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정해
임창순 지음 / 소나무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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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겨울 같지 않아서 그런지 제라늄이 계절을 잊은 듯 이 화분 저 화분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피어나고 있다. 가로수 나무들도 모두 월동준비를 끝낸 이 시절에 꽃을 피우니 오상고절에 제라늄도 추가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번 삼동은 또 어이 날꼬?'하며 겨울의 시작부터 바로 꽃피는 춘삼월을 기다리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이 웬만큼 크고 정신적 여유도 있는데다 날씨까지 이러니 겨울을 맞고 있는지 봄이 오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때문에 꽃이 굳이 피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보너스처럼 피어주니 그것은 그것대로 반갑다. 진주황, 연분홍, 분홍, 진분홍 저마다 아름다워 어느 것이 더 예쁘다 가릴 수가 없다. 이렇듯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열 없이 계절 없이 태평한데 봄, 여름, 가을도 모자라 이렇게 따뜻한 겨울마저도 그 어느 때 보다 시리게 보내고 있는 용산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꽃을 보고 미소 짓는 일조차 부끄럽다.  

 

임창순 선생의 <당시정해>(소나무)에서 고교 졸업 후 20년도 넘어 두보의 <춘망>을 다시 읽자니 시절이 하 수상해서 그런지 시공을 거슬러 이심전심이 되었다. 아마, 두보가 이 시대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면 수구들이 툭하면 입에 달고 사는 '좌파'로 몰려 필화를 입었을 지도 모르겠다.

 

春望(춘망)-봄에 바라 봄
 

                                                           두보(杜甫)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가 허물어졌는데도 산과 물은 남아 있고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성에 봄이 찾아오니 풀과 나무가 우거졌다.

感時花淺淚(감시화천루)    시국을 생각하니 꽃을 보고도 눈물을 뿌리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가족과 헤어져 있으니 새소리에도 마음이 놀란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봉화불이 석 달이나 계속되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집안의 편지는 만 냥에 해당하리라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흰 머리털 긁을수록 더욱 짧아지니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이제는 머리에 꽂는 비녀를 버티지 못할듯하다.

 

시성이 살던 시절에는 전란으로 나라는 허물어졌을망정 산과 물은 그대로였다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산과 물도 다 허물어 질 일을 벌이고 있으니 답답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당시(唐詩)는 모두 몇 수? 당나라 시인은 모두 몇 명?

 







  
당시정해
ⓒ 소나무
임창순





내가 들어본 당나라 시인 이름은 이백, 두보, 왕유, 백거이, 유종원 등이 고작인데다 이들의 시도 겨우 한 두수 교과서에서 배운 게 전부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현존하는 당시가 '약 5만수'라고 한다. 시인의 수는 2천여 명이고 언급한 대가들 외에 나름 '문학 사상에 일정한 지위를 차지한 사람만 해도 50~100여명'에 이른다고.

 

당시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저자는 '해석을 읽어서 뜻을 이해하려고만 애쓰지 말고, 마음으로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로 뽑아서 입에 무르녹을 정도로 몇 십 번 내지 백 번이라도 반복해서 읽어서 암송할 정도에까지 이르면 그 시의 진미를 저절로 알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렴.

 

한시는 형식에 따라 글자 수 제한과 운 등이 있어 절제되고 함축적이니, 외운 다음 되새김하며 음미해야 비로소 제 맛이 날 것이다. 요즘 초등생들은 한자급수 시험을 친다는 목적으로 한자 공부 또한 경쟁적으로 하던데 그것보다 차라리 한시 한 10수정도 외우게 하는 게 더 낳지 않을까. 급수시험 치고 나면 알던 한자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게 마련인데 입으로 외운 한시는 그렇지 않다.

.............

 

하여간, 사방이 꽉 막혀 도무지 소통이 안 되는 이 시절이 어서 지나고 모두가 이백처럼 호탕하게 술 한 잔 권할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잔이 무에랴. 이백은 한꺼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 된다고 하였다. 

 

將進酒(장진주)-권주가

                                                              

                                                       李白(이백)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奔流到海不復廻  (분류도해불부회)     흘러서 바다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君不見              (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명경비백발)     높다란 마루에서 거울을 보고 백발을 슬퍼하는 것을.

朝如靑絲暮成雪  (조여청사모성설)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가 저녁에 눈처럼 된 것을

人生得意須盡歡  (인생득의수진환)     인생이 기분이 좋을 때에는 기쁨을 만족하게 누리고

莫使金樽空對月  (막사금준공대월)     빈 술잔에 부질없이 달빛만 비치게 하지 마라

天生我材必有用  (천생아재필유용)     하늘이 나 같은 재질을 냈다면 반드시 쓸 곳이 있으리라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산진환부래)     천냥 돈은 다 써버려도 다시 생기는 것을

烹羊宰牛且爲樂  (팽양재우차위락)     양을 삶고 소를 잡아서 우선 즐기자

會須一飮三百杯  (회수일음삼백배)     한꺼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 된다.

岑夫子,丹丘生  (잠부자,단구생)     잠선생과 단구군이여

將進酒,君莫停  (장진주,군막정)     술을 권하노니 술잔을 멈추지 말라

 

.......(중간 생략)

 

五花馬,千金裘  (오화마,천금구)     좋은 말과 천 냥짜리 외투를 가지고

呼兒將出換美酒  (호아장출환미주)     아이를 불러 나가서 좋은 술로 바꿔오게 하여라.

與爾同銷萬古愁  (여이동소만고수>    그대와 함께 만고의 시름을 없애고자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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