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에세이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는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신분에 대해 이 단어를 이용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조.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다. 1920년대 살 길을 찾아 일본으로 간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일본으로 불러들였고 서경식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두명의 형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자랐고 서울로 대학을 왔으나 1971년 학원간첩단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1980년대 말까지 잔혹한 시절을 감옥에서 보냈다.

 

서경식은 1969년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입학했고 형들의 구명운동을 벌이면서 나름의 철학과 필력을 터득하여 발표할 데 없는 에세이를 쓰게 되었고 1990년대 부터는 여러 대학에서 재일조선인과 역사 문제에 대한 강의를 해왔고 2000년부터 도쿄경제대학 교수로 인권과 소수자에 대한 강좌를 맡고 있다. 펴 낸 책으로는《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어느 재일조선인의 독서 편력》,《디아스포라 기행》,《난민과 국민 사이》,《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고뇌의 원근법》,《나의 서양음악 순례》등이 있다.

 

책의 두 날개는 모두 저자 소개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만큼 저자를 이해하고 아는 것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깊어서일 것이다. 이 책은 그가 <한겨례>에 2007년부터 4년 동안 쓴 칼럼을 모아서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그 기간에는 2년 동안 우리나라에 연구차 방문했던 기간도 포함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면서 쓴 글도 많다.

 

경계인이지만 그 한스러움과 어려움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예술에 대한 깊은 조예 때문일까.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읽고 쓰기를 가까이한 깊이 때문일까. 묵묵하게 진지하게 하지만 슬프지만도 않고 억울하지만도 않은 참 마음을 깊이 두드리는 책이다.

 

국가, 민족이라는 규정이 소외시킬 수도 있는 사람, 집단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의심할 수 없었던 국가와 민족이라는 정체성도 경계에 선 자들과 다른 민족, 국가에 대해 폭력적인 잣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도 경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둘 낳고 키우지만 엄마가 아닌 내가 되고 싶어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물러서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껴지고 싶어하지 않는 경계인이다.

 

한 친구와 관계된 에피소드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매우 유능한 친구로 출판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매니저급의 위치에 까지 오른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페이스북에 책으로 뒤덮여 있는 자기네 사무실을 정리합네 하는 글을 읽었다. 책 욕심이 많은 나는 당장에 내가 가서 도와주면 책 좀 얻어갈 수 있는거냐는 댓글을 달았었는데, 거기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 나를 참 당황하게 했었다. 아이들 책이 많으니 정리해서 보내주겠다는 내용이 요지였다.

......

평소에 별로 왕래가 많지 않아서 난 그 친구한테 내 애들 얘기를 거의 한 적이 없고 그 친구가 일하는 출판사는 성인 단행본을 내는 회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말한 거였는데, 그 친구 눈에는 내가 아이를 둔 엄마이므로 엄마로서 아이 책 고르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난 이런 반응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런 정도의 간단한 고정관념도 뛰어 넘지 못하면서 어떻게 문화 창달에 기여하는 출판인으로 살아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좀 더 흥분한 다음에는 얘가 날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어찌어찌하여 아이들 책을 한 상자 받기는 했는데, 나중에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기분 상하지 않게 꼭 얘기해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나는 이렇게 경계인으로서의 발언이 시작되면 흥분과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고통을 잘 녹여서 경계인이 아닌 자들도 다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드신 것에서 인격과 품성이 느껴진다. 배우자를 파트너라고 지칭하는 것,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쉽게 해체하실 수 있는 분, 경계인으로서의 고통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인간에 대한 감수성과 사회에 대한 애정까지도 느껴진다.

 

문장력도 참으로 정갈하고 섬세하여 필사를 해보고 싶은 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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