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치킨 - 까칠한 아티스트의 황당 자살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은 영화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고 쓴 글이다.

 상품을 선택해야만 글이 써 져서 어쩔 수 없이 원작 그래픽 노블을 걸고 쓴다.)

 

 

우연히 TV에서 영화를 찾다가 제목을 보고,,, 언젠가 기억에 잠시 넣어두었던 영화였던 것으로 나중에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시놉시스를 보니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인 것 같아 구매를 하고 보니,,, 페르세폴리스의 그 '마르잔 사트라피'가 제작한 작품이 아니던가. 역시 제목과 배우 이름이 나오는 초반 화면부터 음악과 화면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우연히 고른 것 치곤 너무 운이 좋았다.

 

배경은 이란. 바이올리니스트인 나세르 알리의 바이올린은 부인과의 다툼 끝에 부서져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들법한 악기를 새로 사지만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세르 알리는 마음에 드는 악기를 구할 수 없다는 절망으로 일주일 뒤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결심 하루째, 이틀째, 삼일째, ... 이렇게 하루하루의 에피소드가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의 처음 장면-주인공의 장례식 장면-처럼 일주일 뒤 자살을 감행한다. 일주일 동안 가족들이 차례 차례 자살을 만류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모습을 회상하고, 저승사자를 만나는 장면까지 자살에 이르는 하루하루는 심각하지 않고 극적이고 심지어는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일주일이 거의 되었을 즈음엔 첫사랑 ‘이란’과의 회상이 등장한다.

 

이란과는 그녀 아버지의 반대로 헤어졌지만 나세르 알리는 그 아픔을 승화시켜 뛰어난 예술가가 되었다. 그리고 원치 않는 결혼 생활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바이올린을 새로 구입하려 오가는 길에서 이란을 우연히 마주친다. 그러나 이란은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모른체 하고, 주인공은 이에 극단적 슬픔과 절망을 겪고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바이올린을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 숨겨둔 사랑인 이란에 대한 절망이 뒤엉켜 생에 의지를 찾지 못하고 삶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한 것이다.

 

나세르 알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바이올린이었다. 스승으로부터 받은 그 바이올린에는 첫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들어 있었다. 예술혼을 지탱해주던 바이올린이 부서지고, 우연히 마주친 이란마져 그렇게 헤어져버리자 나세르 알리는 삶을 지속할 수 없었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익숙하지 않은 이란의 거리와 배우들의 모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픽 노블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감각으로 인해 영화는 한 장 한 장 그림을 보듯 아름답고 극적으로 펼쳐진다. 이란 배우들의 풍부하고 새로운 표정과 모습들도 아름답다. 할머니가 되었으나 여전히 우아하고 첫사랑을 마주치고도 모른체 하며 혼자 슬픔을 터뜨리는 ‘이란’의 모습처럼 영화의 배경이 신비롭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그렇게 바이올린과 사랑에 모든 걸 걸만큼 단조롭고 홀연히 벗어버릴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이건 아름다운 영화이며 소설인 것 같다. 지상의 예술가들은 예술 외에도 삶이 얽매여 있는 것이 많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서 더 이상은 모르겠지만 예술에 자신을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술가가 부럽다. 물론 예술을 예술로서 지키기 위한 고통이 뒤따르겠지만 짧은 인생을 긴 예술에 잇대어 살 수 있는 건 어쨌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의 원작은 마르잔 사트라피의 그래픽 노블 ‘자두치킨’이라고 한다. 주인공의 부인이 주인공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때 만들었던 음식이고 자두치킨에 대한 주인공의 칭찬은 그녀에게 사랑을 의미했었다고 한다. 그래픽노블에 비해 자두치킨의 상징이 약화되었으므로 영화 제목이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 되었는지 싶다. 원작도 꼭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