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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 - 나의 가치를 발견하다 ㅣ 소노 아야코 컬렉션 2
소노 아야코 지음, 오경순 옮김 / 리수 / 2012년 1월
평점 :
p15 이러한 혼란스러움, 바로 이것이 중년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매력이다. 지긋한 나이에 정의감만으로 세상사를 판단하게 되면 자칫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 ... 정의 또한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규칙으로서 이용되어지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는 말이다. 인간성의 이해란 그보다는 더욱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것으로, 그러한 이해가 가능한 것도 중년의 지혜이자 안목이며 경험인 것이다.
p21 이상적인 가정이란 실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p22 우리들은 누구나 어릴 때 또는 청춘 시절에 불행이나 탈선 등의 영향으로 상처받으며 성장하게 되지만 그러한 아픈 상처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 때가 바로 중년 이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년 이후란 출신상의 콤플렉스를 스스로 떨쳐버리는 데 성공하게 되는 멋진 시기라 할 수 있다.
p34 젊었을 때는 인맥이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은 지나온 날들을 통해서 그 사람을 알고 싶어하고 믿게 된다. ... 인맥의 기본은 존경이다. ... 그렇게 되기까지 모든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중년 이후에야 비로소 인생은 무르익게 되는 법이다.
p42 정의란 세상 사람들이 풍문이나 평판으로서 판단하는 것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 정의란 드러나지 않는 심적 드라마와도 같다.
p67 나는 비관적인 성격 탓인지 중년을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시기’로 생각한 적은 없다. 중년 이후란 오히려 지금까지 손에 넣었던 모든 것과 헤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p70 (성 바울은...) 한 개인의 슬픔 따위란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최악의 비극이 일어난다해도 지구 전체가 슬퍼할 비극이란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태연하고 조용하게 참아내면서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라고 말한다. 성 바울은 인간의 죽음이란 상실과 동시에 해방을 주는 일이라고도 말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고통이란 죽기 전까지의 일이다. 모든 것이란 스쳐 지나가버리는 것이므로 우는 사람도 울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된다고 말한다.
p132 단지 자식이란 참 묘하게도 좋게든 나쁘게든 인생을 진하게 만든다. 기쁨도 증오심도 배가시킨다. 이것이 자식이라는 존재가 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배가된 기쁨은 좋지만, 배가된 고민은 싫다고 하는 사람의 마음도 나느 잘 이해하기 때문에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 사람에게 감히 반대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자식은 어디까지나 친근한 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p159 나는 ..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몇 가지 사사로운 결심을 했는데, 그중의 한 가지가 결코 재단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과 관계 있는 조직에 너무 애착을 갖게 되면 반드시 권력을 갖고 싶게 되고, 인사에 관여하게 되고, 조직의 힘을 주위 사람에게 과시하려 하게된다. 하는 이 모든 것에 마음을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p160 여생이라는 말에 종종 떠오르는 것이 출가의 욕망이다. 쉽게 말해서 현실의 경쟁적인 생활방식에 진저리가 나게 되면 그러한 생활 방식도 있다는 것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
p182 성대하게 살아왔던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서서히 수습 쪽으로 마무리해가는 모습은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진다. .. 그 어느 것이든 금방 죽는 병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일관괴게 성대와 발전을 향해 매진하는 것은 더 이상 걸맞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인생의 최후에 수습이라는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게 되었다. ... 성장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이런 수습도 근사하고 멋진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p183 지금까지는 회사나 조직에서 잘 보살펴준 한 그로 가로수였다. 혹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이 보러 올 정도의 유명한 나무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튼튼한 나무는 재목으로써도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낡은 나무란 땔감 정도의 가치뿐이다.
p193-194 ‘나는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대체로 사람은 누구나 평범하고 보잘것없고 별볼일 없는 존재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면 운이 좋았든지 혹은 다른 사람이 우연히 도와줬기 때문일 뿐이다.
p222 인간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의리를 저버리고 후회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것은 젊었을 때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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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들고 있으면 나이가 마흔 이상 이라는 사실이 자꾸 각인되는 것 같아 제목은 좀 맘에 안들었지만 내용은 참 좋다.
중년 이후에만 느낄 수 있는 통찰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정말 이런 것들은 이,삼십대에는 알 수가 없는 것들이다.
지금도 흐르는 시간에는... 그런 것, 겪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정의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그저 이 책을 붙들고 주저앉고 싶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년에 회사에서 어떤 일에 연루 되어 결국 안좋은 결말을 보게 되었다. 안좋은 결말을 결정지는 사람들과 나는 모두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몇 다리만 건너면 어쩌면 서로 다른 경로로 알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직장에 힘든 일이 있다.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무척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잘 해결이 되길 바란다.'로 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겼을 것이다. 어떤 것도 판단하지 않은채 이후의 시간을 살고 있다.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발담그고 사는 이상 '정의로운 내가 누군가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로운 가치를 지향해야 하지만 그것을 지향하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삶에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물흐르는 것처럼, 조금 여유있게, 때로는 멍때리기도 하면서,
언제 또 높아질지 모르는 파고에 마음을 낮추며
...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