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그쳤지만 그 후 몇일도 태양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처럼 흐린 날씨는 나의 약한 눈에 있어서는 오히려 도움이되었다. 나는 집밖의 공기를 마시고 가벼운 산책을 하고는 스케치북의 지도에 세세하게 그려넣기를 계속했다.



1주일만에 도서관 입구문을 열었을 때 건물속의 공기는 이전과 달랐다. 긴 복도도 보통 때보다 어둡고 마치 긴 세월버려져 있던 길처럼 사람의 흔적이라는 것을 느낄수 없었다. 도서대출실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카운터는 잘 정리되어 있고 스토브의 불도 꺼지고 방은 구석구석까지 깊은 밤의 암흑에 지배를 받고 있었다.



'누구 없습니까?' 라고 나는 소리쳐 보았다.

반응이 없다.

스토브 위의 쇠주전자도 차가워져있고 먼지까지 내려 있었다. 그안에 커피는 변색되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15분이 지나고 30분이, 1시간이지나고, 어둠만이 한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물건소리 하나 나지않았다. 밖의 소리도 석벽에 막혀 방까지는 전해지지않았다. 마치 어떤 상자에 들어간 채 땅속깊이 묻혀버린 듯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나를 그곳에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그림자조차도 없다.



지금까지 맛봤던 적이 없을 만큼 황량한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 정도까지의 고독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마치 상반되는 두개의 흐름이 나의 몸을 한가운데서 부터 나눠버리는 듯 했다.



이렇게 말하면 훨씬 옛날, 이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있었다. 나는 아직 작은 꼬마였고 그 때도 열이나서 학교를 쉬고 집에서 자고 있었다. 눈을 떳을 때 어머니의 모습은 없고 나는 혼자서 집안에 남겨져 있었다. 석양의 마지막 빛이 정원나무의 그림자를 나의 벼갯머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고 천정의 구석은 이미 어둠에 덮여있었다. 전등이 꺼진 집안에서 기묘한 그림자와 기묘한 침묵이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네가 살아가는 진실의 세계야.' 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누구하나 나를 구해주지 않았고 누구하나 나를 안아주지않았다.



'이것이 네가 살고 있는 진실의 세계야'



나는 머리를 흔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견딜 수 없이 너를 만나고 싶었다. 너를 안고 그리고 너와 잠들고 싶었다.



눈을 떴을 때, 그곳에는 네가 있었다. 너는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 같은 스웨터를 입고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둠이 세밀한 입자처럼 너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없구나라고 생각했어' 나는 말했다. '꽤 오래 기다리고 있었어.'



너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귀가 아플만큼의 침묵이였다.



'계속 열이 심했어. 일어날 수가 없었지.'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만졌다.



열이 있는 뺨의 감촉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듯 했다.



'이곳에 앉아있으면서 이제 다시 영원히 너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너는 머리를 몇번인가 흔들었다.



'당신이 무엇인가 진심으로 찾고 있는 한, 누구라도 그것을 빼앗는 일은 할수 없어요.' 라고 너는 말했다. '누구라도 말이죠.'



'너는 무엇을 구하고 있지?'



'모르겠어요.' 너의 몸은 그곳에 선 채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너의 말과 함께 너의 아름다운 입술이 떨릴 뿐이였다. '이제까지 무엇인가를 찾은 적이 없었어?'



너는 다시 한번 머리를 흔들었다. '몰라요, 무엇인가를 찾으러 문을 열어보기도 하죠. 그러면 그 쪽에도 지금과 같은 방이 있어요. 그 방을 지나 또 문을 열면 그곳에도 또 같은 방이 있고... 그 반복이예요. 언제까지라도... 이러는 사이에 내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가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 하게 되버리죠. 방에는 창도 없고 가구도 없고 그림도 실내장식도 없어요. 그저 문뿐이예요. 이렇게 방이 무한이 이어져 있어요.'



'그러나 네가 이 거리를 원했잖아. 그리고 나역시도'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이 가늘게 흔들렸다.



'후회는 하지않아요. 어디까지 가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을 알고 있어요. 이제 확실해보여요. 소설의 마지막페이지를 도중에 열어보는 것처럼요.' 너는 얼굴을 들고 웃었다. '밖으로 나가죠. 걷고 싶어요.'





우리들은 강을 따라 걸었다. 긴 비때문에 강은 이제까지 본적이 없을 만큼 그 수량이 늘어나 있었다. 많은 中洲는 강의 흐름에 덮혀버려고 강가의 버드나무의 가는 잎사귀만이 여자의 젖은 머리카락처럼 수면에 흔들리고 있다. 마치 누군가 죽은 여자가 강의 수면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젖은 보도(步道)는 우리들의 발아래에서 조용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신이 만났다는 나의 그림자의 이야기를 해줘요.' 라고 너는 말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산과 어떤 것에서, 단어가 떠오르지않아.'





우리는 낡은 다리를 건너고 서편 다리의 외등이 밝아올 때까지 말없이 강변의 보도를 계속걸었다. 강의 물결에 밤새의 소리가 어우러졌다.



'말하기가 웬지 두려워' 라고 나는 말했다.



'말을 해버리면 왠지 평범하게 들려버리는 것같아.'



너는 나의 손을 잡고 그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뺨에 눌렀다.



'무엇이든 평범해요.' 라고 너는 말했다. '당신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죠. 무엇이든 슬프리 만큼 평범하죠. 그것을 바꿀수는 없어요.'



서쪽다리에 왔을 쯤에 달빛아래에 검은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다리의 난간에 앉아 긴 시간 가만히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의 그림자를 사랑하고 있었어.'



'알고 있어요' 라고 너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죽었죠.'



그렇다 그녀는 죽었다.



'당신은 자신의 방, 소파에 앉아서 창밖을 지나가는 군대의 행진을 보고 있었지요. 선두에 부대가 우측창가에서 나타나 최후의 한사람이 좌측의 창가로 사라져갈 뿐이였어요. 사라져버린 뒤 실체따위 아무것도 남지않았죠. 부대가 정말로 지나갔는가 조차도 당신으로써는 알 수 없었어요.'



'만약 그것이 환각이였다하여도?' 라고 나는 말했다. '그 환각을 선택하고 있는 내 자신의 의식은 실체라구'



너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저었다.



'그래도 무엇하나 남지 않았던 것은 아니야' 라고 나는 계속했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왔으니...'



'왔다는 것이 아니죠.'



'그래 네가 불러드렸지.'



너는 가만히 보도블록을 바라보았다. 다리의 외등이 우리들의 머리위에서 노란색 빛을 주위에 내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발아래 우리의 그림자는 없었다.



'당신이 나를 찾고 있는 한 나는 당신의 것이예요. 그러나 나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예요. 알아요?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네가 나를 사랑하는 일도?'



너는 침묵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죄송해요 나에게는 당신에게 줄 것이 무엇하나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아무 말하지않고 어깨를 안았다. 너는 울었지만 너의 눈에서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너는 눈물조차 줄 수 없었다. 북녁으로 부터 차가운 바람이 우리들의 주위에 불어왔다. 그리고 어두운 벽만이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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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내린 내 방의 어둠 속에서조차 우리들은 벽의 시선을 계속 느꼈다. 모포 속의 너의 몸은 아름답고 따뜻했다. 나는 너의 부드러운 목을 사랑했고 미끈한 등을 사랑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나는 마치 무너져가는 옅은 꿈을 안듯이 너를 품었다. 그리고 그런 꿈의 향기가 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벽을 지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원했고 그리고 네가 나의 꿈과 일체가 되어 주기를 원했다. 그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들은 긴 시간을 걸쳐서 도서관의 서고에서 산처럼 쌓인 오래된 꿈을 정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통을 극복하는 작업이였다. 어느 정도를 선별하고 제대로 다시 늘어세우고 거기에 계통의 흐름을 만드는 일 등 나에게는 하기 힘든일이였다. 오랜 꿈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과 자기모순속에 잠들어 있다. 500의 오랜 꿈이 있으면 그곳에는 500의 계통이 있고 1000의 오랜 꿈이 있으면 거기에는 1000의 계통이 있었다. 1주간 정도의 작업을 계속한 뒤 나는 무엇인가를 방출했다.



'방법이 있을꺼예요. 반드시' 라고 너는 말했다.



'아마 그렇겠지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이렇게 꿈을 하나하나 맞춰가면 10년은 걸리겠어'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어요.' 확실하겠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나를 재촉하고 있는 듯 했다. 예감같은 것이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자' 라고 나는 말했다.



우리들은 스토브 앞으로 돌아가서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오랜 꿈은 자연에서 태어나온 것이예요. 너는 말했다.



'누구도 그것을 구분할 수는 없죠.'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없어.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기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원칙이 필요해'



'무슨 원칙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까하는?'



'그것은 무리예요 작은 것이라도 당신에겐요. 만약 당신이 최초의 하나를 얻으면 결국 전부를 얻는것이고 만약 최초의 하나를 잃으면 결국은 전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되죠'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나는 오랜꿈의 하나하나를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 꿈이 하나를 테이블에 가지고 와서 천으로 표면을 깨끗이 닦고 양손바닥으로 표면을 덮어서 데웠다. 5분정도에 오랜 꿈은 나의 체온에 반응하듯이 희미한 열을 내며 작은 진동을 시작했다. 불투명한 구형(球形)의 중심부터 마치 먼 별의 빛처럼 희미한 빛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듣지못할 정도의 낮은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의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 그것의 따뜻함이 나에게 전해주는 꿈의 세계를 보았다. 그 꿈은 슬픈 꿈이였다. 그것은 모든 싹이 죽고, 뿌리는 단단한 암반에 가로막힌 어둠속의 나무들이였다. 너의 말이 맞다. 나에게 있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10분정도 지난 쯤 오랜 꿈의 빛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사그러지고 오랜 꿈은 다시 얼음처럼 차갑게 잠들었다. 나는 그것을 원래의 장소에 돌려주고 다른 오랜 꿈을 가져왔다. 하루에 읽을 수 있는 오랜 꿈의 수는 전부 다섯개이다. 그것으로도 방의 시계가 11시를 알릴 때에는 나는 똑바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지쳐있기가 보통이다.



11시15분에 너는 방의 전등을 끄고 우리들은 도서관을 나온다. 북녁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은 매일 그 강도와 차가움을 더해갔다. 우리들은 손을 잡고 껴안듯이 하고 밤의 거리를 걸었다.



'왜, 오랜 꿈이 말하는 세계는 모두 어둡지?' 라고 나는 너에게 물었다. 그러나 너는 머리를 흔들뿐이였다. 서로의 소리조차도 잘 들이지 않을 만큼 강한 바람이 우리들의 주위에 불어왔다. 바람은 공장가를 지나 잘려진 낡은 전선을 스쳐 검은 어둠에 우뚝솟은 높은 굴뚝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녀가 사는 공동주택 앞에서 우리들은 꼭 껴안은 뒤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



나는 그녀를 생각했고 도서관의 어두운 서고에 잠든 오랜 꿈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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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은 이미 몇마리가 사라져 있었다. 처음 눈이 내렸던 아침,



나이든 몇마리가 5cm정도 눈속에 겨울의 흰 빛이 더해진 그 금색의 몸을 가로누워 있었다. 나는 벽의 망루에 서서 짐승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의 태양이 그 한 편에서 냉정한 광경을 선명하게 빛추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마리의 숨쉬는 하얀 입김이 주위에 넘치고 있었다.





7시의 뿔피리와 함께 문지기가 문을 열자 짐승들은 거리에 들어왔다. 짐승들이 지나간 뒤에는 마치 대지에 만들어진 가시같은 모양의 뼈가 얼마인가 남겨져 있었다. 나는 아침 햇쌀이 나의 눈을 아프게 할때까지 가만히 그 가시를 바라보았다.



벽을 내려와, 방으로 돌아가 보면 아침의 빛은 생각보다 휠씬 강하게 나의 눈을 아프게 하는 것같았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흐르고 나의 뺨과 샤쓰를 적셨다. 몇시간이나 나는 눈을 감은 채 거리감 없는 어둠 속에 떠서는 사라져 갈 여러색의 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차가운 타올을 나의 눈에 대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해 주었다.



'아침의 빛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해. 특히 눈내린 아침은...



도대체 무엇을 하러 밖에 나갔지?'



'짐승들을 보러 갔었어요. 죽지나 않았을까 생각했죠'



'어째서지?'



'몇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많이 죽어'



'왜 그렇게 간단하게 죽어버립니까'



나는 타올로 얼굴 위를 덮은 채 노인에게 물어봤다.



'약한 탓이지, 추위와 굶주림으로... 옛날부터 계속 그랬지'



'죽음은 그치지 않습니까?' 노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놈들은 몇 만년이나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네. 봄이 오면 놈들은 자식을 낳고 새로운 생명으로 바꿔가며 사는 거야. 그것뿐이지...'



'사체(死體)는 어떻게 됩니까?'



'태우지, 문지기가' 노인은 차가워진 손을 커피잔으로 데우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모아서 유채기름을 뿌려태우지. 해질녁에는 그 연기가 이곳까지도 보이네. 겨울동안은 그것이 매일 계속되지, 눈과 연기...'





눈과 연기





어느정도 높은 벽도, 그 연기를 나로 부터 감추는 일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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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노인의 말대로 매일 한결같이 솟아올랐다. 오후 3시반 언제나 같은 시각이 였다. 겨울은 나날이 깊어갔고 강한 바람과 눈이 짐승들을 감싸고 있었다. 눈이 내려와 옅게 흐린 오후, 나는 오랜만에 문지기의 집을 방문해 봤다. 문지기는 큰 철제스토브의 앞에 앉아 구두를 벋고 발을 데우고 있었다. 스토브 위에 놓여진 주전자의 수증기와 값싼 파이프담배의 향기가 방안의 공기를 뿌옇게 만들고 있다. 큰 나무탁자위에는 숫돌과 함께 몇개인가의 손도끼가 늘어서 있었다.





'야아' 라고 문지기는 말했다. 문지기는 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너의 그림자는 건강하게 있어 매일 1시간은 산책도 하고 있고 식욕에 있어서도 좋은 편이야 한번 만나보겠어?'



'만나고 싶어요'



그림자가 살고 있는 곳은 거리와 밖의 세계의 중간지점에 있었다.



나는 밖의 세계에 들어갈 수없고 그림자는 거리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림자의 광장'은 그림자를 잃었던 사람과 사람을 잃었던 그림자가 만나는 유일한 장소이다. 문지기의 집의 뒷문으로 빠져나오면 그림자의 광장이였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모양은 정확히 정방형이고 뒷면은 벽을 이용했고 양측에는 높은 판자를 세웠다. 한 쪽에는 오래된 느릅나무가 있고 나의 그림자는 그 옆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에는 지하실에 내려가서 잔다' 라고 문지기는 나에 말했다.



'지하실에는 제대로 된 침대도 있고 변소도 있지 보여줄까?'



'아니요 나중에 보죠' 라고 나는 말했다. '우선 그림자와 말해 보고 싶어요'



'좋을 데로, 좋을 데로, 그러나 달라붙는 것은 안돼 달라붙으면 또 떼야되니까'



나는 긍정하고 포켓에 손을 넣은 채, 혼자서 그림자가 앉은 벤치에 가까이 갔다.



'이봐' 라고 나는 말했다.



'응' 이라고 그림자는 힘없이 대답했다.



'건강은?'



'덕분에 괜찮아' 라고 그림자는 말했지만 그 소리에 살결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의 자세로 멍하니 그림자의 앞에 서있었다. 자신의 그림자와 말한다 라는 것은 뭔가 기묘한 일이다.



'하루를 이곳에서 보내니?'



'보통 밖에 나와있어'



'무슨 운동이라도 하나?'



'운동? 설마, 문지기가 짐승을 태우는 것을 도와주지' 그림자는 뒷문에 앉아 파이프를 닦고 있는 문지기의 쪽을 가리켰다. '짐승도 가엾지 점점 죽어가니'



'몇마리 태웠지'



'이제까지 전부? 셀수없을 정도야'



'오늘은?'



'세마리' 그림자는 벽을 향해서 아직 연기가 나고 있는 검은재를 바라보고 나서 손가락을 3개 들어보였다. '나이든 것이 2마리, 젊은 것이 1마리'



'괴로운 일이군'



'그렇지' 라고 그림자는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지않으면 안될 일이야'



나는 긍정했다. '다른 그림자도 살고 있니?'



'이곳에?'



'응'



그림자는 아무도 없는 공터를 가리키며 '나 혼자뿐이야'



'모두 어떻게 됐지?'



'모두 죽어버렸어. 내가 남아 있을 뿐이야.' 그림자는 무릅위에 손을 모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도 곧 죽어'



'죽어? 왜?'



'이유쯤이야 너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서' 라고 그림자는 목소리를 낮췄다. '너와 내가 다시 하나가 되어 이곳을 빠져나가는 거야,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래?'



차가운 계절풍이 느릅나무 위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몸의 골수까지 들어와 버리는 듯할 정도의 습기를 가득 담은 바람이였다. 몇달인가 뒤의 완연한 겨울에 어느 정도의 추위가 찾아올까 나는 예상도 할수 없었다.



'지금이 마지막 찬스야, 나에게 있어 너와 떨어진 이후 점점 몸이 약해져 가고 있어. 이곳의 공기는 나에게는 맞지않거든, 겁주려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지금 죽어버리면 너도 일생동안 이 거리를 나갈 수 없어 알고 있겠지?'



나는 침묵한 채 긍정했다.



'일생이야. 이 거리에서의 일생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을까 한번 잘 생각해봐'



'생각해 볼께' 라고 나는 말했다. '너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이 거리에서 어째선지 아직 남은 일이 있어'





그림자는 다시 한번 지면(地面)까지 긴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만나러 와주어서 고마워. 왠지 다시 너의 몸속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그의 몸을 코트의 옷자락에 매달아둔 채 공터를 빠져나와 나는 문지기의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밤도 눈이 올거야'



문지기는 스토브 앞에 앉은 채, 나를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눈이 내리기 전에는 손바닥이 가렵고는 하지. 10Cm는 내리겠어 또 짐승이 많이 죽겠군' 나는 테이불의 옆에 앉았다. 손도끼는 내가 없는 사이에 갈아서 기분 나쁜 하얀 빛을 내고 있었다.



'조심해. 닿기만 해도 잘리니까' 문지기는 거만하게 말했다.



'그 옛날은 이 거리도 칼 제품 등으로 유명했지 알고 있어?'



'아니요'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좋은 돌도 캣었지. 그러나 모두 옛날 이야기야'



'짐승을 태우는 것은 어떤 기분이지요'



'기분따위, 특별히 어느 쪽인가 규정할수 없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의 반복이니까, 봄에는 새끼들이 태어난다. 겨울에 약한 것이나 나이든 것이 죽는다. 그것이 계속 이어져가는 것이지. 도대체 내가 어떤 기분이 들면 좋겠어?' 문지기는 탁탁 소리를 내며 튀는 스토브의 불꽃에 손을 데웠다. '육체는 혼이 사는 신전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 그러나 이상한 것은, 나처럼 죽은 것만 보고 있으면 혼조차도 기름을 뿌려 불을 붙히면 육체와 함께 타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어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고방식이 벽에 대해서는 반역이라고 생각되지않니?'



'모르겠군요.'



'제대로 말해본 것뿐이야, 신경쓰지 말아줘' 문지기는 이렇게 말하고 웃으며 언제나처럼 나이프를 꺼내고 손톱 끝을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벽을 비판할 뜻은 없어. 그럴 이유도 없지.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니까. 문을 지키는 것이 내 일이지. 어디가 숲이고 어디가 밖이던 내겐 관계없는 일이야. 아마 너에게도'



나는 침묵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거야. 너의 그림자가 너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나는 알아, 그러나 괴로운 일은 생각하지 않는 쪽이 좋아. 내가 살아있는한 이 문에서 누구하나 나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생각해보죠'



내가 작은 방을 나왔을 때도 덩치 큰 문지기는 스토브 앞에서 몸을 굽히듯 한채 손톱을 깎고 있었다. 문이 있는 벽에는 오래된 뿔피리가 걸려 있었다.



동쪽 하늘에는 문지기가 말했듯이 눈을 담은 어두운 구름이 지평선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10CM의 눈, 짐승을 위해 준비된 두터운 죽음의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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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끝을 내려오는 강은 지금은 색이 칠해진 東門의 가장자리에서 벽의 아래를 지나 그 모습을 우리 앞에 들어내고 거리의 중앙을 남과 북으로 나누듯이 일직선으로 흘러 나의 관사 앞 부근, 서쪽다리를 넘어서 급히 방향을 좌로 바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남쪽벽의 조금 앞으로 웅덩이를 만들어, 수저(水底)의 석회동굴로 거대한 소리를 내며 흘러들어갔다.





벽너머로 석회암의 황무지 아래에는, 그런 무수한 지하수맥이 펼쳐져 있다는 말이 있다. 이같은 암흑의 수맥에서 나온 듯한 이상한 모습의 거대한 물고기가 강변에 올라오는 일도 있다. 이런 물고기들은 눈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태양아래서 정말 지독한 썩는 냄새를 냈다.





그것을 제외하면 강의 흐름은 아름답고 깨끗했다. 원형으로 둘러쌓인 긴 벽과 그것을 가로지르는 강은 아름다운 대비를 이루며 거리를 규정하고 있었다. 강변에서 다양한 계절의 꽃이 피고 길에서 듣기좋은 물소리를 들으며 웅덩이는 어디까지라도 비칠 듯한 맑은 물이 깊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리에 있어서 귀중한 수원(水原)이였다. 실제 강물은 내가 이제까지 마셨던 물보다 맛있었다. 어느 정도의 건조한 여름에도 그 흐름은 끊이지 않았고



'동쪽숲'을 끼고 공장지대의 동쪽에 풍부한 용수를 제공하고 있었다.





숲은 그 흐름에 아름다운 풍경을 더해 주고 있었지만 그안에도 옛다리의 아래를 지나치듯 동서(東西)에 펼쳐진 작은 중주(中洲)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나는 중주(中洲)의 벤치에 앉아 짐승들이 늘어서서 물을 먹는 모습을 하루종일 바라보곤 했다.





남쪽 벽의 가까이에 있는 웅덩이를 어떻게 해서든 보고 싶었지만 나는 계속 바램만 품고 있었다. 어느 흐린 오후 너를 산책에 끌어 들였을 때, 나는 그곳에 가려했다.



'웅덩이의 가까이에는 가고 싶지않아요' 라고 너는 말했다.' 그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예요. 많은 사람이 그곳에 빨려 들어갔어요'



'주의 하면 조금도 위험하지않아'



너는 머리를 저었다. '당신은 모르는군요. 물이라는 것은 사람을 불러들여요.'



'그러면 가까이 가지않고 멀리서 바라볼께. 어떻게든 보고싶어'





우리들은 남쭉벽으로 걸었다. 얼어붙은 눈은 둘의 발아래에서 바싹바싹 소리를 냈다. 짐승들 몇마리인가가 하얀 입김을 내면서 우리를 지나쳐 갔다. 그들은 한 걸음마다 그 여윈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나무잎과 몸을 쉴수있는 검은 대지를 찾아 걷고 있었다. 그들의 황금색의 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치 눈에 물들듯이 하얗게 변해갔다. 남쪽언덕을 오를 때에는 이미 짐승의 모습은 없고 길도 거기서 끝나있었다. 우리들이 인적없는 마른 들판이나 發屋의 集落을 가로지르며 나가는 사이에 웅덩이의 물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어떤 소리와도 달랐다. 소용돌이의 소리도 아니였고 땅의 울림도 아니였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목구멍에서 뱉어놓는 한숨과 비슷했다. 그 소리는 어떤 때는 낮게 되고 어떤 때는 높게되고 또 단속적으로 끊어져 무언가에 숨이 막힌듯 혼란스러웠다.



'마치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같아'



너는 외면할 뿐 아무말하지않고 장갑을 낀 양손으로 수풀을 걷으면 계속 걸었다.



'옛날보다 훨씬 길이 나빠졌어요. 돌아가는 편이 좋을지 몰라요'



'그러나 모처럼 왔는데 이제 조금 더가보자'



기복이 심한 수없는 수풀 속을 물소리에 이끌리듯 10분정도 걸어 가자 갑자기 앞이 열렸다. 긴 수풀은 그곳에서 끝나고 평탄한 초원이 강을 따라 우리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 강은, 내가 거리속에서 보고있던 것과 같은 강으로는 어쩐지 생각되지않았다. 듣기좋은 소리를 내던 아름다운 흐름은 이곳에 없었다. 마지막 커브를 돌아서 강은 왠지 급히 꺾이고 그 색을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면서 마치 작은 동물을 삼킨 뱀처럼 이곳에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가까이 가지말죠.' 라고는 너는 나의 팔을 잡았다. '표면은 물결하나 없지만 아래쪽은 무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어요. 한번 끌려들어가면 마지막이에요. 두번다시 올라올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 깊을까?'



'상상도 할수없을 정도예요. 이야기에 의하면 아주 옛날 이교도(異敎徒)를 이곳에 던졌다지만 ....'



'던지면 어떻게 됐지?'



'누구도 떠오르지않았어요. 웅덩이의 아래에는 몇개나 되는 구멍이 뚫려있어 그곳에 빨려들어가버리니까요' 그녀는 몸을 떠는 듯 어깨를 치켜세웠다 '나에게 어느쪽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화염을 선택하겠어요'



거대한 웅덩이의 숨결이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땅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고민의 신음소리 같았다. 너는 손바닥 만큼의 크기의 나무조각을 바라보고 웅덩이 한가운대를 향해 던졌다. 나무조각은 5초정도 잔잔한 수면에 떠서 있었지만 갑자기 몇번인가 작은 조각으로 나눠지고 나서 마치 무엇인가에 끌려가버리듯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두번다시 떠올라오지않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바닥쪽은 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어요. 그것을 알겠죠'





우리들은 웅덩이에서 20m정도 떨어진 초원에 앉아서 주머니에 넣어온 빵을 꺼냈다.



멀리서 떨어져서 보는 한, 주위의 풍경은 평화로운 것이였다. 여기저기 눈덩어리를 남겨놓은 들판이 넓었으며 그 한가운데에 물결하나없는 거울같은 수면의 웅덩이가 있었다. 강쪽에는 석회암의 절벽이 서있고 남쪽에는 벽이 검게 높이 솟아있었다.



웅덩이의 숨결을 제외하면 주위에는 어떤 소리도 나지않았다. '이곳에 오는 것같은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신외에는 누구도 없어요?' 라고 너는 말했다. '이제 만족해요?'



나는 위를 향해 침전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녹은 눈때문에 지면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래도 대지의 향기는 마음에 들었다. 몇마리인가의 겨울새가 수풀에서 날아올라 벽을 넘어, 남쪽하늘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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