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있다
서현섭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은 없다>가 공전의 히트를 할 때, 나는 과히 그 책이 그리 '땡기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일본어를 막 짝사랑 할 때였고 또 내가 알던 일본인 친구는 일본을 '없다'고 단정지을 때 느껴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알곡처럼 튼실하고 진실한 내면을 가진 이였다.

때문에 저자는 '일본은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읽어봐야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리 국민들에게 작은 위안이나 주는 그런 책이려니 치부해 버렸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의 책꽂이에서 '일본은 없다'를 발견하고 내 돈 안들이고 볼 수 있다는 것에서 회가 동했다. 그러나 그 책을 보고 나서의 소감은 '부끄러움'이었다. 우리는 어쩜 타국을 이렇게 씹어놓은 책에 베스트셀러라는 영예를 주었는지.

나의 흥분에 일문학을 전공한 한 친구는 '일본은 없다'만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있다'도 있다고 하였다. 뭐라고? '일본은 있다'도 있다고?

<일본은 있다>(서현섭 저)의 저자는 외교관으로서 일본에서 다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또 저자 개인적으로 일본과 일본 사람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과정에서 나온 책이라 '일본은 없다'에서 받은 부끄러움을 조금은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에 대한 소식은 '일본은 없다'의 저자와 '일본은 있다'의 저자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동네 책방에서 유재순씨의 <일본여자를 말한다>를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꼼심한' 느낌과는 달리 서현섭씨의 그것과는 또 다른 색깔로 일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책을 한 번 읽어보고 괜찮으면 그 사람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하품(下品)의 일본인>은 그 과정에서 읽게 되었다. 그 두 권을 끝으로 유재순씨도 잊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녀의 이름이 회자되기에 다시금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해보니 그녀는 여전히 두 발로 뛰어다니며 글을 쓰고 있었다.

사교성은 얼마나 좋은지 그녀가 며칠 집이라도 비울라치면 그녀의 자동응답 전화에는 수십 통의 메시지가 쌓여있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 십대 부부와 그 아기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하루 종일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의 일상을 낱낱이 취재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지금 몇 시인가?>를 보면 오늘날 일본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장기 불황 속에서 나름대로 일본 경제를 살리는 '100엔 숍'에 관한 이야기며 정규직으로의 직장을 구할 수 없어진 젊은이들이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프리터 족들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이나 우리나 교육에 대한 이상 열기는 후끈후끈하다 못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일본의 한 유치원에서는 두 살 된 아이가 평소 같은 유치원에 원생을 둔 그리하여 서로 친하던, 엄마의 친구에게 유괴되어 살해되는 충격적인 일까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이유는 자신의 자식들은 떨어짐에 반해 친구의 자식들은 명문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자랑스레 붙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우, 해마다 성적을 비관한 나머지 아파트 창문으로 몸을 던지는 학생들이 그 얼마던가. 성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기에 그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을 해야 되고 또 그 성적을 질투하여 어린 생명을 살해까지 한다는 것인지.

남의 나라에서 발로 뛰는 글쓰기를 하는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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