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2DISC)
허진호 감독, 고원원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호우시절>. 첫 느낌으로 딱 드는 생각이 '제목 참 좋구나, 너무 좋네!'였다. 제목만 구워삶아 먹어도 본전은 뽑겠구나 싶었다.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사랑영화. 이미 네 번을 곱씹고 또 다시 사랑을 속삭이려니 그 창작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번엔 또 무슨 '야그'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호기심이 갔다.

 

지난해 봄인가. 가을인가. 오십 중반 오빠에게 당송 시선집을 선물하면서 나도 한권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선물하기 전에 미리 한번 펼쳐 봤지만 내가 찾던 그 어떤 빛깔의 시들이 보이지 않아 나는 다른 시집을 사야지 마음 먹고서는 차일피일했는데 이 영화를 보자 그 숙제를 할 때가 지금이구나 싶었다.

 

아마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학창시절 교과서 속에서 잠자던 두보를 불러내게 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고문시간 이후로, 한문시간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두보'를 접했다.  이 영화에 두보가 없었더라면? 아예 영화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다. 두보가 말년에 머물렀다는 대숲이 울울한 초당에서 주인공들은 재회를 하는데, '대숲'과 '메이'와 '동하'는 삼합도 그런 삼합이 없으렸다.

 

두보초당에서 관광객들에게 통역을 하고 있던 여주인공 메이(고원원분)는 중국 출장길에 그곳을 찾은 중장비회사 팀장인 동하(정우성분)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미 유학시절 상대의 진심을 긴가 민가 저울질 하다 귀국하는 바람에 이별 아닌 이별을 했었는데 자신의 일터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 김 서방은 만날 수 있어도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수는 있어도 사랑을 숨겼던 상대를 고색창연한 시성의 초당에서 만나기란 전생에 5만 번 스쳐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개가 있어 감독이 그런 전능을 발휘 할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소냐.

 







  
봄 밤 창밖엔 비가 내리고...
ⓒ 판시네마(주)
호우시절




아름다웠다. 이름만큼이나 청초한 메이와 '어머나, 내게 사랑이 오고 있는 거야? 그런 거야?' 설렘이 느껴지던 동하의 눈빛은 대숲에 서걱이던 바람소리와 봄밤 거리를, 유리창을 적시던 비와 함께 묘한 동경을 주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새자면, 내 많은 조카들 중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여 중학생 아들을 둔 서열 1번 조카 왈.

 

"가만 보면 한국 여자들 남편을 너무 못살게 구는 것 같아(물론 반대의 경우도). 난 둘 중 하나는 외국여자와 결혼할 것을 한번 권장해 볼 참이야. 후후~"

"정말? 나도 그런 생각 한 적 있는데... 인생사 한번 사는 것 꼭 한국여자랑 결혼하란 법이 있니. 가능하면 다른 나라 여성이랑 결혼 해 다른 문화를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만약 그런 인연이 생겨서 한다고 하면 안 말릴 거야."

"나는 봐 가며... 후훗~" 


그러나, 영화 속 중국 지 사장(김상호 분)은 동하의 흔들리는 마음을 읽으며 말하였다. "사랑에는 국경이 있습디다." 하먼이라. 특히 한중일의 경우 각자 나름의 존심들이 있어 살다보면 마음속에 국경이 한두 개 그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뭐 무서워 장 못 담굴 것 까지는 없고. 국제결혼이야 말로 평화의 전령사가 되는 길 아닌가.

 

그래서 결론이 뭐꼬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밤의 비처럼 그리운 그대가 '지금' 있으면 주저 말고 똑똑 문을 두드리시라. (세칭 품절남녀들은 자중을 하고...) 곳간이 큰가 작은가 따지지 말고 그이가 '호우'인가 아닌가만 따지시라. 그러나 그이가 '호우'이기는 하나 외관이 '지사장님'을 닮았으면 어쩐다? 많은 비혼들의 딜레마가 혹 거기 있슴둥?

 

이미 그 길을 지나온 나로선 그저 마음을 비우(?)란 말밖에... 품절남녀들은 쓸쓸하면 시나 한수? <호우시절> 덕분에 이런 좋은 시를 또 알게 되네.

 

春夜喜雨(춘야희우)  -봄밤의 반가운 비   -두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아나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봄 되어 내리니 만물이 소생하는 구나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봄비는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리는데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들길에 구름 드리워 사방이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강가의 배 등불만이 외로이 반짝이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날 밝으면 붉게 젖은 땅을 보게 되리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금관성의 꽃들도 비에 젖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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