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음악 1집 : 음악을 들으러 숲으로 가다... 세상의 모든 음악 시리즈 1
Various Artists 연주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세상의 모든 음악>

요즘, 클래식 음악 전문 방송 채널인 KBS 1FM의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는 탤런트 김미숙씨가 꽉(?) 잡고 있다. 이름 하여 '세상의 모든 음악, 김미숙입니다'. 그녀는 연기자로 출발했지만 타고난 차분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클래식 음악 진행자로서도 관록을 자랑하고 있다.

이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황혼이 막 지고 어스름이 내리고, 급기야 한낮의 찬란했던 모든 풍경이 어둠 속에 묻히고 마는 뭐라 딱히 말할 수 없는 허전한 순간을 '세상의 모든 음악'은 커다란 위로로 꽉 채워준다.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세상의 모든 음악'은 세상의 모든 좋은 음악들을 들려준다. 모두가 하루의 피곤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픈 저녁이니 만큼 음악 선곡도 최대한 편안하고 기복이 덜한 매끄러운 곡들로 채워진다.

1, 2부로 나누어서 1부는 귀에 익숙한, 편안한 클래식을 틀어주고 2부는 그야 말로 세상의 모든 영화음악, 재즈, 샹송, 칸소네, 남미음악, 흑인영가 등 다양하게 들려준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듣는 순간은 주로 저녁밥을 먹는 다거나, 설거지를 하는 시간들이다. 밥을 먹다가 혹은 설거지를 하다가 유독 내가 좋아하는 선율을 만나게 되면 하던 일은 잠시 '일시중지' 된다. 그리고 빠져든다.

"엄마 왜 그래?"
"쉿--"

나는 오디오를 가리키며 조용히 들으라는 시늉을 한다. 아이 또한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6시와 8시 사이'라서 그런지 별 방해 없이 조용해진다. 세상에는 '하나'가 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음악과 하나의 합일을 이루는 순간만큼 황홀한 경우도 드물리라.

<이미선의 FM다이얼>

이 KBS 1FM의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 프로그램은 세월 따라 조금씩 바뀌어 왔다. 내가 최초로 이 시간대의 음악을 들었을 때는 15년 전쯤으로 그때는 이미선 아나운서가 진행하였다. 당시 프로그램의 이름은 ‘이미선의 FM다이얼’이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는 이미선 아나운서가 지금보다 15년이나 더 젊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이미선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천사의 목소리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있어 궁금한 것을 검색 창에 넣고 치면 뭐든 다 나오지만 그때는 오로지 목소리만 듣고 상상만 하던 시절이라 이미선 아나운서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사실 아직도 이미선 아나운서의 얼굴을 모른다.) 아니 저렇게 목소리가 멋진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도대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기는 할까.

나는 이미선 아나운서가 불러주는 곡명을 반복해서 적으며 클래식음악의 제목을 익히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당시 '이미선의 FM다이얼'의 시그널이다. 시그널이 정말 멋졌는데 어느 날은 프로그램 말미에 시그널 전곡을 틀어주었다. 제목은 '안단테 베네치아노'라고 하면서.

“프로그램 중간에 시그널을 틀면 프로그램을 마치는 줄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에 시그널의 원곡은 함부로 틀어주지 못하는데 희망자가 많아서 특별히 들려드립니다.”

나는 그 시그널을 좋아하면서도 감히 엽서를 보내거나 하는 따위를 하여 압력(?)을 넣을 생각은 못하였는데 나 말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나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그 시그널 음악을 접할 때 마다 도대체 무슨 곡이지 하며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랬는데, 그것이 나만이 아니고 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집착에 시달렸다는 것에서 만나지는 못하나 무한의 친구를 가진 듯 뿌듯하였다. 아무튼 내 젊은 날의 우울한, 혹은 쓸쓸한 정서를 ‘이미선의 FM다이얼’은 많이 달래주었고 함께 해 주었다.

<저녁의 클래식>

이미선 아나운서 다음으로는 이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의 프로그램 제목과 진행자가 누구였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선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몹시도 경도되었기에 아쉽게도 다른 분들은 잊어버렸다. 어느 핸가는 남자분이 진행한 적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내가 다시금 KBS 1FM의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의 프로그램에 푹 빠지게 된 것은 98년도부터이다. 당시는 결혼초기로 시간이 많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여유를 가지고 예전에 즐겨 듣던 그 시간대에 채널을 맞출 수 있었다.

그 옛날 이미선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정신을 잃었던 것을 상기하며 요즘은 어떤 분이 하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음악의 전령사는 정세진 아나운서였다. 그런데 이 정세진 아나운서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한 점 티끌도 없이 차분하고도 지적인 정세진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이미선 아나운서의 환상적이고 달콤한 목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너무도 정적이 감도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저녁의 클래식'을 듣는 동안은 속세가 아니라 고요한 산사의 전망 좋은 대웅전 뜨락에서 명상에 잠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선(禪)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저녁의 클래식'을 진행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선의 경지 다름 아니었다. 물론 이미선 아나운서가 그러했듯이 정세진 아나운서도 어떤 모습일까 무척 궁금했었다.

다행이 정세진 아나운서는 쉬이 텔레비전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많은 아나운서들이 있지만 내겐 유독 정세진 아나운서가 특별해 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음악과 함께한 세월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나름대로 추측해(?) 보곤 한다.

글을 마치며…

예전에 '정트리오'의 어머니인 이원숙씨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아이들 모두에게 음악을 시킨 이유가 무엇인가 물으니, 낯선 이국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마침, 클래식 음악은 아이들을 나쁘게 자라게 하지 않는다는 어느 교수의 연구결과를 듣게 되어 자신도 시켜 보았다고 하였다. 물론 결과는 '정트리오'가 해답을 주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청소년들은 부족함 없이 자라는 듯하지만 그 마음의 밑바닥은 공허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클래식 음악을 접하면서 마음의 위로처 하나쯤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클래식 음악은 그것을 작곡한 작곡자들의 외로움과 기쁨, 비탄 혹은 고뇌의 결정(結晶)이므로 그것을 듣는 사람마저도 고양시키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여러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 가장 벅차고도 심금이 울리는 즐거움은 클래식 음악에 빠져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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