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나도 한때는 헌책방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스무 살 언저리, 아주 깨끗한 <현대문학>이 단지 날짜가 며칠 더 지나서 지난호로 밀려났다는 이유로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당장 샀다.

그 뿐인가, 새로운 호가 나오면 그 달 사지 않고 그 달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헌책방에서 보이면 냅다 사곤 하였다. 그런 얌체 짓을 조금은 찔려하기도 하였으나 내 돈이 굳고(?) 같은 돈으로 책을 배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눈이 멀어 작가들의 창작의욕이고 뭐고는 안면 몰수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던 것 같다. 헌책방이 좋긴 하지만 헌책방이 보여주는 무질서한 진열과 중구난방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책들의 혼잡함이 지겨워졌다. 게다가 기관지가 좋지 않은 나인지라 무엇보다 손끝에 묻어나는 먼지가 싫었다.

사람의 습관은 묘해서 헌책방에 발길을 한번 끊으니 좀처럼 다시 가지지 않았다. 새 책을 파는 대형서점에서 매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따끈따끈한 신간을 구경하는 재미에 헌책방은 한번 잊으니 오래도록 잊혀졌다.

내가 다시 헌책방의 존재를 상기하게 된 것은 최종규 기자의 헌책방 순례기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솔직히 처음 얼마간은 재미있게 봤어도 점점 클릭할 재미를 못 느꼈다. 최종규 기자도 얘기했듯이 헌책방이 자꾸 사라진다고 하니 내 관심도 시들시들해졌다.

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헌책방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하나둘 책을 내는 것을 보고 ‘이 인간(?) 이쯤에서 책 한 권 낼 법한데…’ 하면서 검색해본 결과 책은 이미 지난 5월에 나온 것이 아닌가.

 
▲ <모든 책은 헌책이다> 표지
ⓒ2005 그물코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 그동안 최 기자의 헌책방 시리즈 읽기를 게을리한 것이 오히려 그의 단행본을 읽는 데는 신선한 도움이 되었다. 택배로 보내져 온 책은 보통 책보다 약간 두툼하였고 속지는 재생지로 되어있었다.

그의 헌책 사랑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가졌던 헌책에 대한 세 가지 선입견을 수정해야 했다.

첫째, 헌책방의 헌책이란 별 볼일 없는 책이 아니라 ‘다시 읽힐 만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헌책방 아저씨는 ‘맞돈(현금)’을 주고 헌책을 사오기에 누군가 사가지 않으면 그대로 손해이므로 그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싶은 책을 선별해서 사온다고 하였다.

둘째, 헌책만큼 헌책방 아저씨도 후지다? 천만의 말씀. 헌책방 아저씨로 자리 잡으려면 한 몇 년은 수련(?)해야 나름의 안목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즉, 좋은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헌책방 아저씨들은 좋은 책만큼 눈이 높은 분들이었다.

셋째, 헌책방엔 삼류소설이나 만화가 주류다? 땡! 귀중한 자료가 될만한 소중한 책들이 헌책방에 즐비하고, 서점 주인들은 좋은 책이 나오면 가끔은 숨겨두었다가 그 책이 꼭 필요할 법한 단골에게 먼저 선보인다고 하였다. 밀실 뒷거래(?)가 나쁘지만 헌책방의 그것은 오히려 그 정반대인 듯했다.

헌책과 헌책방 사정이 이러하거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헌책방이란 별 볼 일 없는 구닥다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물간 서점, 조만간 사라질 시대에 맞지 않는 공간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무지의 소치였고, 최종규 기자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헌책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갈 뻔했다.

조만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헌책방을 수소문해보고 나도, '안 보고 지나쳤으면 크게 후회할' 책을 바야흐로 사기 시작해야겠다.
 
 
'헌책’이라는 이름이 좀 아쉽네요. 헌책 말고 좀 더 친숙하고 헌책을 빛나게 하는 말은 없을까요. ‘다시 보고 싶은 책’, ‘어제의 책’, ‘숨어있는 책’, ‘옛 책’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어떤 낱말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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