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있다
서현섭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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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은 없다>가 공전의 히트를 할 때, 나는 과히 그 책이 그리 '땡기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일본어를 막 짝사랑 할 때였고 또 내가 알던 일본인 친구는 일본을 '없다'고 단정지을 때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알곡처럼 튼실하고 진실한 내면을 가진 이였다.

때문에 저자는 '일본은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읽어봐야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리 국민들에게 작은 위안이나 주는 그런 책이려니 치부해 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책꽂이에서 '일본은 없다'를 발견하고 내 돈 안들이고 볼 수 있다는 것에서 회가 동했다. 그러나 그 책을 보고 나서의 소감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는 어쩜 타국을 이렇게 씹어놓은 책에 베스트셀러라는 영예를 주었는지.

나의 흥분에 일문학을 전공한 한 친구는 '일본은 없다'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있다'도 있다고 하였다. 뭐라고? '일본은 있다'도 있다고?

<일본은 있다>(서현섭 저)의 저자는 외교관으로서 일본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또 저자 개인적으로 일본과 일본 사람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과정에서 나온 책이라 '일본은 없다'에서 받은 부끄러움을 조금은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에 대한 소식은 '일본은 없다'의 저자와 '일본은 있다'의 저자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동네 책방에서 유재순씨의 <일본여자를 말한다>를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꼼심한' 느낌과는 달리 서현섭씨의 그것과는 또 다른 색깔로 일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책을 한 번 읽어보고 괜찮으면 그 사람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하품(下品)의 일본인>은 그 과정에서 읽게 되었다. 그 두 권을 끝으로 유재순씨도 잊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녀의 이름이 회자되기에 다시금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보니 그녀는 여전히 두 발로 뛰어다니며 글을 쓰고 있었다.

사교성은 얼마나 좋은지 그녀가 며칠 집이라도 비울라치면 그녀의 자동응답 전화에는 수십 통의 메시지가 쌓여있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 십대 부부와 그 아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하루 종일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일상을 낱낱이 취재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지금 몇 시인가?>를 보면 오늘날 일본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장기 불황 속에서 나름대로 일본 경제를 살리는 '100엔 숍'에 관한 이야기며 정규직으로의 직장을 구할 수 없어진 젊은이들이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프리터 족들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교육에 대한 이상 열기는 후끈후끈하다 못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는 두 살 된 아이가 평소 같은 유치원에 원생을 둔 그리하여 서로 친하던, 엄마의 친구에게 유괴되어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까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이유는 자신의 자식들은 떨어짐에 반해 친구의 자식들은 명문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자랑스레 붙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우, 해마다 성적을 비관한 나머지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던지는 학생들이 그 얼마던가. 성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기에 그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을 해야 되고 또 그 성적을 질투하여 어린 생명을 살해까지 한다는 것인지.

남의 나라에서 발로 뛰는 글쓰기를 하는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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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0 - 탄핵받는 '탄핵' 그 이후
고종석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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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준만’ 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책의 제목은 잊어버렸으나 ‘성역과 금기에 도전 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선채로 몇 장 읽어보았었다.

그러나 구매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강준만’이라는 이름과 표지 안쪽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던 저돌적인 강 교수의 얼굴은 나도 모르게 기억하게 됐다. 물론 그때는 ‘좀 의미 있는 별종 같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고 좀 더 유명(?)해지면 그때 사 보자 하는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2000년 가을 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곳과 인접해 있는 모 대학 앞의 서점엘 갔다가 다시금 강 교수를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다 우연히가 아닌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춰지는 그런 명당(?)자리에서 강 교수의 단행본 <인물과 사상>과 <월간 인물과 사상>을 만났다.

강준만 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것은 그 때 처음 본 잡지였다. 가격도 4000원인가로 저렴했기에 호기심도 충족시킬 겸 가벼운 마음으로 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책장을 펼치니 <월간 인물과 사상>에 대한 작은 소개가 있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은 성역과 금기에 도전합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우리사회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구독을 권유해 주십시오.>

‘읽어보고 괜찮으면 당연히 구독을 권유하겠지 별 걱정’하면서 책장을 하나하나 넘겼다. 그것이 강준만 교수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사랑이건 물건이건 또, 무엇이건 나는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인데 <월간 인물과 사상>이 그랬다.

처음 몇 페이지를 딱 읽는 순간 이 잡지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첫사랑 따위와는 또 다른 내 마음에 폭풍을 주는 책이었다. 그로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는 다음달 <월간 인물과 사상>을 사러 서점엘 갔다. 어떨 땐 너무 일찍 가서 다음호가 나오지 않아 다른 책을 사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지 말고 아예 정기구독을 하면 그런 허탕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인데, 바보 아니야 자문해 보기도 했지만 그냥 다달이 서점엘 가서 내손으로 직접 뽑아내는 손맛을 양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월간 인물과 사상>을 사면서 곁들여서 다른 책도 구경하고 사고하는 일련의 과정이 좋았다.

대학촌의 서점은 보통 동네서점과는 달리 베스트셀러 보다 읽으면 좋을 각 분야의 양서들을 집약해 놓아서 책을 고르기도 편하고 책을 사도 후회가 없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을 보기 전에는 신문의 광고나 신간소개 코너에서 읽을 책들을 낚곤 했는데 <월간 인물과 사상>을 보고난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 맨 뒤쪽의 신간 안내 코너를 보면 대략 만족이었다.

그곳에 소개된 신간은 신간한권으로 끝나지 않아서, 어떤 책들은 그 책이 너무 괜찮아서 저자의 또 다른 책들도 사 읽게 되곤 하였다. 또, 저자가 괜찮으면 그런 저자를 발굴한 출판사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러다 멋진 출판사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중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또 하나의 문화>와의 만남이다. 조한혜정, 박혜란, 고 고정희등 진보적인 여성주의자들이 만든 <또 하나의 문화>동인은 부 정기적으로 동명의 동인지를 내었었다.

그 ‘또문’ 시리즈는 같은 주부의 입장이고 대한민국여성으로서 나를 돌아보는데 너무도 도움이 되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책들을 만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르든가 영 못 만나고 이승을 떠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우연한 호기심으로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는 통째로 지갑을 줍는 행운에 비 할 바 없는 행운을 맛보았다. 그리하여 2001년과 2002년 두 해는 도서출판 <개마고원>가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오는 책들과 <월간 인물과 사상>이 소개하는 책들을 사 보느라 정신없이 행복했다. 그때는 둘째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였는데 달리 태교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단행본 <인물과 사상>에서 강준만 교수가 언급하는 숱한 명제들은 별 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 비판적 사고, 혹은 비판적 책읽기가 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단행본 <인물과 사상>, 그리고 일련의 강 교수의 저작들에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정 딴 판의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어 천만 다행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강준만을 ‘이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라고 하였던가. 그는 정말 이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었다. 언론 개혁에 관한 숱한 외침들, 지식인이여 가면을 벗자, 지연 학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패거리문화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일갈 등등 그가 내뱉는 단어하나하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려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화두들이었다.

아무튼 강준만 교수는 나에게 독서의 기쁨을 단편적으로가 아닌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고 확장시켜주었다. 그리고 독서의 기쁨을 넘어 내 삶을 보다 나은 변화에로 이끌어 주었다. 강준만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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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와 문화
하재근 지음, 최윤진 그림 / 자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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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언저리, 윤후명의 소설 <敦惶의 사랑>을 아주 감미롭게 읽은 후로 서역 만리 어딘가 '돈황'이라는 도시에 환상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내게 '이어도'와 같은 환상의 나라였다.

그런 환상의 돈황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하재근의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서다. 그런데 사고 보니 이 책은 만화책이었다. 나는 만화책에 난독증이 있는데 이 일을 어이할꼬… 난감했다.

혹자는 그림이 있으니 이해가 빠를 것이라 하겠지만 그림이 있기 때문에 나는 머리 속에 따로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이해를 하지 못한다. 어떤 만화가는 그것을 만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였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책을 몇 장만 읽어도 하품이 나오듯이 만화를 봤을 때의 내 상태가 그러하였다.

그런데, 하재근의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이런 나의 이상 증세가 발동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만화이기에 오히려 더 머리에 쏙쏙 잘 들어왔고 내가 만화 난독증 환자라는 것도 잊고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 또한 '무조건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이 대원칙'이었다고 하였는데, 정말 쉽고 재미있으면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무엇보다 도입부가 환상으로 남아 있는 둔황 얘기에서 출발하는 데는 내 호기심의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양문물의 보물창고인 둔황은 송나라 때 변란에 휩싸이자 장경동에 서적을 모아놓고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러 장경동은 잊혀졌다가 청말, 도교를 신봉하던 도사 왕원록이 장경동을 발견하여 청조에 알렸으나 청조는 장경동 관리자란 직함만 주고 '나 몰라라'하였다. 이 틈을 타고 영국과 프랑스의 도굴꾼들이 왕원록에게 사바사바하여 다량의 유물을 훔쳐갔는데. 아뿔사. 거기에 혜초 스님의 기행문 <왕 오천축국 전>도 있었겠다.

코믹하면서도 핵심을 포착하는 그림에다 간단 명료한 설명을 곁들인 이 책은 몇 장 넘기지 않아 금세 빨려든다. 이런 책이 예전에도 있었더라면 세계사 점수 잘 받아서 더 좋은 대학에 갔을 텐데…. 끄응.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고사성어들을 외울라치면 고사성어들의 자구 해석만으로도 머리가 딸려 고사의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성어의 뜻만 간신히 외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옛날 외운 성어의 고사들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머리에 정리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낚시꾼 강태공이 남긴 말이었다. 나이 팔십이 되도록 공부만 하는 영감이 보기 싫어 강태공 마누라는 강태공을 차버렸다. 그 후 낚시만 하며 때를 기다리던 강태공이 세월이 흘러 제나라의 왕이 되자 옛 일을 후회하며 "영가암"하면서 찾아갔다.

그러자 강태공이 신하에게 떠온 항아리 물을 엎질러라 해놓고선 "이봐 할망, 엎지른 물 담을 수 있어?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야"하고 말했다나.

아무튼 이 책은 무지하게 재미있다. 재미와 더불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동양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회복된다. 알게 모르게 서양문화 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우리들의 마음에 똥침(?)을 날릴 수 있다.

중국문화하면 왠지 주눅이 들고 일본문화하면 '너그들 다 우리 것 배워 갔제'하면서 목에 깁스하는데 우리 이런 이중 잣대 같지 말자해.

중국 문화는 그 자체로 훌륭하고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윤색하여 만든 우리문화도 소중하다해. 또, 우리 것을 가져가 그들 나름으로 꽃피운 일본 문화도 아름답다해. 우리는 모두 자랑스런 한자 문화권 가족이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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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실은 - 디알북
박대령 지음 / 데일리서프라이즈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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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때론 그림책이 필요하다?

그림책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글자를 모르거나 혹은 글을 막 배우려는 유아에게나 해당되는 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늘 이 한권의 책을 보고 때론 어른들에게도 그림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또 일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내용이 마무리되는 소설 같은 것보다 이런 책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분량 많은 책을 한자 한자 읽어나가는 것을 불도저 앞의 삽질처럼 미련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해가기도 한다.

실제로 국문과에 다니던 친척학생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은 국문과를 다녀도 조정래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니면 간신히 그의 이름은 알고 있고 책들의 제목도 알지만 한권이 아닌 열권씩이나 된다는 것을 알고는 아예 읽기를 포기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국문과에서 배겨 내냐고 하니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전공 책 가지고 공부하고 시험을 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하였다. 또 요즘은 인터넷에 두드리면 안 나오는 자료가 없으니 원재료를 날로 감상하기보다 원재료를 홍보하기 위하여 내 논 간략한 홍보문이나 그 밑에 달린 리뷰만 대충 보아도 숙제의 답은 나온다고 하였다.

생각하면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장점도 있는 것 같았다. 역으로, 그런 짧은 리뷰들을 읽다가 이 사람들이 이렇게 감동을 받았다고 하니 나도 한번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품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런 성급한 세대 혹은, 시간 없는 사람들에게 딱 알맞은 책을 하나 발견하였다. ‘디알북’이라고. 디알북 이라니 그게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할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들은 디알북 그 세 글자도 너무 길어 ‘달북’이라고 한다던가.

▲ <대한민국 사실은>
일명 디알북<대한민국 사실은-데일리 서프라이즈 출판>은 한 네티즌(아이디: 디알)의 ‘도표로 보는 세상이야기’다.

그의 잠재력은 한나라당 김윤환 전 의원의 동생 김태환 의원이 오징어로 골프장 경비원의 뺨을 때린 사건에서 갑자기 분출하였다. 야구선수 강병규의 잠재력이 선수협 대변인 하다 물꼬가 트였다면, 디알 박 대령의 잠재력은 김태환 의원의 오징어에서 출발하였다.

아무튼 그는 날짜지난 신문기사들을 검색해가며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혹은 매일매일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린 이야기들의 ‘핵심을 요약’하여 하나의 ‘도표’로 만들었다.

서민경제가 진짜 어려운 이유는? 우리교육이 망해가는 진짜이유는? 대한민국 총리가 특정신문을 나무란 이유는? 서민을 어렵게 만드는 수구 기득권자는 어떤 분들인가 등등의 제목아래 100편의 도표와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알짜설명으로 한권의 책을 이루고 있다.

너도 나도 경제가 어렵다는데

기자들은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전하기에 앞서 꼭 재래시장에 가서 손님 없어 애태우는 상인들의 인터뷰를 배경으로 깔며 경제의 어려움을 전한다. 그러면 우리는 재래시장이 그렇게 썰렁하도록 먹지도 입지도 않고 산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진대 그냥 관성적으로 그렇구나 하면서 경제를 살려내라며 대통령을 윽박질렀다.

그러나 실상은 재래시장에 손님이 없는 것은 대형할인점으로 다 몰리기 때문이 아닌가. 나부터도 언제부터인가 물건 사러 갈 때는 할인점으로 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디알은 소비자들의 이러한 동향을 지난신문을 뒤져서 화살표 두개와 몇 개의 숫자로 간단히 정리해준다.

즉, ‘지난 4년간 대기업 할인점의 매출이 77%증가 할 동안 재래시장의 매출은 35%감소했다’고. ‘대기업 할인점의 연간 매출액이 37조원임에 반해 재래시장 매출액은 13조원’, 1억도 벅찬 나인지로 조 단위는 감이 안 잡히나 할인점이 재래시장 손님을 왕창 빼앗아 간 것은 확실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말끝마다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힘써라’하고 국민들 또한 대통령에게 제일 바라는 것이 경제를 살려 달라는 이야기인데. 대통령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것도 아니고, 수 십 년 진행되어온 암 환자가 하루아침에 건강 할 수 없듯이 우리경제 또한 나름의 조치를 취하긴 해도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디알은 ‘실무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다. ‘회사의 실무적인 일은 회장이 아닌 사장이 하듯이 나랏일의 실무자는 전국 시도지사 및 지방 자치단체장’이라고 정리하였다. 디알 도표를 보니 전라도와 충남을 빼고는 다 한나라당 소속이 시도지사였다. 그뿐인가 ‘시장, 구청장, 군수의 60%가 시도위원71%가 한나라당 소속’이라고 하였다.

즉 껍데기만 집권당이 열린우리당이지 그 속은 한나라당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야당 국회의원들은 혹은 일부 국민들은 막연히 대통령을 향해 아우성을 치기보다 시도지사들을 닦달하거나 혹은 그들의 애로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다들 교육이 문제라는데

어렴풋이 듣고 잊어버렸는데 나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실력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OECD회원국(선진 32개국)중 과학이 1위, 수학이 2위, 독해력 6위라고 한다. 재치만점 디알은 넓적한 화살표 속에 ‘이런 아이들을 데려다가’라는 말을 삽입하여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

전 세계 500위권 대학교중에 하버드1위, 도쿄대 20위, 서울대는 화살표를 보아하니 100보다 200에 가까운 등수였다. 고교등급제를 주장하고 실지로 등급을 적용하여 학생을 선발한 연세대와 고려대는 300위와 500위다. '도대체 대학에서는 4년 동안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

대학선생의 문제라기보다 학생 스스로 고교 내내 성적에 찌들어 대학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공부를 놓아 버렸다면 그런 학생 더 이상 필요 없으니 과감히 잘라 버리면 될 것이 아닌가. 혹시 그렇지 못할 속사정이라도?

‘사학재단들의 경우 재정의 80%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 한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국고보조금이었고 재단 전입금은 극히 일부였다. 그러니 대학 관계자의 눈에는 학생의 머리수는 곧 돈이므로 함부로 자르지 못할 것이다.

행정수도는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던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람들은 대부분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다. 이유를 물으니, 아, 행정수도가 대구에 온다면 모를까. 충남으로 가면 대구 부자들 다 대전으로 이사 가버리고 대구에는 쭉정이만 남을 것이라나.

“이 의근 지사는 경북북부가 살아날 것이라 하여 찬성하던 쪽이던데요? ”
“경북 북부? 그건 모르겠고 암튼 세금 많이 내야 되는 것이 싫어.”

행정수도만이 세금 잡아먹는 도둑일까. 디알 도표를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행정수도 건설비용은 단번에 11조가 드는 것이 아니었고 해마다 1조씩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역시 1억에도 손이 떨리는 나인지라 1조라니 감이 안 잡히는데,

‘매년 수도권이 교통 혼잡으로 지불하는 국가 손실액이 10조이고, 파주 신도시 6조, 일산 신도시 3조, 서울시 환경 공해비 8조, 청계천 문화재 파괴비 12조, 김포 신도시 7조, 강북 뉴타운 건설 100조......’ 왜 유독 행정수도 건설비용 11조에만 인색한 것일까. 그것이 22조로 부풀려 졌다 해도 강북 뉴타운 건설시의 100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진대.

그 외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대한민국 사실은>의 100편의 도표전체가 ‘한눈에 쏘옥 들어오는 알짜배기 진실’들이다. 상세한 것은 직접 감상해 보시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특히나 나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 흥미로운 소재들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헌법 재판소 나이: 나는 헌재의 나이가 16세 미성년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8인 법관들의 붉은 옷자락과 근엄한 얼굴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느꼈다. 그랬는데, 실은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하도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가두어 들이다 보니 그에 대한 견제로 어쩔 수 없이 하나 만들어 준 ‘법 해석 기관’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법 해석 기관일 뿐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지존'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한 달 월급: ‘MBC지분 30%, 부산일보 지분 100%, 경향신문 사옥땅 700평을 강탈하여 만든 516장학회(81년 이후 정수 장학회).’ 박근혜씨는 95년부터 10년동안 정수 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였고 연봉이 2억5천. 그러면 대략 월 2000만원이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연봉: 세 아들을 모두 군에 안 보내는 기염을 토한 개신교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조 목사의 연봉은 대략 ‘11억3천만원 (동아일보 송평인 기자)’이라고 한다.

그리고 병역을 면제 받은 국회의원은 왜 그리도 많은지. 굴비사건의 안상수,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는 이명박, 한나라 경제통 이한구, 강릉사나이 최돈웅, 법사위의 짱 최연희 등등 손가락 발가락 다 합쳐도 모자라고 자식들까지 합치면? 머리에서 김이 난다.

각설하고. 30년 군사 독재와 그에 기생한 수구 기득권들에게 찌든 우리의 내면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또, 잘못 알고 있는 우리의 현대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다음의 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정래 선생의 대하소설 <한강>과 강준만 교수의 <현대사산책 시리즈> 그리고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1, 2>권,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 대령의 <대한민국 사실은>을 꼭 추천하고 싶다.

성질이 급해서 혹은 사업이 바빠서 진득하니 위의 책들을 다 못 읽겠는 사람들에게는 급한 대로 디알 박 대령의 <대한민국 사실은>을 먼저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게 숨고르기를 한 다음 훼손된 영혼의 복원하기 위하여 꼭 나머지 책들을 찬찬히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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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 해피? - 우리 이웃 50명이 오마이뉴스에 올린 행복 이야기
박상규 외 지음 / 한길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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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사는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기사 중 오십 편을 골라 책을 한 권 만들기로 했는데, 거기에 내 글도 한편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전화를 건 이유는 동의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50명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니 오히려 내쪽에서 영광이라고 하였다. 한길사는 지명도 있는 출판사인 만큼 책도 좀 팔리겠고(?), 50분의 1이라는 미미한 참여지만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렇게 <오마이뉴스>로 부터 전화를 받고 난 다음, 잊은 듯하면서도 늘 마음 한켠엔 책이 언제쯤 나온다더니 왜 아직 안 나오지 하며 내심 궁금해 했다.

시간이 흘러 8월 하순경, 드디어 책이 나왔다는 소식과 함께 책을 부쳐주겠다고 하였고 책은 빠르게도 바로 다음날 도착하였다. 때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내 집에서 2박3일을 보내게 된 두 친구가 있어 그들에게 각각 한권씩 나눠주었다.

친구들은 신기해하며 내 기사 '그때 정말 내 한테 삐삐 안쳤나?'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는 재미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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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정말 내 인데 삐삐 안 쳤나?"
'디알북'이 뭐예요?


“정말?”
“그래.”
“뭐 그렇기까지야.”
“아니야, 정말 재미있어. 컴퓨터로 볼 때 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네.”

그러면서 친구들은 앞장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나 또한 읽어보니 처음 보는 내용들이 많아서 새 책을 산 느낌이었고 나름대로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조각 천을 바느질해서 만드는 퀼트 제품이 아름답듯이 <아유해피> 또한 퀼트 못지 않은 매력이 있었다.

팥빙수를 매개로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맛있게 그려준 김은식 기자, 남의 양복지어주는 일을 업으로 하다 기성복이 창궐하는 바람에 양복점을 접고, 양복 만들던 고운 손이 막일로 거칠어진 단벌신사 아버지에게 육순선물로 새 양복 한 벌 해드렸다는 효자 이봉렬 기자, 아빠가 가난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것을 뱃속의 아기도 아는지 전진한 기자의 아내는 모처럼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입덧의 시기에 겨우 먹고 싶은 것이 호떡이었다나.

편완범 기자의 기사 '내 직업은 예식장 전속 주례사'는 주례사의 이면을 볼수 있어서 재미있었고 그 짭짤한 수입에 군침이 흘렀다. 그리고, 사위될 사람에게 어려운 한자시험을 치르게 했던 김령희 기자의 아버지 얘기는 읽는 내내 김 기자의 아버지가 내 옆에 계시는 것처럼 떨렸다.

아무튼 50인이 함께 만든 이 '퀼트 제품'이 대박까지는 언감생심이고, 그저 조금은 회자되길 바랐다. 그렇게 그저 누군가 읽어주길 마음으로 바라기만 할 뿐 나는 아무런 노력 내지는 판촉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듯이 <아유해피>를 출산해놓고 기자들 모두가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는지. 워낙 책이 안 읽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50명 중에는 이미 단행본을 낸 분들도 있던데, 혹여 자신들의 단행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무심히 대한 것은 아닌지, 혹은, 단지 50분의 1일 뿐이므로 모두들 자기 자식이 아니라 생각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나는 무엇보다 <아유해피>가 나름의 향기가 나는 책이라 생각하였기에 모두의 무관심이 안타까웠다. 내게 돌아올 몇 만 원 원고료 때문이 아니라, 사실 그러한 것 때문에 아무에게도 얘기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권의 가격으로 50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는 명분을 발견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선 나부터 <아유해피>의 독자가 되기로 하였다. 가끔 책 선물을 주고받는 지인에게는 다른 책이 아닌 <아유해피>를 선물하였다.

그리고 "요즘은 뭔 책을 사야 할지 몰라"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의 연인>의 수혁 버전으로 <아유해피>를 이야기하였다.

“한길사에서 펴낸 <아유해피>란 책이 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다.”
“그게 무슨 말이고?”
“궁금하면 사봐, 줘. 그 속에 내가 있다고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그 속에 내가 있다고 해봐야 막상 사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나부터도 두세 번 <아유해피>를 보내니, 더 이상 부칠 데가 없었다. 그렇게 <아유해피>를 나도 잊고 남도 잊고 모두들 잊어가던 찰나, 서프라이즈'의 <도표로 보는 대한민국 사실은>(디알북)이 그 구성원들의 엄청난 관심과 노력으로 급속도로 퍼저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오마이뉴스가 자신들이 가진 인프라를 이용할 줄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십이월의 끝자락에서 잊었던 <아유해피>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냥 이대로 소멸이 아닌, 부활을 꿈꿀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내가 너무 터무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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