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 30 - 탄핵받는 '탄핵' 그 이후
고종석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강준만’ 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이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책의 제목은 잊어버렸으나 ‘성역과 금기에 도전 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어 선채로 몇 장 읽어보았었다.

그러나 구매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대신 ‘강준만’이라는 이름과 표지 안쪽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던 저돌적인 강 교수의 얼굴은 나도 모르게 기억하게 됐다. 물론 그때는 ‘좀 의미 있는 별종 같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고 좀 더 유명(?)해지면 그때 사 보자 하는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2000년 가을 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는 곳과 인접해 있는 모 대학 앞의 서점엘 갔다가 다시금 강 교수를 만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지나치다 우연히가 아닌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춰지는 그런 명당(?)자리에서 강 교수의 단행본 <인물과 사상>과 <월간 인물과 사상>을 만났다.

강준만 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것은 그 때 처음 본 잡지였다. 가격도 4000원인가로 저렴했기에 호기심도 충족시킬 겸 가벼운 마음으로 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책장을 펼치니 <월간 인물과 사상>에 대한 작은 소개가 있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은 성역과 금기에 도전합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우리사회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구독을 권유해 주십시오.>

‘읽어보고 괜찮으면 당연히 구독을 권유하겠지 별 걱정’하면서 책장을 하나하나 넘겼다. 그것이 강준만 교수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사랑이건 물건이건 또, 무엇이건 나는 첫눈에 반하는 스타일인데 <월간 인물과 사상>이 그랬다.

처음 몇 페이지를 딱 읽는 순간 이 잡지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첫사랑 따위와는 또 다른 내 마음에 폭풍을 주는 책이었다. 그로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는 다음달 <월간 인물과 사상>을 사러 서점엘 갔다. 어떨 땐 너무 일찍 가서 다음호가 나오지 않아 다른 책을 사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지 말고 아예 정기구독을 하면 그런 허탕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인데, 바보 아니야 자문해 보기도 했지만 그냥 다달이 서점엘 가서 내손으로 직접 뽑아내는 손맛을 양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월간 인물과 사상>을 사면서 곁들여서 다른 책도 구경하고 사고하는 일련의 과정이 좋았다.

대학촌의 서점은 보통 동네서점과는 달리 베스트셀러 보다 읽으면 좋을 각 분야의 양서들을 집약해 놓아서 책을 고르기도 편하고 책을 사도 후회가 없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을 보기 전에는 신문의 광고나 신간소개 코너에서 읽을 책들을 낚곤 했는데 <월간 인물과 사상>을 보고난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 맨 뒤쪽의 신간 안내 코너를 보면 대략 만족이었다.

그곳에 소개된 신간은 신간한권으로 끝나지 않아서, 어떤 책들은 그 책이 너무 괜찮아서 저자의 또 다른 책들도 사 읽게 되곤 하였다. 또, 저자가 괜찮으면 그런 저자를 발굴한 출판사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러다 멋진 출판사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중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또 하나의 문화>와의 만남이다. 조한혜정, 박혜란, 고 고정희등 진보적인 여성주의자들이 만든 <또 하나의 문화>동인은 부 정기적으로 동명의 동인지를 내었었다.

그 ‘또문’ 시리즈는 같은 주부의 입장이고 대한민국여성으로서 나를 돌아보는데 너무도 도움이 되었다. <월간 인물과 사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책들을 만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르든가 영 못 만나고 이승을 떠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우연한 호기심으로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는 통째로 지갑을 줍는 행운에 비 할 바 없는 행운을 맛보았다. 그리하여 2001년과 2002년 두 해는 도서출판 <개마고원>가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오는 책들과 <월간 인물과 사상>이 소개하는 책들을 사 보느라 정신없이 행복했다. 그때는 둘째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였는데 달리 태교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단행본 <인물과 사상>에서 강준만 교수가 언급하는 숱한 명제들은 별 생각 없이 살던 나에게 비판적 사고, 혹은 비판적 책읽기가 뭔지를 알게 해 주었다. 단행본 <인물과 사상>, 그리고 일련의 강 교수의 저작들에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정 딴 판의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어 천만 다행이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강준만을 ‘이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라고 하였던가. 그는 정말 이 시대의 외로운 독립군이었다. 언론 개혁에 관한 숱한 외침들, 지식인이여 가면을 벗자, 지연 학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패거리문화 권위주의 문화에 대한 일갈 등등 그가 내뱉는 단어하나하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려면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할 화두들이었다.

아무튼 강준만 교수는 나에게 독서의 기쁨을 단편적으로가 아닌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고 확장시켜주었다. 그리고 독서의 기쁨을 넘어 내 삶을 보다 나은 변화에로 이끌어 주었다. 강준만 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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