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왔던 같은 길을 반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강변을 달리고 서쪽다리를 건너 나는 달렸다. 5, 6걸음 달리는 사이에 눈조각이 나의 눈에 날아들어왔고, 몇번이나 짐승들과 부딪쳤다. 내가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성대를 절단당한 개처럼, 신음소리같은, 새의 울음같은 그런 슬픈 소리를 냈다. 짐승들의 소리를 들었던 것은 그것이 처음이였다.



사람과도 부딪쳤다. 눈때문에 인도는 한산했지만 통행인이 없는 것이 아니여서 우리들은 몇사람에게 확실히 목격되었다.



'달릴 수 없어서 미안해.' 라고 그림자는 등뒤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빨리 약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못했어'



나는 댓구를 하는 일도 할수 없었고, 그저 하얀 숨을 내쉬면서 눈속을 계속 달렸다.



우리들이 남쪽언덕의 기슭에 도착했을 때, 광장의 시계는 4시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라고 그림자가 뒤를 돌아보며말했다. '연기가 가늘어졌어'



나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림자의 말처럼 내리는 눈사이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서쪽벽 가까이의 연기는 전보다 훨씬 가늘어져 있었다.



'눈으로 불이 꺼지기 시작하는 거야' 그림자는 어두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때쯤 문지기는 기름을 가지러 오두막에 돌아올 꺼야'



그림자를 짊어지고 언덕의 여백을 오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였지만 여기서 체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숨이 막히고 땀에 흠뻑 젖으면서 언덕길을 올랐지만 가까스로 언덕을 올랐을 무렵, 나의 다리는 돌처럼 딱딱해지고 결국 한걸음도 달릴 수 없게 되었다.



'미안하지만, 나 5분만 쉬게 해줘' 나는 지면에 쭈그린 채 그림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치명적인 5분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의 피로는 극한에 도달해 있었다.



'알겠어 내가 달리지 못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니까... 뿔피리를 내게 주지않을래?'



그림자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영문도 모른채 주머니에서 뿔피리를 내어 주자 그림자는 그것을 입에 대고 눈아래 펼쳐진 거리를 향해 불었다. 길게 한번 짧게 3번 언제나의 뿔피리 소리였다.



'무엇을 하는 거야?'



'보고 있듯이 뿔피리를 불었어. 이것으로 15분은 버는 거야' 그림자는 웃으며 언덕의 여백에 피리를 던졌다. '뿔피리를 불면 짐승은 문으로 향하지. 그 때 문을 열어 두는 것이 문지기의 일이고 그것이 거리의 규칙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지켜야돼지' '왜?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지?' 그림자는 계속 웃고 있었다. '이봐, 너는 이 거리에서 지금까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지. 여자이외에...' 나는 침묵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언젠가 너에게 해가 지면 유원지는 닫는다고 말했었어. 그것과 마찬가지야. 이 거리는 완전하지 않아. 벽도 완전하지 않아. 약점은 반드시 있어. 나는 그것을 봤던 거야. 완전한 것따위 세상에 무엇하나 없어 이 거리의 약점은 짐승이야 짐승이 이 거리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저 뿔리리없이 이 거리는 성립하지않아'



'안전장치?' 라고 나는 그림자에게 물었다.



'그것에 대해 나중에 설명할께' 라고 그림자는 말했다. '반드시 너는 그 때가 되면 설명을 구할테니까'



나는 언덕의 여백에 던져진 뿔피리를 보았다. 눈이 뿔피리를 이미 덮어 버리고 있었다.



'걱정하는구나, 놈들은 반드시 피리를 찾아낼꺼야. 그리고 이 거리는 영원히 존속되지. 그러면 만족하겠지?'



'응' 이라고 나는 말했다.



'너도 정말 특이한 사람이야'





나는 다시 그림자를 업고 계속 달렸다. 쉬었던 덕분에 나의 다리는 회복되어 있었다.



'이제 곧 벽이 보일꺼야' 라고 그림자가 등뒤에서 말을 걸었다. '벽이 보이면 곧 서쪽으로 내려가줘, 좋지? 절대로 벽에 근접해서는 안돼'





그리고 그때 남쪽의 벽이 우리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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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어떤 예측도 못할, 일순간에 우리 앞에 서있었다.



놀랄 것은 없어 라고 벽은 말했다. 벽은 나를 향해서 말하고 있었다. 너의 지도 어느 곳에도 없지. 그런 것은 종이쪼가리에 지나지않아



'듣지말아! 달려!' 라고 그림자가 뒤에서 외쳤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너에게는 이전에도 충고했잖아, 너같은 하찮은 존재는 이 우주에서 정말 자신의 그림자를 때어내는 일조차도 할 수 없어. 예리한 나이프가 내 몸에 상처하나 내지 못하는 것처럼



'달려' 그림자가 외쳤다.



그렇다면 원하는 만큼 달려도 좋아, 원하는 만큼. 웃음 소리를 남기고 벽은 사라졌다.



'서쪽으로 달려.' 그림자는 계속 외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달렸다. 언덕의 서쪽면은 완만한 경사를 내려가자 수풀과 맞부딪쳤다.



'숲을 헤쳐나가자, 이곳에 들어가면 문지기는 걱정없어' 나는 등에서 그림자를 내려 어깨로 부축하고, 점점 어두워져가는 깊은 수풀 속을 나아갔다. 눈은 쉬지않고 계속 내렸고 나와 그림자가 입고 있는 코트 위에 하얗게 쌓였다.



'벽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마. 저것은 모두 허세에 지나지않으니까'



'허세?'



'환상이야. 우리들의 앞에서 있었던 것은 진정한 벽이 아니야. 벽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따라서 우리들에게 손끝하나 댈수 없어. 그저 위협할 뿐이야?'



'그러나, 실제의 벽은 환상이 아니지.'



'그렇군. 그래서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절대 벽에는 근접하지 않았군'



'하지만 벽에 근접하지않고 벽을 넘을 수는 없지' 그림자는 그 말에는 대답이없었다.



우리들은 얼굴에 상처를 입으며 전속력으로 수풀을 뚫고 나갔다. 수풀이 지나자, 시계가 5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스로 숲을 지나고 웅덩이가 있는 초원으로 나아갔을 때, 우리들은 숨을 돌리기 위해서 앉았다.



'잘했어, 너는 정말 잘했어. 누구도 절대 쫓아올 수 없으니까 이제 우리들의 승리야'



암흑 속으로 이제까지 본 적없을 정도의 많은 눈이 지면에 내려있었다. 여전히 바람은 없었다. 웅덩이의 이상하리만큼 푸른 수면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헤엄쳐나가는 거야'라고 그림자는 말했다.



'저 웅덩이에서'



나는 망연자실한 채 아무말도 못했다.



'뛰어들어서 헤엄치는 거야. 조금 춥지만 감기가 걸리는 정도는 참았으면 좋겠어'



'그것이 계획이야?'



'그렇지'



'정말 들어갈거야?'



'나의 상상이 틀리지 않으면'



'상상?'



'이론이지' 라고 그림자는 말했다. '마음에 들지않으면 그런 식으로 바꿔 말해도 좋고, 결국은 같은 거니까'



'확신할 수 없는 점은 무엇이지?'



'어차피 확신따위는 이 거리에도 없어. 나가자마자 나는 생각할꺼야. 그것뿐이야. 이것을 믿고 안 믿고는 네 마음이야. 따라서 너 자신이 결정해. 나는 강요하진 않아 너에게도 프라이드는 있고 너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난 하고 싶진않아'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일어서서 코트의 눈을 손으로 털었다.



'자, 천천히 생각해 어두운 지하의 수맥속을 영원히 방황하고 기분나쁜 물고기에게 시체를 갉아먹힌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너의 이론을 들려주지않을래?'



'내가 이거리에 와서 우선 최초에 느낀 것은 이곳은 너무 완벽한 것이였어. 적어도 처음 봤던 내 눈에는... 무언가가 그림맞추기처럼 너무나 정확하게 만들어져 있었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지. 이 거리는 자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무언인가의 의지에 의해 무리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만약 정말 이거리가 무엇인가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면 반드시 어딘가에 헛점이 있기마련이야. 나는 의지로 하는 일 따위는 신용하지 않으니까.'



그림자는 말을 멈추자마자 녹초가 된 듯 손가락 끝으로 눈을 비볐다.



'벽의 목적은 속에 있는 것을 둘러싸서 외계와 단절시키는 것이지. 그렇겠지?'



'그래'



'그러나 벽은 완벽하지않아. 벽의 안과 밖을 잇는 지점은 3개가 있어. 우선 서쪽문 그리고 강의 출구와 입구야. 서쪽문은 문지기에 의해서 지켜지고 있어. 그것은 돌파하는 것은 우선 무리야 가장 형벌이 엄한 곳이니까. 다음에는 강의 입구를 생각해 봤어. 그것도 안돼. 두꺼운 철격자로 단단히 잠겨있어. 남은 하나가 웅덩이에서 통하는 지하동굴이야'



'그러면 왜 이 웅덩이를 울타리로 둘러싸지 않지?'



'그쪽이 효과적이지 벽도 울타리도 없어. 그러면 그 대용물로 공포에 의해 웅덩이를 둘러 싸는 것이지. 그래서 누구도 이 웅덩이에는 접근하지않아. 좋은 방법이지'



'아니면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지'



'물론 그것도 생각해봤어' 라고 그림자는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러나 너도 매일 강을 보고 있었겠지? 나도 몇번인가 봤어.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어. 이 강에는, 혹은 물에는 마치 악의가 없는 것같았어. 그렇게 생각하지않아?'



'그럴지도 모르지' 라고 나는 말했다.



'이 거리에서 정말로 태어나고 있는 것은 짐승과 강뿐이야. 나는 이 강을 믿고 싶다고 생각해'



나는 잠시 침묵했고 주위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수면에 눈이 소리도 없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너의 말에 꽤 설득력이 있어' 라고 나는 그림자에게 말했다.



'고마워, 그러나 다 너의 덕분이지' 그림자는 웃었다.



'자, 슬슬 들어가지 않을래? 수영하기에는 조금 지난 계절이지만'



'업혀'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그전에 벽과 연결을 끈자'



'좋아' 라고 그림자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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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다시 우리의 앞에 서 있었다. 그 반들반들한 벽돌은 석양의 엷은 어둠속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내고있었다.



뛰어들고 싶다면 뛰어들어도 좋아 라고 벽은 말했다. 그러나 너희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저 말일뿐이야. 너는 그런 세계를 피해서 이 세계에 온 것이 아니냐?



'그럴지도 모르지' 라고 나는 말했다. '말은 불확실해, 말은 도망치지. 말은 배신하고 그리고 말은 죽어버려. 그러나 결국 그것 역시 내 자신이야. 바꿀 수는 없어.'



그런 식의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그런 말의 어디에 의미가 있어?



'그래 그렇다면 이 거리는 어디에 의미가 있어. 삶이 두개로 분리되고 어두운 마음이 도서관 서고에 있어. 그런 영원의 어디에 의미가 있지?'



사람이 무언가를 구할 때 그곳에는 어두운 마음이 자라나지 어서 뛰어들어 버려! 그리고 어두운 마음과 함께 살아라, 결국 어두운 마음과 함께 죽어버리란 말이다. 그것이 너에겐 어울리겠어. 만약 이 웅덩이 속에서 운좋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리고 벽은 사라졌다.



'끝났구나' 라고 나는 말했다. '그만 갈까?'



'좋아' 우리들은 눈속에서 코트와 구두를 벗고 둘의 벨트를 꽉 묶었다.



'떨어지면 안돼, 절대로...' 라고 그림자가 말했다. '떨어지면 끝장이야'



나는 수긍했다. 눈위에 놓인 두벌의 검은 코트와 검은 구두는 왠지 어색해 보였다.



'문득 나는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라' 라고 그림자는 혼자서 그렇게 말했다. '내 사정만 생각하고 너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그래?'



'너와 벽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갑자기 그렇게 생각했어'



'네 마음이 약해진 것뿐이야' 라고 나는 말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어'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기뻐. 만약 지상으로 다시 나가게되면 잘 할께'



우리들은 벨트로 이은 채 굳은 악수를 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 동시에 얼음처럼 차가운 웅덩이속에 머리부터 뛰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의식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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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後에...





말은 죽는다.



일초마다 말은 죽어간다. 도로에서, 지붕아래에서, 황야에서 그리고 역의 대합실에서 코트의 깃을 세운 채 말은 죽어간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 전등의 스



위치를 끈 것처럼 모든 것은 사라졌다.





빠직--OFF 그래서 끝이다. 나는 이제까지 아주 많은 것을 계속 묻어왔다. 나는 양을 묻었고 소를 묻었고 냉장고를 묻었고 슈퍼마켓을 묻었고 말을 묻었다. 나는 그 이상 더묻고 싶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계속 말하지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Rule이다.





나는 일찌기 그 벽에 둘러쌓여진 거리를 선택하고, 결국은 그 거리를 버렸다. 그것이 옳았던가 어쨌던가, 지금에 이르러도 나는 잘 알지못한다. 나는 살아남았고 그렇게 해서 지금 글을 계속 쓰고 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진정 그 시체냄새다. 나는 어두운 꿈과 함께 잠들고 어두운 생각과 함께 눈을 뜬다. 내가 걷는 길은 어둡고 그리고 걸어 갈수록 그 어둠은 더해가는 듯하다. 무엇인가를 잃어간다. 계속 잃어간다. 일찌기 나의 마음을 설래게 했던 노래도 지금은 없다. 일찌기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던 풍경도 이젠 없다. 달콤한 말이 수없이 침전의 어둠속에 덮여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않는다.



어두운 긴 밤, 방의 벽에 길게 펼쳐진 (그리고 지금 더이상 말이 없는) 내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는 그 벽에 둘러쌓여진 거리를 생각한다. 높은 벽을 생각하고 도서관의 희미한 전등 아래의 너를 생각하며 거리에 발굽소리를 울리던 짐승들을 생각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수양버들을 생각하고 그리고 한물간 공장가(工場街)를 두드리는 차가운 계절풍을 생각한다.



그 이상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만을 내가 원했다. 마치 16세에 느꼈던 바람처럼, 지금 모든 것은 나의 몸을 부딪치며 지나간다. 나는 그 거리를 잃은 것뿐이지만 나의 추억은 저 거리의 어딘가에 남아있으리라.



언제까지라도... 라고 너는 말했다. 언제까지라도 네가 나를 잊지않는 것처럼 나도 너를 잊지는 않는다. 여름 강변의 추억을 그리고 계절풍이 불던 다리 위의 추억을.



언제까지라도...





흐린 가을의 황혼, 나는 문득 저 뿔피리의 울림을 듣는다. 그 소리는 필시 저 불확실한 벽의 어딘가의 빈 틈에서 나의 귀에 도달한 것이리라.



북쪽 끝에서 불어내려오는 조금은 차가운 계절풍에 실려.





(1997년 8월 29일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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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했던 독서기록을 정리하다 스스로에게 경악하다..

읽은 기억은 커녕 그 책을 내가 구입했었는지..책장 어느구석에 꽂혀있는지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책장을 분야별, 국가별, 작가별로 구분해서 정리를 해놓고 있는 터라

책제목이나, 작가를 보면 바로 어디쯤 꽂혀있는지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예전부터 책을 다 읽고 내려놓는 순간 줄거리가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이정도로 심각하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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