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강상중
강상중 지음 / 삶과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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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꿈
'강상중'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은 것은 수년 전 신문의 한 작은 기사에서였다. 재일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도쿄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약간은 웃는 모습의 잘생긴 그의 사진을 본 나의 당시 반응은 '잘나가는 재일동포의 아들로 태어나 승승장구하며 살다 그 어렵다는 도쿄대 교수까지?'라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다가 지난해 언젠가 우연히 NHK에서 그가 일본 우익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을 보았는데 표정이 너무 어두웠었다. '아니, 저 사람이 저렇게 어두운 사람이었나.' 그것은 토론내용의 심각성 때문에 어두워 보였다기보다 어둠이 늘 그의 삶을 관통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이 책 <재일 강상중>을 발견하였다. 역시나 어두웠다. 아니 이름난 재일 교포들은 다들 왜 이렇게 '고뇌'라는 글자를 얼굴에다 쓰고 다니는 거야. 신숙옥씨의 얼굴을 봐도 유미리씨의 얼굴을 봐도.. 모두 그 얼굴 어딘가에 쓸쓸함 내지 깊은 상처가 묻어난다.

1950년, 나는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서 재일(在日)2세로 태어났다. 그리고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세계는 많이 달라졌다. 분열된 한반도도 지금 바야흐로 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재일의 존재는 변하지 않고 있다. 시간은 지났으나 1세들의 마음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 재일과 일본, 재일과 남북, 남북과 일본과의 사이에 있는 분열이 해소되고 화해가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때, 그때에 비로소, 나는 참다운 1세들과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재일 교포 1세들의 마음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반생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자신을 있게 한 재일교포 1세인 부모세대들의 삶 또한 반추하고 있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그의 어머니 우순남 여사는 얼굴 한번 본 것이 전부인 약혼자를 찾아 18세에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왔다. 그 후 그분은 '문맹'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간난신고의'나날을 살아 내었다. 남의 나라에서 평생 '문맹'이란 꼬리표를 달고 산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정체를 오로지 '고향의 제의와 풍습, 식생활과 의례'를 통해 확인하며 살았다.

물론 자식은 어머니의 그 세계를 재일동포라는 '불명예의 표식'으로 생각하며 견딜 수 없어하며 유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인권운동가 서준식씨도 비슷한 고백을 하였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문맹이었다고.

두 예에서 전체를 단정할 수는 없으나 나의 부모 세대가 그러하였듯 그 세대들은 다 자신의 문맹을 한탄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 땅에서의 문맹과 제일동포 1세대가 겪었을 문맹의 고통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2중의 문맹을 경험해야 했기에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경상남도 창원군 남산리의 한 가난한 소작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에 온 것은 만주사변이 일어나던 해인 약관 15세 때의 일이었다. 15세라면 요즘 중학교 2학년. 나의 돌아가신 큰 아버지도 그러했듯 그때는 그 어린나이에도 다들 가난을 면해 보고자 배타고 바다건너 남의 나라에 갈 생각들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도일하여 사춘기의 날들부터 얼마나 많은 직업과 장소를 옮겨 다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떠돌이 삶을 살았다. 남의 나라에서도 장남은 장남인지라 헌병생활을 하던 동생의 승진을 위해 침식을 잊으며 일을 하기도 하였다. 공습으로 여동생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을 봐야 했고 장남을 가슴에 묻었다.

강상중의 부모뿐만이 아니라 재일동포 1세들은 평생을, 우리를 침략했던 나라에서 모든 감정을 절제하며 숨죽이며 그리고 천대받으며 살았다. 한편으론 가슴속에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강상중. 그는 와세다 대학시절 그동안 써오던 이름 '나가노 데츠오'를 버리고 '강상중'(姜尙中)으로 개명하였다. 알고 보니 지문날인 거부 그 첫 번째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세계는 '동북아시아'라는 큰 그림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재외동포의 수가 약 300만이나 된다고 한다. 본국으로부터 잊혀진 채 살고 있는 그 300만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서로 돕고 교류하는 삶을 그는 꿈꾸고 있었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되고 이후로는 보다 덜 엄숙하고 가볍게 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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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문의 향기 001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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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젊은 날 한때는 이 세상에 외로운 사람은 나 혼자 뿐이고 모두 희희낙락 잘도 살아간다며 내 고독을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고독을 이기는 나름의 방편으로 이것저것 동지를 찾아 헤매었다. 현실의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날 수 없으니 내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책이나 음악, 그림, 자연에 빠졌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외로운 것은 일종의 사회 부적응증 혹은 궤도이탈이라 생각했기에 외로움에서 어떡하든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음악을 들었고, 외로움을 이기고자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또, 외로움을 잊으려 자연을 벗하였고, 귀밑머리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의 존재를 느끼려 애썼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은 고독을 치유하고 사회와 가까워지게 하기는커녕 사회에서 더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다. 박이문 선생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고독을 마냥 헛되다고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나의 이십대 기억속의 박이문 선생은 고등학교 국어책속의 <길>이라는 수필 단 한편으로밖에 기억되지 않았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길>을 공부하면서 이 분은 무엇을 하는 분일까 궁금해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박이문 선생이 나와 같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옛날엔 시인의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무엇이었으나 수필가나 논설문의 저자는 시험에 나오지 않아(?) 몰라도 되었다.

그랬던 박이문 선생을 산문집 <길>(미다스북스)에서 다시 만났게 되었다. 표지 속 사진의 선생은 백발이 형형하였으나 산문 속의 선생은 영원한 청년의 모습이고 구도자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독을 정의 했지만 나는 선생의 고독이 가장 감미롭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적나라한 자아, 모든 껍데기를 훌훌 벗은 벌거숭이 자아와 처음으로 직면한다. 고독은 자아를 밝혀주는 조명이다. 고독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진정한 의미에서 의식할 수 없다. 고독의 아픔을 체험하지 않고 우리는 자유를, 동물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의식할 수 없다. 우리는 고독한 경험을 통해서 자아에 대한,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될 수 있다.

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나는 죽음의 의미를 추상이 아닌 구체(具體)로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은 끝이자 영원이고 단절이자 또 다른 만남이란 것을 알았다. 그러했기에 박이문 선생의 죽음에 대한 정의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죽음이 보여주는 무상은 나를, 나 자신의 작은 자아를 더 넓은 테두리에서 파악하게 한다. 인간을 자연의 관점으로, 더 나아가 우주의 관점으로, 곧 인간적 시간의 관점에서 영원의 관점으로 확장시키고 해방시켜준다. 죽음은 죽은 본인에게는 모든 의미까지도 ‘초탈함’을 뜻한다.

바다에 대한 선생의 글 또한 매혹적이었다.‘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는 공자의 말에 나 또한 함몰되어 ‘나는 인자가 되고 싶어 산을 좋아하는가’하고 생각 한 적 있었다. 아무리해도 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체념에 애꿎게 바다까지 싫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봄과 여름 두 차례 배를 타고 바다구경을 하고서야, 바다야말로 그 자체로 장엄한 대 서사시라는 것을 알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함은 산이나 바다나 다 마찬가지였다. 선생은 ‘바다는 ‘지자(智者)’라기보다 ‘용자(勇者)’인 듯싶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밖에도 <길>에는 우리가 한번쯤 화두로 삼고 생각에 잠겨볼 만한 주제들이 많다. 눈, 여행, 기차, 책, 편지…. 단어 하나만 봐도 그리움이 저절로 묻어나지 않는가. 현대 사회는 급속한 과학문명의 발달로 더더욱 명상이 필요한 시대인데 명상에 이르기까지의 차분한 과정을 인내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박이문 선생의 책에 한번 빠져보는 것은 어떨지.

오랜 명상에서 우러나온 선생의 글은 읽은 이로 하여금 저절로 마음의 고요와 평안을 느끼게 해준다. 한 잔의 맑은 차와 함께 고요히 앉아 선생의 글을 음미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명상은 없다. 자, 한 해의 끝자락, 우리 명상에 한번 빠져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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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의 팡세 - 김승희 자전적 에세이
김승희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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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책이 서점에 있는지 모르겠다. 여고시절 일종의 객기로 공부는 못하면서 또래들보다는 좀 유난을 떨고 싶던 차에 우연히 문예지 한 권을 손에 넣었었다. 다행히 거부감이 일지 않는 쉬운 내용들이 마침 그 호를 장식하고 있어서 사랑에라도 빠지듯 그 책에 몰입했었다.

지금도 내 책장 한켠에는 그날의 '문학사상'이 빛 바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일년에 한 번쯤은 꺼내서 펼쳐 보고는 한다. 내 인생이 경제적이 아닌 문화적 혹은, 아웃사이더적이 되 버린 것은 다 그 한 권의 책으로부터 출발 한다고나 할까.

그 '문학사상'이라는 월간지 속에 '33세의 팡세'가 연재되고 있었다. 김승희라고? 처음으로 접하는 이름이었는데 세상에나.....

나는 '운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전율로 그녀의 에세이를 탐독했다. 이 세상에 나만한 어둠을 가진 자가 또 있었다니 하면서. 그녀의 '어둠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은 내 젊은 날을 온통 지배했다.

대학 시절엔 그녀를 흉내내느라 밤새 독서에도 빠졌고 내게 호감을 가지는 사람에겐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그녀의 책을 선전했는데, 이유인즉 그 책을 읽고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절교(?)였다. 그러나 무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33세의 팡세'를 읽은 친구들은 거의가 자신의 영혼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며 극찬했고, 그 책을 소개해 준 나까지 괄목(?)하고 상대해 주었다.

'33세의 팡세'는 시인 김승희의 고독과, 시와 학문에의 열정, 수줍음, 세속과의 불화 등등이 그녀의 현란하고 거침없는 문체 속에 녹아있다. (김열규는 한마디로 그녀를 언어의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어줍잖은 시인의 시보다 그녀의 산문이 훨씬 아름답고, 솔직히 그녀의 시보다 '33세의 팡세'의 산문이 더 아름답다.

어쩌면 아직도 큰 서점 창고 한켠에 몇 권 정도는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초판 발행이 85년이고 94년에 21판 발행인걸 보니 지금도 찾을려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1판'이라는 부수가 말해 주듯이 또 어떤 평론가가 말했듯이 '교양 있는 다수의 독자를 가진 책이다.'

이문열(요즈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분이나 '젊은날의 초상' 은 젊은 날에 읽으면 차암 좋은 책이다.)의 젊은 날의 초상은 지금도 터줏대감처럼 서점을 지키는데 '33세의 팡세'는 창고에 가서나 찾을 수 있다는 게 유감이다. 20대 초반에 읽기에 가장 좋은 책으로(수없이 많지만) 왼손에 '젊은 날의 초상'이라면 오른손에는 김승희의 '33세의 팡세'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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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 나의 삶, 사랑, 음악 이야기
한대수 지음 / 아침이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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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멀쩡한 신문과 새책들이 폐지공장에서 무참히 썰어지는 것을 본적이 있다. 책을 만드는 일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나임에도 그것은 무척 가슴 아픈 풍경이었다.

얼마전 한 아름다운 출판사(도서출판 아침이슬)로부터 독자 편지가 날아왔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주고(?) 있는 출판사인데, 사연인즉, 책 좀 사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그 동안 아침이슬이 펴낸 책 가운데 반품으로 돌아온 것들을 폐지공장으로 바로 보내자니 차마(?) 가슴이 아파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해서 독자들에서 우편 발송료 정도만 받고 팔고 싶으니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나니 마치 책이 반품된 것이 내 탓인 것 만 같았다. 그리고 평소 아침이슬을 예의 주시하는 남다를 애정을 갖고 있었기에 책들을 폐기 처분 해야되는 그들의 아픔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침이슬'이라는 출판사에 남다를 애정(?)을 갖게 된 나름의 작은 사연이 있다. 지난핸가 아침이슬에서 만든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라는 각계 명사들의, 제목 그대로 그들의 '묻어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 책의 내용이 너무 진솔해서 감동한 나머지 독자 엽서 카드를 기록하다가 출판사에 하고싶은 말을 A4용지에 따로 적어 독자엽서에 붙여 보낸 적이 있었다.

잘은 기억이 안나나 책의 내용에 비해 책표지와 표지의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악담(?)을 같은 시기에 출판된 베스트셀러가 된 다른 책과 비교하면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물론 악담을 늘어놓는 이유는 그 책이 너무 괜찮았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표지디자인에 신경 좀....하면서.

그런데 엽서를 보내기가 무섭게 감동적인 답장을 받았고, 조만간 가수 한대수 씨의 인생을 담은 책을 내니 많이 사랑해 달라고 해서 그러마고 마음으로 약속을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중가수의 자서전을 굳이 돈주고 살 념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후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 선생의 에세이가 출판된 것을 알았다. 이번엔 진짜 사봐야지 했는데 책이 출간되고 얼마 안되어서 김동기 선생이 'MBC 초대석'에 덜컥(?)나와 33년 옥살이를 말로 다 하시는 것이 아닌가. 말로 이미 충분히 감동을 받았기에 또 책으로 사는 것은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반품된 목록을 보고서야 신청을 한 것이다. 7,8천 원씩 주고 사야 할 것을 2천 원에 사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어느 한 책은 지인들의 주소를 적어주며 나에게로 올 것없이 그들에게 바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책은 메일을 보내고 송금을 하기가 무섭게 날아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세 권의 책을 헐값에 샀고, 막상 책으로 읽고 보니 그 동안 안 사본 것이 후회로울 정도로 소중한 책들이었다.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한대수 하면 '물 좀 주소'하던 외침이 생각난다. 끝까지 다 들어보진 못했으나 기회 되면 끝까지 한번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노래였는데 책을 읽고 나니 정말 그의 노래를 사고 싶어졌다.

평소 시보다도 더 아름다운 유행가를 꼽으라면 김광석의 '바람과 나' 였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김민기의 '바람과 나' 였다. 그런데 '바람과 나'는 김광석도 김민기도 아닌 한대수가 만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더 볼 것도 없이 그의 예술세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싶어졌다.

평생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으면서 살았고, 또 한 축으로는 잘 나가는 사진작가로 명성을 날리면서, 세계를 종횡무진 돌면서 얻은 식견에 그의 사고는 그 어디에도 막힘이 없었다. 이름난 교수들의 책 몇 권보다 그의 책 한 권이 훨씬 더 영혼에 이로웠다.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

'새는 앉는 곳....'은 비전향 장기수로 33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석방되신 김동기 선생의 자전적 에세이다. 말씀만 조근조근 감질 맛나게 하시는 게 아니라 선생의 글 또한 가마솥 누룽지같이 구수했다. 외래어에 오염되지 않고도 훌륭하게 하실 말씀 다 하셨다.

감옥생활을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하셔서 감옥생활 한번 해보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해주셨는데 나중에 뒷부분을 읽어보니 선생은 하루종일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독서를 하시고, 바느질을 하시고, 냉수마찰을 하시고, 사전을 외우시고, 때로는 단식으로 저항도 하시고... 하셨던 것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우리 나라 중 고등 교과서에 미당의 시 따위를 실을 게 아니라 선생의 글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결혼도 안하고, 독일이라는 낯선 이국에서 고향을 그리는 소설(압록강은 흐른다)을 쓰고 간 이미륵 님이 생각났다. 그러나 김동기 선생의 그리움은 이미륵의 그것 보다 더 큰 듯 했다.

33년을 0.75평 습한 공간에서 허리를 관통한 총상의 후유증과,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절대고독 속에서 살아야 했으니... '33년 동안이나 가두어 두었던 사람을 별 대책도 없이 내 보내는 것 또한 폭력'이라는 선생의 말이 어찌나 뜨끔하던지...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눈 그림이야기>

'아름다운 사람들...'은 각계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자신이 감동했던 마음의 그림들을 고백하고 저자(김현숙)가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이애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였던 할머니들(김순덕 강덕경)의 그림에 감동하였다고...

시사만화가 박재동은 이철수의 판화를, 민속학자 주강현은 손장섭의 나무들을, 그리고 진관 스님은 김정희의 세한도를, 김태정 박사는 최낙경의 풍경화 등등 소개된 모든 그림들이 그림의 '그' 자를 몰라도 저절로 마음이 열리고 마는 것들이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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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고발한다
이상호 지음 / 문예당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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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야기 하나

몇 해 전 친한 친구가 잠시 모 종교신문사의 기자를 할 때였다. 그때 나는 친구가 기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친구를 통해 기자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덩달아 설레였었다. 그러나 친구는 간신히 수습딱지를 떼고는 기자직을 떠나고 말았다.

늘 수원행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타야하는 피곤한 일상과 좋은 말 다 놓아두고 빈정대는 말만 골라서 해대는 사수의 냉혈함에 오랜 꿈이 아닌 어쩌다 시험에 붙어서 된 기자인지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었다.

짧은 기자생활을 마감하던 그녀의 변, "햐아..! 기자는 너무 피곤해. 그리고 이루 말 할 수 없이 시건방지고 정의를 목숨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아.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암튼 내 적성엔 안 맞아."

이야기 둘

일본어를 공부하던 시절.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던 한 언니의 남편은 모 신문사 도쿄 주재기자라고 하였다.
"언니 남편이 기자라고? 정말?"

내 친구처럼 시작하려다만 기자가 아니라 진짜 기자의 길을 쭈욱 가고 있는 사람이라니 내 호기심을 충족 시켜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언니를 통해서 들은 그 기자 남편은 추호의 매력도, 전혀 감동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집에서는 완전히 0점에 가까웠다. 바쁘기는 왜 그리 바쁘고 술은 또 왜 그리 떡이 되도록 마셔야 하며 손이 한창 많이 가는 사내아이 둘을 둔 아비이건만 어쩌다 쉬는 휴일에는 손 하나 까딱 하길 하나. 거기다가 언니가 뭐라고 하면 말발은 또 왜 그리 센지 한마디로 감당이 불감당인 남편이었다.

이런 선입견 때문인가, 한때는 기자하면 정의의 사자쯤으로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기사야 어떤지 모르지만 기자의 인간성은 보통사람보다 결코 잘날 것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내 선입견을 일격에 날려버리는 기자가 있었으니 '시사매거진 2580'의 이상호 기자이다.

물론 이상호 기자 또한 무진장 바쁘게 사는 사람 같았다. 제대로 잠잘 시간도 없는데 제대로 된 아빠노릇 남편 노릇 할 시간이 어디 있으리. 그러나 다행히 그의 부인은 그를 잘 이해해주고 그가 기자 노릇 잘할 수 있도록 끝없는 보살핌과 배려를 해주는 타고난 기자 마누라 같았다. 이상호 기자의 복이리라.

이상호 기자의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문예당)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난해, 언론이 최규선 사건으로 온통 도배가 될 때 그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최규선의 뿌리를, 근원을 보여주었다. 최규선의 출생과 성장 등 오늘날의 최규선을 만들어준 그 환경을 가감 없이 보여줌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기자가 이상호 기자였나 보았다.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는 시사매거진 2580에서 못 다한 얘기 또는, 그 뒷 얘기, 기자로서의 고뇌 등을 소탈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상호 기자의 꿈은 '생활에 지친 사람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리게 해주고,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고, 힘있는 자들의 위선을 꾸짖어주는 보도'를 하는 '무당 같은 기자'가 되고 싶은 것이라나. 그의 바램대로 그는 신내림만 받지 못했다 뿐이지 무당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는 어사 박문수다. 일요일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고 나면 '이번 주엔 또 어떤 얘기들'이 하며 시사매거진을 기대하는데 그는 늘 어사 박문수처럼 정의롭게 나타나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곤 했다. 단지 마패만 없을 뿐인 이 시대의 어사 박문수 이상호 기자. 이런 어사 박문수 같은 기자 앞으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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