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조조로 <피에타>를 보고 난 후, 요 며칠 내내 김기덕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해 되새김질하게 된다. 어제는 <피에타>에 홀딱 반한 지인과 만남부터 헤어짐의 순간까지 그의 영화를 씹고 또 씹었다.(웃음) 장면 하나하나 소소한 소품하나하나까지 메뉴에 올리면서 얘기꽃을 피웠다.
"저는 주인공 남자의 이름도 그냥 지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미선(조민수분)이 시작 음과 끝 음 모두 고음으로 '강도'야! 라고 불렀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강도'라는 발음은 흉기든 도둑 '강도'를 부를 때의 그 억양으로 불렀어야 되었던 것 아닐까요?"
"으스스하네요. 그러나 충분히 그렇게 불렀어도 되었을 법 하네요. 그러고 보면 성이 김도 아니고 박도 아닌 '이'씨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네요. 이강도, 이강도. 이름하나도 허투루 지은 것 같지 않네요.^^"
"장소는 또 어떻고요. 강도(이정진분)와 채무자가 내려다보던 청계천 주변풍경을 보고 놀랐어요. 청계천 일대는 청계천 복구하면서 죄다 신시가지로 정비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옛날 그대로 인 곳도 많더군요. 금방 허물어져 내릴 듯 보여 지던 낡은 건물들과 대비되게 멀리 원경으로는 고층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늘어서있었지요."
"청계천 하면 전태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세월이 흘러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네요. 더구나 이제는 고리사채업자에게 되로 빌리고 말로 갚아 주다 못해 신체일부를 떼 줘야 하는 상황이라니... 중소기업 지원 운운은 뉴스 단골 메뉴인데 메뉴는 그냥 메뉴일 뿐인가요..."
"저는 고리사채 변제에 시달리는 영화 속 영세사장님들을 보면서 실지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상장님들이 이 영화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절절한 심정을 배우들은 잘 표현했다고 봐요. 물론 실지가 더 하겠죠..."
.....
"근데 강도엄마가 입은 그 빨간 치마는 무슨 의미일까요? 좀 추워 보이기도 하고 나사 한 줄 빠져 보이기도 하고...^^"
"색깔로만 봤을 때는 엄마에게도 그렇게 꽃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의미 아닐까요. 그리고 치마 가장자리 라인이 가지런하지 않고 엉성하고 들쭉날쭉했던 것은 혹 그녀 인생의 부침을 그래프처럼 표현한 건 아닐까요?"
"풋~ 별 상상을 다하셔~."
"그렇죠? 후후~"
"뜨개질도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엔 촌스럽게 뜨개질은 왜 하나 했어요."
"그 한 땀 한 땀은 사랑의 마음을 말하는 거겠죠?"
"그런데 그 한 땀 한 땀을 쫓기듯 급하게 떠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어요.^^"
"베니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고 심사위원이 그냥 심사위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게요. '속죄'와 '구원' 그리고 '위로'란 단어들이 먹물냄새 없이 가슴에 그대로 콱! 박히더군요. "
.......
(아무튼 위와 같은 식으로 <피에타>에 대한 얘기는 끝날 줄을 몰랐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김기덕 영화가 여성에게 폭력적이라고? 현실 반영 일 뿐...헐리웃 영화들을 보면 자동차로 시가지를 추격하며 총을 쏘거나 차량끼리 충돌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또는 교량을 끊거나 건물을 폭파하고 어떨 때는 하늘에서 도시 전체를 가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장면들을 보고 잔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영화 액션 좋네~.' 아니면 '액션은 싫어, 제발 그만 좀 부셔라.'정도다. 그 영화감독의 인격을 싸잡진 않는다.
그런가 하면 <쏘우>시리즈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등 인간 신체를 절단하는 피범벅의 영화들을 보고도 우리는, '그 영화 제대로 무섭네.' 박수친다. 볼만한 공포물이라 추천한다.
물론 그런 영화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괜히 걱정된다. '작품은 작품일 뿐이니 오해하지말자'해도 모방범죄가 일어날까 두렵다. 그러나 공포영화가 '안'공포스러우면 그게 공포영화냐에는 동의한다. 그런 영화 찍고 싶으면 19금붙이고 찍으면 되고 보고 안보고 또한 관객의 자유다.
이에 반해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서의 무수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늘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았다. 항상 꼬리표처럼 영화 속 여성에 대한 표현을 두고 여성을 비하합네, 잔인합네. 혹 감독자체가 여성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로 까지 비약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남성의 속성을 파악 할 수 있는 40대 중반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실 김기덕 영화 속 남자들의 행태는 현실 속 한국남자들 이면의 한 부분을 보여줬을 뿐이다. 흉악범의 성폭행이 주로 뉴스를 장식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성폭행, 성추행 멤버들은 알고 보면 다들 아는 사람이다.
평범한, 믿었던 목사님, 이웃집아저씨, 의붓아버지, 섬마을 할아버지, 학교선배, 친척오빠, 교수, 사장....들로 고루 분포되어 있다. 김기덕 영화가 여성을 비하한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현실의 남성들을 영화가 차용했을 뿐이다. 한국 여성의 인권지위가 괜히 세계65위 이겠는가.
조민수라는 보석, 대단한 발견
나는 다른 각도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다 좋은데 딱 한 가지가 아쉬웠었다. 즉, 김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 배우들은 김 감독과 영화 한편 찍고 나면 다들 배우로서 인정받고 뜨고 하면서 존재감이 차고 넘치는데 상대적으로 왜 여자 배우들은 그렇지 못할까. 왜? 왜??
김기덕의 남자 하면 김유석, 양동근, 장학수, 장동건, 하정우, 조재현, 오다기리 죠, 서지석, 윤계상 등 다들 호감으로 떠오르는데 여배우들은 이들처럼 한 두릅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늘 아쉬웠는데 이번에 조민수씨로 인해 그간의 애석함을 한 큐에 날려 버릴수 있었다.
47이라는 숫자는 여배우 나이로 한물가고 두물갔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 나이 배우라면 더 바랄 것 없이 한류스타 엄마자리 이모자리라도 용케 따내면 영광일세.
그런데 이번 조민수씨는 그 틀을 깼다. 영화 내내 그녀만 보였다. 독보적이었다.(물론 이정진씨도 다른 조연들도 잘했다.) 하여 진정한 여배우의 출발은 이제 47세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0,30대처럼 젊지 않아서 오히려 그녀가 더 예뻤다. 만인의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만인의 연인 같은 그런 느낌의 아름다움이었다.
마무리10여 년 전 '행복한 책읽기' 출판사에서 '우리시대의 인물읽기'란 시리즈로 명명한 단행본을 내놓았었다. 장정일, 노무현 찍고 세 번째 타자가 김기덕이었다.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행복한 책읽기)이 그 책이다. 현재 절판 상태이던데 이참에 다시 출판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오늘 신문에 난 김기덕 감독의 한 말씀.
"가장 큰 제작비는 대기업의 돈이나 극장이 아니라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영화들이 멀티플렉스에서 당당하게 경쟁을 했으면 합니다. <피에타>가 그런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