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급한 부모를 둔 아이라면 세상에 나오기 전 엄마뱃속에서부터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제주도일진대. 나는 마흔 둘이 되어서야 드디어 제주도를 구경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언니는 나보다 더하여 쉰다섯이 되어서야 제주 땅을 밟았다.

 

늦은 감이 있으나, 늦은 만큼, 오래 기다린 만큼 만족도는 배가 됨에랴. 내 또래의 경우 주변을 둘러보면 제주도 못가 본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였다. 많이는 신혼여행으로 혹은 친구들과 혹은 가족여행 등 다들 늦어도 마흔 전에는 제주도를 졸업하는 분위기였는데 나만 사십이 넘도록 늘 상상으로만 제주도를 만났다.

 

그 실물을 알 수 없기에 제주도 갔다 온 사람들에게 늘 묻곤 하였다.

 

"정말, 제주도는 우리나라 땅이 아닌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한 그런 곳이야?"

"가로수부터 다르고 남태평양 어느 섬의 느낌이 난다 메?"

"귤 밭에서 귤을 따면 정말 재미있겠네?"

"올레는 정말 입소문처럼 매혹적이야?"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정말 제주도는 한번 가볼 만하다면서. 4박 5일 아니면 넉넉하게 한 일주일 정도 말미라면 제주도를 두루두루 답사할 수 있다기에. 그렇구나, 나도 언젠가는, 했었는데 그 날이 바로 이번 10월이 된 것이었다.(16~18일)

 







  
백록담은 물이 말라 익숙하던 사진과는 너무 달라....
 
백록담











  
백록담 정상에 선 사람들
 
백록담 정상





사실 남들 다 가본 제주도를 그동안 안가고도 별 답답함 없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껴두고 뜸을 좀 들여서 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행기에 대한 무서움 때문이었다.

 

이젠 까마득한 추억이 돼버린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1995년 여행 차 부모님 몰래 비행기를 한 번 탔고 다음해 역시 부모님 몰래 일어 공부 차 일본에 가서 생활했던 것이 내게는  군대기억처럼 이따금 일 년에 한번 이상 악몽으로 떠오르곤 하였다.

 

흔히 제대 군인들이 자신은 분명 제대를 했는데 어느 날 꿈속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와서,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기에 이런 게 또 날아 와? 아니 내가 정말 군대 안간 게 아닐까? 군대 안간 게 진짜고 군대 간 건 꿈이 아닐까. 아니, 아니야, 갔다 왔잖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행정착오가 나서 두 번 군대 가야 되는 거야? 행정 착오건 뭐건 군이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 아냐? 으앙~~' 하며 가위 눌리는 것처럼 나는 공항에서 비행기 표를 분실하는 꿈과 도쿄에서 방 못 구하는 꿈을 교대로 꾸곤 하였다.

 

꿈에서 깨고 나면 제대군인들이 그런 것처럼,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안도하며 대신 군대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배추국과 미역국을 싫어하듯이 나는 앞으로 오래도록 비행기를 타지 않음으로서 악몽을 떨치려 하였다. 그랬는데 그것도 한 10년을 넘어가니 공포는 사라지고 역으로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 되었겠다.(ㅎㅎ) 

 

한라산도 지금 단풍 절정

 

이즈음 저녁 뉴스를 보면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단풍에 대한 소식을 꼭 전하는데 그럴 때 마다 그것을 보도하는 기자는 며칠은 어디가 단풍이 절정이고 또 그 다음은 어디하며 읊어 주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제대로 가을 단풍을 보려면 신문이나 방송의 단풍뉴스를 놓치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단풍을 보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신문에서 본 단풍 절정예상일에 한라산은 아예 예상 물망에도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갈 언니도 좀 더 있다 단풍이 절정이다 할 때 가면 어떨까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항공권 예약이 이미 다 차서 자리가 없으니까 단풍 꿈은 접고 그냥 제주도 간다는데 의의를 두고 가자며 나선 것이었다.

 







  
멀리 보이는 단풍 능선
 
단풍





 











  
우리도 이렇게 아름답게 최후를 맞을수는 없을까.
 
단풍





그런데 웬걸? 한라산도 이미 단풍이 절정이었다. 한라산 꼭대기에는 단풍은 벌써 지고 단풍나무들은 저마다 월동준비를 끝내고 겨울눈만 발갛게 내놓고 있었다. 즉, 한라산 정상은 이미 매서운 바람으로 나뭇잎이 붙어있을 수가 없었고 그보다 고도가 조금 아래인 곳부터 한라산의 반절은 온통 단풍 천지였다.

 

우리 자매가 그랬듯이 한라산을 오른 등산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단풍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쩜!'하며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아무렴, 아침에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단풍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라산 기슭은 여전히 녹색이 창창했고 무성한 잎들이 만들어 준 그늘로 인해 산은 보다 그윽하고 고요한 느낌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단풍뉴스에서 말하는 단풍의 절정이 단풍이 산기슭까지 완전히 내려온 때를 말한다면 한라산 단풍은 아직 절정이 아니겠으나. 산기슭까지 다 내려온 때를 절정이라 말한다면 그때는 아마 1500미터 이상 고도에서는 단풍이 모두 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며칠은 어느 산의 단풍이 절정이네 하는 보도는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즉, 10월이라면 어느 산을 가든 정상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다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정상에 오르지 않고 조금 오르다 말 사람들은 동네 야산이 혹은 도시의 가로수가 조금씩 물들면 그 때 산엘 가면 기슭까지 내려온 단풍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풍길, 한라산엔 여느산에 비해 산죽이 특히 많았다
 
단풍나무 숲길





마치며...

 

하여간, 지난주에도 한라산 중턱과 그 이상의 고도에서는 단풍이 한창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그 단풍이 좀 더 밑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 내려온 만큼 위쪽의 단풍잎들은 떨어져 내려 이제는 뭇 등산객들의 발길에 머물 것이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있었기에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라산의 산세가 온화해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고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리산 외에는 그런 생각 안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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