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열쇠고리' 어디로 갔나? '키홀더'가 웬 말이냐!

 

얼마 전 드라마 <신의 저울> 재방송을 보고 난 후,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세종대왕께 너무 미안한 단어 하나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극 중 주인공 영주(김유미 분)가 연인 우빈(이상윤 분)에게 "오빠, 키홀더 찾았어"하며 전화로 소리쳤는데 나는 처음에는 그 소리가 뭔지 못 알아들었다.

 

모양은 '신의 저울' 모양의 열쇠고리로 보였는데, 이 드라마에서 그것은 중요한 단서인지라 두 남녀 주인공은 그것의 발견을 두고 서로 달뜬 목소리로 몇 번이고 '키홀더'를 반복했다.

 

'키홀더', 이렇게 쓰고 보면 영어를 접한 사람은 누구나 감이 오겠지만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발음으로 난생처음 키홀더란 소리를 들으니 언뜻 와 닿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니, 쟤들은 열쇠고리 같은 걸 두고 왜 키홀더라고 난리지?'하고 생각하다, 몇 초 더 흐르고 나서야 그게 그거구나 이해했다.

 

열쇠고리 살 일이 없다 보니 열쇠고리가 키홀더로 불리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열쇠고리는 아직 열쇠고리로 불리고, 다만 저 드라마에서만 유별나게 키홀더로 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보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어쨌든, 키홀더가 열쇠고리 대신 쓰이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선 "쯧쯧"하는 낮은 탄식 음이 흘러나왔다.

 

[사례 2] 무빙워크? 아주 귀에 딱지가 생기려 하네

 

모 대형 할인점에 갔다가 역시나 나는 예의 그 반복되는 '무빙워크'라는 말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빙워크에서는 어쩌고저쩌고 하지 마세요란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데, 정작 그 '무빙워크'에서 어쩌고저쩌고 할 사람들은 대게 그 말뜻을 못 알아듣는다. 7살인 둘째가 촐랑대자 나는 안내방송을 통역해 줘야 했다.

 

'무빙워크'를 대체할 말이 없을까. 어쩌다 한 번씩 '그 길'에 설 때면 매번 그 길에 대한 명칭을 고민하게 된다. '자동길', '스스로길', '스르르길', '미끄럼길' 등 나름 표정을 일그러뜨려가며 궁리하다가도 그 길이 끝남과 동시에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오늘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이 무빙워크라 불리는 물건을 일러 '수평보행기'또는 '자동길'이라 하였고 국립국어원에서는 '자동길'로 부르길 권장하였다. 자동길, 좀 어색하긴 하지만 자꾸 부르면 입에 익지 않을까.

 

[사례 3] 지역축제는 '페스티벌'?

 

가끔 뉴스에서 지역축제의 이름 끝에 '페스티벌'이라는 말이 붙는 것을 볼 때면 마치 갓 쓰고 양복 입은 사람을 본 것처럼 어색했다. '영동 곶감페스티벌', '영양고추 HOT 페스티벌', '안동국제탈춤 페스티벌'.

 

곶감·고추·탈춤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인데 왜 이런 축제의 제목에 영어를 끌어다 써야 되는지. 온 나라가 영어 열풍이니 마치 대한민국 사람 다 영어를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50대 중후반 넘어가면 영어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알아도 알파벳과 간단한 단어는 알아도 페스티벌 같은 좀 긴 단어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외래어 충분히 우리말로 바꿀 수 있어

 

KBS <상상플러스>에서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주는 꼭지가 있다. 선정된 외래어들을 보면 도무지 우리말이 없을 것 같고 짓기도 마땅찮아보이는데 결론을 보면 항상 진수성찬이다.

 

다음은 <상상플러스>에서 우리말로 바꾼 외래어중 몇 개를 옮겨 온 것이다. 

 

◈ '퀵서비스'를 우리말로 바꾸면?

1위-휙배달

2위-빠른건네미

3위-번개발

4위-늘찬배달

5위-날쌘전달

 

◈ '안티팬'을 우리말로 바꾸면?

1위-반대지기

2위-도리꾼

3위-가탈쟁이

4위-궂은벗

5위-게정꾼

 

◈ 내비게이션을 우리말로 바꾸면?

1위-길초롱

2위-길도우미

3위-길눈이

4위-전자길잡이

5위-척척길박사

 

◈ 마일리지를 우리말로 바꾸면?

1위-차곡돈

2위-되돌이씨앗

3위-이용실적점수

4위-씀씀이덤

5위-덧두리점수

 

위에서처럼, 누리꾼들이 만든 재치 있는 우리말들을 보자, 머리를 맞대면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는 외래어들을 충분히 우리말로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니까 퀵서비스로 보내줘"보다 "급하니까 번개발로 보내줘"가 훨씬 정겹지 아니한가. "너는 마일리지가 얼마나 있니?"보다 "너는 되돌이씨앗이 얼마나 있니?"가 더 운치 있지 아니한가.

 

아무튼, 올해도 변함없이 한글날은 돌아왔다. 돌아왔는데, 한글 사랑의 온도는 자꾸만 낮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