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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글은 다 읽었지 싶다. 생각해 보면 배수아, 김영하가 한국문학의 기대주 운운하여 선그라스에 이어링(김영하의 이어링 자욱은 다 사라지고 남을 시간이 흘렀다.)을 하고 함께 찍은 전신사진이 신문에 실릴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할 때부터 그의 글은 항상 나의 관심권 안이었다.
당대의 대중문화 코드를 문장을 통해 삶에 대한 감수성으로 직역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으며, 새로운 매체를 수족부리듯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독자와 소통하고, 기존의 작가와 달리 몸을 사리지 않는 쾌활한 자기 표현력을 지닌, 김영하 같은 작가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흥미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편이 몇 권 나왔고 <퀴즈 쇼>를 조선일보에 연재할 즈음에 그는 대학교수였고 라디오진행자였고 얼핏 들리느니 무슨 영화제를 위해 짧은 영상물도 만들고 있다는 것 같았다. 하이델베르크나 동경을 찍고 만든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즈음에 김영하는 내게 작가라기보다 문화활동가나 엔터테인먼트 비슷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퀴즈 쇼>가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읽고 나서, 나는 서운했다. 괜찮은 글쟁이를 잃은 심정이었다. 소설은 가볍고 엉성하여 분위기만 잡다가 끝나버리는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소개글을 통해 그가 주변정리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가 자신을 소설가로 규정짓겠다면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위해서 필요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소설의 자양을 발견할 또한 그것을 퍼올릴 시간도 스스로에게 주지 않으면 자기반복과 얄팍한 소재주의에 머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가 <빛의 제국>에서 썼던 인용을 다시 인용하자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전환점에 서서 독자에게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편지와도 같은 글이니만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간 작가에게 가졌던 관심의 곡절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그의 오랜 독자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인 것이다. 잘 떠났습니다. 작가여, 그곳이 시칠리아든 캐나다든 한반도의 골짜기 서부전선이든 원주의 텅빈 원형극장이든.
더 멀리, 더 깊이, 더 고통스럽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