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리스 레싱은 어떤 사람인가

1919년 이란(당시 페르시아)에서 태어났고 부모는 영국인이다.

1925년 남아프리카 짐바브웨(당시 로디지아)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내며 식민지 원주민의 삶을 목격했다.

두 번의 이혼을 겪고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1949년 영국으로 이주했고 1950년 첫 장편 <풀잎은 노래한다>를 발표했다.

이후 많은 작품을 통해 세계대전의 후유증, 결혼제도와 성의 문제 등 동시대의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2013년 영국에서 별세했다.

 

작가의 일생과 2019년 한국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소설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결혼 제도 하에서 여성의 삶은 얼마나 폭넓고 오래도록 억압되어 있었던 것인가. 여성이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이야기해야 받아들여질 것인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회 재생산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달라지지 않으면 정말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아니 심각한 위기가 초래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급추락하는 출산율처럼.

 

이 책에는 단편 11편이 수록되어 있고 그중의 마지막 단편이 책의 제목과 같은 ‘19호실로 가다이다. 다른 이야기들보다 마지막 이 이야기가 주는 인상이 강렬하다. 책의 제목이어서도 그렇고 표지에 있는 그림이 19호실에 있는 그녀, 수잔 롤링스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19호실에서 수잔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인생에서의 막다른 선택을 한다. 나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을 수 있다는 것도 신이 부여한 자유의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동물이나 식물이 인간처럼 사회적인 맥락에서 생의 의미 없음을 이유로 자살을 할까? 랭던 길키는 <산둥수용소>에서 세상의 일부가 되지 못하면 삶은 끝나버린다고 했다. 강남순은 <배움에 대하여>에서 자살은 언제나 이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는 의미 물음과 연결이 된다. 또한 그러한 의미 물음은 이 삶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의미 물음을 하는 인간이 충분히 이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이 삶의 부조리, 절망감, 지독한 고독을 넘어설 기쁨이나 행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때 이 살아감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짐으로 다가오고, 그 견디기 어려운 짐을 자살로서 내려놓고 싶어 한다.‘고 했다.

 

수잔의 결정은 이해가 된다. 아이가 있는 사람이기에 그 결정이 더 신중하고 무거웠을 것 같다. 그 방법이란 것이 가스를 틀어 놓는 것 같은 손쉬운 방법이었다니.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가끔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 내 목숨을 앗아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고속도로 같은 데서 맞은편의 덤프트럭이 내 차를 덮쳐 순식간에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상상도 해 본다. 그런 면에서는 이 당시의 가스 난방시설이라는 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수잔의 삶은 여자의 인생에서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과 시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연결된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게 해 주었다. 혼자만의 공간이나 시간이 아무리 많이 확보되면 뭐하겠는가. 그 많은 공간과 시간을 통해 세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지금도 같다. 결혼이나 육아로 삶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때, 자신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또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회적 역할이 존재하지 않을 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해 나갈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 방법이 많지 않고 뜻을 이어 나가기가 어렵다.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사회가 이를 여성들의 문제라고 보는 인식도 문제다. 그래서 그 출구로 자녀의 학습매니저가 되는 많은 엄마들을 그들이 문제라고 탓할 수 없다. 적어도 학습매니저 역할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게 되면 되었지 혼자서 풀 수 없는 문제를 붙들고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건 아니니까. 물론 자녀의 학습관리를 통해 자신의 성취감을 느끼는 것 대신 대안적인 방법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 대중이 선택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과 사회의 지지가 필요한데 구체적으로 생각이 진전될수록 꽉 막힌 우리 사회의 답답함이 느껴지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조금씩이지만 달라지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은 좀더 다양해 보인다.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을 비교해보면 격차를 크게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계속 이야기되어야 한다. 계속 이야기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