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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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p52 이제 나는 고백을 한 셈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낯선 사람한테. 그러자 구원의 예감이 강렬한 향기처럼 풍겨왔다!

 

p57 그렇게 나는 눈먼 가슴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옛날의 사랑스러운 밝은 세계에 종속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유일한 세계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데미안을 붙잡고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내가 그러지 않은 것이 당시는 그의 이상한 생각에 대한 지극히 올바른 불신처럼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에 지나지 않았다. 데미안은 내게 부모님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했을테니까. 훨씬 더 많은 것을. 자극과 경고, 조롱과 아이러니를 동원해서 나를 훨씬 더 독립적으로 만들려고 했을테니까. , 지금은 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사람이 더 싫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p222 [작품 해설] ‘너 자신만의 길을 가라데미안의 메시지는 1차세계대전 직후 젊은이들의 마음에 엄청난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관습과 도덕, 종교가 내세우던 온갖 가르침은 대규모 전쟁을 통해 속에 감춘 모순과 허점을 낱낱이 드러내던 참이었다. 과거의 가르침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표가 될 수 없었다. 이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데미안은 정확히 그 모범을 보여주었다. 토마스만도 그것을 느꼈고, 그래서 헤세가 작가인 줄 모를 때부터 이미 이 작품을 좋아했다. 그는 물론 처음부터 작품 구조의 이중성을 간파했다. ... 이 작품은 너 자신만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열을 극복하고 참된 나 자신에 도달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도 담고 있다. 이 과정이 바로 작품의 심층구조를 이룬다. 심층구조로 들어가려면 융 심리학의 일반적 개념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1. 도구가 되는 개념 몇 개

(1) 의식과 무의식

무의식 :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나 우리 안에 이미 들어있는 것과 개인이 살면서 축적된 것. 다층적이고 깊은 층위를 가지고 있음. 사회나 집단구성원, 조상들의 축적된 체험까지 포함.

에고 : 의식에 기반한 나. 기억, 욕망, 일상생활

초자아 : 의식하지 못하는 진짜 나. 의식과 무의식의 소리를 함께 듣는 진짜 나

(2) 무의식에 접근하는 통로,

의식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접근하는 통로. 꿈 꾼 사람 개인의 해석이 중요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3) 인격화하여 꿈에 등장하는 무의식 : 꿈은 무의식을 이미지로 바꾸어 보여준다. 초자아도 꿈에 등장할 수 있으며 자신 또는 타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2 에밀 싱클레어의 길 개성화 과정

... 밝은 세계는 의식의 세계, 어두운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이다. 싱클레어의 길은 이 두 세계를 통합한 것, 즉 아프락사스에게로 가는 길이다. 싱클레어의 길은 이런 통합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길도 인격이 상처를 입고 그것을 고통스러워하는 데서 시작된다” ...

우리 시대는 더 섬세한 젊은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어디서나 인간을 획일화하려 하고 그들의 개인적 특성을 가능하면 잘라내려 합니다. 영혼은 그에 맞서 항서하는데 그건 정당한 일이죠. (...) 그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런 체험들을 극복하고 그가 강한 사람이라면 그는 싱클레어세어 데미안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보니 작품해설을 읽어야 조금 이해가 되는 난해한 소설이다.

200쪽이 안되는 이야기를 읽다가 두어번 쯤 작품 해설을 읽고 다시 읽어나갔다.

헤세의 나이 40세쯤에 지은 소설인데 10대에서 시작하여 20대가 된 젊은이의 성장과정에서의 심리적, 의식의 변화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당시 사회에서 불륜의 가운데 있는 여성을 주체로 설정하여 쓴 소설이라는 것이 무척 파격이었다고 한 비평을 읽은 적이 있다. 데미안도 같은 맥락이 있을 것 같다. 1차대전 직후 불안한 전체주의 시대에서 획일화된 무기 같은 그들을 개성화 과정을 거친 인간으로 그려내는 것,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 과정을 거치는 미묘한 변화를 다양한 은유로 그려내는 것이 파격이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은 이렇게 시대를 선도하거나 은유하며 인생보다 긴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 같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 한계가 있겠지만 전쟁 앞에 선 인간으로서 두려움, 분노 그리고 어떤 미지의 의식들이 당시의 작가 헤세와 독자들을 어떤 경지로 밀어내었을 것이다. 백년 즘 전에 데미안이 전후 독일에서 큰 반향을 얻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의 맥락에 발딛고 있는 한국 문학에서도 위로와 공감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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