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과 앨리스의 神나는 연애 - 여성들의 영혼을 치유해줄 열두 개의 대답
현경, 앨리스 워커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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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유니언 신학교 교수 현경과 미국 작가 앨리스 워커가 각각 열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쓴 시와 산문을 엮은 열두 꼭지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경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였다가 유니언 신학교의 아시아 여성 최초의 종신 교수로 임명되어 유명해진 페미니스트 신학자이고, 앨리스 워커는《컬러 퍼플》로 유명해진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로 백인 중심의 페미니스트에 대항하는 개념인 우머니스트를 개념화한 인물이다. 두 뛰어난 여성의 대담 형식의 글은 이미 조금은 깨였다고 생각하는 내가 아직도 얼마나 무지와 억압 가운데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첫번째,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현경은 종종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을 '비전향 장기수 이성애자'라고 표현한다. 페미니스트이고 가부장제의 남자들에 대해 환멸을 느낄 정도이지만 평생에 걸쳐 남자와 이상적인 사랑을 나눌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끝없는 시도와 실망 가운데 남자들과 '영혼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여자들의 마음,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남자는 제껴두고 여자들끼리 진지한 관계를 맺고 지내겠다는 여자들의 마음을 그녀도 물론 절대적으로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가부장제가 인류에 미친 상처는 여자와 남자가 공히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가부장제에 의한 상처는 남자에게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자기 감정으로부터의 소외라는 현상으로 나타났고, 여자에게는 심리적 자기 증오와 사회적 불평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 간의 이해, 용서, 사랑이 요구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사이의 진정한 평등,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랑은 가부장제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 같이 해방된 온전한 인격과 사랑에 도달할 수 있는 영혼의 진보라는 것이다. 앨리스 워커는 동성애와 이성애를 모두 겪어본 경험을 근거로 남자, 여자를 구분짓지 않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사랑의 가치를 설파한다. 남자, 여자이기 이전에 모두 인간이라는 것이고 남자도 여자도 모두 사랑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건데 동성애와 이성애를 모두 겪어 보았다는 흔치 않은 고백에서 온 통찰이라 선뜻 공감이 가기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두번째, 당신은 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려 하는가?

여성으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삷을 누리게 만든 것,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해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 이겨내도록 만든 것,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듯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여성을 키워낸 것은 모무 페미니스트들이 이뤄낸 것들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로 커밍아웃을 하면 기가 쎄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너무 드센 취급을 받으며 일종의 박해와 시선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것에 대해 페미니스트에 모두 감사해야 하고 다시 태어나도 후회없이 페미니스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세번째. '한국남자' 알레르기 치료법은?

나와 같은 용어 '한국남자'를 쓰는 드문 사람을 만났다. 현경은 이 알레르기를 치료하기 위해 학문을 했고 유학을 했다. 그리고 주체자로서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미학적 거리의 부재, 숨막히는 삶의 관습과 조건에 저항하여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아 자신을 끊임없이 떠나며 희생자가 아닌 행위자 agent로서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이세상에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마음'으로부터는 다 떠날 수 있다. 우리를 억압하는 것에서부터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떠나기 시작하여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여 삶의 출구를 잃어버리지 않고 내 안에 바꿀 힘을 가진 행위자로 생각하면 출구가 보인다고 한다. 모든 여성이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힘, 용기, 자유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한국남자에 지배당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라 권한다. 그럼으로 인해 한국남자를 넘어선 인류와의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네번째, 진짜 사랑은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의 의미는 현실에서 진짜 사랑이 가능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문화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가치있다고 여겨지고 믿도록 키워진다. 진짜 사랑을 운운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이런 가부장제의 허구적 가르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 누구나 자아를 인식하고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꿈꾸는 대신에 남자들이 그러하듯 자아의 힘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진정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산소를 공급받을 때 그 지점에서 허황된 사랑의 망령된 이미지가 산산히 부서지고 참자아가 참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앨리스 워커는 한술 더 뜬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녀 사이의 관계에 한정지우지 말라. 세상에 존재하는 한 모든 관계에서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의미있는 것인지 말이다.

 

다섯번째, 독신은 결혼의 대안인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지 말자. 그냥 외롭자. 외로움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볼 기회를 준다. 특별히 자신의 세계를 이해 못할 남자와 결혼해 평생을 더 외롭게 사는 것 보다는 혼자 살며 자기 자신과 삶을 나누는 것이 낫다. 건강하고 즐거운 독신이 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다.

건강하기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해라.

신나는 자기 일을 갖자. 경제적 독립과 기쁨, 세상에 기여할 일을 해라.

친구를 만들자. 친구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간, 정열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취미를 갖자.

세상을 향한 봉사를 하며 나를 넘어서는 우리를 만나고 우리는 키우는 노력의 와중에 내가 완성된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자연이 주는 사랑을 느끼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명상과 기도를 통해 영혼이 자라게 해라.

위 일곱 가지 삶의 요소를 조화롭게 키워나가면 건강하고 즐겁고 화려한 독신, 아름다운 삶이 태어난다.

 

여섯번째,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는가?

미국에는 여성들이 만든 대안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개미같이 작은 개인들이 제국의 거대한 피라미드에 구멍을 내어 지배와 복종이라는 피라미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가 존재한다. 녹색 대학, 녹색 가게, 귀농 운동, 살림 공동체 운동, 대안 지역경제 운동, 대안 학교, 대안 문화운동 등이다. 이런 시도는 지금 여기서 유토피아를 살고자 하는 운동이다.

 

일곱번째, 엄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인가?

엄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경에게 어머니는 피해자로서 지닌 통찰로 인해 그녀를 풍성하고 얽매이지 않은 삶으로 인도해 줄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들이 그에게 미친 좋은 기운과 같이 그녀도 다른 여자들에게 좋은 기운이 되어 주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나의 바램도 '엄마처럼 살기는 싫다'는 말이 더이상 이 땅의 많은 딸들에게서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생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롤모델이 엄마힐텐데 그런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바램이 대부분의 여성들의 바램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런 존재의 부정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여덟번째, '내면의 아름다움'은 추녀의 변명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갖자. 자본주의의 대변인 매체가 선전하는 아름다움 말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자. 생명력, 자신감, 세상을 이해한 도통한 사람이 아름답다. 여신의 자신감과 전사 의식에서 유래한 화장을 하고 생명력, 자신감, 도통한 신비한 이해심을 갖자. 아름다움이란 그림자로 인해 더욱 빛난다.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 오랜 장마 후의 햇빛, 추운 겨울 뒤의 봄...

 

아홉번째, 여성의 독립, 어떻게 이룰까?

여성이 진정한 독립, 홀로이면서 함께하는 interdependence의 독립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경제적 독립,심리·문화적 독립, 그리고 이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영적 독립이다. 남자 종교 지도자를 우르르 따라다니는 여성 신도들이 나처럼 이이의 눈에도 거슬려 보였나보다. 훌륭한 자에게 배우려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영적으로 독립하도록 종교적 인도가 가능한 곳이 과연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이 대목에 이르면 기독교가 대표적으로 가부장제의 모양을 띤 종교라는 것이 쉽게 동의가 된다. 하나님이 과연 그런 분일까 싶다가도 눈이 교회에 이르르면 고개가 설레 설레 저어진다. 이 사회에서 유교가 아닌 진정한 기독교 교회를 만나는 것, 이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열번째, 여성의 스트레스, 어떻게 풀까?

인간인 이상,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이상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다. 깊고 느리게 숨쉬기를 터득하라고 조언한다. 도가 터야 한다는 소리이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동안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열한번째, 아름답고 강한 여신으로 태어나려면?

'남성신을 경배하면서 여성이 온저히 구원되고 치유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여성 신학자들은 모성적 문명의 중심에 있었던 여신에 대해 재론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여신의 가치는 여성이 온전한 자신을 꽃비푸는 신화적 상징을 찾음과 동시에 생명과 평화에 근거한 새로운 문명을 꿈꾸는데에 있다. 가부장적 지배와 복종의 문화가 다 죽여놓은 이 세상을 여신에 투영된 가치로 살려놓자는 것이다.《미래에서 온 편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열두번째, 지구를 살리는 여성의 힘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 정서적, 영적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것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자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한 후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두고 두고 간직하고 싶은 아름답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책 한권 전체가 모두 다 써놓고 싶을 정도로 명문이었지만 특별히 가슴을 울린 일부만 남겨 놓는다.

 

 

p.85

그 답변을 들으면서 나는 참사랑 true love은 참자아를 알아 채고 키워갈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자들이 괜찮은 남자 만나 편하게 알콩달콩 살기를 꿈꾸기보다 먼저 자기의 참자아를 만나 내가 누군지 내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를 찾아 '도통'하기를 원한다. 여성들이 모두 도인으로 사는 세상을 꿈꾼다. 참아자를 만나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시작할 때, 그리고 우주 전체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낄 때 여성은 참자아를 만난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이 참사랑을 남자하고만 해보려는 이성애의 감옥에 갇혀 많은 세월을 낭비한 것 같다.

 

p.86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로맨스는 내가 원하는 사랑의 환상과 꿈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보려는 것이고, 진짜 사랑은 내 파트너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가장 좋은 참사랑의 길은 나 자신이 내가 사랑하고 싶은 이상형,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데 있다."

나는 이 말을 매일 되새긴다. 나는 내가 결혼하고 싶은 대상이 되고 싶다. 내 사랑의 궤적을 돌이켜봐도 내가 진화된 만큼 진화된 파트너가 내 삶에 나타났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것이 재미있다. 내가 조금씩 진화되어갈 때, 얼마나 아름다운 진화된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내게 주파수를 보내 나를 찾아낼 것인가? 나는 그들이 누구일지 궁금하고 그들을 만날 희망에 산다.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거리에서, 데모 군중 속에서, 명상센터에서, 인간과 세상, 지구를 향한 사랑과 지혜를 넓혀가는 그렇나 성숙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은 보물찾기보다 더 재미있다.

 

p.103

이제는 외로움이 찾아와도 두렵지 않다. 먼 길 걸어 내게 온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아들인다. 그리고 그냥 같이 있는다. 그 친구의 행동, 말, 느낌을 잘 관찰하면서, 이번엔 어떤 선물을 가져왔나 바라본다. 외로움은 내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준다.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는 말에 동의한다. 외로운 자유를 피해 구속하는 사랑 속으로 들어가면 더 큰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자유로운 사랑이 아니면 할 생각이 없다.

 

p.104

남자들은 외국 유학에서 돌아오면 여자들이 줄을 서는데, 여자는 외국 유학을 마치면 아무도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아 한다. 그래서 외롭게 사는 여성들도 많이 보았고, 그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해 자신의 세계를 이해 못하는 남자와 결혼한 후 괴로움을 겪는 여성들도 많이 보았다. 자신의 세계를 이해 못하는 파트너와 삶을 나누는 것은 혼자 살며 자기 자신과 삶을 나누는 것보다 훨씬 더 외로운 일이다.

 

p.106

친구가 가르쳐준 잠언 중 이런 말이 있다. "키 큰 나무숲을 지나니 내 키가 더 커졌다. 깊은 강물을 건너니 내 혼이 깊어졌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바라는 멋진 독신의 삶이 아닐까?

 

p.123

지금 이 세계를 먹어가고 있는 제국의 힘에 대항하여, 또 어머니 지구를 죽여가고 있는 브레이크 고장난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그러니 혁명의 그날, 후천 개벽의 그날, 예쑤 재림의 그날, 미륵불이 몰고 오는 서방정토의 그날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냥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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