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해 이맘때 당시 서울시의 유인종 교육감은 신문에다 광고를 내었다. ‘우리 아이들을 선행학습 과외로부터 해방시켜 학교교육을 정상화 합시다’라고. 굵고 진한 글씨로 강조한 그 제목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우리 아이들을 반짝1등, 평생꼴찌로 만들지 맙시다’라며 재차 당부하였다.

그러고서 시작되는, 선행학습이 왜 나쁜지에 대한 차근차근한 설명은 우리교육의 ‘고질병’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유 교육감의 글에 매우 공감한 나머지 그 광고를 가위로 오려서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교육이 정상화 될 수 있을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유교육감은 이렇게 답했다.

“답이 없어요. 다만 학부모님들이 욕심을 버리면 되겠지요. 그 욕심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버려지지 않기에 시간이 걸리겠지요. 학부모님들이 일류병에서 벗어나면 교육은 자동으로 제자리를 찾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어놓아도 학부모님들의 일그러진 욕심 앞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요.”

나도 내년이면 학교 갈 아이를 둔 예비 학부모인지라 결국은‘학부모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에 백번 공감하였다. TV, 라디오에서 아무리 교육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하고 호소해도 근본적으로 학부모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말짱도루묵이다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터라 유 교육감의 말은 내 마음을 한 번 더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출판사)를 읽었다. 주변에서 좋은 책이라 하여 사긴 샀는데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서, 베스트셀러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던 나였기에 우선 순위에서 밀어내다보니 몇 달 묵혔던 책이었다. 지인이 놀러 와서 ‘어머 이 책 있네’ 라며 환기시켜주지 않았으면 앞으로 몇 달을 더 묵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창가의 토토>. 지은이가 구로야나기 테츠코였다. 흠,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름인데. 표지 속을 보니‘아사히TV 일일 대담프로인 테츠코 룸의 진행자' 라는 것이었다. 테츠코의 룸은 나도 본 적이 있던 터라 이 책에 대한 무관심이 일시에 해소되었다. 아니, 그 잘난 배우가, 사회자가, 인물만 한 인물하는 것이 아니라, 말발만 센 게 아니라 책까지 냈단 말인가?

<창가의 토토>는 지은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어린 테츠코는 일반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아니, 테츠코가 적응을 못한 게 아니라 데츠코의 선생님들이 테츠코에게 적응을 못하여 토토(테츠코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자기이름, 이하 토토)를 쫓아내었다.

1학년 어린 나이에 퇴학을 당한 토토를 그의 어머니는 일반 학교와는 교육과정이 다른 일종의 ‘대안 학교’에 보냈다.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인 ‘고바야시 소사쿠’선생님은 ‘아이들이 제각기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소질을 주위 어른들이 손상시키지 않고 어떻게 키워줄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는 선생님이었다.

‘문자와 말에 너무 치중하는 현대의 교육이, 오히려 아이들이 마음으로 자연을 보고 신의 속삭임을 듣고 또 영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성과 직관을 쇠퇴시키지는 않았을까? 해묵은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 그 연못 속에 개구리가 뛰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 비단 시인 바쇼만이 아니건만.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본 사람이 동서고금을 두고 와트 한사람, 뉴턴 한사람뿐이 아니건만.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걸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않고 또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동하지도 못하며 더구나 가슴속의 열정을 불사르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런 참된 열정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을 아이들에게 선사하고자 하였다.

약자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학교 분위기가 그러했으므로 장애를 지닌 '야스아키’는 자신의 신체를 전혀 콤플렉스로 느끼지 않았고 토토 또한 자연스럽게 그와 첫 친구가 되었다.

또, 다카하시라는 키 작은 아이를 위해 교장 선생님은 운동회의 모든 프로그램을 다카하시에게 유리하게 해 주었다. 그 결과 다카하시는 전 종목을 휩쓸어 운동회의 영웅이 됨과 동시에 그만큼 자신감을 얻었다. 뿐만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다카하시를 이겨야 된다는 승부욕에 불탔다.

몸이 불편하거나 발달지체의 아이를 일반 학교에 보내려 할 때 학부모들의 저항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아직도 비일비재한 우리네 현실은 그에 비추면 부끄럽고도 부끄럽다.

매일매일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재미있는 수업과 산책 등으로 ‘도모에’학교의 아이들은 매일 소풍가는 기분으로 학교를 갔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학교에도 학부모 일일 수업이라 하여 색다른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은 1940년대에 이런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교 가까운 곳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농부 아저씨를 일일 선생님으로 초빙하여 아이들에게 괭이로 땅을 일구는 법, 밭이랑을 만드는 법, 씨를 부리는 법, 비료를 주는 법 등을 실연해 보이면서 아이들에게 설명하게 하였다.

아이들은 농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려서 ‘제 손으로 뿌린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우며 그리고 기쁜 일’인지를 직접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고 그냥 농사꾼’ 이라는 농부 아저씨의 겸손에 고바야시 교장 선생님은 '농사에 있어서는 농부 아저씨가 선생님이고 빵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빵집 아저씨가 선생님’이라며 아이들 앞에서 바로 정정하여 주었다.

책의 말미에 지은이는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의 ‘도모에’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근황을 소개해 주었는데 모두 그 옛날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바야시 교장선생님과 함께 했던 그 시절처럼 모두 행복한 삶을 살며 '가방끈’의 길고 짧음과는 상관없이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었다.

추억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이들이고, 그 ‘추억’이라는 것을 많이 먹고 자랄수록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비록 책을 통해서였지만 고바야시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서 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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