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 가운데에 큰 구멍이 있다. 내 마음에도 따라 난 커다란 구멍 언저리를 다니며 아직도 이야기를 맺지 못하고 있다.

가우리...

사랑을 시작하고 바로 큰 상실을 겪었다. 절벽같은 상실이 그녀 안에 들어왔고 그녀 안에 난 길을 따라 갔을 것이다. 사랑은 자아의 실현이었을 것이다. 사랑의 상실을 겪고 고향을 떠나고 자신의 아이를 남과 공유하면서 상실이 그녀 인생의 일부로 자리잡았던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절벽같이 그들을 떠났다. 모성과 인간의 도리를 뒤로 하고 저 너머 자신의 세계로 사라진 것 같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큰 구멍 주변에서 기웃거린다. 당신 괜찮나요? 거기는 어떤가요?

 

시대와 개인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빚어지는지,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아간 배경을 가로지르는 가족의 이야기는 어떻게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작품 같다. 근대 이후 아시아에서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 세대 간의 삶이 늘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고.

저지대에 숨은 동생이 죽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소설은 동생이 죽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저지대lowland. 시대와 인생이 변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들은 어디로 가지 않고 저지대에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비극적 시대를 만난 가족의 이별과 단절은 그들을 영원히 끌어내리는 무거운 추가 되었다. 남의 아이를 키운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또한번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을 보고 놀란다. 시간과 공간이 멀리 이동하고 바뀐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의 삶 언저리를 거닐며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나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과거와 유년의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진다. 벌써 떠나온 지 수 십 년 된 나의 과거가 인생길 저 앞에 서서 거울처럼 나를 비추며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 같이 느낄 때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