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상식의 계절입니다. 연예대상, 가요대상, 연기대상 등 화려한 시상식은 차고 넘치는데, 왜 어디에도 책 관련 시상식은 없는 걸까요? 리영희 선생이 평생공로상을 받고, 카라가 축하 공연을 하는 '도서대상'을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일까요? 아쉬운 마음에 여기, 현장MD로 살았던 2009년의 기억을 남깁니다. 조금 편파적이고, 아이돌 그룹의 축하 공연도 없는 소소한 시상식이지만 그 끝은… 창대할까요?
- 모든 선정은 알라딘인문MD의 자체 기준을 따릅니다.
- 부분별 수상작은 모두 2009년 출간 도서 기준이며, more about 에는 간혹 구간이 섞여 있습니다.
* 올해의 쇼 - 리차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independent.co.uk
"아마도 신은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인생을 즐기세요"
올 초, 영국에서 벌인 버스 캠페인 만으로도 도킨스는 '올해의 쇼' 부분을 수상할 자격이 있다. 지난 가을에 <The Greatest Show on Earth>가 출간 되었고, 이제 번역된 <지상 최대의 쇼>가 우리의 12시 당일배송을 기다리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전문 번역가 선생님'은 이 책을 가리켜 "친절한 진화론 입문서, 명쾌한 창조론 반박서"라고 했고, 나는 그 문장 앞에 '가장'이라는 단어를 덧붙일 뿐이다.
+ 올해의 추천사 :
"내가 신을 믿는다면, 우리에게 리처드 도킨스를 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을 것이다"
- 존 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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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던적' - 김훈, <공무도하>
©문학동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 문제다."
언젠가 나는 김훈을 '늙은 개'라고 표현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개>를 보면 안다. 그것은 자서전일 수 없는 동시에 자서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김훈이 그려내는 세계는 바로 저 '동시에'의 세계이고, 당위와 인과를 떠난 자연사의 세계다. 그것은 또한 살아 갈 수도, 살아가지 않을 수도 없는 세계이다. 저널리즘의 언어를 통해 그가 기록하는 것은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과 비열함이지만 그가 기다리는 것은 최종적인 희망이다. 그것은 물론 희망을 가질 수도, 갖지 않을 수도 없는 자의 '던적스러운' 희망일 것이다.
+ 올해의 김훈 리뷰 :
"
나는 조리를 혐오하고 레시피를 불신한다. 딴 동네로 가서 새로 가게를 열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 문제다."
- 내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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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컴백, 무라카미 하루키 <1Q84>
©문학동네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해줘도 모르는 거야"
한때 우리에게 하루키는 딜레마였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아야만 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하루키였으니까. 우리가 그와 함께 살았던 <상실의 시대>는 결국 '상실에의 열망'으로 가득한 시대였다. 짐을 줄이기 위해 좌석을, 냉장고를, 스튜어디스를 내던지는 비행기처럼. 아무 것도 손에 쥔 것 없이 그저 상실를 열망했던 우리가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 자신 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를 잊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하루키는 육십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고, 우리는 찌든 생활인이 되었으니까. 그가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는 뉴스는 그래서 꽤나 그럴듯 했다. 그것은 분명 한 시대의 종말에 대한 거창하고 쓸쓸한 기념비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을 타지 않았(못했)고, 대신 <1Q84>를 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우리의 청춘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올해의 하루키 잡담 :
"무라카미 하루키 재습격"
+ 올해의 베드씬 : 덴고(29세) 후카에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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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여자친구,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Joana Linda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이것은 완벽한 팝 앨범이다.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들었던 지난 소설집(<나는 유령작가입니다>)과 달리 어깨에 힘을 뺀 그는, '4집 앨범'을 통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3분 짜리 팝송을 들려준다. 각각의 트랙들은 설레임과 체념, 기대와 엇갈림을 노래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하나, 사랑이다 .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그럼에도 인간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낙관 사이에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 '노력하는 작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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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가난 -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최규석
"만국의 듣보잡이여 궐기하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0.1%가 자신을 '워킹푸어'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 중의 59.3%는 앞으로도 오랜기간 워킹푸어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 대답했다. 밥벌이는 물론 고단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가난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일 때문에 괴로월랑 마시고 인생을 즐기세요. 가난해도 즐거울 수 있다니!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도킨스의 말보다 더 충격적일 말을, 그는 웃으며 실천한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가난뱅이다.
+ 올해의 가난탈출법 :
"고품질 공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
-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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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다윈 -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다윈 평전>
©http://www.australiazoo.com.au
2006년, 176세로 세상을 떠난 다윈의 거북이 해리엇의 175번째 생일상
2009년 우리는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동시에 맞았다. 다윈과 진화론 관련 도서만 50여 종이 출간 되었고, 다윈 전시회, 서울시극단의 공연 '다윈의 거북이'에 이르기까지 관련 행사도 풍성했다. 그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1300여 페이지의 볼륨으로 다윈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다윈 평전>이다. 진화론을 두고 '살인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던 노학자의 고뇌와, 그 고백으로 인해 영원히 바뀌어버린 인류의 삶을 만날 수 있다.
+ 이듬해의 인물 :
장 폴 사르트르 - 사후 30주년
알베르 카뮈 - 사후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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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노익장 - 오에 겐자부로,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http://www.brooklynrail.org
"비록 지금은 어두워 보일지라도, 끊임없이 끊임없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에 빛이 보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 빛을 향해) 우리는 나즈막이 나즈막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책이여 안녕>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평생에 걸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코쿠 숲과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 아들 히카리, 그리고 신 없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문제에 천착해 온 노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책이여 안녕> 보다 나은 제목을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썼고, 새롭게 시작되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의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놓였다.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까?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언젠가 오에 겐자부로에게) 했어야 했던 말 :
"와따시와 아나따노 고또가 다이스키데스" (나는 당신을 정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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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디스' -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사랑, 그 혼란스러운>
Gustav Klimt, 'Virgin'
"도킨스의 신은 바로 유전자다. 이 신은 만물을 관장하고 전능할 뿐 아니라 모든 일에 관여한다."
2008년 출간 되어 얼마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나는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있다면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이름이(적어도 얼굴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자아'의 문제에 천착했던 지난 작품과 달리 <사랑, 그 혼란스러운>에서 그는 영화와 대중가요, 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손에 넘어간 '사랑'을 철학의 자장으로 탈환하려한다. '사랑 일병 구하기' 정도 될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물론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 데이비드 버스, 데스먼드 모리스 등 진화심리학의 스타들이 두들겨 맞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꽤나 즐겁다(이 부분은 진화 심리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할 듯 하다). 그러니 그의 논의가 조금쯤 미심쩍더라도 일단 총알을 다 쓸때까지는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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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편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글쓰기>
©http://www.dailymail.co.uk
"소설을 써서도 충분히 살아갈 만큼 돈을 벌 수 있네. 이 어리석은 친구야, 어서 소설을 쓰게."
"개인적인 비극은 잊어버리게. 우리 모두 애초부터 실패한 인생이네. 특히 자네는 지독하게 상처를 입어야 진지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걸세. 지독한 상처를 입으면 그걸 활용하게. 숨기려 들지 말고. 과학자처럼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자네 자신이나 자네 가족들에게 생긴 상처라고 해서 그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 헤밍웨이가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글쓰기에 관한 특별한 지혜"라는 의심스런 부제를 달고 있는 <헤밍웨이의 글쓰기>는 완결된 저작이 아니다. 헤밍웨이가 편지, 기사와 잡글, 소설 속에서 글쓰기에 관해 말한 부분을 모아 놓은 편집본이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어도 좋다. 대부분 200자 내외에서 마무리 되는 그의 짧은 말들은 대개 글쓰기의 심장을 가리키고 있으니.
+ 올해의 일화 :
"피츠제럴드는 애통할 정도로 철자를 몰랐다" 그의 편지 선집을 편집한 앤드류 턴불의 말이다. "귀에 들리는 대로, 그는 습관적으로 'definate' 나 'critisism'이라고 적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고유명사는 그에게 쥐덫이었다." 종종 가장 친한 친구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에게 편지를 쓸 때 조차 피츠제럴드는 'Ernest Hemmingway'나, 심지어 'Earnest Hemminway'라고 쓰곤 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되기의 중요성, (혹은 철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유) by Craig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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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재활 - 나카지마 라모, <오늘 밤 모든 바에서>
©http://www.wolverhamptonhealth.nhs.uk
"오늘 밤, 보랏빛 연기로 부예진 모든 바에서"
나카지마 라모의 제1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수상작을 집어 든 사람의 십중 팔구는 "낚였다"라고 내뱉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이 책을 집어들 이유는 뻔하다. 1. 제목이 끌려서 2. <인체 모형의 밤>을 통해 나카지마 라모라는 이름을 알게 되어서. 게다가 장르물에 일가견이 있는 북스피어 출판사가 아닌가.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달리, 이 책은 알코올에 사로잡힌 남자 고지마 이루루의 갱생기이자 자전적 소설이다. 추리도, 미스터리도 공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내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오늘 밤 근사한 바에서 벌어지는 시크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다(병원에서 탈출해 오뎅바에 가는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저 망가진 한 사나이가 우여곡절 끝에 갱생의 끈을 붙잡는 이야기일 뿐인데. 무엇이 그토록 마음을 붙잡아 놓아 주지 않는지, 그것이 미스터리다.
+ 함께 곁들이면 좋은 것 :
싱글 몰트 위스키 두어잔, 몇 개비의 담배 그리고 (망가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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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글쓰기/책읽기 - 이만교,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닉 혼비, <런던 스타일 책읽기>
나는 글쓰기, 책읽기 분야의 챔피언이다. 나보다 해당 분야의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자랑하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평에 가깝다. 올해에도 관련 도서는 끊임 없이 쏟아졌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이만교와 닉 혼비의 책이다. 둘 다 재기발랄한(?)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고, 어느새 '재기발랄' 따위 안어울리는 나이에 접어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닉 혼비는 금연을 하기 위해 금연도서를 주기적으로 읽는다(그것도 같은 책으로!). 하지만 금연은 쉽지 않고, 자괴감만 늘어 간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에서 열린 한 작가 모임에 참석, 지루함에 치를 떨다 담배를 피기 위해 발코니에 나간다. 그곳에서 낯익은 인물을 만나니, 그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였다! 아 세상에 하나님. 커트 보네거트라니요.
반면, 주기적으로 금연을 선포하는 이만교 님은… 뭐, 금연은 어쨌든 해야 맛이니까. 아마 흡연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금연의 즐거움(자기 절제) 때문에 계속해서 담배를 피시는 것 같다.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2010년 부터 금연을 하게 되었다. (이게 글쓰기/책읽기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시는 분은, 아직 글쓰기/책읽기 책을 덜 읽으신 거다)
* 특별언급 - 세계문학의 어떤 경향
물론 시차는 존재하지만, 올해 번역된 '젊은' 소설가들의 (문학계 만큼 '젊음'이란 개념을 폭넓게 쓰는 곳도 드물다) 책을 앞에 놓고 보면, 세계 문학의 어떤 흐름을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물론 설명해야 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야 할 무엇이다. 다만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기록한다.
* 올해의 시인 -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