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찾는 우리꽃 - 봄
김태정 지음 / 현암사 / 1994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엔 해마다 봄이 되고, 그리하여 오고 가는 길섶에서 새싹이 돋고 자라서 작은 꽃망울들을 피우면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자체로 좋았다. 내 너의 이름은 모르나 그냥 좋다. '그냥 좋아하면 되었지 귀에 익숙지 않은 너의 이름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니' 하며 꽃들에게 무언의 인사를 건네곤 하였다. 그러나 이름이 어렵기로 말하자면 원산지가 대부분 서양인 서양화초들의 이름이 더 어려웠다. 다른 나라 화초들의 익숙지 않는 이름들을 외우다보니 우리 나라 꽃 이름을 외우는 일은 훨씬 쉽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 꽃 책을 샀다.

김태정 박사의 계절별로 나뉘어 놓은 <쉽게 찾는 우리 꽃-현암사> 3권은 한 손에 잡고도 펼칠 수 있게 책의 가로 길이가 좁다. 때문에 들이나 길섶에서 왼손에는 책을 펼쳐들고 오른손으로는 풀이나 꽃을 살피고 하면서 보기에 딱 좋다.

보다 보니, 내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눈에 익숙한 꽃들이 많았다. 어릴 때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며 수도 없이 본 꽃들. 그러나 한번도 그 이름을 알고자 애썼던 기억은 없다. 다만 아련하게 참 예쁘구나 생각했던 기억은 아직도 손에 잡힐 듯 남아있다. 그러한 추억의 꽃들을 이제는 그 이름 하나하나 여유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패랭이꽃'이라는 꽃 이름을 맨 처음 알게 된 것은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였다. 무슨 시였는지는 잊어버렸는데, 암튼 그 시를 읽고 나서 패랭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 날이 온 것이다. 책을 펼쳐 패랭이꽃을 찾아보니 과연 패랭이꽃은 시인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예뻤다.

'며느리밑씻개'는 내가 며느리다 보니 그리고 그 이름이 하도 웃기기에 평소 궁금해하던 풀이었는데, 아, 그것은 웃고 넘어갈 풀이 아니었다.

분포지를 보니 '각 곳의 산과 들, 낮은 곳 집 근처 울타리나 길가 풀밭'이라고 되어있었다. 그 옛날 들과 산에서 일하다가 끄응 신호가 오면 급한 김에 쓸 수도 있는 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 아니었다.

며느리 밑씻개는 삼각형의 잎에 꽃은 메밀꽃 모양인데 잎 가장자리와 줄기에는 작은 가시들이 촘촘히 나 있었다. 그것으로 뒤처리를 하다가는 정말이지 피 보는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뭉뚱그려 들국화라 생각했던 것들도 알고 보니 잎과 색, 꽃 모양에 따라 다들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해국, 개망초라고. 그러나 또 세분되어서 구절초도 모양과 분포지에 따라 '낙동구절초'와 '바위구절초'로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쑥부쟁이 또한 '가는 쑥부쟁이'와 '개 쑥부쟁이' 갯 쑥부쟁이' 그리고 개미취도 '벌 개미취'라는 게 별도로 있었다. 그 옛날의 조상들은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냥 들국화라고만 하지 저마다 특징을 살려서 이름을 지어 주다니 그 정성이 놀라웠다.

보고, 또, 봐도 책을 덮으면 그만 어떤 것이 쑥부쟁이였고 어떤 것이 구절초였는지 가물가물해졌다. 천상 가을이 되어 들로 산으로 그들이 지천을 이룰 때 그 때 그들의 몸을 하나하나 더듬어 가면서 관찰해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찾는 우리 꽃>은 전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앞에서 얘기했던 대로 책이 한 손에 들어가기 알맞게 좁다. 봄, 여름이 각각 한 권이고 가을 겨울이 합쳐서 한 권이다.

지금은 봄이니 '봄' 권을 들고 들이나 공원으로 나가면 어렵지 않게 '아하, 이것이 냉이꽃이로군' '냉이로 된장국은 끓여먹어 봤어도 냉이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는데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비꽃, 봄맞이꽃, 괭이밥, 별꽃, 씀바귀, 꽃다지, 민들레 등등 무심히 보아왔던 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 김태정 박사의 열정이 놀랍다. 그는 아무래도 고산 김정호의 피(?)를 이어 받았지 싶다. 학창시절, 국사 책에서 '대동여지도는 김정호'라고만 외워서 시험문제를 맞히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양반이 지도를 그리려고 삼천리를 단 '두발'로 누비고, 또, 누볐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런 인물은 역사책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김태정 박사야말로 살아있는 김정호다. 제도권 박사 하나도 부럽지 않고 박사라는 말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 <쉽게 찾는 우리나물> <쉽게 찾는 우리약초>등도 책꽂이에 꽃아 두면 두고 두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소설이나 에세이 등은 한번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아두면 바로 관속으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로 두 번 보기가 쉽지 않다. 그에 비하면 김태정 박사의 꽃 시리즈는 두고두고 다시 넘기게 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
강서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현대를 살아가는 데는 돈이 필수적이다. 매달 말이면 각종 세금에다 관리비, 통신비, 교통비 등 먹는 것과는 별도로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기십만원이다.

 
ⓒ 위즈덤하우스
거기다 식비를 보태면 맛있는 반찬 별로 못 먹어보고도 백만원은 아주 기본으로 들어간다. 내 경우, 월급날이 돌아오기 전에 언제나 통장잔고가 바닥나서 카드를 긁게 된다. 카드를 긁으면서, 아아, 다음달에는 정말이지 가불인생 되지 말아야지 맹서를 하지만 어째 월급이 좀 많다 싶으면 또 반드시 유치원비니 자동차세니 하는 것들이 날아온다.

때문에 또, 어쩔수 없이 카드로 좀 살아야 다음달 월급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한번 가불인생이 되고 나니 좀처럼 그 것을 예전처럼 돌리기가 쉽지 않다. 한번 씀씀이가 커지고 나면 정말이지 고치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쌀이며 기타 부식이나 양념거리 등을 시댁으로부터 공수 받는데도 늘 쪼들리는 생활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놈의 신용카드가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과감히 카드를 정리하고 싶지만 '소득공제' 라는 말에 마음이 약해지고 혹시 유사시에 돈이 없으면? 하면서 지갑에서 쉬이 빼질 못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나의 이 미련을 일거에 날려 줄 구원의 선생님을 만났으니. 뭣시라? "나는 '남자'보다 '적금통장'이 좋다"고?

신용카드를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이왕 쓰는 것 소득공제나 하면서 쓰고 또 썼는데 저자는 나의 이런 방황에 마침표를 찍게 해 주었다. '신용카드로 소득공제 받는다지만 연봉 5,6천의 고액 소득자가 아니면 실질적인 혜택이 별로 없다'나.

원고료만 받으면 백화점으로 쪼르르 달려가던, 쇼핑 중독자였던 방송작가 강서재씨는 직장생활 5년에 통장잔고가 달랑 700만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온전한 그녀의 재산이 아니었다.

밀린 국제전화비 350만원에다 200만원에 육박하는 카드 값 등을 모두 청산하고 나니 잔고가 제로였다. 즉 직장생활 5년에 통장잔고가 0인 삶을 그녀는 살았던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방년 27세에 '이럴수는 없는기라' 개과 천선하여 1억 모으기에 도전한다.

자기가 무슨 탤런트도 아니면서 한달 의상비 100만에다 피부관리비 30만원씩 쓰던 그녀는 월급 220만원에서 160만원씩 뭉텅 떼어 저금하기로 결심하였다. 너무 과한 계획은 실패할 확률이 많은데 그녀는 그동안 너무도 원없이 쓰던 그 정열로 이번엔 원없이 모으기에 돌입하였다.

물론 성공적으로 일년을 보냈다. 그뿐인가. 그 다음해엔 일을 늘려서 월급이 400만 원이나 되도록 불철주야 일을 해 한달에 300만 원씩 저금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하여 삼년 허리띠를 졸라매니 어느새 통장에는 '억!' 소리가 났다고. 그리고 이제는 10억 목표에 도전중이라나.

물론 싱글인 저자는 딸린 식솔이 없으니 보통 사람보다는 모으기 쉬웠을 것이다. 나는 억은 고사하고 1000만원이라도 한번 모아보는 게 소원인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

1억 모으기에 도전하면서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저자는 젊은날의 한 시절을 가열차게 보낸 세월 속에서 돈보다 더 진기한 것을 발견하였다고 하였다. 즉, 돈 만이 아닌 '돈'과 '인생' 그리고 '세상'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고.

주식? 부동산? 무슨무슨 신탁? 아이구 머리아파 난 그런 것 몰라 할 사람들이 하면 가장 좋을 저축법인 것 같다, 그녀의 저축 비법은. 일단 저돌적으로 목표액을 정하고 다달이 꼬박꼬박 붓는다, 실시! 나는 내 형편에 맞게 우선 한 300만원부터 시작해 볼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란 무엇인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채수동.고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십대 초반, 커피숍에서 두 달인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그 커피숍 벽에는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있었고 구석에는 피아노 그리고 음악은 항상 클래식만 흘러나오게 하는 그런 집이었다.

그림과 피아노와 음악 빼놓고는 모든 것이 후져서 손님들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그러나 자칭 예술가연하는 사람들은 그러하기 때문에 시내를 나오면 주로 그 커피숍을 이용하는 듯했다.

그렇게 이따금씩 납시는 손님중에 미술을 하던 분이 한사람 있었다. 그 손님은 언제나 막노동 하다 온 것 같은 입성에다 어깨선까지 내려온 긴머리를 휘날리며 이따금씩 그 커피숍을 찾았다. 그는 프림이 듬북 들어가 구수한 맥심이라 소문 났으나 실은 맥스웰 하우스인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명상에 잠기곤 하였다.

그러던 그 손님이 어느날은 무슨 말끝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내게 던져주었다. 그렇잖아도 당시 나는 인생이 뭔지 황망해 하고 있었는데 그런 질문을 한 만큼 그는 해답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였다.

그는 '인생은 운명인가, 아니면 의지의 표상인가.'그걸 모르겠다며 웃으면서 그것을 연구중(?)이라고 하였다. 그 얘기를 듣는순간 '운명'과 '의지의 표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소주라도 한잔 들이킨 듯 '캬아!' 탄성이 나왔다.

운명론에 기울어 있던 나는 '의지의 표상'이라는 말이 너무도 신선하였다. 물론 그 말은 그 화가의 말이 아니고 어느 철학자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말을 때 마침 내게 들려 주어서 무수한 낱말 들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인생이란?' 이라고 하면 항상 '운명'과 '의지의 표상'이라는 두 상반된 어휘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삼십 중반을 넘어선 두아이의 엄마인 현재, 나는 그져 두 나비를 부활시키려는 애벌레에 지나지 않으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차피 공수레 공수거이니 아득바득 살 필요가 있나. 또, 원래 치열하지 못한 성격이니 남들처럼 뭔가 특별한 것을 이룬다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니 인생이니 뭐니 고민하지 말고 그냥 대충 살다가 죽지뭐,였다.

그러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와의 전화에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각자 독서경험을 얘기하던 중 친구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사실 이책은 한꺼번에 다 읽는 것이 아니고 매일 조금씩 명상하듯 읽어야 하는 책인데 나도 모르게 책에 몰입 하다보니 이틀 동안 천 이백 여 페이지를 다 읽어버렸다. 강력 추천한다."

그렇지 않아도 제목은 듣고 있었으나 살 생각 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친구의 강한 어조에 끌려 당장 주문을 하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일년 365일, 즉 새해 1월 1일부터 12월 31까지 매일 그 날짜에 해당하는 분량을 읽고 명상하라는 듯 일기처럼 월, 일을 표시해 두었다.

하루에 한 두장씩 읽어서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돌면 그 책의 마지막을 여행할 수 있게 엮어져 있다. 물론 글이 무한정 땡기면 친구처럼 몇 일 만에 완주를 하고 다시 조금씩 음미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매일로 나뉘어 놓은 읽을거리에는 톨스토이 자신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지성들의 사상과 종교, 예술관들이 총망라 되어있다. 그야말로 이 한권의 책에서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쇼펜하워, 탈무드, 노자, 공자, 괴테, 파스칼등등 동서양의 모든 사상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그 많은 사상가들의 얘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엮느라 톨스토이는 장장 이책을 만드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하였다.

톨스토이는 인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였을까. 톨스토이는 인생의 의의를 '선에 대한 끝없는 희구'에 있다고 하였다. 오늘날 처럼 물질적 풍요와 기아가 공존하고 끊임없는 전쟁의 욕망속에서, 톨스토이의 선한 삶에의 의지야 말로 우리모두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은 있다
서현섭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은 없다>가 공전의 히트를 할 때, 나는 과히 그 책이 그리 '땡기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일본어를 막 짝사랑 할 때였고 또 내가 알던 일본인 친구는 일본을 '없다'고 단정지을 때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알곡처럼 튼실하고 진실한 내면을 가진 이였다.

때문에 저자는 '일본은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읽어봐야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리 국민들에게 작은 위안이나 주는 그런 책이려니 치부해 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책꽂이에서 '일본은 없다'를 발견하고 내 돈 안들이고 볼 수 있다는 것에서 회가 동했다. 그러나 그 책을 보고 나서의 소감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는 어쩜 타국을 이렇게 씹어놓은 책에 베스트셀러라는 영예를 주었는지.

나의 흥분에 일문학을 전공한 한 친구는 '일본은 없다'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있다'도 있다고 하였다. 뭐라고? '일본은 있다'도 있다고?

<일본은 있다>(서현섭 저)의 저자는 외교관으로서 일본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또 저자 개인적으로 일본과 일본 사람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과정에서 나온 책이라 '일본은 없다'에서 받은 부끄러움을 조금은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에 대한 소식은 '일본은 없다'의 저자와 '일본은 있다'의 저자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동네 책방에서 유재순씨의 <일본여자를 말한다>를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꼼심한' 느낌과는 달리 서현섭씨의 그것과는 또 다른 색깔로 일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책을 한 번 읽어보고 괜찮으면 그 사람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하품(下品)의 일본인>은 그 과정에서 읽게 되었다. 그 두 권을 끝으로 유재순씨도 잊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녀의 이름이 회자되기에 다시금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보니 그녀는 여전히 두 발로 뛰어다니며 글을 쓰고 있었다.

사교성은 얼마나 좋은지 그녀가 며칠 집이라도 비울라치면 그녀의 자동응답 전화에는 수십 통의 메시지가 쌓여있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 십대 부부와 그 아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하루 종일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일상을 낱낱이 취재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지금 몇 시인가?>를 보면 오늘날 일본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장기 불황 속에서 나름대로 일본 경제를 살리는 '100엔 숍'에 관한 이야기며 정규직으로의 직장을 구할 수 없어진 젊은이들이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프리터 족들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교육에 대한 이상 열기는 후끈후끈하다 못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는 두 살 된 아이가 평소 같은 유치원에 원생을 둔 그리하여 서로 친하던, 엄마의 친구에게 유괴되어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까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이유는 자신의 자식들은 떨어짐에 반해 친구의 자식들은 명문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자랑스레 붙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우, 해마다 성적을 비관한 나머지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던지는 학생들이 그 얼마던가. 성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기에 그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을 해야 되고 또 그 성적을 질투하여 어린 생명을 살해까지 한다는 것인지.

남의 나라에서 발로 뛰는 글쓰기를 하는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존경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물과 사상 30 - 탄핵받는 '탄핵' 그 이후
고종석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강준만’ 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책의 제목은 잊어버렸으나 ‘성역과 금기에 도전 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선채로 몇 장 읽어보았었다.

그러나 구매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강준만’이라는 이름과 표지 안쪽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던 저돌적인 강 교수의 얼굴은 나도 모르게 기억하게 됐다. 물론 그때는 ‘좀 의미 있는 별종 같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고 좀 더 유명(?)해지면 그때 사 보자 하는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2000년 가을 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곳과 인접해 있는 모 대학 앞의 서점엘 갔다가 다시금 강 교수를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다 우연히가 아닌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춰지는 그런 명당(?)자리에서 강 교수의 단행본 <인물과 사상>과 <월간 인물과 사상>을 만났다.

강준만 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것은 그 때 처음 본 잡지였다. 가격도 4000원인가로 저렴했기에 호기심도 충족시킬 겸 가벼운 마음으로 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책장을 펼치니 <월간 인물과 사상>에 대한 작은 소개가 있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은 성역과 금기에 도전합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우리사회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구독을 권유해 주십시오.>

‘읽어보고 괜찮으면 당연히 구독을 권유하겠지 별 걱정’하면서 책장을 하나하나 넘겼다. 그것이 강준만 교수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사랑이건 물건이건 또, 무엇이건 나는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인데 <월간 인물과 사상>이 그랬다.

처음 몇 페이지를 딱 읽는 순간 이 잡지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첫사랑 따위와는 또 다른 내 마음에 폭풍을 주는 책이었다. 그로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는 다음달 <월간 인물과 사상>을 사러 서점엘 갔다. 어떨 땐 너무 일찍 가서 다음호가 나오지 않아 다른 책을 사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지 말고 아예 정기구독을 하면 그런 허탕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인데, 바보 아니야 자문해 보기도 했지만 그냥 다달이 서점엘 가서 내손으로 직접 뽑아내는 손맛을 양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월간 인물과 사상>을 사면서 곁들여서 다른 책도 구경하고 사고하는 일련의 과정이 좋았다.

대학촌의 서점은 보통 동네서점과는 달리 베스트셀러 보다 읽으면 좋을 각 분야의 양서들을 집약해 놓아서 책을 고르기도 편하고 책을 사도 후회가 없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을 보기 전에는 신문의 광고나 신간소개 코너에서 읽을 책들을 낚곤 했는데 <월간 인물과 사상>을 보고난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 맨 뒤쪽의 신간 안내 코너를 보면 대략 만족이었다.

그곳에 소개된 신간은 신간한권으로 끝나지 않아서, 어떤 책들은 그 책이 너무 괜찮아서 저자의 또 다른 책들도 사 읽게 되곤 하였다. 또, 저자가 괜찮으면 그런 저자를 발굴한 출판사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러다 멋진 출판사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중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또 하나의 문화>와의 만남이다. 조한혜정, 박혜란, 고 고정희등 진보적인 여성주의자들이 만든 <또 하나의 문화>동인은 부 정기적으로 동명의 동인지를 내었었다.

그 ‘또문’ 시리즈는 같은 주부의 입장이고 대한민국여성으로서 나를 돌아보는데 너무도 도움이 되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책들을 만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르든가 영 못 만나고 이승을 떠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우연한 호기심으로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는 통째로 지갑을 줍는 행운에 비 할 바 없는 행운을 맛보았다. 그리하여 2001년과 2002년 두 해는 도서출판 <개마고원>가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오는 책들과 <월간 인물과 사상>이 소개하는 책들을 사 보느라 정신없이 행복했다. 그때는 둘째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였는데 달리 태교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단행본 <인물과 사상>에서 강준만 교수가 언급하는 숱한 명제들은 별 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 비판적 사고, 혹은 비판적 책읽기가 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단행본 <인물과 사상>, 그리고 일련의 강 교수의 저작들에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정 딴 판의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어 천만 다행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강준만을 ‘이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라고 하였던가. 그는 정말 이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었다. 언론 개혁에 관한 숱한 외침들, 지식인이여 가면을 벗자, 지연 학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패거리문화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일갈 등등 그가 내뱉는 단어하나하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려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화두들이었다.

아무튼 강준만 교수는 나에게 독서의 기쁨을 단편적으로가 아닌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고 확장시켜주었다. 그리고 독서의 기쁨을 넘어 내 삶을 보다 나은 변화에로 이끌어 주었다. 강준만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