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돈은 귀신도 부린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

"돈 있어 못 난놈 없고, 돈 없어 잘난 놈 없다."

 
위는 조정래 선생의 신작 <허수아비 춤>(조정래 저, 문학의 문학 펴냄)에서 주인공들이 돈에 대한 속담을 주고받는 대화 속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게 다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본문에서 보면 2천여 년 전에 사마천은 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시공을 초월하여 돈은 요물인가 보다. 시장만능주의가 득세하는 작금의 세상, 비밀이 보장된다면 거액의 뇌물 앞에 초연할 사람 그 몇일까. '일광그룹'의 '문화 개척 센터' 3인방 윤성훈과 박재우, 강기준은 돈으로 구워삶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간판은 문화 개척이라 달고 있지만 실상은 그룹의 비자금을 관리하며 그중 일정 금액을 뇌물로 쓰며 나름 회장일가의 안위와 세습을 돕는 전위 부서이다. 국가의 주요기관 최고 실세 수천 명의 지위고하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에 합당(?)한 뇌물을 정기적으로 바쳐 그들을 자신들의 그룹에 이롭게 포섭한다. 뇌물을 주는 방법 또한 철저하여 뒤탈이 없다.

 

"첫째, 우리 일광의 돈은 절대로 뒤탈이 생기지 않는다. 둘째, 만에 하나 로비 증거가 드러나도 그 상대를 절대 불지 않고 100%보호한다."

 

때문에 일광 그룹 문화 개척 센터가 넘지 못할 장벽은 없었다. 그들의 뇌물 전법에 실패란 없다. 예를 들어 국세청 직원을 구워삶을 경우 재직 전과 후 모두 관리 한다. 즉, 재직시에는 재직시 대로 상납하고 퇴직하고 나와 세무서를 차리면 계열사 하나 물어주며 관리한다. 검찰 또한 마찬가지. 변호사 개업하자마자 수임료 좋은 큰 사건을 맡겨 주면 다들 감읍한다.

 

여기서 웃지 못할 사실 하나. '만 원 권으로 1억이면 골프가방 하나 가득'인데 5만 원 권이 나와 주는 바람에 이들의 돈 세는 일이 5분의 1로 줄었다고. 뿐인가. 10만 원 권이 나오면 돈을 세는 시간도 전달 부피도 1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사실. 선조들이 하늘에서 이 사실을 알면 참으로 그 기분 얄궂지 싶다.

 
아무튼, 미국에서 박사 따온 윤성훈의 두 부하들이 서로 암묵적 경쟁을 해가며 그룹회장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이들이 진짜 박사 맞나 싶다. 이 책을 단순히 한권의 소설로 읽어 넘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소설 속 재벌들의 비자금 조성과정과 3대 세습 등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자기들의 대척점에 있는 진보언론에는 광고를 안 줘 피를 말리거나 작은 꼬투리로 시민단체 도덕성 흠집 내기, 노동조합원 매수, 피해소송 남발 등은 익히 보아온 우리네 기업들의 수법들이다. 돈으로 모든 권력을 구워삶아 철옹성 같은 '문화 개척센터'에 비하면 그들과 맞서는 '경제민주화 실천연대'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다. 그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투명유리 덮개 하나 씌우는 일은 결국 시민의 몫일 터.

 

경제 민주화, '불매운동'과 '시민 단체육성'이 해법

 

저자는 국가나 국회보다 상위인 작금의 자본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은 '불매운동'과 '시민단체의 육성'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투표가 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계속 신장시켜 나갈 수 있는 '정치혁명'이듯이, 우리가 단결한 불매운동은 기업들과 우리들이 모두 함께  행복해질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경제 혁명'이다. 우리가 그 어리석은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기업들은 더욱 신바람 나게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 우리는 점점 더 비참한 노예가 되어 간다.

 

감기 고뿔도 남 안준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왜 재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주겠는가.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 내고, 거미줄도 수만 겹이면 호랑이를 묶는다. 조상들의 일깨움이다. 국민, 당신들은 지금 노예다.- 본문 326~327쪽

 

저자에 의하면 우리와 비슷한 인구의 프랑스나 독일같은 나라에는 '5만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모든 권력기관들'을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감독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떠한가. 대충 '2만여 개' 있지만 생명력 있게 활동하는 단체는 '2백여 개'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원인은? 물론 국민들의 참여 부족과 무관심 때문이라고. 그러나 선진국들의 시민단체 역사가 '100년'이 넘는데 비해 우리는 겨우 '2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시민단체 활동의 저변확대 또한 우리의 관심여하에 따라 남들이 100년에 이룬 것을 우리는 앞으로 10년, 20년에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망하는 선진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결속력 강한 회원들로 이루어진 5만여 개의 시민단체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 수수 많은 눈들로 정치권을 감시하고, 경제권을 감독하고, 법조계와 공직 사회와 언론계를 눈 부릅뜨고 지켜야만 비로소 전 사회는 맑고 깨끗해져 선진국의 문이 열리게 된다. 시민단체들의 활성화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리는 유일한 길이요. 희망이다.- 본문 376쪽

 

결국 재벌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끝내는 것은 역시 우리 자신이다.

 

이 소설은, 소설이되 소설을 넘어 현실을 반영한다. 소설처럼 술술 감칠맛 나게 넘어가는 문장이며 풍자가 재미있다. 동시에, 진지하게 현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지향점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조정래 선생 아니면 누가 이런 글 쓸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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