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Nicolo Paganini - Violin Concertos Nos.1 & 2 / Ilya Kaler
파가니니 (Paganini) 작곡, Stephen Gunzenhauser 지휘, Ilya / 낙소스(NAXOS) / 1998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서는 취침시간을 좀 당기게 되었다. 그 전에는 늘 '정다운 가곡'을 들으며 자거나 늦으면 '당신의 밤과 음악'을 좀 듣다가 자게 되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하고서는 그 시간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기를 너무 힘들어하는 것이었다. 얼추 10시에 잔다 해도 아침 7시에 일어나면 9시간쯤 자는데 뭐가 부족한지 아이는 냉큼 일어나지 못했다.

해서 저녁 취침시간을 30분 앞당기기로 하였다. 그러면 '자리끼'로 무얼 듣지? 늘 하던 대로 FM라디오를 켜자니 그 시간대엔 'FM실황음악회'라고 해서 현장의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아이들이 듣기엔 좀 어수선했다.

그러면 무얼 들을까 하다가 문득 '파가니니'가 듣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 파가니니로 하자. 들은 지 너무 오래 됐어. 나는 벽장 속 상자에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일련의 '소나타'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꺼내어 소형 카세트에 넣었다.

"자, 음악이 준비 됐으니 자자."
"엄마, 나는 잠이 안 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드니까 무조건 자자."
"그래도 안 와."
"잠이 안 온다고? 그러면 눈감고 음악소리에 귀 기울여봐. 그러면 너도 모르게 잠을 자게 된다."

그래도 자기 싫다, 아니 자야 된다, 싫다, 된다를 몇 번 반복하다 이 엄니의 입에서 '끼익' 브레이크 걸릴 때와 같은 비음악적 소음이 나오면서 상황종료. 잠은 안 오지만 일단 잠자리에 들어보자, 에고. 아이들은 얹혀사는 죄로 승복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파가니니. 오랜만에 들으니 너무 좋았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여섯 개의 소나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협주적 소나타 A장조' '모세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 내가 가진 까만 테이프에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곡들이 양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적절한 반복과 새로운 시도, 혹은 빠르고 느림의 반복 등 클래식 음악은 유행가에 비해 긴 듯 해도 가만히 들어보면 기본 멜로디 몇 소절을 변주하거나 반복의 연속이다. 아이들은 파가니니의 변화무쌍한 변주에 빠져든 듯했다.

평소대로라면 일단은 백기를 들고 자는 척을 했다가 '엄마 그래도 잠이 안 와'가 한 번 더 나오면서 불 끄고 누운 채로 한 삼십분 떠들어야 되는데 어제는 조용했다. 즉 아이들도 파가니니의 곡이 좋았던 것이다.

희한한 것은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음악이건 함께 듣는 사람과 음악적 공감이 이뤄지면 그 음악이 '화음'으로 들리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소음'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평소 내 귀에 어떤 음악이 너무 너무 좋게 들릴 경우 아이들에게 물어보곤 하였다.

"이 음악 좋제?"
"몰라, 크크. 그런데 누가 만든 거야?"
"베토벤 선생님."
"베토벤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야?"
"독일."
"몇 년?"
"대충 1800년대."

그런데 그제의 경우는 그런 말이 필요 없었다. 어둠 속에서 조금은 크게 틀어놓은 바이올린과 기타 선율이 허기진 우리네 마음을 적셔 모처럼 이심전심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이들은 파가니니의 선율에 귀기울이기 20여분 만에 잠이 들었다.

나는 테이프가 한 바퀴 다 돌아갈 때까지 들으며 파가니니의 위의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격을 떠올렸다.

파가니니와 처음 만나다

때는 거슬러 1997년 봄, 일본에서 막 돌아온 나는 내 짐을 맡겨두었던 대전의 친구 집에서 한 달 가량 더부살이를 하였다. 염치가 있다면 한 며칠 머물다가 대구의 오빠네 집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10년 객지생활에 가족과의 '단체생활'이라니 엄두가 나지 않아 눈치 없이 한 달을 개긴 것이었다.(내 빈대 생활을 허락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세월이 지나도 늘 새록새록 돋아난다.)

친구는 당시 24평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친구의 세간 살이 또한 자취생의 그것과 별 차이 없이 단출했다. 때문에 '공명'이 잘 되던 그 공간에서 마침 나로선 처음 들어보던 파가니니의 선율에 심취해 듣고 또 들었다.

"아니 이 좋은 곡을 어떻게 알았지?"
"<모래시계> 때문에 뜨고 있어."

뭐 하나에 빠지면 잠시 미쳐야 하는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무엇보다 파가니니의 위곡을 친구와 들었을 때 너무도 좋은 '화음'으로 들렸기에 이견 없이 볼륨을 높여서 듣고 또 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아침햇살이 은은하게 비치던 친구네 거실과, 무늬만 오디오인 작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파가니니의 선율에 '뻑' 갔던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에 선하다.

자아도취래도 할 수 없다. 파가니니의 음악이 좀처럼 그 기억을 지워줄 생각을 하지 않는데 난들 어쩌리. 그 후론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한동안 이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일련의 소나타가 든 테이프를 선물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서도 한 차례씩 집중적으로 파가니니를 듣곤 하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때도 파가니니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작년도 봄이었지 싶다. 올해도 봄. 그러고 보니 항상 봄에 파가니니가 '땡'겼던 것 같다. 97년 처음 들었을 때도 따지고 보니 3월이었다. 결론은 나도 모르게 해마다 3월이면 파가니니가 '땡'긴다? 아마도 예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곡할 때는 별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의식은 나름대로 어떤 추억에 근거하여 곡을 고르는 듯하다.

해마다 봄이면 오현명이 부르던 '사월의 노래' 테이프를 찾아서 하루 왼 종일 듣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오현명의 '사월의 노래'에는 역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아이를 낳고 난 다음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퉁퉁 부은 내 몸과는 달리 너무도 눈부시던 봄날의 따스함과 햇살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 일련의 소나타들은 이차저차 하기에 3월이 다하도록 듣고 또 듣게 될 것 같다.

.......

사족: 제가 위 글에서 얘기한 cd는 보이지 않는 것 같군요.

그래서  사촌격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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