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삼성 - 이건희, 그리고 죽은 정의의 사회와 작별하기
김상봉 외 지음 / 꾸리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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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 게 2007년이었던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그간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양심선언과 관련해 천주교 사제들과 그의 얼굴이 뉴스 화면을 연일 장식할 때 그 뉴스를 본 동네 미용실 원장님은 말했다.

"삼성과 싸워선 이길 수 없다 카이. 아무리 해봐라 되는 강? 두고 봐라, 결국은 용두사미 된다. 덤빌 델 덤벼야지. 재벌들 그러는 것 한두 번 봤나."

지나고 보니 씁쓸하게도 미용실 원장님의 말이 맞았지만, 당시 나는 '설마?' 했다.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80년대 그 어둡던 시절에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묻힐 뻔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밝혀내지 않았던가. 그런 사제단의 저력이라면 이번에도 못 이길 것은 없단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 숨겨져 있던 이건희의 비자금을 이건희 주머니에 확실히 꽂아주는 걸로 결론이 났다. 또 이건희는 가벼운 형을 받았다가 속사포 사면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씁쓸하다. 왜 진정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힘이 없거나 배신자가 되고 정의의 정반대 쪽 사람들은 승승장구하는지.

가톨릭 미사 도중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라며 가슴을 치는 과정이 있다. 뭐 만날 내 탓이란 말인가. 한때 난 '내 탓'이 뭔지도 모르고 가슴을 치면서 그 과정이 너무 형식적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이젠 그 의미를 알겠다. 따지고 보면 이건희와 그에게 포섭된 검찰, 정계, 언론계의 모든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다 '내 탓'이고 '우리 탓'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흔히 상대에게 죄를 떠넘기지만 문제는 다 '네 탓'이라고만 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어도 진정으로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변화'할 때 상대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삼성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삼성이 저토록 오만방자하게 국가 위에 군림하는 것은 그들 탓도 있지만 우리의 무지와 욕망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삼성이라는 괴물을 키운 게 우리라면 삼성이라는 괴물을 괴물이 아닌 선량으로 만드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삼성 불매운동 해도 삼성 안 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굿바이 삼성>(꾸리에)은 삼성 불매의 의지를 다지는데 좋은 교과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다 아는 대로 지난 봄 출간된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를 몇몇 언론이 안 받아 준 데서 비롯됐다. 세상에, 돈 줄 테니 책 광고 좀 해 달라는 데 안 해줬단다. 

이후 <경향신문>이 고정 칼럼니스트인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의 '삼성비판' 칼럼을 미게재하면서, 여러가지 후폭풍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진보언론들도 독자들에게 질타를 받은 것이 사실. 덕분에 우리는 삼성이 가장 '긴장'해야 할 존재들 앞에서도 손 안 대고 코 푸는 힘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경향신문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김상봉 교수의 글을 통해, 소위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이들이 '불량 재벌'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내 탓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부수 면에서 만년 4, 5등이 아니라면 그렇게 작아질 만한 이유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 등수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 것도 우리 탓이니, 뭐, 어쨌든 잘 됐다. 이참에 삼성불매에 시동을 걸자.

"민주화 이후 시장권력은 정치권력의 강압과 속박에서 벗어났음은 물론, 이제 정치권력을 뒤에서 주무르고 있다. 시장 권력에게 민주화는 자본축적과 증식의 고삐 풀린 자유화를 의미할 뿐이었다. 현재 시장권력은 정치 시민사회의 전면에 나서서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배후에서 '수렴청정'을 하고 있다. 정치권력은 비판받고 교체되기도 하지만, 그 뒤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시장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도 교체도 용납하지 않는 성스러운 '맘몬'(Mammon)이 되었다. 이 재물신(財物神) 앞에서는 노무현도 이명박도 5년짜리 계약직 교용사장일 뿐이다." - 본문 86쪽

참으로 소름 끼치는 조국 교수의 지적이다. 정치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그 너머에 경제 민주화란 과제가 버티고 있다니 저 돈 있는 자본 권력을 무슨 수로 당한다? 그러나 자본 권력, 시장 권력보다 더 강한 자는 소비자 아니던가. 소비자는 왕. 물건 팔아먹으려고 자본가들이 지어낸 아부이지만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소비자는 왕임을 자각하자. 김상봉 교수가 깃발을 들고 앞장을 섰다. 

"국가도 노동조합도 삼성의 불법을 바로 잡을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직접 행동뿐이다. 삼성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자기 제품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든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삼성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그날로 삼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성이 어떤 기업인지 그 실상을 깨닫고 삼성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과 삼성의 권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 본문 24~25쪽 

우리의 행동에 따라 삼성이 달라진다

이 책에 의하면 스웬덴의 '발렌베리' 그룹은 6대째 약 150년 동안 세습 경영을 하지만 사주 일가는 중요 사안에만 관여하고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한다. 또 '탈세나 분식회계' '불법 상속'이 있을 수 없으며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공익재단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고 한다. 노동조합을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함은 당연지사. 때문에 이들은 국민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반면, 삼성처럼 무노조를 고집하는 월마트는 미국 내 여러 단체로부터 거센 불매운동의 화살을 맞고 있고, '8500가지'의 제품을 판매하는 영국의 네슬레 또한 '노조 탄압, 아동노동 착취, 환경파괴, 유전자 조작' 등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불매를 당한다고 한다. 

불매냐 존경이냐. 아니 존경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공정'만 해라. 선택은 삼성의 몫이다. 물론 그 선택의 올바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 소비자다. 삼성불매는 엄밀히 말하면 '삼성이 진정 존경받는 건전한 기업으로 거듭나라는 것이지 결코 망하라고 고사 지내자는 것'이 아니다.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언론인, 정치인 등 멀쩡한 사람들을 돈으로 포섭해 죄다 비굴한 사람 만들지 말고 '합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과거 정치 민주화 투쟁 때는 숱한 고문과 억울한 죽음, 감옥행 등의 시련으로 험난한 산을 넘어야 했지만, 경제 민주화(삼성불매)를 위해 우리가 취할 행동은 실로 너무 간단하다. 당장 한 손엔 삼성카드 다른 한 손엔 가위 들고 자르기만 하면 된다. 삼성카드 안 쓴다고 카드결제 못 하는 것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이 책은 <삼성을 생각한다>와 쌍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삼성을 생각한다>가 김용철 변호사 혼자의 고백이라면, 이 책은 김용철의 고백을 읽고 난 후 여러 사람이 쓰는 삼성에 대한 고백록이다. 다들 한 문장 하는 분들이라 문체도 주장도 걸림이 없다.

그중 압권은 다음이다. 

"<한나라당>이 삼성의 본처라면 <민주당>은 삼성의 첩이다. 우리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직 '노동의 아들, 딸로 구성된 정치세력'이 출현했을 때만이 품을 수 있는 미래요 꿈이다." (황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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