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전시대 소련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형을 사는 한 죄수, 슈호프의 하루를 그린 작품이다.

오전 5시 기상 신호로 시작하여 그날의 고된 노동과 짧은 휴식 끝에 잠이 드는 깊은 밤까지의 하루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러시아의 겨울, 강제 노동 수용소의 열약함은 감히 상상이 안 가지만

슈호프의 일과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해지는 그림이 그려진다.

 

책 한권으로 충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없는 참혹한 수용소 생활에서도

하루하루 매 순간 슬픔과 아쉬움 뿐만 아니라 기대와 기쁨, 만족, 애정, 배려, 예의 그리고 감사가 있다.

물론 저열하고 치사함, 분노, 다툼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무참하게 취급되어도 되는 건가

 

"슈호프는 얼마 안 있으면 석방이야." (슈호프는 현재 9년째 형을 살고 있다.)

키르가스의 형기는 25년이었다.

한때는 어수룩한 시대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10년이 언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49년부터는 시대가 바뀌어 일단 걸려들기만 하면 무조건 25년이다. 10년이라면 돌을 깨물고서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25년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

슈호프가 직접 보아온 일이자만, 전쟁 중에 형기가 찬 죄수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추후 상부 방침이 결정될 때까지

곧 1946년(전쟁 끝난 이듬해)까지 그냥 붙잡아 두었다. 특히 심한 것은, 처음에 3년형을 언도받았던 죄수가 형기를 마친 후에는

다시 5년이라는 추가형을 받은 일도 있었다.

도대체 법률이라는 건 믿을 것이 못 된다. 10년을 다 살고 난 후 1년만 더 살아라 해도 별수 없다.

...

형기가 끝나더라도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앞길이 캄캄해지곤 한다.

주여! 내 발로, 내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는 겁니까, 안 오는 겁니까?

...

"25년, 25년 하고 자꾸만 되뇌일 필요는 없어. 25년을 살게 될 지 어떨지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니까.

확실한 건 내가 이미 8년을 살았다는 사실뿐이야."

요컨대 언제나 발밑만을 보고 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무엇 때문에 들어왔느니, 언제 나가게 되느니 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잠길 겨를이 없다.

(pp89-91)

 

슈호프는 별로 심각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말 발밑만을 보고 산다. 지금 현재, 그리고 잠시 후에 일어난 일,

노동이나 식사 등에 집중을 한다. 이 삶에 의미를 찾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발밑만을 보고 살아도, 앞으로의 일을 염려해도 자신의 운명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이야기의 중간쯤에 나오는데, 앞 뒤에 이어지는 하루의 일과를 묘사하는 가운데 잠시 귓속말을 하듯이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 같다.

 

가슴이 먹먹하다. 마치 정해진 고난의 분량을 채워야 새로운 미래가 오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채워나갔을 그 고통의 페이지를 대하는 것 같다.

 

저자(솔제니친)은 실제로 '스탈린에 대한 불손한 언사'(자신의 표현) 때문에

8년형을 언도받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징역살이를 했으나

형기 만료 후에도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의 억류지에서 유형 생활을 하였다고 하니

이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후에도 솔제니친은 소련 사회를 비판한 반체제 문학인으로서 갖은 핍박과

저항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런 대목에서 볼 때 참으로 묵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1962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출간

1968 <암병동>, <연옥 1번지> 완성, 원고를 국외로 밀송하여 해외에서 출판

        망명은 고려하지 않음, 조국과 동포를 버린 작가가 되고 싶어하지 않음

1969 소련 당국에 의해 작가 동맹에서 추방당함

1970 노벨문학상 수상 - 소련 당국이 귀국을 거부할 우려에 시상식에도 참석치 않음

1971 <1914년 8월> 국외에서 출간

1973 <수용소 군도> 파리에서 출판, 반역죄로 기소됨

1974 국외로 추방

1994 소련 붕괴 후 러시아로 귀환

2008 심장마비로 별세

 

냉전도 붕괴되었고 양차 세계대전에 대한 각성과 해석이 많이 이루어져

전쟁의 참혹함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만 당시에 이런 내용의 소설이라면 정말 사회에 충격적인 메시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시대의 수용소 현실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니 말이다.

요즘으로 치면 최고위층의 추잡하고 저질스런 행태를 낱낱이 밝혀 드러내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하는 반응을 얻을만 할 것이다.

 

사전에 소설에 대한 지식도 있었고, 영화나 문학, 사회적 이슈들을 통해 전쟁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어서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하게 참혹한 현실에서

묵묵히 고난을 겪으며 그 시간을 벼텨냈을 시대에 아픔과 참혹함에 그저 먹먹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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