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높은 데 올라간다는 건 무엇일까?

높은 데, 아주 높은 곳에.

왜 옥상에 올라가고, 크레인에 올라가는 걸까?

그냥 말을 하면 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까.

2019년에도 사람이 크레인에 올라가 일년이 넘도록 아직 있다. 이렇게 사실적인 필체로 쓰고 있자니 나도 얼마나 무감각한 인간인지... 2017년 11월부터 오늘까지 421일째,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꼭대기에 파인텍지회 소속 조합원 2명이 올라가 있다. 파인텍이 모회사인 스타플렉스와 약속한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이유로 시작된 농성이라고 하는데, 급기야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고 한다.

1931년에 강주룡은 미처 본 적이 없었을텐데 어찌나 억울했는지 높은 곳에 올라갔다. 요즘 사람들에게 을밀대는 냉면집으로 알려져있는데 을밀대에 올라 고공농성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 내려왔으나 옥고를 치르고 그후로 오래 살지는 못했다. 너무 안타깝다. 깨어있다는 이유로 서른에 생을 다한 조선의 아름다운 청년이다.

강주룡은 평범한 우리나라의 한 시골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그런 주체성을 가질 수 있었는지 참 궁금하다. 부모의 가르침이 특별했던 것도 아닌 것 같고, 남들처럼 결혼 적령기에 결혼하기까지는 고만고만한 삶을 살았는데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생의 주체성에 눈뜨게 했는지 책을 다 읽어도 의문이다. 부족한 사료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일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여자가 스스로 생을 주체적으로 바라본다는게 이렇게 특별한 일이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는 강주룡이 첫 남편과 사별 후 아버지의 계략이었던 늙은 남자와의 재혼을 피해 고향에서 도망쳐 평양에서 공장에 근무하며 모던 걸을 꿈꾸던 때가 참 좋다. 가족이나 여자로서의 운명적인 무거운 짐 없이 혼자 삶을 누리며 이제까지와 다른 인생을 꿈꿔보던 그때가 좋다. 모던 걸을 동경하며 잡지의 사진을 오려 모으던 시절이 찬란하고 애틋하다. 거기서 좀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다. 인간적인 연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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