽다. 대표작인 [인간의 굴레]나 [달과 6펜스]를 읽었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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