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댁에 가서 마늘  수확을 돕고 왔다. 돕고 왔다고 하지만 가장 쉬운
마늘 뽑기만 하였다. ㅋㅋ

케이비에스 라디오 오유경의 <교육을 말합시다>에 철학자 탁석산씨가
일주일에 한번인가 나와서 '청소년기에 익혀야 할 인생의 기술'인가 하는 코너에서
매번 감탄을 자아내는 말을 하는데.

일전에 들었던 그 감탄 어록중 하나를 생생히 체험한 하루였다, 마늘 거두기는.

즉, 진행자 오유경씨가 '어떻게 하면 (빨리)행복해 질수 있나요?' 비슷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탁선생 왈. (뭐라고 했을까?)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움직이면 됩니다. 몸을 움직이면 빠른시간에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운동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단 몇십분 안에 땀이 쪽 나면서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 지면서 수년전 달리기가 생각났다.
마라톤을 한답시고 고등학교적 오래달리기 이후 처음으로 대학 운동장 네바퀴를 뛴적이 있었다.
네바퀴를 뛸수 있으면 더 연습하면 5, 10킬로는 나갈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때 운동장 네바퀴를 뛰고 나서 느꼈던 희열이여!
달리기를 미치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열과 쥐와 땀이 나면서 말할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었다.)

오유경: 독서도 행복을 주지 않나요?
탁선생: 독서도 물론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책한권을 다 읽고나야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수도 있겠지만 시간적으로 따지면 최단시간에(단 몇분만에도) 행복을 느끼기에는 운동이 최고죠.^^

끄덕끄덕. 아무튼 탁선생은 인간은 행복을 위해 운동, 노동 등이 필요하다는 인생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총총히 사라졌다.ㅎㅎ

공부도 뭐도 결국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행복하려면 결과만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보다 '과정'이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이 순간, 혹은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갈때
너무너무 행복하다면 그 학생은 공부 계속해도 된다.

그러나 너무너무 하기 싫지만 장래를 위해서 억지로 이 악물고 한다면
용케 잘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더라도 그 궁극엔 또다른 허무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짓 밟아야 내 성적이 올라가는 이런 성공은 방향 자체가 틀렸다.

등록금 투쟁이 한창인데.... 사회적으로는 등록금에 이의를 걸고 공론화해야 되겠지만
학부모가 할수 있는 가장 최상의 등록금 투쟁은  대학 안보내고 1~2년 아이들에게 안식년을 줘 보는 것이다.
고교 3년동안 불철주야 성적이 좋고 나쁘고 떠나 공부하는 시늉을 했다면
그 스트레스 찌거기를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휴식은 필요하다고 본다.

공부가 다 무슨소용인가.  아이들 영혼이 말이 아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부모들이 욕심을 좀 버렸으면 좋겠다.
난 지방인데다 성적지향에 뜻이 없어 천하태평으로 살고 있는데 대문글 기사를 보니 윗동네는 난리도 아니네.
기사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아이들이 그 생활을 3년 6년 한다고라?
ㅉ ㅉ .....

애들이 불쌍한데, 가장 가까운 부모인 내가 그릇된 욕망으로  가장 심한 고문을 가하고 있는건 아닌지 다들 양심의 가슴에 손을 한번 얹어 봐야 할듯.....  


(아래는 펌글)

손학규 위기의 본질
정치의 본질은 포지셔닝 게임이다. 자신이 어떤 포지션에 가 있느냐에 따라 거기에 연동되어 자기 행동이 결정된다. 백청강은 한국에서 아웃사이더다. 백청강의 아웃사이더 포지션이 그의 행동을 결정한 것이다.

아무도 백청강에게 상금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정치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손학규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에게 총리 자리를 내놓았고, 이해찬에게도 실세총리자리를 내놓았다. 검찰권력을 비롯하여 너무 많이 내놓은 것이 탈이라면 탈이었다. 결코 이명박처럼 혼자서 고소영, 강부자로 쳐묵쳐묵 하지 않았다. 마땅히 김정길에게 가야할 자리를 내놓지 않고 손을 안으로 굽힌 손학규와 달랐다.

백청강은 어떤 연유로 상금의 절반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을까? 역시 포지셔닝 원리다. 누구라도 큰 꿈을 가진 사람이 아웃사이더 포지션에 가 있으면 저절로 그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기택은 공천권을 독식하다가 망가졌고, 정동영 역시 지인 위주로 공천을 개판쳐서 망가졌고, 이인제 역시 독식을 꾀하다가 망가졌다. 앞으로 손학규가 망가지는 공식 또한 마찬가지다.

손학규는 가진 것이 없으니 달리 내놓을 것도 없다. 이는 이인제, 이기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몰락은 정해진 수순이다. 아무도 손학규에게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말하지 않지만, 손학규가 쳐묵쳐묵의 권한을 행사한 다음에는 ‘어? 이 인간봐라. 날로 먹네?’ 이렇게 된다. 그것이 정치판 원리다.

정치판에서는 미리 요구하지 않고 뒤에 응징한다. 김정길이 미리 손학규에게 손 벌리고 요구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미리 의사를 전달하려고 해도 라인이 없다. 그러므로 손학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이다.

백청강은 잔머리가 발달해서 분위기를 감잡고 거액을 내놓았을까? 천만에! 백청강은 돈이 남아돌아서 5천만원을 내놓았을까? 천만에! 총 상금 3억원 중 음반제작비 2억을 제외한 실상금 1억원 중 세금 22퍼센트를 제하면 아마 7천 8백만원쯤 될 것인데 그 절반을 제 스스로 약속했으니 3천 9백만원 정도면 될터인데, 백청강은 현금과 물품을 합쳐 5천만원어치 이상을 내놓았다.

가난한 사람이 돈 생겼다는 소문 나돌면 사돈의 팔촌까지 따라붙는다.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알지도 못하는 친척 20여명이 몰려와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연변청년의 1억은 중국에서 그 몇 배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백청강은 왜?

아웃사이드는 외곽이다. 외곽에 있으면 눈에 잘 띈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이 자유롭다. 눈에 잘 띄지만 대신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높은 자리나, 눈에 띄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은 중간자리와 다르다.

외곽에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는데 필요한 가속도를 얻기 위하여 해야할 행동이 있고, 백청강은 그것을 한 것 뿐이다. 상대적으로 인사이드에 있는 기부왕 김장훈보다 훨씬 더 적은 액수로 동일한 효과를 낸 것이다. 이렇듯 포지션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경찰이 오기 전에 모범운전사 아저씨들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한다. 그분들은 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원해서 봉사를 할까? 역시 포지셔닝 원리다. 아웃사이더들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을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출마 결단을 찬양하지만 분명한건 노무현 외에는 딱히 그렇게 할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일을 한 것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 일을 할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는데, 나 외에는 할 사람이 없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을 하게 된다.

모범운전사 아저씨는 도로에서의 비상한 상황을 만나서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운전에 능숙하지 못한 김여사가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은 누구라도 자기 외에는 할 사람이 없으면 하게 된다. 반대로 자기 외에도 할 사람이 여럿 있으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인간을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힘은 포지션이다.

고 이수현씨는 일본 지하철에서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바로 뛰어들었다. 많은 일본인들은 자기 외에도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백청강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서야만 효과가 극대화 되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한국인이 우승하고 상금의 절반을 내놓았다면? ‘저 인간 오버하네.’ 하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왜? 누군가 내놓으면 그것이 관례가 되어 다른 사람도 내놓아야 하므로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각도 이미 써버린 상금을 도로 내놓아야 하고, 앞으로 있을 모든 대회의 우승자는 상금의 반을 내놓아야 하나? 오직 아웃사이더인 백청강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강해지는 지점이 그러하다.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뜨지 않았다면 부산출마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 고졸출신에 성공한 변호사가 한국에서 자기 한 사람 밖에는 없다는 사실, 곧 밑바닥 사람들의 본심을 알고 그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에 나서고, 정치판에도 뛰어들었던 것이다. 고시공부 한 것 외에 인생경험이라곤 없는 대졸출신이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 노무현 외에 없었다. 단 한 명도.”

유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고졸 노무현을 위기에서 구할 사람은 잘난 서울대 출신인 자신 외에 없었다. 유시민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노무현 후보를 구하기 위해 총대를 매고 뛰어들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사실 유시민 외에도 많은 사람이 노무현 후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문성근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다만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에 인기 방송진행자에 항소이유서의 유시민이 가장 포지션이 좋았던 것 뿐이다. 유시민 혼자 딱 먹히는 포지션에 가 있었던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역사를 끌고 가는 힘이다. 바퀴의 축처럼 사방으로 물려 돌아가는 지점에 서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어느 순간에 자신이 붙박이별이 되어 여러 위성을 통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유시민이 그렇다. 김해 보선에서 이겼다면 이긴대로 여러 위성들이 유시민의 행보를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포지션을 결정한다. 유시민이 지니까 또 지는대로 여러 위성들이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포지션을 새롭게 결정한다. 지금 문재인이 살짝 나서고, 문성근이 살짝 떠주고, 이정희가 슬쩍 주변을 장악하고, 조승수가 입이 삐죽이 나와서 돌아서는거 보인다.

유시민이 1미터 움직이니 거기에 연동시켜 다들 10미터씩 움직여준다. 그것은 마치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강타자가 등장하니 외야수들이 다들 뒤로 한걸음씩 물러서는 것과 같다. 반대로 교타자가 등장하면 다들 위치를 앞으로 당겨서 번트수비 자세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나가 움직일 때 거기에 연동되어 모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그러나 타고난 위성들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맞추어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 손학규, 이인제, 정동영, 이기택처럼 어쩔 수 없는 위성들 말이다. 그 또한 운명이다.

손학규가 만약 총선에서 공천을 잘 한다면? 그가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분점을 했듯이 권력분점을 실천할 의지를 보인다면? 필자는 그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법칙은 원래 없다. 원래 그게 안 된다. 해봐라 되는가?

설사 손학규가 용기를 내서 그것을 실천한다 해도 ‘거래’로 비쳐져서 효과가 반감된다. 지금 손학규는 업둥이 신세라서 민주당 안에 자기세력을 심어야 한다. 수레바퀴의 축은 사방으로 힘을 받으므로 바퀴살보다 더 단단해야 한다. 손학규가 자기 세력 없이 권력분점을 꾀하면 붕괴된다. 정치적 자해가 된다. 

그러므로 손학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며, 만약 그러면 더 나빠진다. 정세균은 대의를 위하여 살신성인 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 손학규가 노무현 대통령처럼 살신성인을 실천하면 대선후보도 못 된다. 손빠가 없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안 되는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출발점이 나쁘다.

조승수가 진보진영의 ‘대의’를 따라 참여당을 존중하고 대통합에 나선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그 전에 진보신당이 깨지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노선차이는 없다. 그건 인간이 지어낸 구실에 불과하다. 본질은 노조를 끼고 있는 민노당은 대중의 압력을 받고 있고, 진정한 개인주의자에 자유주의자 집단인 진보신당은 ‘A급 살롱좌파’가 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욕망에 지배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욕망이 해체될 때 진보신당은 존재의미가 없다.

역시 포지셔닝 원리다. 창당 10년을 넘긴 민노당은 집권의욕을 보여야 당이 유지되고, 진보신당은 당원들에게 ‘A급 살롱좌파’라는 자부심을 주어야 당이 유지된다. 예컨대 참여당이 집권의욕을 보이지 않는다면 존재가치가 있는가? 없다. 직점 집권을 못해도 어떻게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당은 참여해야 한다. 당명부터 ‘참여’로 못박혀 있다. 진보의 집권에 참여당이 홀로 불참당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여당 입장에서 범진보대통합에의 참여는 운명이다. 물론 민주당에 흡수되면 안 된다. 참여란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정해진 운명이다.

세습문제가 어떻고, FTA가 어떻고, 비정규직이 어떻고 하지만 모두 개소리에 불과하다. 긁어서 협상카드를 만들려는 수작일 뿐이다. 진보신당의 문제는 자존심이고, 민노당의 문제는 집권비전이고, 참여당의 문제는 진보진영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이고, 민주당의 문제는 정치 자영업자들에게 금뺏지 하나씩 달아주는 것이다. 이 역시 정해져 있다. 노선 좋아하네.

민주당은 최대 다수의 의원 당선에 목을 걸고 있고, 참여당은 대선에서의 키 역할에 목을 걸고 있고, 민노당은 차차기를 겨낭한 집권비전 제시에 목을 걸고 있고, 진보신당은 오로지 살롱에서 깔 노가리 술안주에 목을 걸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 모든 것은 포지션이다.

골키퍼는 한사코 막으려 하고, 공격수는 한사코 득점하려 하고, 미드필더는 한사코 패스하려 한다. 민주당은 골대 앞에서 서성거리며 동료의 패스만 요구하며 주워먹으려 하고, 참여당은 어시스트 기회를 노리면서 여차하면 득점까지 책임지려 한다. 각자 정해진 자기 포지션따라 움직이는 것.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 아니라고 부인할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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