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yako Uehara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차이코프스키 (Pete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Ayako Ueha / 이엠아이(EMI)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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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악기를 직접 다루는 사람들이나 전공자들처럼

섬세하게 알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다른것은 몰라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만은

캬라얀지휘의 베를린 필 하모니의 1980년대 음반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들은것이 89년쯤인가라서 정확히 그 음반의 녹음따위가 언제 되었는지는 지금 당장은

모르겠습니다.

(판을 찾아야 하는데 너무 깊이 넣어두어설라므네..죄송...)

 

LP의 시대가 가고 CD의 시대가 오자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햇살가득한

창가에서 LP판을 닦으며 음악을 듣네 어쩌네 했지만 요즘도 그러한 말을 했던 사람들 그렇게 닦으며

음악을 듣는지 궁금하군요.ㅠㅠ..

 

빈정댐이 아니라, 저도 처음에는 그런편에 서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cd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cd는 무엇보다 클라식 음악을 듣기에 참 편리하지요. 태이프나 LP의 경우 초보자가 들을경우

도대체 언제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이 시작되는지 알수(?)가 없는데 CD는 번호가 딱 매겨져있으니

구별이 쉽고 귀에 먼저들어오는 악장을 선택하여 반복 재생도 가능하고요.

 

아무튼 '캬라얀'의 <차이콥스키,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펄펙트 하였습니다.

처음도입부의 '빠바바 밤~~~~빠~~ 빠바~~바...'중 '~~~'한 부분을 캬라얀의 지휘로 들으면

마치 벽돌로 이뤄진 어떤 커다란 집이 갑자기 우두두두 순서정연하게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요.

두서없이가 아니라, 두두두두.... 무너졌다가 캬라얀의 지휘봉이 한번 위로 날개짓을 하면,

일순에 전열을 가다듬고 그 다음으로 명쾌하게 들어가는 듯한.....말로는 형용할수없는 상쾌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첫부분에 매료되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반복에서 리듬을

거의 외울지경으로 들다보니 다른 필아모니의 연주를 우연히 들을때면 그 차이를 느낄수 있게 되더군요.

FM실황음악회 같은데서 다른 필하모니의 연주를 듣자면 이 첫 도입부가 어려운지 간단하게 축약해서

연주하는 필도 있었고, 어떤 필의 경우는 나름대로 정석대로 연주하기는 하나 듣기가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럴때면 '그게그렇게 어렵나' 하면서 캬라얀의 것을 다시 한번 들어보면'음,역시나' 였습니다.

 

알라딘 홈에서 검색하니 차이콥스키의 다양한 음반과 캬라얀 지휘의 피아노 협주곡도 보이는데

리뷰쓰기에서의 '선택'에서는 다른 음반들이 뜨질 않는 군요.

 

아무튼,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 1번>은 꼭 들어야 할 명곡입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알라딘 메인홈에서 '음반'을 누르시고 다양하게 골라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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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연인 SE - 무삭제 완전판
버나드 로즈 감독, 게리 올드만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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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할인점을 가는 일이 좀처럼 없는 요즘인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무튼 가게 되었다. 가면 늘 그렇듯 서적코너와 음반, DVD 코너를 한바퀴 빙 도는데 그날도 예외 없이 그렇게 흐느적거리다가, 갑자기 '심봤다'를 외칠 뻔 했다.

왜냐하면 베토벤의 전기 영화인 <불멸의 연인> DVD가,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몇몇 DVD 속에 유일하게 하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가격이 너무도 싸서 한번 놀랬고, 또, 그것이 다른 것과는 달리 '하나'밖에 없다는 절박성에 더 가슴이 뛰었다. 인터넷서점에서는 그 DVD가 분명 '품절'로 표기되었었다. 때문에 DVD는 체념하고 비디오를 확보해 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DVD라니, 내게 그것은 심마니의 산삼이나 마찬가지였다.

'살아생전'을 아무데나 갖다대면 주책일지 모르나 이 <불멸의 연인> DVD를 손에 넣자 저절로 '살아생전에'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아마데우스> DVD가 재발매 된 것에 비추자면 이미 품절이 된 베토벤의 DVD를 갖자면 그의 250주년 생일까지 기다려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요란한 심장박동을 애써 잠재우며 <불멸의 연인> DVD를 샀고 이미 내 손에 들었으니 뭐가 급하랴 하며 개봉도 하지 않고 모셔두었었다. 이미 비디오로 여러 번 보았기에 급하게 뜯을 이유가 없었다.

그랬는데,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비닐커버를 뜯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듣기공부 차원에서 <비포선셋>을 반복해서 보곤 했는데 문득 그 대화들이 지겨워진 탓도 한몫 했던 것 같다. 막상 개봉을 했으나 왠지 영화로 바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빈둥거리는 기분으로 '스페셜 피처'부분부터 보게 되었다.

어머, 그런데 그 부분들이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다른 dvd들에 비해 이 dvd는 배우들과 감독의 영화작업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인상적이었던 점 그리고 캐스팅 배경 등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간단한 약력까지 보너스가 푸짐했다.

ⓒ 아이콘 엔터테인먼트
완벽한 배우들과 제작 과정들....

버나드 로즈 감독: <안나 카레니나,1997>의 감독이기도 한 버나드 로즈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고전음악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었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그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쏟은 정열은 일시적 몰입이 아니라, 그의 삶과 함께 축적된 베토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 그리고, 베토벤의 삶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와 탐구를 통한 결과물이었다.

게리올드만 : 베토벤 역을 맡은 그는 이 영화에서 베토벤이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들통 나는 장면, 즉,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의 첫 도입부 독주부분을 연주하는 장면을 얼굴, 손 혹은 뒷모습을 부분적으로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전체로 보여주었다.

때문에 비디오로 보았을 당시 나는 '저 양반 진짜 치는 건가.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만, 너무 진짜 같네. 아무리 배우라지만 손가락을 저렇게 비슷하게 운용 할 수도 있는 것일까'하며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 스페셜 피처에 의하면 그 장면은 진짜로 게리 올드만이 연주했다는 것이었다. 버나드 로즈 감독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평소 영화 속 엉터리 연주 흉내를 참을 수 없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게리 올드만에게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부분 만은 직접 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자고 하였고 피아노 전공자라도 그렇게 치는 일은 쉽지가 않은데 그는 해내었다. 물론 우리가 실지로 듣게 된 소리는 보다 정제된 '머레이 페라이어'의 연주였지만 어쨌든 그와 똑같이 게리 올드만이 틀리지 않고 그대로 황제 협주곡을 연주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였다.

나는 게리 올드만이 그토록 피아노에 조예가 깊다는 것에 놀랐다. 아무리 그 부분만 특별히 연습했다지만 그 부분만 특별히 연습한데도 어느 정도의 고급 연주 실력을 갖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으리라. 그는 처음엔 캐스팅을 거절했는데 자신의 매니저까지 동원한 두 번째 부탁에서는 어쩐 일인지 승낙하였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이 영화에서 베토벤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비중 있는 역을 맡았는데... 아, 그녀가 그 유명한 장미 한 송이와 45도 위쪽 어딘가를 응시하던 랑콤 화장품의 정녕 그녀였다는 말인가.

랑콤 화장품의 그녀가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이라는 것 밖에 몰랐던 나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과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이 참에 알 게 되었다. 그녀는 유명 감독과 배우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광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였으며 인디영화와 비주류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나름의 고집을 가진 배우였다고.

요안나 테르 스티게 : 조안나 역을 맡은 그녀는 영화에서는 시종 어둡고 무거운 역이었지만 인터뷰속의 그녀는 밝고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조근 조근 얘기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생각이 깊고 자신이 맡은 역에 대한 탐구에 결코 소홀하지 않는 성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제론 크라베 : 베토벤의 비서인 쉰들러 역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인 그가 처음 제의 받은 역은 베토벤 역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촬영 일주일을 앞두고 당신의 배역은 쉰들러라는 말을 들었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 안 해, 갖고 노는 거야가 아니라.

'뭐라고요? 그렇다면 대본을 다시 봐야 겠는데요'라고 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 전 까지는 자신이 맡게 될 베토벤 역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뭐, 신들러?' 그런 사람도 있었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그러나 다시 대본을 정독하니 과연 쉰들러는 있었고 자신은 베토벤보다 쉰들러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쉰들러는 굉장히 선하고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평생 베토벤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베토벤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의 '한 인격'해 보이는 넉넉한 인상은 충분히 쉰들러 역의 자격이 있었다.

ⓒ 아이콘 엔터테인먼트
<불멸의 연인> DVD 재발매를 기대하며...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화질이 바랜 상태의 비디오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DVD로 다시 보니 정말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깨끗하고 화려했으며 명장면이랄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영화 전체와 인용음악 전체가 명장면 명연주였다.

감독은 영화의 전반부는 화려한 시대를 대변하듯 의상이 화려하기 그지없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실용적이고 근대적인 시대 풍을 따라 가발도 없어지고 옷 색깔도 검은색 톤이 주를 이루었다고. 그것은 베토벤의 암울했던 말년과도 자연스레 연결되었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과연 그랬다.

그리고 베토벤의 청력에 빨간 불이 켜졌음이 들통 나는 장면을 보면 곳곳에 촛불이 켜져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당시 음악회의 분위기를 내고자 실지로 그 많은 촛대에 일일이 다 불을 밝혔는데 촛불의 수를 헤아리자면 약 600~700개가량 된다고 하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한 시절 유행하게 만들었는데 내게 있어 이 <불멸의 연인>이 바로 그랬다. 소소한 정황을 알기 전에도 좋았지만 DVD로 이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의 어려웠던 점과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감독과 배우들의 철학 등을 알고 보니 영화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소품 하나하나 그들이 얼마나 고증을 거치고 완벽을 기하려 노력했는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든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들의 육성을 듣고 난 다음 다시 한번 영화를 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더 사랑하게 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때문에 주장하는바, 이름 없는 '아짐'의 작은 외침이 무슨 울림이 되랴만 그래도 외쳐본다.

"<불멸의 연인>dvd를 제발, 재발매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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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 초회 한정 패키지
이안 감독, 히스 레저 외 출연 / 기타 (DVD)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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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해서 ‘티켓링크’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찾으니 그새 새로운 영화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브로크백 마운틴>은 ‘끝물’이었다. 여차하다간 못 볼 수도 있겠다싶어 부랴부랴 한 시간여 시내버스를 타고 대구시내의 모 극장으로 갔다.

상영시간 20분 전쯤에 도착하였기에 혹시나 매진이 되었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매진은 아니었다. 매진은커녕 영화상영 10분전 좌석을 찾아 앉고 보니 다른 좌석들은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내가 너무 늦게 보러왔나, 아님 우리나라 관객들이 아카데미를 물먹이고 있나….’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 영화를 먼저 본 기자나 영화평론가들의 글을 보면 부정적인 견해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들 찬사일변이었다. 그러한 평들을 읽으면서, 흠잡을 데가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지난 겨울 비디오에 빠지면서 <결혼피로연>과 <와호장룡>을 보았고, 예전에 <센스 엔 센서빌리티>를 아주 좋게 본 기억이 있는데 이 영화들이 모두 이안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잔뜩 기대를 하고 영화에 집중했다. 엥? 그런데 ‘집중’을 해야 될 만큼 영화장면들이 빠르게 전개 되지 않았다. 배경음악 또한 처음에는 좋게 말하면 절제였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밋밋했다.

뿐만 아니라,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에서 쭉쭉 빵빵 원시림의 고고함과 설산의 고요를 이미 경험했기에 <브로크백 마운틴>의 음울한 풍경은 그저 그랬다. 물론 양떼의 행렬은 장엄했다. 수백 마리의 양들이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 잔잔하다기보다 좀 지루하고 무심한 듯 흘렀다.

▲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한 장면
ⓒ Paramount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렌할 분)’와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 분)’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부였다. 그 산에서 수백의 양떼와 수만의 나무들 속에서 사람이란 오직 그들 둘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숙취의 어느 밤, 추위 때문에 한 텐트 속에서 잠이 들면서 보편적이라면 남녀사이에 일어나야 할 일이 그들 사이에 일어나고 말았다.

이튿날,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그리하여 한철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돈을 번 다음 결혼을 계획했던 에니스는 단 한 번의 실수쯤으로 여기려 하였다. 그러나 그를 보는 잭의 눈빛은 달랐다. 그리고 에니스가 부정한다고 해도 그 적막한 산속에서는 결국 그렇게 역일 수밖에 없어 보였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고 드넓은 산속 평원에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애정을 쌓아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것은 만고의 진리. 이 청년들이 일은 잘하고 있나 한 차례 시찰을 나온 주인이 이를 목격하고 만다.

주인은 곧 태풍이 온다는 핑계와 양들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타박하며 예정보다 일찍 양떼를 하산시켰고, 그렇게 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때문에 이별은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적으로건 인습적으로건 산에서 있었던 그들 사이를 산 아래서도 지속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무심히 헤어지는 듯했으나 에니스는 잭의 차가 보이지 않자 통곡한다.

남들처럼 살려 노력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에니스는 예정대로 약혼녀와 결혼을 하고 다른 목장의 목부가 되었고, 잭은 잭대로 예전에 그랬듯 별 끗발 없는 로데오 선수로 돌아갔다.

그리고, 에니스는 아내 ‘알마’와 함께 딸 둘을 낳아 기르며 맞벌이 부부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편 잭은 로데오 선수로 살지만 늘 지지부진한 기록으로 가망 없는 세월을 보내다가 부잣집 딸 로린을 만나 결혼한다. 그후 아들도 얻어 로데오로부터도, 가난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4년이 흘렀고 부잣집에 장가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사위 대접을 못받고 살던 잭은 에니스에게 엽서 한 장을 보냈다. 만나고 싶다고. 힘겨운 일상과 그리움에 목마르던 에니스에게 잭의 방문은 구원이었고 둘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격렬한 포옹과 입맞춤을 하였다.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에니스의 아내 알마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시대인지라 에니스는 속으로 끙끙 앓았고 그들 부부 사이는 삐걱거렸다. 잭은 잭대로 돈독에 오른 아내와 장인의 멸시를 받으며 힘겹게 살았다. 그 팍팍한 세월, 마누라 덕에 부자인 잭은 ‘텍사스’에서 가난한 에니스를 배려해 늘 ‘아이오밍’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들의 밀월이 거듭될수록 알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이혼을 요구하였다. 에니스는 알마가 아이를 맡았기에 매월 양육비를 지급하여야 했다. 이혼은 부부관계의 끝이었을 뿐 자식에 대한 의무는 더 가중 되었다.

한편, 에니스가 이혼을 하자 잭은 이제 둘이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노릇을 해야하는 에니스 때문에 이전 보다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 잭은 에니스에게 ‘장인이 이혼하면 위자료 듬뿍 준다고 했는데 이혼하고 그 돈으로 우리 둘이 목장하며 살면 안 될까’라고 제의했으나 에니스는 거절한다.

에니스는 어린시절 보았던 카우보이들의 비극적 결말을 이야기하면서 ‘가끔씩, 몰래, 오래’ 만나는 것이 차선임을 말하였다. 함께 조그만 목장을 하며 살 꿈을 꾸었던 잭으로서는 서글프기 이를 데 없는 대답이었다.

“너에게는 내가 가끔 만나는 친구일 뿐이지만, 난 너를 20년이나 그리워했어.”

그러나 에니스는 생활고 때문에 그리고 딸들이 커감에 따라 아버지로서도 당당하고 싶었기에 잭만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닌 날벼락, 어느 날 잭에게 보낸 엽서가 반송되어왔다. 이유는 수취인 사망.

잭의 집에 전화를 하니 잭의 아내 ‘로린’은 에니스란 이름을 들은 적 있다면서 남편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오랜 친한 친구였고 브로크백 마운틴이 술집 이름 따위가 아닌 산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로린은 남편의 평소 희망을 에니스에게 부탁하였다.

“화장을 했는데 남편이 평소에 죽으면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다고 하였기에 가능하면 당신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잭의 고향집을 방문한 에니스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양떼를 몰던 시절, 서로 갈등하며 싸우다 피 묻힌 셔츠가 고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가져온다.

두 곡의 노래, 두 사람의 고백

▲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포스터
ⓒ Paramount
그후 어느새 장성한 딸아이가 결혼 소식을 알리러 오고, 그 딸을 다시 돌려보낸 뒤에야 그는 드디어 ‘의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잭만을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 걸까? 옷장 안쪽 문에 브로크백 마운틴 사진과 함께 걸어둔 피 묻은 잭의 옷에 대고 에니스는 맹세하였다. 잊지 않겠노라고. 그러면서 옷장 문이 닫히며 화면이 어두워졌다.

‘뭐야, 이게 끝인가.’

그 순간 자막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젠장, 시종 배경음악이라곤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잔잔했는데 때늦게 웬 울림? 성질 급한 관객 몇몇은 자막이 올라가자 상투적인 엔딩곡이려니 생각했는지 미련 없이 나가버렸다.

오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자막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동안 미진하다 싶었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두 고백의 노래를 들으며 영화를 거슬러 올라가자니 비로소 잭과 에니스, 그리움을 ‘절제’ 하며 산 20년의 세월이 아프게 다가왔다.

에니스의 입장에서 한 곡(He Was a Friend of Mine)

그는 내 친구였네/ 그는 내 친구였지/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흐르네… 그는 떠돌다가 죽었지… 그의 영혼은 떠돌아 머물 곳이 없었네… 난 그에게서 도망쳤지 그리고 울었네 /난 가난했고 불안했기 때문에 /그는 내 친구였네…

잭의 입장에서 한 곡(The Maker Makes)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사슬을 하나 더 끊지만
신은 내가 끊어버리지 못하게 사슬을 하나 더 엮네.
나는 너를 잊지 않도록 사랑의 상처를 하나 더 긋지만
신은 내 얼굴에 그늘이 지도록 상처를 하나 더 긋네…
나는 한 번 더 가장 기쁜 것처럼 거짓 미소를 지어보지만
신은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미소 짓게 만드네…


노래가사를 눈으로 한줄 한 줄 읽을 때마다 그리고 귀로 짠한 멜로디와 노래 소리를 들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선곡도 어찌 그리 잘하였는지 위 곡들을 이 영화에 갖다 대니 딱 들어맞았다.

아아, 인생이란, 삶이란 저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데. 좋은 친구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고 의무만 다하며 살아가는 에니스의 고달픈 인생과 그리움에 찌들다 속이 새까맣게 탄 채 비명에 간 잭의 삶은 결국은 우리네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목 언저리가 아파왔다.

또, 사랑이 아닌 ‘친구’라는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 좋은 친구였지… 친구였지….’

한번도 깔끔한 적이 없었던 에니스의 꾀죄죄한 의상이 그의 피지 못한 삶과 연결되면서, 그러니 저 혼자 남은 사나이를 어째, 어이할꼬, 어이할거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슬프게 끝이 났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자 지리멸렬이라 생각했던 내 삶의 일상이 문득 소중해지면서 더욱 의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비포 선셋> 이후 내 생애 두 번째의 OST를 사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막과 더불어 두 곡의 노래는 너무 멋졌다. 자막과 더불어 그 발상 또한 넘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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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Nicolo Paganini - Violin Concertos Nos.1 & 2 / Ilya Kaler
파가니니 (Paganini) 작곡, Stephen Gunzenhauser 지휘, Ilya / 낙소스(NAXOS)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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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서는 취침시간을 좀 당기게 되었다. 그 전에는 늘 '정다운 가곡'을 들으며 자거나 늦으면 '당신의 밤과 음악'을 좀 듣다가 자게 되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하고서는 그 시간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기를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얼추 10시에 잔다 해도 아침 7시에 일어나면 9시간쯤 자는데 뭐가 부족한지 아이는 냉큼 일어나지 못했다.

해서 저녁 취침시간을 30분 앞당기기로 하였다. 그러면 '자리끼'로 무얼 듣지? 늘 하던 대로 FM라디오를 켜자니 그 시간대엔 'FM실황음악회'라고 해서 현장의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아이들이 듣기엔 좀 어수선했다.

그러면 무얼 들을까 하다가 문득 '파가니니'가 듣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 파가니니로 하자. 들은 지 너무 오래 됐어. 나는 벽장 속 상자에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일련의 '소나타'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꺼내어 소형 카세트에 넣었다.

"자, 음악이 준비 됐으니 자자."
"엄마, 나는 잠이 안 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드니까 무조건 자자."
"그래도 안 와."
"잠이 안 온다고? 그러면 눈감고 음악소리에 귀 기울여봐. 그러면 너도 모르게 잠을 자게 된다."

그래도 자기 싫다, 아니 자야 된다, 싫다, 된다를 몇 번 반복하다 이 엄니의 입에서 '끼익' 브레이크 걸릴 때와 같은 비음악적 소음이 나오면서 상황종료. 잠은 안 오지만 일단 잠자리에 들어보자, 에고. 아이들은 얹혀사는 죄로 승복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파가니니. 오랜만에 들으니 너무 좋았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여섯 개의 소나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협주적 소나타 A장조'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 내가 가진 까만 테이프에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곡들이 양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적절한 반복과 새로운 시도, 혹은 빠르고 느림의 반복 등 클래식 음악은 유행가에 비해 긴 듯 해도 가만히 들어보면 기본 멜로디 몇 소절을 변주하거나 반복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파가니니의 변화무쌍한 변주에 빠져든 듯했다.

평소대로라면 일단은 백기를 들고 자는 척을 했다가 '엄마 그래도 잠이 안 와'가 한 번 더 나오면서 불 끄고 누운 채로 한 삼십분 떠들어야 되는데 어제는 조용했다. 즉 아이들도 파가니니의 곡이 좋았던 것이다.

희한한 것은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음악이건 함께 듣는 사람과 음악적 공감이 이뤄지면 그 음악이 '화음'으로 들리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소음'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소 내 귀에 어떤 음악이 너무 너무 좋게 들릴 경우 아이들에게 물어보곤 하였다.

"이 음악 좋제?"
"몰라, 크크. 그런데 누가 만든 거야?"
"베토벤 선생님."
"베토벤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야?"
"독일."
"몇 년?"
"대충 1800년대."

그런데 그제의 경우는 그런 말이 필요 없었다. 어둠 속에서 조금은 크게 틀어놓은 바이올린과 기타 선율이 허기진 우리네 마음을 적셔 모처럼 이심전심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이들은 파가니니의 선율에 귀기울이기 20여분 만에 잠이 들었다.

나는 테이프가 한 바퀴 다 돌아갈 때까지 들으며 파가니니의 위의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격을 떠올렸다.

파가니니와 처음 만나다

때는 거슬러 1997년 봄, 일본에서 막 돌아온 나는 내 짐을 맡겨두었던 대전의 친구 집에서 한 달 가량 더부살이를 하였다. 염치가 있다면 한 며칠 머물다가 대구의 오빠네 집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10년 객지생활에 가족과의 '단체생활'이라니 엄두가 나지 않아 눈치 없이 한 달을 개긴 것이었다.(내 빈대 생활을 허락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세월이 지나도 늘 새록새록 돋아난다.)

친구는 당시 24평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친구의 세간 살이 또한 자취생의 그것과 별 차이 없이 단출했다. 때문에 '공명'이 잘 되던 그 공간에서 마침 나로선 처음 들어보던 파가니니의 선율에 심취해 듣고 또 들었다.

"아니 이 좋은 곡을 어떻게 알았지?"
"<모래시계> 때문에 뜨고 있어."

뭐 하나에 빠지면 잠시 미쳐야 하는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무엇보다 파가니니의 위곡을 친구와 들었을 때 너무도 좋은 '화음'으로 들렸기에 이견 없이 볼륨을 높여서 듣고 또 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아침햇살이 은은하게 비치던 친구네 거실과, 무늬만 오디오인 작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파가니니의 선율에 '뻑' 갔던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다.

자아도취래도 할 수 없다. 파가니니의 음악이 좀처럼 그 기억을 지워줄 생각을 하지 않는데 난들 어쩌리. 그 후론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한동안 이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일련의 소나타가 든 테이프를 선물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서도 한 차례씩 집중적으로 파가니니를 듣곤 하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도 파가니니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작년도 봄이었지 싶다. 올해도 봄. 그러고 보니 항상 봄에 파가니니가 '땡'겼던 것 같다. 97년 처음 들었을 때도 따지고 보니 3월이었다. 결론은 나도 모르게 해마다 3월이면 파가니니가 '땡'긴다? 아마도 예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곡할 때는 별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의식은 나름대로 어떤 추억에 근거하여 곡을 고르는 듯하다.

해마다 봄이면 오현명이 부르던 '사월의 노래' 테이프를 찾아서 하루 왼 종일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오현명의 '사월의 노래'에는 역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아이를 낳고 난 다음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퉁퉁 부은 내 몸과는 달리 너무도 눈부시던 봄날의 따스함과 햇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 일련의 소나타들은 이차저차 하기에 3월이 다하도록 듣고 또 듣게 될 것 같다.

.......

사족: 제가 위 글에서 얘기한 cd는 보이지 않는 것 같군요.

그래서  사촌격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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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 상 Mr. Know 세계문학 12
알렉스 헤일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열린책들
영화 <인사이드 맨>을 보면 주인공 형사인 덴젤 워싱턴이 워낙 당당하고 능수능란해서 백인형사인 윌리엄 데포는 초라하다 못해 조금은 그 허여멀건 피부와 함께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선입견을 갖고 보자면 측은함은 흑인의 피부 빛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지 백인의 피부 빛깔에서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인사이드 맨>을 보면 백색이 우월하다는 것은 우리의 집단착각일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덴젤 워싱턴의 검은 피부는 그 하나만으로도 호연지기는 물론 신뢰의 원천으로 느껴졌었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우리들 마음속에는 아직도 검은색 피부는 여전히 밀어도 밀어도 벗겨지지 않는 저주받은 피부쯤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 TV에서 본 <뿌리>는 흑인 노예의 참상을 다룬 드라마라는 것과 너무도 선명하게 ‘쿤타킨테’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데 그 <뿌리>를 최근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뿌리>(열린책들)의 지은이인 알렉스 헤일리는 실지 외가 쪽으로 쿤타킨테의 7대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를 통해 먼 조상인 쿤타킨테 할아버지의 사연을 어제 일처럼 듣고 자랐다.

지은이는 "역사란 승자들 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시각에서 쓰였다는 과거의 유산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하였다. 이 책은 한 흑인 노예와 그 후손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지만,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간 수많은 노예들의 비참상을 유추해 볼 수 있기에 한 가계의 얘기를 뛰어넘는다.

열일곱 쿤타킨테, 숲에서 잡히다

쿤타킨테는 ‘1750년 이른 봄, 서아프리카 감비아 해안에서 나흘정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타나는 주푸레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모로와 어머니 빈타 킨테의 첫 아들로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씩씩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엄격하고 혹독한 성인식을 무사히 치른 다음에는 이제 자신 또한 자신의 아버지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하면서 살아갈 꿈을 꾸며 동생들에게도 너그러운 형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열일곱, 동생의 장난감 북을 만들어주고자 괜찮은 나무를 찾아 숲을 헤매다 어이없게도 노예 사냥꾼에게 잡히고 말았다.

발가벗은 채로, 쇠사슬에 묶이고, 발이 채워져서, 그는 찌는 듯한 더위와 구역질나는 악취, 그리고 비명을 지르고, 흐느껴 울고, 기도를 드리고, 구토를 하는 악몽 같은 광란으로 가득 찼으며, 칠 흙 같은 어둠 속에서, 다른 두 남자 사이에서 누운 채로 정신이 들었다. 그는 가슴과 배에서 자신의 토사물 냄새를 맡고는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는 붙잡히고 난 다음 나흘 동안 매를 맞아서, 온몸이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가장 아픈 곳은 양쪽 어깨 사이의 한가운데 인두로 지진 자리였다. -상권 178쪽

7대 후손인 알렉스 헤일리가 찾은 문서에 의하면 그는 1767년 ‘로드 리고니어호’를 타고 아나폴리스 항구에 도착한 140명 노예중 42명이 죽고 살아남은 98명중의 한사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그는 ‘최고급 젊은 검둥개’로서 존 월러라는 사람에게 팔렸다.

그러나 그는 노예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생면부지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이 실패로 돌아가 붙잡히면 죽도록 얻어맞아야 했지만 그는 두 번, 세 번 탈출을 멈추지 않았다. 뛰어 봤자 노예 사냥꾼들의 손바닥 안이고 더 이상 어찌 해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네 번째 탈출의 실패로 오른발이 잘리고 난 후였다.

네 번째 탈출에서 붙잡혔을 때 그는 노예 사냥꾼을 향해 돌멩이를 던져 상해를 입혔는데 이해 격분한 노예 사냥꾼은 발을 자를까, 성기를 자를까하며 쿤타를 위협하였다. 쿤타는 진정한 남자는 아들을 두어야 한다는 내면의 울림에 자신의 성기를 가렸고 노예 사냥꾼은 쿤타의 발을 겨냥했다.

쿤타가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을 치는 사이에, 도끼는 번쩍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내려쳐서, (살갗과, 근육과, 뼈가 절단되었고) 쿤타는 도끼가 쿵 나무토막에 찍히는 소리를 실제로 듣고는, 충격과 고통이 머릿속 깊숙이 되울렸다. 폭발하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 충격을 주자, 쿤타의 상반신은 발작적으로 고꾸라졌고, 시뻘건 피가 잘린 발의 토막에서 뿜어져 나오자, 그는 떨어져 나간 발의 앞쪽 반 토막을 찾으려는 듯 두 손으로 정신없이 더듬거렸으며, 그리고 그의 주위는 온통 암흑이었다. -상권 282쪽

노예의 삶을 살며 스스로 '그리오'가 되다

발이 잘린 후로는 일꾼으로도 별 쓸모가 없는 존재였고 쿤타 자신 또한 탈출의 의욕을 상실했는데 다행이랄까. 존 월러 주인의 형인 의사 윌리엄 월러가 쿤타의 발을 자른 것에 격분하며 동생으로부터 쿤타를 샀다.

쿤타는 발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새 주인이 된 의사 윌리엄 월러의 간호를 받았고 다 나은 다음에는 얼마간 정원사로 소일하다 윌리엄 주인의 마차를 끌게 되었다. 그리고 씨가 마르기 전에 어서 자손을 보라던 어느 늙은 노예의 말을 상기하며 윌리엄 주인의 오랜 요리사이자 자신의 발 상처를 정성껏 보살펴줬던 벨과 결혼하여 딸 키지를 낳았다.

그는 어린 딸 키지가 말을 배울 무렵부터 자신의 고향인 서아프리카 감비아 땅의 작은 마을 주푸레의 언어를 기억시켜주려 애썼다. 기타를 보고는 ‘코’, 강을 보고는 ‘캄비 볼롱고’로 가르치는 등 어린 딸에게 수없이 자신의 고향과 고향 말을 얘기했다.

열여섯 나이에 어이없이 부모를 떠나 다른 주인에게 팔려간 키지는 그의 아들 치킨조지에게 아버지 쿤타의 고향 아프리카를 뇌리에 심어주었다. 치킨조지 또한 그의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쿤타 할아버지의 얘기를 되풀이 했고 그것은 몇 세대를 거처 알렉스 헤일리에게 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문자가 없던 시절, 쿤타의 고향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말로 기억하는 구전역사가인 ‘그리오’를 두었었는데 그 그리오들은 수 백 년 역사를 한점 어긋남 없이 기억하는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한사람 그리오의 죽음은 오늘날로 치자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알렉스 헤일리는 마치 그 사실을 증명 해 받듯 자신의 6대조 외할아버지인 쿤타킨테와 그의 부모 형제 얘기를 그로부터 200년이나 지난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그리오에게서 정확하게 들었다.

쿤타킨테는 도서관 한 채와 맞먹는 ‘프로’ 그리오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뿌리만큼은 후세연연 그의 자손들에 각인시켜 ‘작은’ 그리오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나아가 자신의 개인사를 넘어 아메리카로 잡혀온 흑인노예들의 총체적 삶을 되돌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뿌리>를 얘기 해줌으로써 간만에 얘기다운 얘기를 해준 뿌듯함(?)을 느꼈다. 인간이 인간을 사고 팔다니, 이 부끄러운 역사의 부채를 백인들은 갚을 생각을 제대로 하고 있나 모르겠다. 흑인들이 말로만 평등이 아닌 진정한 평등을 맛보며 살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 <뿌리>를 읽고 나니 더 한층 강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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