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주 킨 트래킹 코스를 여행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4천 몇백 킬로미터라고 한다. 이름은 PCT Pacific Crest Tracking. 캘리포니아에는 이 외에도 많은 트래킹 코스가 있다고 한다. 트래킹, 하면 존 뮤어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이분도 이 코스에 캘리포니아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실화를 엮은 이야기 같다. 글을 썼을 당시는 트래킹 이후 꽤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마치 며칠 전에 다녀온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여행을 했을 때가 26세이고 책을 썼을 때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답답하군- 상당히 시간이 지났을 때로 보인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집필과 편집을 몇 년동안 하다가 에필로그를 상당히 나중에 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을 읽다보니 에필로그의 내용보다 이 상당한 시간 차에 놀라게 되었다. 물론 여행 당시 기록을 많이 해두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혼자서 먹고 자고 걷는 생활을 하다보면 기록에 집중하고 기억도 생생할 것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읽기와 쓰기의 습관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이고 문화적인 토양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들기도 무거운 배낭에 책을 몇 권 갖고 다닌 걸 보면, 책이 삶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도 아닌, 그냥 없는 게 기본인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여행 중 만난 일행과 다른 사람들과도 책을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는 걸 보면서 부러움과 함께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정말 좋아하거나 책 좀 읽는 사람들 아니면 아무데서나 책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좀 부담스러운 사회가 된 것 같다. 나는 그냥 책이 좋고 소설이 재미있어서 읽는 데 뭔가 유별난 사람처럼 보는 시선이 많다. 트레킹 코스에서 책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게 되었다. 부러워서 그랬다.

 

걷기는 정말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인격을 다져 주는 역할도 하나보다.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서 그런가보다. 나도 한때 아침마다 운동을 했을 때 새로운 신체 에너지와 함께 새로운 기운이 생겼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그동안은 얼마나 신체를 소외시켰던 삶이었나 싶다.

 

여행의 전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어둡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의 많은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고 치유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기억은 때로는 순서에 따라 오래전 기억부터 소환되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떤 부분의 기억은 좀더 자주 떠올라서 그 지점이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엄마의 죽음이 있다. 엄마가 죽으면 어떨까. 저자는 엄마와 매우 친밀한(?)이 정확하지는 않고 애증섞인, 집착같기도 하고 사랑같기도 한 엄마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으니 충격을 받을 만도 하다. 나에게는 아직 엄마가 계시다. 나와 엄마의 관계도 평범치는 않다. 만약에 엄마가 안 계신다면 어떨까. 나에게 인상 깊은 어떤 작가도 꽤 지적이고 탁월한 사람인데 그분이 엄마가 돌아가시고 상당히 오랬동안 겪었던 일들을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분한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이러면서..

 

엄마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을 지탱할 방법이 없어 새로운 출구를 모색했을 절박함이 느껴진다. 엄마의 죽음까지는 또 얼마나 역동적인 삶이었는지. 그런데 트래킹을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화해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드라마틱한데 픽션이 아니라 실제라서 감동이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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