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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머싯 몸의 소설을 [면도날]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다. [면도날]도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 느낌을 갖는다. 내가 기대하는 성격의 소설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한 방향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었고 작가의 유명세를 생각할 때 기대한 만큼의 재미는 아니었다.
몸은 활동 당시에 대중적인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였지 않을까. 깊이를 천착하는 작가는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중심인물 세 명 중에 내면의 생각과 그 변화를 따라가 보게 하는 인물은 키티 한 사람이다. 남편 월터의 성격이나 인간됨은 키티의 눈에 비친 모습이나 키티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불륜 상대인 찰스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 내면이랄 것이 없다. 따라서 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으로써 인물이 성장하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형식적으로 이야기는 외부의 시점으로 전개되지만 사실상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키티, 그녀,라고 지칭되어 있으나 이야기는 키티만을 따라가고 외부 세계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서 전달된다. 사실상 1인칭 주인공 시점인데 표면적으로 3인칭 시점으로 전개한 것은 키티의 성격적 가벼움과 천박함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지만 키티의 가족 비롯 주변 인물과 갖는 관계의 부실함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그릴 필요없이,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유용성도. 이런 의도를 생각해 보았으나 한편으로는 표면적으로 3인칭이나 실질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월터라는 인물을 깊이 다루지 않은 것은 아쉽다. 생각해 보면 3인칭이면서 실질 1인칭으로 전개하였다는 것은 작가가 인물들의 내면을 '조금만' 다루겠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된 것 같다.
키티가 변화하고 성숙하게 되는 장치들도 무척 도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키티는 월터에게 불륜을 들키고 찰스의 본색을 확인한다. 이후에 냉혹하고 자기파괴적인 월터의 결정으로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농촌 지역에 끌려가듯이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생을 헌신하는 프랑스 수녀들을 만나게 되고, 그곳의 자연에 감화받는다. 이국에 이국을 더하며 생경함에 생경함을 더하는 극단적인 외적 조건들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단 두세 달 지속되는데 키티는 무척 변화하는 것 같이 보인다. 사람이 그렇게 금방 변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홍콩에 돌아온 키티를 통해 작가가 지적하고 있다. 이 부분도 불평을 조금 하자면 인간의 나약함을 이렇게 보여 준다면 앞서 농촌에서의 장면들에 신뢰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굴곡을 거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단련되어 간다, 라는 면도 있겠으나 그래봤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라는 김빠지는 장면이라는 느낌도 있었다.
1920년대 영국인이었다면 이 책이 많이 흥미로웠을까. [면도날]에 이어 다시 서머싯 몸 책을 시도한 것은 조지 오웰의 언급 때문이었는데...아쉽다. 대표작인 [인간의 굴레]나 [달과 6펜스]를 읽었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