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중화방송에서 <첨밀밀>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영화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늘 지나쳤던 영화였는데 장만옥이 함께 살고 있는 조폭 두목 동거남을 보고 '오빠'라 해서 띠잉~ 받혀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었다. 모양새로 봐서는 분명 애인 역할인데 자막에서는 장만옥이 자꾸 그를 일러 '오빠'라고 하기에 혹시 진짜 오빠 맞나 싶어서 계속 보니 역시 친오빠가 아니고 애인 맞았다.

 

내가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남의 나라 말을 번역할 때조차 연인을 오빠로 번역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영화 대사란 게 한눈에 척, 쓱싹쓱싹 읽고 지나가게 눈에 뛰게 번역해야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호칭이므로 그런 묘미가 필요한 단어는 아니다. 실지 중국 사람들이 애인(연인)끼리 서로 부를 때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빠'는 아닐 것이다.

 

혹시, 오빠라는 말에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냐구? 그런 것 없다. 다만 오빠라는 호칭이 그 다정한 어감만큼 행복을 가져다주기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주부로서 10여 년 살면서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후배들을 지켜보니, 그렇게 불리는 남편들은 그 오빠라는 말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지 결코 아내에게 너그러움으로 베풀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부부들 너무해

 

요즘 TV에서 보면 부부 이야기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한 프로들을 보면서 놀란 것은 거의 대부분의 여자 배우자들이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석에서라면 몰라도 집에서라면 몰라도 어떻게 공중파에다 대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나로선 도저히 이해 불가다.

 

때문에 몇몇 그런 방송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그것을 만드는 방송사 PD가 왜 그들의 호칭을 정정해 주지 않는지 의아하고 의아했다. 이제 남편을 오빠라 함은 빼도 박도 못할 대세인가. 그러나,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애들 키우고 살면서 남편에게 오빠라 할 수 있나. 물론 호칭은 호칭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이란 게 또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부름으로서 의미가 반영되고 굳어지는 것이다.

 

오빠, 좋다. 그러면 오빠라 부를 경우 누구에게 득이 될까? 각각 집 사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가부장적 남편의 경우 오빠 소리를 들으면 대부분 그 권력을 휘두르기 쉽다. 반대로 유약한 남편의 경우 오빠 소리는 듣지만 늘 시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빠라 부르면서도 서로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앞에서도 말했듯 하루 이틀 사는 결혼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에게 흐트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럴 경우 이 오빠라는 말은 평등을 이끌어 주는 말이 아니다. 부부 사이는 나이차를 떠나 평등한 사이인데 평등하지 않는 말을 끌어다 쓰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좋지 않다고 본다. 즉, 여차하면 오빠가 지 맘대로 함부로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오빠를 종 부리듯 부릴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되려면 우선 호칭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하면 그 드라마에 나오는 부부(연인)들이 어떤 호칭을 쓰고 존대는 쌍방인가 일방인가를 보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그 드라마의 품격(?)을 가늠할 수가 있다.

 

드라마 상에서만 봐도 서로 '여보당신' 혹은 '00씨' 하며 존대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사이가 좋다. 반면, 가부장적인 남편이 아내에게 존대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호칭은 이처럼 중요하다. 오빠 소리 들으면서 자기 아내에게 존대하긴 힘들 것이다. 존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만큼 오빠라는 말은 평등한 부부가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임의 방증일 것이다.

 

평등한 호칭이 좋은 부부관계를 이끌어....

 

이러니 시절을 몰라도 너무 몰라보고 구닥다리 같은 주장만 하는가 싶어 의기소침해 지기도 하는데 남들의 생각은 어떤지요?

 

평소 부부간 호칭의 평등이 그 부부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기에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이는지, 최수종 하희라씨가 인터뷰 할 경우 항상 서로를 일러 '최수종씨는...' '하희라씨는....' 이라고 하는 것이 무척 듣기 좋았다. 그리고 이세창 김지연씨 부부도 서로의 이름을 잘 불러주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항상 의문이 드는 이는 김보민 아나운서였다. 이분은 명색이 아나운서인데 김남일선수를 일러 '오빠'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어느 프로에선가는 아나운서로서 표준말에 대해 항상 긴장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남편을 일러서는 오빠라고 하였다.

 

물론 이 부부는 깨가 쏟아져서 오빠라고 부른다 해서 서로를 함부로 대할 사람들은 아니겠으나 그래도 김보민 '아나운서'아니신가? 아나운서가 '오빠'라는 말을 그렇게 오용하면 우리 보통사람은 누구를 따르라는 말인지.

 

둘이 있을 때야 뭐라고 하든 적어도 공중파에서 만큼은 모두들 호부호형(呼夫呼兄)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그냥 영원히 연인으로 산다면 모르겠지만 자식 낳고 살고 그 자식들 점점 커가고 하는데 여전히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글쎄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계속 그렇게 호명하다 이다음에 자식들이 결혼하여 며느리를 맞아서도 머리허연 남편을 일러 '오빠'라고 한다면?

 

혹,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만 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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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5 17: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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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7 0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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