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와 문화
하재근 지음, 최윤진 그림 / 자인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스무 살 언저리, 윤후명의 소설 <敦惶의 사랑>을 아주 감미롭게 읽은 후로 서역 만리 어딘가 '돈황'이라는 도시에 환상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내게 '이어도'와 같은 환상의 나라였다.

그런 환상의 돈황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하재근의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서다. 그런데 사고 보니 이 책은 만화책이었다. 나는 만화책에 난독증이 있는데 이 일을 어이할꼬… 난감했다.

혹자는 그림이 있으니 이해가 빠를 것이라 하겠지만 그림이 있기 때문에 나는 머리 속에 따로 그림을 그릴 수 없어 이해를 하지 못한다. 어떤 만화가는 그것을 만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였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책을 몇 장만 읽어도 하품이 나오듯이 만화를 봤을 때의 내 상태가 그러하였다.

그런데, 하재근의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이런 나의 이상 증세가 발동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만화이기에 오히려 더 머리에 쏙쏙 잘 들어왔고 내가 만화 난독증 환자라는 것도 잊고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 또한 '무조건 쉽고 재미있게 쓰는 것이 대원칙'이었다고 하였는데, 정말 쉽고 재미있으면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무엇보다 도입부가 환상으로 남아 있는 둔황 얘기에서 출발하는 데는 내 호기심의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양문물의 보물창고인 둔황은 송나라 때 변란에 휩싸이자 장경동에 서적을 모아놓고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러 장경동은 잊혀졌다가 청말, 도교를 신봉하던 도사 왕원록이 장경동을 발견하여 청조에 알렸으나 청조는 장경동 관리자란 직함만 주고 '나 몰라라'하였다. 이 틈을 타고 영국과 프랑스의 도굴꾼들이 왕원록에게 사바사바하여 다량의 유물을 훔쳐갔는데. 아뿔사. 거기에 혜초 스님의 기행문 <왕 오천축국 전>도 있었겠다.

코믹하면서도 핵심을 포착하는 그림에다 간단 명료한 설명을 곁들인 이 책은 몇 장 넘기지 않아 금세 빨려든다. 이런 책이 예전에도 있었더라면 세계사 점수 잘 받아서 더 좋은 대학에 갔을 텐데…. 끄응.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고사성어들을 외울라치면 고사성어들의 자구 해석만으로도 머리가 딸려 고사의 내용은 다 잊어버리고 성어의 뜻만 간신히 외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보니 그 옛날 외운 성어의 고사들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머리에 정리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낚시꾼 강태공이 남긴 말이었다. 나이 팔십이 되도록 공부만 하는 영감이 보기 싫어 강태공 마누라는 강태공을 차버렸다. 그 후 낚시만 하며 때를 기다리던 강태공이 세월이 흘러 제나라의 왕이 되자 옛 일을 후회하며 "영가암"하면서 찾아갔다.

그러자 강태공이 신하에게 떠온 항아리 물을 엎질러라 해놓고선 "이봐 할망, 엎지른 물 담을 수 있어?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야"하고 말했다나.

아무튼 이 책은 무지하게 재미있다. 재미와 더불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동양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회복된다. 알게 모르게 서양문화 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우리들의 마음에 똥침(?)을 날릴 수 있다.

중국문화하면 왠지 주눅이 들고 일본문화하면 '너그들 다 우리 것 배워 갔제'하면서 목에 깁스하는데 우리 이런 이중 잣대 같지 말자해.

중국 문화는 그 자체로 훌륭하고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윤색하여 만든 우리문화도 소중하다해. 또, 우리 것을 가져가 그들 나름으로 꽃피운 일본 문화도 아름답다해. 우리는 모두 자랑스런 한자 문화권 가족이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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