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한겨레>에 연재되던 철학자 김영민 교수의 영화 이야기가 끝났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본 영화도, 이분의 해석은 어찌 그리 찬란한지 그의 영화이야기를 읽고 나면 괜히 내 생각의 얕음에 주눅 들곤 했다. 

김 교수뿐 아니라, 철학자나 정신분석학자 그리고 영화감독들의 영화이야기를 볼 때마다 의문이 든다. 왜 그들이 감동한 영화들 중, 내가 못 본 옛날 영화들이 그리도 많은지. 아니면 좋은 영화 다 놔두고 하필 <메멘토>처럼 여러 번 봐야 이해 될 그런 영화들만 분석하는지. 영화에 대한 해석은 평론가나 철학자들보다 누리꾼들의 소탈하면서도 때론 심오한 평들이 훨씬 좋고 쉬이 공감이 간다. 

하여간, 이름난 사람들이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난 별 관심 없었다. 근데 이 책의 제목에 낚였다. '내 인생의 영화'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책 뒤표지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호객행위를 하니 더더욱 그 속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가 삶에 각인된 순간, 영화로 인해 삶이 뒤바뀐 역전의 찰나, 거기서 인생의 스파크가 일어난다. 영화라는 필터를 거친 삶의 찬란한 편린."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영화를 좋아했구나

<내 인생의 영화>(씨네21)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50인의 50가지가 넘는 영화들이 소개되어있다. 어려운 철학적 해석보단 쉬이 공감이 가는 소탈한 고백들이라 낚인 기분은 상쇄 되었다. 무엇보다 일단 소개하는 사람 수와 소개되는 영화의 가짓수가 많은 만큼 공감 가는 영화들도 확률적으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살았어도 때론 경험의 빛깔이 나와 비슷한 분의 글을 만나면 저절로 '어머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가 하면 내가 못해본 무용담을 소개한 분의 글은 부럽다 못해 살짝 질투까지 났다.

"보고 싶은 영화 개봉 날 첫 회에 봐야 직성이 풀렸고 '연소자 관람불가'도 학교 앞 만화방에 맡겨둔 사복, 가발, 털모자, 선글라스를 사용해 변장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졸업> 역시 '불가' 영화였지만 매표소를 통과할 때 긴장감이나 가책을 느꼈던 것 같진 않다."(32쪽)

위는 누구일까? 다름 아닌, <송환>을 만든 김동원 감독의 추억이다. 나 또한 보고 싶은 영화는 예고편 보면서 찜해 놨다가 개봉 날  첫 회에 본다. 보긴 하는 데 내가 '첫 회'에 보는 것은 순전히 조조할인을 챙기기(?) 위함이 김 감독과 다르다면 다르달까.

음악 평론가 강헌씨는 영화광들이 선호하는 <대부2>보다 <대부1>이 훨씬 났다고 했다.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또한 그와 똑같이 <대부1>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대부1>은 젊은 알파치노의 고뇌, 말론 브란도의 강한 인상, 그리고 조폭을 모시고 살기엔 어쩐지 아까워 보이던 지적인 변호사 로버트 듀발과 젊은 날의 다이안 키튼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영화전개가 세련됨은 두말 할 것 없고.

유시민 전 의원 '내 인생의 영화'는? 

"독일서 귀국한 직후인 98년 봄쯤일 게다. 어느 술자리에서 누가 물었다. 근자에 본 영화가운데 기억에 남는 게 있느냐고. 이 영화를 거론했더니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뜨악한 표정으로, 그런 영화가 다 있냐며 눈으로 물어온 건 20대. 보진 않았지만 괜찮은 영화라는 말은 들었노라고 비위를 맞춘 건 30대. 나이 마흔을 오래 전에 넘긴 선배만이 그윽한 눈길을 보내왔다."(160쪽)

도대체 어떤 영화? 유시민 전 의원이 '내 인생의 영화'로 찍은 영화는 어쩌면 그와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다. 이유가 뭘까. 사연을 읽어보니 영화도 영화지만 독일 유학 3년째 되던 해, '옆지기' 생일날 본 영화여서 더욱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까지 남의 집에 맡기고 부부가 함께 보러간 영화였다는데 우리나라완 달리 당시 독일에서는 이 영화가 별로 흥행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영관에선 그들 부부 외에 할머니 한 분만 그 영화를 보았고, 그 후 조기 종영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박은 몰라도 '중박'은 넘은 걸로 아는데 독일 사람들의 취향이 우리와 많이 다른가. 

어쨌건, 나도 이 영화에 관해서는 나름의 기억이 있다. 이 영화가 나올 당시, 라디오에서는 동명의 소설광고가 낭만적인 성우의 목소리로 광고되고 있었다. 성우의 목소리는 좋아도 책을 사볼 생각은 못했는데 우연히 친구들과 함께 자정쯤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보고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친구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동명의 소설을 밤새워 다 읽고는 '너무 멋있네, 어쩌네' 했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추억을 주고 웃음을 준 영화, 힘들 때 힘이 되어 준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손석희는? 노희경은? 공지영은? 김지운·박찬욱 감독은 어떤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였을까? 답은 이 책에 다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