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마르틴 베크 시리즈 10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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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면 그때그때 사서 읽으면서 전작을 모은 시리즈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처음이다. 메그레 경감 시리즈도 나올 때마다 읽고 모았으나 전작이 번역된 것은 아니고 일부만 번역된 것으로 안다.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두 작가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김명남 역자의 번역으로 2017년에 시작되어 며칠 전 열 번째인 [테러리스트]가 나오면서 7년만에 완간이 되었다.

우선은 번역자에게 감사하고 싶다. 오랜 시간 걸쳐 한 시리즈를 완간 해 준 것 자체가 감사하다. 호칭과 경어 등에서 차별적이지 않은 세심한 단어의 선택이나 인물들의 특성을 살리는 말투와 전체적인 소설의 차분한 분위기 등은 번역자의 이바지가 컸다고 생각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제일 큰 이유는 인물들의 개성이었다. 

주인공 베크는 말수가 적고 유머감각도 부족한 지루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것이 성격적 결함으로 또는 승진에 있어 약점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베크는 여가에 활발한 사교활동 대신 모형 배를 조립하거나 항구를 산책한다. 그러는 간간이 풀리지 않는 사건의 실마리를 곰곰 되새김질한다. 그리고 베크는 자신을 싫어하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이를 포함하여 주변의 누구에게도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공격성이 안 느껴지는 사람, 믿음이 가는 사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경찰임에도 말이다. 사건을 맡으면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되새김질하며 부산함 없이 분투하여 일을 완결시킨다.

   

우리는 마르틴 베크처럼 본인은 우울하고 타인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성격이 현대 사회에서 결점으로 취급된다는 것과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인물의 면면이 험담거리로 취급되는 것을 보아왔다. 긍정적 마인드와 활력을 지닌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작든 크든 압박이 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소설의 중심 인물들이 갖는 인격의 울퉁불퉁함과 우울에서부터 다혈질에 이르기까지 성격의 다채로움은 문학작품이 주는 위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며 특히 작품의 내용이 그것을 예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는 지점은 인상적으로 사랑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 문장에서 중심 인물'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시리즈의 마지막 소설인 이번 작품 [테러리스트]에서 맹활약을 보인 군발드 라르손만 조금 더 소개하자면, 거구에 걸맞는 완력의 소유자이며 분량이 늘어나면서 들여다볼수록 두뇌 회전도 빠른 경찰이다. 듣기 좋은 소리로 걸러서 표현하는 일이 없고 호오가 분명하고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 적도 많다. 맞춤 양복과 수제 구두, 실크 잠옷을 좋아하며, 퇴근하면 자신이 경찰임을 잊어버리며, 파시스트를 싫어하는 경찰이다. 경찰 조직내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뢴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인적 관심을 나누는 이가 없다. 경찰스러운 것을 싫어하는 경찰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점잖은 마르틴 베크조차도 군발드 라르손을 마음 속으로 좋게 평가하게 되고 의논 상대로 여기기까지엔 시리즈의 여러 권이 지나야 했다. 앞 권 [경찰살해자]에서 퇴직해버린 베크의 측근 동료이자 친구인 콜베리의 자리를 군발드 라르손이 대신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시리즈는 영영 막을 내렸다.


이야기의 규모와 내용이 알찼다는 점도 좋았다. 너무 큰 이야기나 너무 강한 능력의 소유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60,70년대의 스웨덴에서 마르크스주의자인 작가들이 느낀 그 시대의 문제들. 자본이 잠식하여 발생하는 사회문제, 관료체제의 문제들을 위에 소개한 나름의 결점들과 작은 능력을 지닌 경찰들이 해결할 만한 규모의 크기로 짜서 전개시켰다는 점이다. 사건 외형이 비대하다거나 장식적으로 무게를 잡는 느낌이 없다. 발생한 사건과 해결의 과정은 폼잡는 설정 없이 다만 끈기와 발품의 성실성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 전개의 과정에 촘촘하게 사회 비판의 시선을 심어놓았다. 

덧붙이자면 마지막 소설인 [테러리스트]는 예외적으로 규모가 큰 이야기였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는 면도 있었지만(대표적으로 50줄 경찰간부 세 명이 테러리스트 은신처를 습격한다는 것) 애초 계획했던 시리즈 마지막 소설이기도 했고 작가 발뢰의 심각한 병세가 작가들로 하여금 시도하고 싶었던 일과 발언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담아보고자 했음을 이해하고 싶다.


작가들이 소설을 쓸 당시엔 지금보다 세계가 다이나믹했고 일말의 전망도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실제로 굴러가는 현실은 비관적이었으므로 이런 작품이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리즈를 돌아보니 작가들의 진보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고전 영화에서 받는 느낌과 비슷한 감상이 든다. 시리즈 마지막 소설 이후 5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으므로 그간 있었던 역사적 변화로 인해 생긴 60,70년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이런 감상을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소설 자체의 분위기가 그렇다. 아마도 춥고 진눈깨비 날리는 나라의 우울하고 성실한 주인공이 비염으로 재채기를 하면서 캐비넷에 팔을 올리고 기대서서 동료들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는 장면이 뇌리에 박혔나 보다.


믿을 수 있는 노선의 주제. 호감가는 중심 인물들. 억지스러운 심각함과 거창함이 없으면서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 게다가 무뚝뚝한 인물들 사이의 대화는 은근 유머러스하기까지.

읽는 동안의 행복감을 담보해 준 고맙고 보기드문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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