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도시 LA. 그러나 노숙자는 무려 9만 명. 2005년 LA타임스의 스티브 로페즈 기자. 그는 9만 명 중 한 사람인 비운의 천재 음악가에 대한 기사를 썼다. 그것이 반향을 일으키자 시 당국은 창피했는지 아님 나름 도시 정화 차원인지 그 9만 명의 노숙자 중 1만 명을 선별하여 구속했다고 한다.

 

9만 명의 노숙자도 어마어마한 숫자이지만 그중 1만 명을 가려내 잡아가둔 것도 입이 벌어질 일이다. 1만 명을 가두자면 감옥 또한 새로 신축했던 것일까. 아무튼, 이와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 무엇보다 '진짜' 노숙인들이 엑스트라로 무려 '500명'이나 나온다기에 급호감이 발동했다.

 







  
솔로이스트
ⓒ 워킹타이틀
솔로이스트

음악도가 무슨 사연으로 노숙자를?

 

LA타임스 기자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는 글이 막혀 전전긍긍하던 중 우연히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다니엘(제이미 폭스 분)'을 만나게 된다. 네 줄 아닌 두 줄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그가 예전에는 '첼로'를 연주했네 하더니 급기야 그의 입에서 '줄리어드' 어쩌고... 하는 말이 나왔다. 

 

'에이 설마?' 하면서도 그 대학에 확인해본 결과 중퇴일망정 그가 왕년에 음악학도였음은 사실이었다. 아니 무슨 사연으로다가 내노라 하는 음악도에서 노숙자로? 수소문 끝에 나다니엘의 동생과 통화를 하고 그의 발병 사실을 알게 된다.

 

하여, 기사로 우려(?)먹고, 고맙기도 하여 겸사겸사 그를 돕기로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노숙보다는 네모난 벽이 있는 아파트가, 거리보다는 오케스트라 무대가 훨씬 더 좋을 것이나, 이 거리의 악사는 기자 친구의 마음을 몰라주었다. 기실 노숙도 처음 한번이 무서울 뿐, 나다니엘은 나다니엘 대로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을 구속하고 변화시키려 드니 친구가 생긴 것까지는 좋은데 마뜩찮았다.  

 

사실 스티브와 같은 경험을 우리는 때때로 하게 된다. 딴에는 진정 상대를 위하는 일인 것 같아 나름 최선을 다해보지만 상대는 '일 없슈'라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는 자식일수도, 부모일수도, 제자일수도, 친구일수도 있다. 내 마음을 몰라줘서 안타까운 것보다 그냥 그대로 본인이 원하는 대로 두었을 때 초래될 결과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려보지만, 옛말에 정승도 저하기 싫으면 못하고 부처님도 인연이 안 닿으면 못 도와준다고 했던가.

 

괜한 헛힘 쓰지 말고 '가끔 그의 친구나 되어주라'고 이혼한 부인은 충고하지만, 그럼에도 스티브는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행복이란 것이 주관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얼마간은 객관성이 보장되어야 행복도 행복 아닌가 말이다. 허나, 짠한 마음 씁쓸해도 본인이 싫다는데 우쩔것이여.

 




조 라이트 감독. 위에서도 언급했듯 500명의 노숙자를 엑스트라로 썼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저분은 진짜노숙자일까, 배우노숙자일까 점치곤 했으나 알 길이 없다. 배우노숙자 노릇을 해본 진짜노숙자들은 이 영화를 찍고 나서도 진짜 노숙자 생활이 여전히 가장 자신들에게 맞는 생활방식이라 생각할까.

 

좀 다른 배역을 맡고 싶진 않을까. 다른 배역을 하고 싶어도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를 존엄하게 하는 품위가 약에 쓸래도 없어 보이던 그 스산한 삶들에게 진정 새로운 희망은 없는 것인지. 단순 음악영화인줄 알았더니 음악도 음악이지만 현 미국사회의 모순 또한 가감 없이 들춰내준 영화였다.

 

'제이미 폭스'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두 사람의 연기호흡 또한 압권이었다. 상대방의 말에는 별 관심 없이 자기말만 해대는, 그렇다고 상대의 말을 전혀 안 듣는 것도 아닌 나다니엘을 상대로 스티브는 적절히 치고 들어가 끊어 질듯 하면서도 대화를 이어 갔는데, 그 '불협'의 화음 또한 하나의 '음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