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선 한국 가곡 8 (경음악)
Various Artists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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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곡을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이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보리밭'이라는, 초등시절의 동요와는 차원이 다른, 가곡이란 것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신선한 설렘은 아직도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다.

그렇게 '보리밭'을 시작으로 '동무생각', '사공의 노래', '떠나가는 배', '봄처녀' 등을 배웠다. 중학교 시절엔 도레미 자리도 제대로 몰라 이론시간이면 선생님의 진노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가곡을 부를 때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선생님은 한층 더 예술가연한 선생님이었다. 얼굴표정을 얄궂게 지으며 모든 신경을 배에다 집중하여 한 올 한 올 고음의 맑은 소리를 뽑아 올리셨다. '끝없는 구름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도 애잔하여서 막연하게나마 별리의 아픔은 저렇게 애를 끊는 듯하구나 싶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인가 본격적으로 음악이란 것에 탐닉하였는데, 한국가곡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르였다. 당시 서울음반에서는 <특선한국가곡>이라는 시리즈를 내었다. 나는 그 테이프의 1번부터 6번까지를 몽땅 사서 듣고 또 들었다.

듣다가 공 테이프에 특별히 좋아하는 곡들만 엄선하여 복사를 하였다. 지금도 그때 내 나름으로 엄선한 가곡들을 들을 때 즐거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특히 겨울이면 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또 해마다 봄이면 신록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곡의 가사와 멜로디에 항상 취해 살았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 바리톤 오현명, 소프라노 김윤자 등등 성악가의 이름을 외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렇게 외운 이름들을 <봄맞이 한국 가곡의 밤>인가 하는 녹화방송에서 얼굴과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연결시켜 보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그러다 어느 순간 엄정행은 '보리밭', 박인수는 '가고파', 백남옥은 '비목', 오현명은 '그 집 앞' 식으로 이 가수는 이 노래, 저 가수는 저 노래로 메뉴가 고정되는 것이 갑갑하였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이 TV에 나올 때면 이번에는 다른 곡 좀 부르겠지하고 기대를 하나, 항상 보면 '비목'을 부르곤 하였다. 성악이야말로 하나의 노래로 열 사람이 부르면 열 사람의 느낌이 다 다름을, 다른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 확연히 느낄 수 있기에 그만큼 듣는 재미가 솔솔할진대, 그런 다양함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이었다. 정다운 가곡은 하나의 곡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다양하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왜 정다운 가곡은 저녁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딱 30분밖에 하지 않는지 때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90년대 초반부터 'FM 신작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기존에 들었던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고 신인들의 목소리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기다림', '사비수', '님의 노래' 등등 신작가곡들은 나오는 족족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한 몇 년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가곡을 듣지 못하다가 첫아이를 낳기 얼마 전 불교방송의 <차 한 잔의 선율>에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는 '사월의 노래'를 들었다. 오오, 그때의 그 감격이란. 목월 시에다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는 기억이 가물하나 소프라노 배행숙님이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소프라노의 음색으로만 듣던 노래를 원곡보다 조금 느리게 해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니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나는 며칠을 걸려도 좋으니 오현명의 '사월의 노래'를 틀어주십사 기대를 하며 녹음준비 완료하고 <정다운 가곡>을 들었다.

며칠이 걸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아무튼 나는 녹음을 하였다. 나는 그 '사월의 노래'에다 '님의 노래', '기다림' 등 몇 곡을 90분짜리 테이프에 반복 녹음하여 듣고 또 들으며 그 봄을 났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2002년의 봄 나는 또 다시 그 테이프를 찾아서 들으며 봄 한철을 이겨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가곡을 들려주고자 일부러 취침시간을 9시 30분으로 하였다.

"얘들아, 정다운 가곡 할 시간 되었다. 자러 가자."

얘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자는 척하는 시간은 단 10분도 따분하기 쉬운데 정다운 가곡을 들으면서 잠을 재우자 그런 심심함을 면할 수 있어서 좋다.

불을 끄고 가곡에 귀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정다운 가곡>이 끝나고 <당신의 밤과 음악> 시그널이 나오면 하품을 한 번 하면서 잠이 쏟아지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잘거림을 그만두고 잠을 청한다. 때로는 바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의 밤과 음악>을 십분쯤 듣다가 잠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당신의 밤과 음악>은 또 얼마나 영혼을 스며드는 프로인가).

결론(?)은,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은 매우 좋은 프로이다. 연주음악이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지만 우리 가곡은 단 30분뿐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야금야금 가는 것이 아쉽다. <정다운 가곡>이 30분이 아닌 한 시간쯤 하기를 비는 내 소원은 언제 이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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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탐험의 꿈 - 장순근 박사가 쓴 남극 탐험의 역사와 세종 기지 이야기 자연과 인간 2
장순근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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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극'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펭귄'이다. 그 펭귄은 한때 펭귄으로 분했던 개그맨 심형래씨의 뒤뚱거림과 오버랩되면서 녀석들을 생각할 때면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였다. 아, 다리가 짧아서 슬픈 짐승이여.

그런데 일전에 영화 '펭귄' 예고편에서 보니 펭귄의 뒤뚱거림은 육지에서만 그럴 뿐이지 바닷물에 들어가는 순간 그 날개로 훠이훠이 노를 저으며 쌩쌩 달리는 것이 아닌가. 어머, 펭귄이 물속에서는 저렇게 날렵한 것이었네.

펭귄 다음으로 '남극'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킹 조지 섬'에 있다는 '세종기지'다.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외로움과 싸우며 세종기지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음은 가끔 남극일기 형식으로 소개되는 글들에서 보았기에 세종기지를 떠올리면 먼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그 세종기지에서의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과, 남극이라는 눈과 얼음의 나라를 고향으로 하는 다양한 바다 생물들의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장순근 박사의 <남극탐험의 꿈>(사이언스 북스)이다.

남극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나

세종기지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한번 남극으로 가면 2,3년은 지나야 나올 수 있다는 얘기에 그곳이 감옥도 아닐진대 왜 그럴까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즉, 남극으로 한번 가는데 시간과 돈 그리고 육체적 피로가 만만찮았다.

우리나라에서 남극을 가자면 우선 서울에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혹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까지 간다. 그런 다음 그곳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칠레의 산티아고를 경유해 '푼타아레나스' 아니면,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까지 가야 한다.

'푼타아레나스'나 '우수아이아'에서부터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킹 조지 섬으로 가야하는데 이게 만만치가 않았다. 가는 방법은 비행기와 배 두 가지가 있는데 비행기는 세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으나 기상이변 등으로 회항하거나 불시착 등 위험요소가 많아 배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그런데 이 배로 가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날씨가 순조로울 경우 '푼타아레나스'에서는 70시간 '우수아이아'에서는 50시간 정도면 킹 조지 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날씨가 나쁘면 100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배를 타고 100시간이라. 100나누기 24. 즉 날씨가 좋지 않으면 '4박5일' 자나깨나 배를 타고 가야 남극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완전한 뱃사람이 아니고 보통사람이 4박5일 동안 배를 타면 어떻게 되는가. 장순근 박사는 1994년 106시간 걸려 킹 조지 섬에서 '푼타아레나스'로 나온 적이 있는데 그 106시간 동안 멀미로 인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남극에 한번 가자면 이처럼 경제적 육체적으로 힘들기에 쉽게 나오지 못하고 간 김에 꼬박 몇 년씩 고생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 세종기지를 건설하고 남극 연구를 시작했다. 이 책에는 그 세종기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이 풍성해 사진만으로도 남극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 위에 섬처럼 떠있는 빙하며, 순례의 길을 떠나는 듯 길게 늘어서서 행군하는 펭귄 떼의 행렬이며, 얼음물 속에 들어가 해양생물의 표본을 채집하는 과학자의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모습 등 남극은 동토였지만 그 속의 군상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잘 살고 있었다.

바야흐로 황사가 '난리 부르스'를 출 모양인데 깨끗한 공기가 그리워진다면 책 속에서나마 남극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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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선 한국 가곡 1
Various Artists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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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을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중학교 시절 음악시간이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보리밭'이라는, 초등시절의 동요와는 차원이 다른, 가곡이란 것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신선한 설렘은 아직도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 있다.

그렇게 '보리밭'을 시작으로 '동무생각', '사공의 노래', '떠나가는 배', '봄처녀' 등을 배웠다. 중학교 시절엔 도레미 자리도 제대로 몰라 이론시간이면 선생님의 진노에 식은땀을 흘렸지만 가곡을 부를 때만큼은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음악선생님은 한층 더 예술가연한 선생님이었다. 얼굴표정을 얄궂게 지으며 모든 신경을 배에다 집중하여 한 올 한 올 고음의 맑은 소리를 뽑아 올리셨다. '끝없는 구름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너무도 애잔하여서 막연하게나마 별리의 아픔은 저렇게 애를 끊는 듯하구나 싶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인가 본격적으로 음악이란 것에 탐닉하였는데, 한국가곡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르였다. 당시 서울음반에서는 <특선한국가곡>이라는 시리즈를 내었다. 나는 그 테이프의 1번부터 6번까지를 몽땅 사서 듣고 또 들었다.

듣다가 공 테이프에 특별히 좋아하는 곡들만 엄선하여 복사를 하였다. 지금도 그때 내 나름으로 엄선한 가곡들을 들을 때 즐거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특히 겨울이면 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또 해마다 봄이면 신록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곡의 가사와 멜로디에 항상 취해 살았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 바리톤 오현명, 소프라노 김윤자 등등 성악가의 이름을 외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렇게 외운 이름들을 <봄맞이 한국 가곡의 밤>인가 하는 녹화방송에서 얼굴과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연결시켜 보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그러다 어느 순간 엄정행은 '보리밭', 박인수는 '가고파', 백남옥은 '비목', 오현명은 '그 집 앞' 식으로 이 가수는 이 노래, 저 가수는 저 노래로 메뉴가 고정되는 것이 갑갑하였다.

메조소프라노 백남옥이 TV에 나올 때면 이번에는 다른 곡 좀 부르겠지하고 기대를 하나, 항상 보면 '비목'을 부르곤 하였다. 성악이야말로 하나의 노래로 열 사람이 부르면 열 사람의 느낌이 다 다름을, 다른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 확연히 느낄 수 있기에 그만큼 듣는 재미가 솔솔할진대, 그런 다양함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이었다. 정다운 가곡은 하나의 곡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로 다양하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왜 정다운 가곡은 저녁 9시 30분부터 10시까지 딱 30분밖에 하지 않는지 때론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90년대 초반부터 'FM 신작가곡'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기존에 들었던 사람들에 국한하지 않고 신인들의 목소리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기다림', '사비수', '님의 노래' 등등 신작가곡들은 나오는 족족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한 몇 년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가곡을 듣지 못하다가 첫아이를 낳기 얼마 전 불교방송의 <차 한 잔의 선율>에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는 '사월의 노래'를 들었다. 오오, 그때의 그 감격이란. 목월 시에다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는 기억이 가물하나 소프라노 배행숙님이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소프라노의 음색으로만 듣던 노래를 원곡보다 조금 느리게 해서 바리톤 오현명이 부르니 아주 색다른 느낌이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나는 며칠을 걸려도 좋으니 오현명의 '사월의 노래'를 틀어주십사 기대를 하며 녹음준비 완료하고 <정다운 가곡>을 들었다.

며칠이 걸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아무튼 나는 녹음을 하였다. 나는 그 '사월의 노래'에다 '님의 노래', '기다림' 등 몇 곡을 90분짜리 테이프에 반복 녹음하여 듣고 또 들으며 그 봄을 났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던 2002년의 봄 나는 또 다시 그 테이프를 찾아서 들으며 봄 한철을 이겨냈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가곡을 들려주고자 일부러 취침시간을 9시 30분으로 하였다.

"얘들아, 정다운 가곡 할 시간 되었다. 자러 가자."

얘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자는 척하는 시간은 단 10분도 따분하기 쉬운데 정다운 가곡을 들으면서 잠을 재우자 그런 심심함을 면할 수 있어서 좋다.

불을 끄고 가곡에 귀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정다운 가곡>이 끝나고 <당신의 밤과 음악> 시그널이 나오면 하품을 한 번 하면서 잠이 쏟아지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재잘거림을 그만두고 잠을 청한다. 때로는 바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의 밤과 음악>을 십분쯤 듣다가 잠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당신의 밤과 음악>은 또 얼마나 영혼을 스며드는 프로인가).

결론(?)은, 30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KBS 1FM의 <정다운 가곡>은 매우 좋은 프로이다. 연주음악이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지만 우리 가곡은 단 30분뿐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야금야금 가는 것이 아쉽다. <정다운 가곡>이 30분이 아닌 한 시간쯤 하기를 비는 내 소원은 언제 이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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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적 2 - 초회한정판
강우석 감독, 설경구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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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혹은 검찰, 법원의 추억

사례1.
몇 해 전의 일이다. 운전 면허증을 찾으러 난생처음 경찰서라는 데를 가 보았다. 마침 내가 간 시간이 오후 1시쯤이었는데 모두를 점심을 먹으러가서 오지 않았는지 외근을 나갔는지 민원실(?)안에는 40대 중반의 경찰관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면허증을 찾으러왔다고 하였고 그는 조금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냥 찾아주고 밥 먹으면 될 것을 굳이 자기가 밥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라니 기분이 좀 그랬다. 조금 있으니 아저씨 한분이 와서 또 면허증 때문에 왔다고 하였고 역시나 그 경찰관은 신경질적으로 기다리라고 하였다.

아저씨 또한 기다리면서 나와 같은 불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냥 좀 참아보자는 듯이 보였다. 그렇게 경찰관 아저씨가 점심을 다 먹을 때가지 15분쯤 기다렸다.

경찰관 아저씨는 여유 있게 점심을 들고 이쑤시개로 마무리까지 하고는, 그제야 거만한 표정으로 다시 용건이 뭐냐고 물었다. 면허증 때문에 왔다고 하니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몇 초 걸리지 않아 면허증이 놓여있는 바구니에서 우리들 것을 찾아주었다. 그렇게 쉽게 내어 줄수 있는 것을 무안하게 자신이 밥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리게 하였다니. 물론 요즘은 많이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례2.
친구는 급하게 이사를 하는 바람에 전세금을 채 받지 못하고 집을 비웠다. 그러자 집 주인은 한달 두 달....일년이 넘도록 방이 나가지 않았다며 전세금을 내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지 속을 썩다가 ‘전세금 반환 청구소송’인가가 있다고 하여 친구의 남편은 그것을 알아보려고 아는 형님이 근무하는 검찰청에 점심시간에 맞추어 자문을 구하러 갔었다.

난생처음 검찰청이란 데를 들어가 본 친구 남편 왈,

“와아, 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찰청이란 데를 갔는데 검찰청 복도를 지나가려니 지은 죄도 없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검찰청 사람들 표정은 또 어찌나 과묵하고 무표정한지. 활짝 웃는 형님을 만나니 구세주를 만난 것 같더라니까.”

사례3.
소설가 이경자씨는 이혼을 하러 법원에 가서 법원 직원들의 태도에서 뜻하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판사가 나타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법원 직원은 마치 길 잃은 바보들을 대하는, 거의 ‘버르장머리’없게 느껴지는 언행으로 우리들을 대했다‘고 하였다. 이혼 법정 하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분위기가 떠오르는데 그게 아닌가 보았다.

이 모든 기억들을 가지고 검찰을 주제로 한 영화 ‘공공의 적2’를 보러갔다. 무섭다고 집에 가자는 둘째를 과자로 포섭하고 엉덩이를 토닥여 잠을 재우고는 영화에 몰입하였다.

영화 속의 검사

영화 속의 검사는 멋있었다. 그들은 우리 시민들의 안전은 물론이고 각종 부정부패와 사회악을 소탕하기 위하여 토막 잠을 자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얼마나 듬직하고 믿음직한 모습인가.

서울지검 강력계 강철중(설경구분) 검사. 그는 고교동창인 뺀질이 한상우(정준호분)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명선 재단의 돈을 해외에 골프 장학생을 발굴한다는 빌미로 빼돌려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을 포착한다. TV화면 속에서는 늘 선 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이미지로 조명을 받지만 전직 이사장 이었던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그는 내적으로 악랄한 사람이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는 논리를 가진 한상우는 정계거물 까지 동원한 철저한 방해 공작도 모자라 아예 사람을 시켜 자신의 형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강철중 검사를 제거하려 한다.

현관문이 열렸다는 경비아저씨의 전언은 그들이 던진 미끼였는데,그런줄도 모르고 강철중 검사대신 수하의 젊은 직원인 석신(박상욱분)이 문을 잠그러 강검사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한편, 한상우의 지시를 받은 폭주족들은 석신이 강철중 검사인 줄 아고 그가 모는 차를 둘러싸면서 차 유리를 몽둥이로 깨부수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달리는 차로에서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석신으로서는 속수무책인데 차는 공교롭게도 난간을 들이받고 지하차로로 굴러 떨어진다.

너무도 어이없는 젊은 부하 직원의 죽음과 한상우의 악랄함에 치를 떨며 강철중 검사는 자신의 직속상관 부장검사를 찾아가서 울부짖는다.

“아무리 치~즈 해도 웃어지지가 않아요.”

정계의 거물급으로 나온 박근형(부총재)씨는 느글느글하고 유들유들한 개기름 쫙쫙 흐르는 국회의원 역을 어쩜 그리도 잘 소화하는지 경탄스러웠다. 또 영화 내내 한상우가 미웠는데 그렇다면 정준호씨 또한 연기를 잘 한 것인가.

설경구씨의 경우는, 똑똑한 검찰 연기 하느라 무지 힘들었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는데 그는 똑똑하기보다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검사였다. 비록 화면이었지만 내가 대한민국 검사들을 떼거지로 본 것은 대통령과의 평검사 대 토론회에서였는데 강철중 검사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었기에 어쩜 현실과 영화를 구분 못하고 강철중 검사에게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연히 영화 속 검사가, 검찰청의 풍경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시민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발이 되고 지팡이가 되는 그런 따뜻한 검찰 말이다. 경험속의 검찰과 영화 속 검찰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서글프지만 ‘나쁜 놈’은 물론이고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그래도 우리가 기댈 곳은 검찰 뿐이다.

강철중 같은 검사 현실에서 많이 볼 날은 언제 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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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음악 1집 : 음악을 들으러 숲으로 가다... 세상의 모든 음악 시리즈 1
Various Artists 연주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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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의 모든 음악>

요즘, 클래식 음악 전문 방송 채널인 KBS 1FM의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탤런트 김미숙씨가 꽉(?) 잡고 있다. 이름 하여 '세상의 모든 음악, 김미숙입니다'. 그녀는 연기자로 출발했지만 타고난 차분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클래식 음악 진행자로서도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이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황혼이 막 지고 어스름이 내리고, 급기야 한낮의 찬란했던 모든 풍경이 어둠 속에 묻히고 마는 뭐라 딱히 말할 수 없는 허전한 순간을 '세상의 모든 음악'은 커다란 위로로 꽉 채워준다.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세상의 모든 음악'은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들을 들려준다. 모두가 하루의 피곤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픈 저녁이니 만큼 음악 선곡도 최대한 편안하고 기복이 덜한 매끄러운 곡들로 채워진다.

1,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귀에 익숙한, 편안한 클래식을 틀어주고 2부는 그야 말로 세상의 모든 영화음악, 재즈, 샹송, 칸소네, 남미음악, 흑인영가 등 다양하게 들려준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듣는 순간은 주로 저녁밥을 먹는 다거나, 설거지를 하는 시간들이다. 밥을 먹다가 혹은 설거지를 하다가 유독 내가 좋아하는 선율을 만나게 되면 하던 일은 잠시 '일시중지' 된다. 그리고 빠져든다.

"엄마 왜 그래?"
"쉿--"

나는 오디오를 가리키며 조용히 들으라는 시늉을 한다. 아이 또한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6시와 8시 사이'라서 그런지 별 방해 없이 조용해진다. 세상에는 '하나'가 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음악과 하나의 합일을 이루는 순간만큼 황홀한 경우도 드물리라.

<이미선의 FM다이얼>

이 KBS 1FM의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프로그램은 세월 따라 조금씩 바뀌어 왔다. 내가 최초로 이 시간대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15년 전쯤으로 그때는 이미선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당시 프로그램의 이름은 ‘이미선의 FM다이얼’이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는 이미선 아나운서가 지금보다 15년이나 더 젊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이미선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천사의 목소리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있어 궁금한 것을 검색 창에 넣고 치면 뭐든 다 나오지만 그때는 오로지 목소리만 듣고 상상만 하던 시절이라 이미선 아나운서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사실 아직도 이미선 아나운서의 얼굴을 모른다.) 아니 저렇게 목소리가 멋진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도대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기는 할까.

나는 이미선 아나운서가 불러주는 곡명을 반복해서 적으며 클래식음악의 제목을 익히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당시 '이미선의 FM다이얼'의 시그널이다. 시그널이 정말 멋졌는데 어느 날은 프로그램 말미에 시그널 전곡을 틀어주었다. 제목은 '안단테 베네치아노'라고 하면서.

“프로그램 중간에 시그널을 틀면 프로그램을 마치는 줄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그널의 원곡은 함부로 틀어주지 못하는데 희망자가 많아서 특별히 들려드립니다.”

나는 그 시그널을 좋아하면서도 감히 엽서를 보내거나 하는 따위를 하여 압력(?)을 넣을 생각은 못하였는데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나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그 시그널 음악을 접할 때 마다 도대체 무슨 곡이지 하며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랬는데, 그것이 나만이 아니고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집착에 시달렸다는 것에서 만나지는 못하나 무한의 친구를 가진 듯 뿌듯하였다. 아무튼 내 젊은 날의 우울한, 혹은 쓸쓸한 정서를 ‘이미선의 FM다이얼’은 많이 달래주었고 함께 해 주었다.

<저녁의 클래식>

이미선 아나운서 다음으로는 이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의 프로그램 제목과 진행자가 누구였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선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몹시도 경도되었기에 아쉽게도 다른 분들은 잊어버렸다. 어느 핸가는 남자분이 진행한 적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다시금 KBS 1FM의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의 프로그램에 푹 빠지게 된 것은 98년도부터이다. 당시는 결혼초기로 시간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예전에 즐겨 듣던 그 시간대에 채널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옛날 이미선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정신을 잃었던 것을 상기하며 요즘은 어떤 분이 하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음악의 전령사는 정세진 아나운서였다. 그런데 이 정세진 아나운서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한 점 티끌도 없이 차분하고도 지적인 정세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이미선 아나운서의 환상적이고 달콤한 목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너무도 정적이 감도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저녁의 클래식'을 듣는 동안은 속세가 아니라 고요한 산사의 전망 좋은 대웅전 뜨락에서 명상에 잠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선(禪)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저녁의 클래식'을 진행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선의 경지 다름 아니었다. 물론 이미선 아나운서가 그러했듯이 정세진 아나운서도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했었다.

다행이 정세진 아나운서는 쉬이 텔레비전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많은 아나운서들이 있지만 내겐 유독 정세진 아나운서가 특별해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음악과 함께한 세월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나름대로 추측해(?) 보곤 한다.

글을 마치며…

예전에 '정트리오'의 어머니인 이원숙씨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 모두에게 음악을 시킨 이유가 무엇인가 물으니, 낯선 이국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마침, 클래식 음악은 아이들을 나쁘게 자라게 하지 않는다는 어느 교수의 연구결과를 듣게 되어 자신도 시켜 보았다고 하였다. 물론 결과는 '정트리오'가 해답을 주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청소년들은 부족함 없이 자라는 듯하지만 그 마음의 밑바닥은 공허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클래식 음악을 접하면서 마음의 위로처 하나쯤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클래식 음악은 그것을 작곡한 작곡자들의 외로움과 기쁨, 비탄 혹은 고뇌의 결정(結晶)이므로 그것을 듣는 사람마저도 고양시키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여러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 가장 벅차고도 심금이 울리는 즐거움은 클래식 음악에 빠져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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